좋은 아침입니다.
1.잠결

녹서
2022.05.20조회수 35
눈을 느리게 깜빡이다 떴다. 은색의 머리칼이 목 뒤를 간지럽혔다. 몸을 돌려 민윤기를 마주보았다. 어두운 방 안에서도 환히 보이는 그.
안녕, 좋은 꿈이야 나의 ( )
배게에 묻힌 얼굴이 팅팅 불어 멍한 얼굴이 되어있었다.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창 밖은 새하얬고 파도가 물결을 일으키듯 눈 앞은 바다가 데려온 새하얀 눈이 사박사박거리며 가득 모래사장을 덮었다.
발을 옮겨 거실로 향한다. 그러면 큰 창문 너머로 햇빛이 넘실거린다. 소파에 다시 누워 발을 뻗었다. 식물들이 햇빛을 받아 연녹빛을 띄었다.
마저 하지 못했던 설거지를 하고, 진탕 민윤기와 마셨던 술병과 잔을 정리하고, 책상 위를 닦고 도로 소파로 향해 누우면 민윤기가 비척비척거리며 그 좁은 소파 틈으로 기어들어와 품을 가득 끌어안는다.
좁아 임마.
....
이놈자식
봐줘...
피곤함이 채 깨지 못한 모습으로 웅얼웅얼. 민윤기는 제 어깨에 얼굴을 파묻고 고양이처럼 얼굴을 부비는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면 저는 민윤기의 마른 품을 끌어안고 그의 등을 쓰다듬는 것이었다.
따뜻한 손길에 또다시 민윤기는 잠에 든다. 저는 웃으며 민윤기를 안아 다시 침대에 올려놓은 후 늦은 오후 11시에야 아침을 차리는 것이다.
떡볶이가 먹고싶다던 그의 말을 기억해 떡볶이를 사러 갈 참이었다. 조심히 신발을 갈아신는다. 철컥이는 소리를 내며 문이 열린다.
그렇게 나가려고 문 밖을 한 발자국 디디면 그 소리에 민윤기는 자던 잠도 제쳐두고 겁에 질린 표정으로 뛰어와 현관문 앞에서 제 옷자락을 잡아당기는 것이다.
윤기야.
위험해.
나 어디 안가. 떡볶이 사올게. 우리 같이 먹기로 했잖아.
.....빨리 돌아와.
울지마.
말이 무섭게 민윤기는 쉽게도 눈물을 글썽인다. 그럼 저는 몸을 돌려 민윤기를 품에 가득 끌어안는다. 어깨가 따뜻해진다. 훌쩍이는 그 상처많은 등을 쓸어내린다. 아, 어쩌다 이 사람이 이렇게 약해졌더라.
그랬다.
그 날, 내가 죽어버렸던 날.
그 문 밖을 나갔었던 날.
너를 지키기 위해 싸웠던 그 어느 맑은 가을의 날.
올해도 또 가을은 돌아왔다.
윤기야. 나는 살아남을거야.
그렇게 너를 지킬거야.
약속할게. 내 이 한 목숨 바쳐 너를 위해 죽을게
연수는 이전 그렇게 말했던 적이 있었다.
세상에서 도망친지 3년 가까이 되었다.
민윤기도 저도 지쳤기 때문이었다. 도망치게 된 계기는 단순했다.
제가 지쳐 쓰러질 때마다 기운을 불어넣어주던 제 연인이 도망가자고 얘기를 했기 때문이었다.
정연수.
왜?
..떠날래?
.....미쳤냐
첫 반응은 분명 이랬다. 미쳤냐고, 어디로 떠나냐고 물었다. 우리가 갈 곳은 있냐고 물었다.
그럼 민윤기의 답은 그랬다. 자기도 모른다고. 아마 저는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는지도 모른다.
민윤기는 그런 얘기를 많이 했다.
이 도시를 떠나자고, 이 동네를 떠나자고, 이 사회를 떠나가 어디로든 향하자고. 너가 이끄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겠다고.
비린내 아득한 부둣가도, 흙냄새가 흘러넘치는 숲으로도, 네가 간 곳이 지옥이더라도 너가 향하는 모든 발걸음을 뒤따라가겠다 말했다.
그런데 윤기야
이렇게 떠난 우리는 누가 받아줄까
그 맑은 창공도, 어지러이 흩어진 숲도, 일렁이는 파도도 우리 편이 아닌데.
이 땅도 우리 편이 아닌데. 우리는 누구의 품에 기댈 수 있을까.
우리가 이렇게 되고 싶어서 된 것도 아닌데 그들은 우리를 괴물 취급해.
윤기야.
......
우리 떠날까.
웃기게도 우리 편은 우리밖에 없더라.
그날 저는 울었다. 절망했다.
민윤기는 저에게 대답하기보다도 슬프고도 희미하게도 웃어보였다. 그 눈을 마주보기 어려웠다.
이 이름을 버린 그 날, 민윤기는 그 이름을 버림으로써 한 번 죽었다.
우린 이제 없는 사람이야.
그날 우리는 기차를 타고 숲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별이 잘 보이는 곳으로, 우리가 숨 쉴 수 있는 곳으로. 아무런 위협이 오지 않는 곳으로.
시계 초침이 째깍째깍 움직인다.
떡볶이를 해치우고 설거지를 하고 있노라면 민윤기가 뒤에서 슬쩍 다가와 그 손이 제 등을 훑는다. 흉터를 쓸어내린다.
윤기야, 이미 다 나았어. 그러나 민윤기는 여전히도 저를 품에 끌어안는다.
윤기야.
응.
이제 그만 불안해 해도 괜찮아.
오랜 침묵이 흘렀다. 민윤기는 웃지 않았다. 그저 제 팔을 만지작거릴 뿐이었다.
이제 나는 돌아가야할지도 몰라
.....뭐?
민윤기의 손이 벌벌 떨린다. 아니, 어쩌면 내가 떨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두렵다. 불안정하다.
민윤기를 떠나야, 민윤기가 점차 나를 잊어야, 민윤기 스스로 자신의 삶을 찾아나갈 것이라는 생각은 첫 도망부터 생각하고 있었다. 그에 도달한 답이 결국 3년이 지나서야 실행될 것 같았다.
농담이야.
나는 민윤기가 웃을 때처럼 환하게 웃는다. 민윤기는 미묘한 표정으로 저를 바라본다.
푸하하. 연수는 결국 웃고만다.
농담이라니까. 엄청 진지하네
민윤기는 그제야 표정을 풀고 저를 바라본다.
진담인 줄 알았잖아
민윤기는 입동굴 가득 웃어보인다. 나는 그 순수한 낯빛에 또 마주보며 눈웃음을 짓는다.
나는 그 미소에 웃을 수 없었다.
나는 너를 위해서 떠난다.
부디 나를 잊길, 그렇게 잊고 살아서 행복하게 보내길
이제 눈을 떴을 때 그 옆에는 아무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