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아침입니다.

3.같은 존재


침묵들이 흘러넘친다. 박지민은 내 눈 앞에 앉아 고요히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아직 해결하지 못한 질문들이 많다는 듯


...감히 물어봐도 될까요.

물론.

왜 도망치셨습니까. 뭐 저는 선배님의 능력이나 그런 것들은 전혀 모르지만요.

..그냥. 새삼 질려서.

선배 가이드는요? 저희는 가이드 없이는 죽는 존재잖습니까.

지민아. 내가 죽어서. 그 가이드를 지킬 수 있다면 어쩔래.

..........

그래서 두고 온거야. 정부 소속인 그들은 무조건 날 잡으러 올거고, 잡힐것도 알고 있어.

그걸 알면서도...

그냥. 그 사람이, 내 가이드가 자유를 원했으니까. 나는 그 애가 어디를 가더라도 그 뒤를 따를거야.



지민은 그런 연수를 보고 이 얼마나 대단한 사랑인가 싶었다. 순간 닮은 사람이 생각날 듯 했지만 금방 잊혀졌다. 



그럼 네 가이드는.

..네?

너말이야.

....비슷한 처지입니다.

...뭐?

그냥. 약물로 버티는거죠. 제가 싫어서 멀리 떠났거든요. 한참도 전에요. 저는 약 효과가 잘 맞나봐요

.........

기억이 잘 안나네요.

아팠겠네.

한참 전의 일입니다. 기억도 안나서..

기억이 안나는게 아닌 잊어버릴 수 밖에 없었던 것이겠지.

........어떻게 아세요.

센티넬 관리 지침 12조 2항.
각인한 센티넬의 가이드가 죽었을 때에는 센티넬의 폭주를 막기 위해 센티넬의 기억을 지운다.
너가 모를리가 없지. 부산지부 담당이면서.

.....

알고 있잖아. 너의 가이드가 죽었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알고싶지 않습니다. 가이드를 좋아했는지도 기억에 없는걸요.

원래 그런거야. 사람은 죽음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거든.

.......선배님은.

이전 서울지부 특위대 소속 센티넬...이었지. 이젠 사람 죽이는 일도 그만 하고싶어. 내 가이드가 죽는 것은 그렇게도 싫으면서 내가 남을 죽이고 있다니 웃기기 짝이없어.

우리는 센티넬이니까요. 그들을 죽이는 건 맞고, 시민을 지켜야 하는 것이 정부소속 센티넬의 의무라고 생각합니다만...

대단하네.

네?

사람들을 지킨다는거 말이야. 삶의 목적이 이타적이라고. 너가 착하다는 뜻이겠지.



지민은 고개를 푹 숙였다. 제가 착하다고요. 잠시 입을 웅얼거리다가 희미하게 미소지어보였다.



설마요.
아무튼 이제 여기서 지내시면 돼요. 어차피 저는 남준이 형 편이라서요. 신고할 생각도 없고, 저는 이 집에 거의 안 들어와요.

고마워.

저도 정부를 좋아하진 않습니다. 이 말이 정부에 들어간다면 끌려가 처형당할 말이지만요

물론 내가 말할리가 없지.

저는 센티넬이 정부를 위하는게 아닌 시민들을 위한 존재라고 생각해요.

좋은 생각이야. 이런 사람이 많으면 좋을텐데

그래야겠죠...그럼 전 이만 돌아가보겠습니다. 호출이 와서요.

조심히 가. 오거한테 습격당하지 말고.

약해보여도 부산지부에서 제가 제일 강해요.

그래보여. 그래도 조심은 해야지

감사합니다.



지민은 고개를 꾸벅 숙이더니 조심히 문을 닫고 복도를 걸어나갔다. 저는 가만히 소파 위에 몸을 뉘이고 멍하니 불 하나 들어오지 않은 회색 천장을 바라본다.

이제 너가 없어 윤기야. 가을의 차가운 바람에 서로 몸을 가까이 붙이며 온기를 느낄 네가 없어.
내가 너무 이기적인 걸까 생각이 들어. 그러나 이게 나의 최선이었음을 너가 알아주기를.

또 다시 잠에 든다. 그날따라 계속 자다 깨기를 반복했다. 악몽을 꾼 탓이었다. 가이드가 죽는 꿈을 꾸었다.
그가 죽지 않게 하기 위한 나의 이기적인 선택으로 이렇게 떠나왔는데.

미안해
결국
나는 또 너를 그리워해.

민윤기는 무얼 하고 있을까. 잡히지 않게끔 가만히 집에 있으면 좋으려만. 뭐, 남준이가 도와준다 했으니. 크게 위험은 없을 것이다.

아,
너가 없는 세상
내일부터는 무엇을 지키기 위해 살아야 할까.
내가 곁에 없으니 너를 곧장 지킬 수 없다는게 단점이긴 하네.

지민을 도와줘야할까 생각이 들었다.
그의 의견에 동의하긴 하기도 하니까. 정부의 편이 아닌 사람을 위해 움직이는 개체로서 조금은 위선적이게도 살기로 했다.

같은 처지인 우리는 각자 나름대로의 삶을 살게 될 것이다









나의 태양.
나는 그 태양을 등지고 해가 가장 일찍 지는 곳으로 떠나왔다.










짧게 머리를 자르고 검은 머리로 염색했다. 제 스스로도 제 머리칼이 어색해서 눈을 살짝 가리는 빳빳한 앞머리를 만지작거렸다.
아마 지나가는 사람이 보면 남자애로 보일게 분명한 모습이었다.
센티넬이 된 이후로 머리카락이 은빛으로 변해갔다. 저는 그 색이 늙어가는 것만 같아 싫어했었다. 그러나 민윤기도, 팀원들도 그런 머리칼이 예쁘다며 칭찬하곤 했다. 특히 민윤기가 보라빛이 약간 맴도는 색이 예쁘다고 말했었다.
눈에 띄는 머리카락이기 때문에 염색을 하여 아예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게 하자는 남준의 의견이었다. 

나는 감사해야겠네. 이리 도와주는 사람이 많다니.

트렁크에 혹시 몰라 챙겨놓은 품이 큰 옷가지들을 입고 밖으로 나선다. 정부 소속의 센티넬이 아닌 일반인으로서의 외출은 제법 신선했다.

텅 빈 냉장고를 채우기 위해 장을 보고 티비를 틀어 볼 수 있는 여유로운 시간.
그럼에도 한편으로는 뉴스 밖 죽어나가는 이들 중 하나가 민윤기가 될까 두려워서 또 다시 전투복을 챙겨 입어본다.

전투복을 갖춰입고 챙겨놓은 총을 들고 밖으로 나선다. 
무전기가 치지직 울린다. 지민과 비상용으로 나누어 가졌던 무전기였다. 이곳에서 지내면서 도움이 필요할 때 부르기로 약속했던 그 무전.

126-7구역. 오거 침입, 증원 부탁드립니다.

센티넬.
나의 존재는 너를 지키기 위함일 뿐이야.
그러나 문득 죽음에 널부러져있는 많은 시민 사이에 너가 있다는 것은 상상하고 싶지도 않아서.

그래서 결국 나는 또다시 전장에 나가.

죽지 않을게
걱정 마.

검은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또 문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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