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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와 담배 그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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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와 담배 그 후















스물여덟의 나는 그리 바쁘지 않게, 그렇다고 너무 늘어지는 것도 아닌 그저 그런 삶을 살아가는 중이었다. 그저 그런 삶이라 재미라곤 하나도 없었지만 나 같은 것도 살아간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나름 열심히 살아갔다. 대신 이렇게 살다보면 지치는 날이 조금 많을 뿐이었다. 재미는 더럽게 없는데 지치긴 또 엄청 지쳐서.





“씁, 후-.”





회사 옥상에 올라와 난간에 몸을 기대고 입에 담배를 무는 것. 그게 내 유일한 지루함 해소법이다. 고등학생 때 호기심에 입에 댄 담배에 중독되어 10년이 넘은 지금까지 끊어내질 못했다. 담배를 입에 물고 숨을 들이마실 때, 내 몸 속으로 들어오는 무언가와 입에서 내뿜는 탁한 연기에 단단히 묶여버리고만 나 자신이 가끔은 참 별로라고 느껴질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 고등학생 때보다 더 자주 찾는 담배가 이상하게 사랑스럽다고나 할까.

아마 담배를 보면 항상 떠오르는 그 때문이 아닐까 싶다. 10년이 넘어 이제는 이름도,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그 사람 때문에. 아, 기억나는 게 딱 한 가지 있다면 그의 몸에서 나던 딸기향? 그 정도라고 해두자. 아무튼 담배를 보면 그때의 나와 그날의 감정이 떠올라 좀 씁쓸했다. 또 모순적이게도 그 씁쓸함이라도 느낄 수 있다는 것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오랜만에 보고 싶네. 기억이라도 좀 해보게.”





다 피운 담배를 발로 밟아 불을 끈 다음 옥상 끝에 마련된 쓰레기통에 툭 던져놓았다. 오늘따라 떠오르는 미치게 달았던 그날의 딸기향에 코끝이 시큰거렸다. 이래서 추억팔이는 위험한 거라고… 턱선에 맞춘 칼단발이었던 10년 전 그때와 달리 이제는 잔뜩 길어 허리에 닿을락 말락 한 긴 머리를 거칠게 손으로 털었다. 때마침 불어오는 바람에 휘날린 머리칼과 흰 와이셔츠에서는 여전히 탁한 담배 냄새가 났다.










🍓&🚬










모니터 앞에 앉아 아무런 감정 없는 표정으로 키보드를 탁탁 두드린 지 몇 시간, 시계바늘이 퇴근 시간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하나 둘 자리를 정리하고 뜨자 나 역시 입꼬리를 올리며 보던 서류들을 정리하고 가방을 챙겨 회사를 나온다. 해가 뉘엿뉘엿 지는 시간, 집을 향해 걸음을 빨리 하다가 솔솔 불어오는 기분 좋은 바람에 일하는 동안 묶어두었던 긴 머리를 풀었다.

정말 하루를 다 끝낸 것 같은 느낌이라 괜히 뿌듯하기도, 지긋지긋하기도 했다. 그렇게 한참을 더 걸어가면 어느새 사람들이 잘 없는 집 근처 골목이었다. 가로등 하나 뿐인 어둡고 으슥한 골목이지만 딱히 무섭거나 하지 않은 곳을 혼자 터벅터벅 걸었다. 쓸데없이 좋은 날에 기분이 이상해진 나는 앞에 보이는 가로등에 몸을 기댄 채 주머니에서 담배 한 개비와 라이터를 꺼냈다. 다음, 담배를 입에 물고 엄지손가락으로 라이터를 키려고 하지만 어느새 또 바닥난 라이터를 짜증스럽게 땅에 던진다.





“씨… 하필 지금 없냐.“

”불 필요해?“





그때, 어떤 남자의 손과 그 손에 쥐여진 새 라이터가 내 눈에 들어찬다. 어딘가 모르게 데자뷰처럼 느껴졌지만 그런 건 담배에 불을 붙이고 나서 생각해도 될 일이다. 나는 라이터를 쥐고 있는 손을 따라 고개를 돌렸고, 내 시선 끝엔 은은한 갈색빛 머리카락에 쌍커풀이 예쁜 남자가 웃고 있었다.

나는 미간을 확 찌푸렸다. 그 남자가 싫다거나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랬다기보다 갑자기 이상해진 기분이 썩 좋지 않아서. 무엇보다 이 사람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은은한 갈색빛 머리칼, 쌍커풀이 진 눈, 날렵한 턱선, 잘 익은 딸기색을 띠는 입술…?

그를 위에서부터 찬찬히 훑으니 뭔가 오래돼 바래진 기억 속 뭔가가 떠오를 것도 같다. 그런 나를 알 수 없는 미소를 띤 채 바라보던 남자는 엄지손가락으로 라이터를 눌러 내 담배에 불을 붙였다. 치익-. 타기 시작한 담배는 점점 탁한 연기와 쾨쾨한 냄새를 뿜기 시작하고, 나는 그를 노려보던 걸 잠시 멈춰 담배를 한 번 깊게 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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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하네, 담배 피우는 건.“





깊숙이 박혀있던 기억을 꺼내는 건 관두고 본격적으로 담배를 피우고 있었을까, 그 남자는 내게 알 수 없는 말을 해댄다. 여전하다는 건 대체 무슨 말인지 내 미간은 또 한 번 찌푸려졌다.





“예쁜 것도 여전하고. 아니다, 더 예뻐졌나?”





확신이 들었다. 이 남자는 나를 분명히 알고 있고 우리는 분명 예전에 만난 적이 있었다. 나는 급하게 담배를 바닥에 떨어뜨린 뒤, 발로 짓이겼다. 그리고 그의 앞에 꼿꼿이 서 팔짱을 낀 채 그를 올려다봤다.





“너, 나 알아?“

“뭐야, 지금 날 까먹은 거야? 나 좀 서운해, 여주야. 내가 널 얼마나 보고 싶어했는데.“

“……”

“뭐, 좀 오래되긴 했지만 그래도 이건 잊으면 안 되는 거 아닌가… 내가 널 안고 나면 우리한테서 이런 향이 났지, 아마?“





저렇게까지 말하는 걸 보니 내게 있어서 중요한 사람이었나 싶은 생각도 잠시, 순식간에 나를 감싸 안은 그에 몸 신경을 바짝 세웠다. 그때, 나를 감싼 그의 몸에서 익숙한 향기가 코 끝을 스치고 내 담배 냄새와 섞여 어울리지 않는 부조화를 이룬다. 향기와 동시에 머릿속에 떠오르는 바래진 기억 속 그때, 그리고 그에 토끼눈이 된 나였다. 이 향을 10년이 지나 다시 맡을 줄은 몰랐는데. 이 향은 분명… 그 애의 몸에서 나던 미치게 단 바로 그 향이었다. 약 10년 전의 내게 와주길 바라고, 누구보다 간절히 원했던 딸기.

중독될 수밖에 없던 딸기향을 다시 한 번 맡은 때, 나는 그날의 모든 것이 생생하게 기억나기 시작했다. 그 얼굴과 이름, 그가 나를 안았던 모든 날들까지 전부 다. 나는 입술을 꽉 깨물며 양손으로 있는 힘껏 그의 가슴팍을 밀치고 그에게서 한 걸음 물러섰다.





“… 전정국.”

“응, 여주야.”





이제야 겨우 떠오른 그 이름은 전정국이었다. 고등학생 시절 내 모든 걸 줄 만큼 사랑했지만 끝은 아리기만 했던 내 인생 최대의 실수. 그런 전정국이 10년 만에 나타나 내 앞에 선다는 게 절대 말이 되지 않았다. 분명 시작도 끝도 본인 스스로 정했던 그 잘난 전정국이, 왜 하필 오늘 내 앞에 나타난 걸까. 그것도 저 뻔뻔하고 얄미운 얼굴로. 소름 돋게 궁금했지만 이번에도 나에게 나쁜 것만 잔뜩 안겨주고 갈까 뒷걸음질 쳤다.





“내 이름 부르지 마, 나쁜 새끼야.“

“……“

”분명 넌 날 버렸어. 그것도 정말 아무렇지 않게.“





두 눈이 새빨개지며 투명한 무언가가 일렁이기 시작한다. 나는 지금 그날 나에게 오지 않았던 전정국이 미울 뿐이었다. 정말 단순히 밉기만 하면 여기서 내가 눈물을 흘릴 이유는 전혀 없었고, 오히려 불 같이 화를 내야 할 텐데. 나는 왜 눈물이 잔뜩 글썽이는 걸까? 속이 답답해진다. 와중에 전정국은 자리에 멈춰 무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다 점점 내게 다가오기 시작한다. 나는 금방이라도 툭 떨어뜨릴 것 같은 눈물을 매달고서 다가오는 전정국을 향해 고개를 저었다.





“오지 마. 너 같은 놈한테 다시는 안 안길 거니ㄲ,“





더이상 다가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며 저었던 고개가 무색하게도 전정국은 점점 가까워지기만 했다. 결국 내 등이 반대편 벽에 닿아 피할 곳이 마땅히 없었을 때, 내 머리 바로 위 벽에 한쪽 팔을 부딪혀 본인 몸을 지탱하더니 눈물이 그렁그렁한 내 모습이 마음에 들기라도 한 듯 씨익 입꼬리를 올리는 전정국이다. 곧 남은 한쪽 손으로 나의 턱을 움켜쥐고 고개를 들어올린 전정국은 빠르게 내 입술 위로 자신의 입술을 포갠다. 그 모습은 마치 며칠을 굶주리고 먹잇감을 앞에 둔 짐승 마냥 아주 성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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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과 확연히 달라졌다. 고등학생이었던 그때의 전정국도 혀를 섞는 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정도였는데 성인이 된 지금은 다리에 힘이 풀리고 정신을 놔버릴 것만 같을 정도로 야했다. 내가 숨이 부족하면 전정국 쪽에서 숨을 넣어줬고, 내가 비틀거리면 전정국이 자기 몸으로 내 몸을 지탱했다. 그렇게 하면서도 나를 놓지 않은 건 분명히 전정국 쪽이었다. 그날과 달리 전정국은 오늘 나를 꽉 잡았다. 내가 몇 번이고 밀어내도 계속 파고 들어올 정도로 아주 단단히 말이다.










🍓&🚬










진득하고 질척였던 입맞춤이 끝난 건 끈덕지게 달라붙는 전정국을 내가 온 힘을 다해 밀어냈을 때였다. 거친 숨을 내뱉으며 두 뺨이 한껏 상기된 나와 달리 전정국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뭔가 부족하다는 듯 혀로 입술을 할짝이기나 했지. 나는 그런 전정국을 아까보다는 조금 풀어진 눈으로 쳐다보며 물었다.





“이제와서 이러는 이유가 뭔데.“

……“

”잔뜩 휘감아 놓은 다음 그때처럼 나 또 버리려고?“





두려움이었다. 전정국이 나를 또 버린다고 하면 어쩌나 하는. 사실 나는 전정국의 존재가 떠오른 순간부터 미움보다는 두려움이 컸다. 나를 버렸던 전정국의 모습은 10년이나 더 돼서 이미 바래진 것이고, 다시 나타난 전정국은 정확한 필름이었으니. 어쩌면 나는 전정국을 미워하기보다 전정국을 기다렸던 게 아니었을까 싶었다. 이름도 얼굴도 기억하지 못했으면서 그걸 어떻게 아냐고? 전정국이라는 사람을 떠올린 순간 눈가에 눈물이 한가득 맺힌 것만큼 확실한 마음이 어디 있을까.

나는 나를 버렸던 10년 전의 전정국을 이미 가슴에 품은 지 오래였다. 10년 후의 전정국이 나를 다시 한 번 사랑해 준다면, 이번에는 버리지 않고 끝까지 잡아준다면 나는 이번 역시 내 모든 걸 줄 수 있었기에 전정국의 입이 떨어지길 기다렸다.





“내가 감히 널 어떻게 버려.“

“… 뭐?”

“그때 넌 갖고 싶은 건 가져야 하는 사람이었고, 네가 날 갖고 싶어하는 걸 내가 모를 리 없잖아, 여주야. 나는 그날부터 죽어라 공부하고 벌어서 날 너한테 쥐여줄 생각만 했어. 그날 내가 널 잡았다면 우린 아무것도 가질 수 없었을 거야. 그렇게 미치는 서로 조차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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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해. 이 말을 어떻게 10년 만에 해보냐, 진짜.“





10년 만에 듣는 10년 전 전정국의 마음은 어렸던 열일곱의 나도 다 커버린 스물여덟의 나도 울리기 충분했다. 특히 어린 날의 김여주가 가장 듣고 싶어했던 사랑한다는 전정국의 대답에 나는 전정국의 목에 두 팔을 감아 그 품에 깊숙이 안겼다. 우리는 10년 만에 마음 편히 자신의 세상을 품에 안은 것이었다.

너와 나의 사랑에선 어울리지 않는 단 딸기향과 탁한 담배 냄새가 합쳐져 이상하고 쾨쾨한 향이 났다. 서로 말고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그런 향이 말이다.















딸기와 담배를 쓴지 반년 정도 된 것 같은데 반년 뒤에 쓰는 딸기와 담배 그 후… 뭔가 의미 있으면서도 여전히 개똥 같아서 좀 충격이었슴니다🥹 다들 넓은 마음으로 이해 부탁드리겟슴니다. 예뿌게 봐주셀요. 사랑함니다.❤️‍🔥

아, 참고로 나머지 장편들 연재는 쪼꼼 더 걸릴 것 같슴니다… 제가 졸업을 위한 중요한 시험이 4월이라 공부를 쫌 해야 하기도 하고, 몸도 막 좋지 않은데 코로나 막차까지 탑승했거든뇨🥲 그래도 머 올해 안에는 돌아오겠됴…! 혹시나 기다리고 계신 분들께 죄송하다는 말씀과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는 부탁을 드림니다 엉엉ㅠㅠㅠ 증말 사랑함니다 다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