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오늘은 거기 안 가? “
” 안 가는 건 아니고 평소보다 늦게 오라고 하시네 “
오늘은 무슨 일인지 간호사님께서 평소보다 늦게 오라고 연락하셨다. 무슨 행사라도 있는건가
” 그 일은 어때, 할 만해? “
” .. 생각보다 더 좋아. 재밌고 “

“ 그거 다행이네 ”
얘는 내 친구 최수빈이다. 어릴 적부터 같이 붙어다녔던 우리는 중학교, 고등학교도 같은 곳으로 진학했다. 내게는 쉼터 같은 아이었다.
이제는 수빈이만은 아니지만,
“ 그럼 거기 가기 전에 나랑 떡볶이 먹으러 가자 ”
“ 넌 매운 것도 잘 못 먹으면서 떡볶이는 매일 먹는 것 같아 “
” 매워도 좋은 걸 어떡해 “
” 그래그래 ”
그렇게 학교가 끝난 뒤, 평소와는 다르게 수빈이와 떡볶이 가게로 향했다.
내가 없는 사이 그 아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 지도 모르는 채 말이다.
작가 시점,
“ 오늘은 늦게 오네 ”
범규는 여주가 늦게 온다는 사실을 알 수 없었다. 간호사가 알려주지 않았으니까, 범규에겐 핸드폰도 없기에 직접 연락할 방도는 더더욱 없었다.
또 범규는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 여자가 찾아오는 날이라는 것을, 죽어도 보기 싫은 그 여자가
그 순간,
드르륵,
” 범규야, 오셨어 “
” … “
” 한 달에 한 번이잖아. 응? 한 번만 참자 “
” … “
‘한 달에 한 번’이라는 그 말은 범규를 긴장시키기에 충분한 말이었다. 그 여자와 함께 있는 그 순간이 어쩌면 범규의 상처를 더 짓누르는 순간일 지도
그렇게 범규는 방문실로 향했다.
덜컥,
” 왔니? “
” … “
문을 열자 들리는 앙칼진 목소리와 원치 않게 코를 괴롭히는 익숙한 향수 냄새에 범규의 표정은 일그러졌다.
” 오랜만인데, 만나자마자 그런 얼굴을 하는 건 좀 아니지 않아? “
” … “
” 상태는 어때? 아직도 이상한 생각이 들어? “
” … “
” 말 안 할거야? “
” .. 아니요 “
” 이제 그만 할 때도 됐잖아, 4년 째 이게 무슨 짓이야 “
” … “
” 너 이제 성인이야. 그니까 그만.. ㅈ “

” 내가 왜 성인이야. “
범규가 가장 혐오하는 단어였다. 그 혐오 대상이 자신이라는 말은 범규가 세상에서 제일 듣기 싫은 말일 것 이다.
범규는 끓어오르는 화를 억누르기 위해 자신의 손등을 꼬집었고 너무 세게 꼬집은 탓인지 손등이 손톱에 의해 파이고 말았다.
” 너 정말.. “
” … “
” 왜 그렇게 어른을 싫어해? 어? “
” .. 그만 “
” 아니 대체 넌 뭐가 그렇게 맘에 안 드는거냐고 “
” 그만해.. “
” 너부터 좀 그만..ㅎ “
쾅,
쨍그랑,
“ 엄마야!! “
“ … “
순간적으로 북 받쳐 오르는 화에 범규는 앞 유리창을 주먹으로 쳤고 깨진 유리 조각들은 범규의 손에 상처를 냈다.
유리 깨지는 소리에 놀란 간호사가 급히 들어왔고 여자에게 연신 사과를 하며 범규를 다시 313호실로 데리고 갔다.
다시 여주 시점,
“ 잘 먹었다 ”
“ 여기 진짜 맛있지? 너 꼭 데리고 오고 싶었다고 ”
“ 역시 나 생각해주는 건 최수빈밖에 없네 “
“ 당연하지 ”
“ 아주 고맙네요~ “
” ㅎ 아 맞다, 그 친구도 떡볶이 사다주는 건 어때? 아 혹시 떡볶이 싫어하나..? “
” 그건 아닌 것 같던데 “
” 그럼 사다 줘. 이거 먹으면 얼른 나을 수 있어 “
” 떡볶이가 너한텐 만병통치약이긴 하지 “
” 나한테만 그런 거 아니거든?”
” 그래그래 “
그렇게 난 떡볶이와 튀김을 포장했고 식지 않도록 품에 꼭 안은 채, 그곳으로 향했다. 떡볶이를 보며 신나해 할 범규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드르륵,
” 범규야! 나 왔..ㅇ “

” … “
” 너 손이 왜.. “
나의 예상과는 정반대로 범규의 표정은 슬퍼보였고 아무런 말도, 반응도 하지 않았다.
범규의 손엔 붕대가 감겨져 있었고 눈에는 눈물이 흐르기 직전이었다. 나를 보자마자 범규는 침대에서 일어나 내게 조금씩 걸어왔다.
“ 뭐야,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거야? 응? ”
“ … ”
“ 손은 어쩌다가.. “
” 왜.. “
” 어? “
“ 왜.. 왜 ”
“ … “
꼬옥,
“ 왜 이제 왔어..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데 “
“ ㅁ.. 미안해 “
내게로 와 나를 꼭 안은 범규였다. 갑작스런 범규의 행동에 난 놀랐지만 그냥 자연스럽게 안아주었다. 나를 안은 범규의 몸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고 난 그런 범규의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리도 겁 먹은걸까
범규는 나를 안은 채 내 어깨에 자신의 얼굴을 파묻고 계속해서 울었다. 물론 내가 키가 훨씬 작기에 내가 안긴 꼴이 되어버렸지만,
잠시 후,
” 이제 괜찮아? “
” 응, 덕분에 괜찮아졌어 “
“ .. 다행이다 “
다시 살며시 웃는 너의 모습에 난 또 왠지 모를 두근거림을 느낀다. 너의 표정 하나하나가 내 마음을 좌우하는게 참 웃기기도 하다. 고작 만난 지 2주밖에 되지 않았는데
“ 근데 .. 왜 안 물어봐? “
” 어? “
” 아까 당황스러웠을 거 아니야 “
” 아.. “
사실 궁금하긴 하다. 무슨 일이 있었길래 손엔 붕대가 감겨져 있고 왜 그리 겁 먹은 채로 떨고 있었는지
하지만, 내가 만약 이 질문들을 너에게 물으면 나에게 답해주기 위해 넌 또 그 아팠던 기억들을 억지로 상기시켜야 한다. 억지로라도 다시는 생각하기 싫을 그 기억들을.
그렇기에 나는 그냥 묻지 않을 생각이다.
” 궁금해, 하지만 내 질문으로 니가 다시 그 순간들을 기억하게 하고 싶지 않아. 아팠던 기억들이잖아 “
” … “
” 아팠던 기억은 선명해지면 선명해질 수록 또 다시 널 괴롭힐 거니까 “
” … “
” 난 그저 매 순간 니가 행복하기를 바랄 뿐이야 “
” … “
” 그래서 안 물어보는 거고 “
그 순간,
스윽,
촉,
범규의 입술이 내 아랫입술에 살포시 닿았고 그 순간 난 놀라 뻣뻣하게 굳어버렸다. 순간적으로 얼굴이 달아오르는 게 느껴졌고 빠른 심장박동에 진정을 할 수 가 없었다.
” 난 역시 니가 좋아 “
” … “

” 너랑 있으면 난 행복해져, 정말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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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여주, 너는 그 친구 어디가 좋아서 그렇게 매번 챙겨주는거야? ”
” 뭐야, 최수빈 설마 질투해? “
“ 으윽.. 뭐래, 전에 가던 곳에서 만나던 애들보다 훨씬 더 신경 쓰는 것 같아서 그러지 “
“ 그런가.. “
“ 그래서 왜 걔한테 더 신경을 쓰는 것 같아? “
“ 그냥.. ”
“..?”
“ 걔랑 있으면 행복해져. 이유도 없이 만날 때마다 그냥 늘 행복해 ”
“ 너 설마.. ”
“ 이런 적이 처음이라 나도 잘 모르겠는데, 그냥 그렇게 되더라고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