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딩 경호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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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의 기억이 존재할 때쯤, 나는 이미 고아원에 버려진 상태였다. 넓기만 더럽게 넓고 각박한 세상에 혼자 버려진 고아. 그게 바로 나였다.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한 채 고아원에서 나이만 먹어갔고 열여덟이 되던 해, 고아원에서도 내버려졌다. 겨우 열여덟인 내가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았고 살기 위해 돈이 필요했던 나는 닥치는 대로 뭐든 해야 했다.

“X발…”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들부터 이 나이에 굳이 안 해도 되는 일들까지 이를 꽉 물고 했다. 간단한 편의점, 고깃집, 배달 알바부터 새벽 택배 물류창고 일, 룸싸롱 서빙 일까지. 안 해본 알바를 꼽기 힘들었다. 옷은 고아원에서 입었던 위아래 두 장씩, 신발은 헌 운동화 한 켤레로 버텼고 집은 알바하던 가게 한 편으로 몰래 자면서 버텼다. 씻는 것도 가게 화장실에서 해결하고 먹는 것도 남는 음식으로 대체하며 이렇게도 사람이 살 수 있구나 뼈저리게 느꼈다.
거지 같이 살면서도 아픈 곳 하나 없을 정도로 몸 하나는 튼튼하다는 게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부모한테 유일한 고마움이었다. 약 일년을 집 마련을 목표로 죽어라 일하다보니 열아홉에는 작은 옥탑방 하나를 월세로 마련할 수 있었고 그나마 인간 답게 살 수 있었다. 집도 생기고 숨을 쉴 수 있는 여유가 생기니 이제는 제대로 배워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취업은 해야 할 테니까. 그렇게 나는 열아홉에 근처 남고에 특별전형으로 입학했고 학교를 다니면서 알바를 병행했다. 다행이라고 할지, 죽지 않아 불행이라고 할지, 내 몸과 체력은 이렇게 혹사를 해도 멀쩡한 아니, 다른 애들보다 몇 배는 나았다.
고등학교 운동부에 든 덕분에 몸 관리라는 걸 하게 됐고 남들보다 근육도 빨리 붙고 실력 차이도 엄청 났다. 운동부 쌤이 하던 말이 국대 나가도 될 거라던데, 그건 내 사정을 몰라서 하는 말이고. 쌤이 그런 말을 할 때마다 나는 한 번 고개를 숙이고 자리를 피했다. 어차피 못할 국대 몇 번 들어봤자 씁쓸하기만 한데, 뭘. 그렇게 학교를 다닌지 한달쯤, 그때 발견한 게 경호원 알바였다. 고딩 경호원을 구한다고. 몸 좋고 실력 좋으면 된다고. 학교 전학과 먹는 거, 자는 거 다 지원한다고.
“고딩 경호원 구하신다고 해서 왔는데요.”
“아, 회장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들어오세요.”
연락을 하고 받은 주소로 찾아가보니 생각보다 부유한 집안이 내 앞에 있었고 고딩 경호원을 찾던 사람 역시 우리나라에서 알아주는 대기업 회장님이었다. 대충 내용을 들어보니 나와 동갑의 딸이 있는데 워낙 방정맞아서 걱정돼서 하루종일 붙어있을 수 있는 경호원을 찾고 있는 것 같았다.
“자네가 주의할 건 딱 한 가지, 우리 딸이랑 절대 친구 그 이상의 관계가 되어서는 안 되네. 알겠나?”
“네, 알겠습니다.”
회장님이 건 조건은 딱 하나. 자신의 딸과 친구 이상의 관계가 되지 않을 것. 그 말을 들을 때만 해도 자신이 있었다. 애초에 이런 집안 딸과 나는 어울리지도 않는 사람이었고 내 형편상 누군가 만날 수 없다는 것도 잘 알았으니까. 그런데, 김여주 그 애를 만나고 같이 지내면서 이상한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절대 가져서는 안 되는, 죽어서도 가져서는 안 되는 그런 마음이 말이다.

김여주는 회장님이 말씀하셨던 것처럼 혼자두기 불안한 애였다. 첫날부터 그랬다. 부자들만 다닌다는 고등학교에 처음 입학한 날, 김여주는 그 누구보다 돈이 많으면서도 착해빠져 아무것도 못하는 애였다. 모든 애들이 자신을 싫어하고, 가까이 다가오는 애 마저 자신에게 원하는 게 있어 다가오는 건데 척 보면 아는 걸 몰랐다. 처음에는 그냥 바보 같았다. 매번 괴롭힘을 당하고, 매번 들어도 되지 않을 욕을 듣고, 매번 아무것도 못했다. 그래서인지 당사자인 김여주보다 내가 더 화가 났다. 한 번 걔네를 찾아가려고 해도 김여주는 날 막아섰다. 바보 같은 게 착해빠져서는… 더 신경이 쓰였다. 워낙 바보 같은 애라 시도 때도 없이 김여주를 바라봤고, 김여주 옆에 붙어있었다. 그렇게 김여주의 옆에 붙어있다보니 내가 웃는 날이 많아졌다. 나는 웃음이라고는 전혀 볼 수 없던 사람이었는데 김여주 덕분에 웃었고 김여주 때문에 웃었다. 이때부터였을까, 나에게 김여주가 특별하게 다가왔던 건.
본격적으로 일이 터진 건 그날이었다. 1층에 내려가 잠깐 물 좀 마시고 올라오는데 내 방문에 귀를 바짝 대고 있던 김여주가 보였다. 성큼 다가가 뭐하냐고 물으면 당황해하는 김여주의 모습이 보였다. 김여주는 한참 말을 더듬었고 그러다 들린 말이 자신이 날 좋아한다는 어이없는 소리였다. 순간 내가 잘못 들은 건가 싶었다. 김여주 같은 애가 날 좋아한다니… 이건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동시에 드는 생각은 경호원으로 일하기로 했을 때, 회장님이 했던 말이었다. 김여주와는 절대 친구 이상의 관계가 되면 안 된다. 그 말이 내 현실을 다시 한 번 떠올리게 했다. 김여주 옆에서 일한다고 잠깐 착각하고 있던 모양이다. 옥탑방 한칸에서 겨우 살던 나를. 그래서 김여주를 밀어냈다. 김여주가 내 앞에서 서럽게 울었다. 내가 김여주를 울렸다.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는 너의 눈가를 내가 닦아줄 수 없어 주먹을 꽉 쥐고 방으로 들어왔다. 방문에 등을 기댄 채 네 울음 소리가 멎을 때까지 기다렸다.

“… 상황 한 번 더럽게 뭣 같네.”
거지 같던 내 삶과 형편이 처음으로 죽도록 싫어졌다.
한 번 거절했으니 김여주가 마음을 빨리 정리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김여주는 항상 내 예상을 빗나갔다. 앞으로 나를 꼬실 거라며 선전포고를 날리지 않나, 인터넷애서 이상한 걸 보고 와서 서툴게 굴질 않나. 김여주가 내 방을 찾아와 나를 벽으로 몰고가 벽쿵이랍시고 내 가슴팍 옆쪽으로 손을 짚었을 때, 속으로 얼마나 참았는지 모른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는 김여주가 참 야속하게 느껴졌다. 겨우 참아내는 내 이름을 성 떼고 불러줬을 땐 이성의 끈이 끊길 것만 같았다. 당장이라도 내 앞에 있는 김여주를 끌어안고 싶었지만 꾹 참아내고 태연한 척 여유롭게 굴었다. 사실 전혀 그렇지도 않은데. 김여주가 삐진 건지 큰 소리를 내며 방을 나가고 마른 세수를 연거푸 했다.
“김여주, 제발 여기까지만 해라…”
이 이상 들이대면 자제할 수 없을 것 같은 내 마음이었다. 김여주는 말 한 번 더럽게 듣지 않았다. 다른 게 다 안 통하는 것 같으니 은근슬쩍 스킨십을 하기 시작한 거다. 사실 말만 은근슬쩍이지, 모든 게 서툴어 대놓고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것도 하지 말라며 김여주를 밀어내던 하굣길, 김여주는 황당한 말을 시전했다. 자신과 키스하자는 말을 말이다. 헛웃음이 나올 뻔했다. 여자애가 겁도 없이… 그러다가 내가 정말 자신한테 키스라도 하면? 내가 선을 넘어버리면 뒤는 어떻게 책임지려고 그러는 걸까. 나는 그런 김여주에게 그만 좀 하라며 제대로 으름장을 놓고서 김여주를 지나쳐갔다.
오후부터 갑자기 비가 쏟아져내렸다. 이런 날은 꼭 뭔가 하나씩 터지던데… 그날 김여주와 서막한 상태로 집에 들어왔다. 서로 말 한마디 없이 각자 방에서만 있었고, 집사님 퇴근 시간이라 1층에 내려갔더니 집사님께서 유자차 두 잔을 건넸다. 올라가서 같이 마시라며 내게 건네 김여주랑 화해도 할 겸 김여주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김여주 방 탁자에 유자차를 올려놓고 그대로 나갈 생각이었다. 김여주가 그 말을 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정국아, 너 너 안 좋아할 거야.”
“어?”
“만약 네가 오늘도 날 밀어내면, 다시는 너한테 좋아한다는 말 안 할 거라고.”
김여주는 마지막 선전포고를 날렸다. 그 말에 나의 모든 것이 멈췄다. 김여주의 눈이 정말 마지막을 나에게 말해주고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좋아한다는 김여주의 마지막 고백에 모든 걸 다 포기하고 넘어갔다. 무슨 생각으로 내가 김여주의 고백을 받았는지, 무슨 생각으로 네 옆에 있겠다고 한 건지, 무슨 생각으로 네게 입을 맞춘 건지 하나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단 하나 기억이 나는 건, 그날 나는 미친 듯이 김여주를 원했다.

그렇게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게 비밀로 한 우리만의 연애가 시작됐다. 이제는 정말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여태 밀어내던 걸 내가 김여주에게 달라붙고 있었다. 김여주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나는 너를 좋아하고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그렇게 김여주와 학교에서도 몰래 안고 뽀뽀하고 비밀스런 연애를 즐겼다. 인생 첫 놀이공원도 김여주와 함께 가서 좋았고 첫 사진도 찍었다. 앞으로도 이렇게만 지내고 싶다는 생각이 나를 휘감을 때쯤, 불행은 항상 최고로 행복할 때 찾아온다고 나와 김여주가 사귄다는 소식이 대전을 통해 쫙 퍼진 것이다. 그걸 본 나에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회장님이 이 사실을 알면 절대 안 된다는 거였다. 일하기로 한 첫날 회장님이 유일하게 경고했던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신은 나의 편이 아니다. 회장님의 부름에 김여주의 손을 꼭 잡고 집으로 들어왔고 회장님은 내게 큰 소리를 쳤다. 차마 김여주 앞이라 그날의 경고를 들먹이진 못하는 것 같았다. 나는 회장님 앞에서는 죄인이었다. 약속을 지키지 않은 건 내 잘못이었으니까. 그날 밤, 회장님은 나를 자신의 서재로 김여주 몰래 불렀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내쫓고 싶지만 여주가 슬퍼할까 봐 시간을 주는 거야. 이틀 내로 모든 걸 정리하고 나가. 예전 학교로 다시 전학 처리 해놓을 테니.”
“… 네.”
회장님은 그날 내게 그랬다. 나는 김여주 옆에 절대 어울리지 않는다고. 나와 김여주는 이어져서도, 이어질 수도 없다고. 그 말에 결심이 섰다. 김여주랑 이제는 끝을 내야겠다는 결심이. 늦은 새벽까지 방에서 짐을 싸고 새벽 늦게 겨우 잠들었다. 그것도 잠시 이른 새벽에 내 방을 찾아온 김여주에 잠에서 깨었고 나는 김여주에게 당장 어디로든 여행을 떠나자고 했다. 너를 슬프게 하지 않을 이별 방법을 생각하면서 말이다. 김여주와 마지막으로 간 바다는 사진들로 봤던 수많은 바다 중 가장 예뻤고 그 바다를 보며 내 옆에서 활짝 웃고 있는 김여주는 더욱 예뻤다.
바닷가에서 한참을 웃고 맛있는 것도 먹고 김여주와 이별을 할 준비가 되었다고 느꼈을 때쯤, 장난 삼아 아이스티를 마시고 있던 네게 물었다. 내가 없으면 어떨 것 같냐고. 김여주의 얼굴과 몸이 점점 굳었다. 김여주는 나를 보고 상상할 수도 없고 내가 없는 자신은 안 될 것 같다고 답했다. 그때 내 머릿속을 스친 건 어젯밤 자신의 옆에 있어달라던 김여주의 말이었고 옆에 있겠다 답했던 나의 목소리였다. 나는 애써 웃으며 김여주에게 손을 내밀었고 그렇게 너와의 끝을 마음 먹은 나였다. 서울로 가는 버스에 올라타 내 어깨에 기대 잠든 너의 뺨을 매만졌다. 너를 만질 수 있는 것도 지금이 마지막일 테니 말이다.

“… 잘 자, 그리고 미안해.”
그렇게 나는 잠든 너에게 마지막을 전했다. 직접적인 이별은 너에게도 나에게도 큰 슬픔일 테니 차라리 나 혼자 정리하고 떠나는 게 덜 힘들 거라고 생각했다. 우리의 이별은 너도 나도 예전으로 돌아가는 것일 뿐이었고, 나는 너와 함께했던 모든 꿈속에서 깨어나야할 시간이었다.
정국이 시점이 문단 하나하나 좀 길어여… 자세히 한 번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당. 오늘도 봐주셔서 감사해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