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딩 경호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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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으… 여기가 어디지…? 눈을 뜨자 보이는 건 새하얀 천장이었다.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둘러보니 새하얀 커튼과 새하얀 베게, 온통 새하얀 것들 투성이었다. 흐릿하지만 약들이 가득한 찬장이 보이는 게 학교 보건실인 모양이었다. 아까 복도에서 누구랑 부딪힌 것까진 기억하는데 잠이 부족했던 건지 그대로 쓰러졌나 보다.
“너 수면 부족에 영양 부족이래.”
가만히 누워만 있던 내게 다가와 의자를 꺼내어 앉은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까 넘어질 때 들였던 목소리와 같은 사람이었다. 누군지 확인하려 힘들게 몸을 일으키자 누군가의 손이 나를 막았다.
“좀 더 누워있지?”
“윤설…?”
나와 복도에서 부딪힌 사람도, 나를 보건실로 데려온 사람도, 여태 나를 돌보던 사람도 예상 외의 인물이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윤설이라니… 그때 화해 아닌 화해를 하긴 했지만 그날의 화해는 나의 일방적인 것이었기에 윤설은 나에게 악감정이 조금이라도 남아있을 거라 생각했다. 깜짝 놀란 나는 윤설은 멀뚱멀뚱 쳐다봤다.
“왜, 내가 이러고 있으니까 신기해?”
“어… 조금?”
윤설은 가만히 앉아 나에게 눈짓했고 윤설의 얼굴에는 나에 대한 악감정이라곤 1도 띄워지지 않았다. 내가 아는 윤설은… 아니, 나를 보는 윤설의 표정이 저렇게 편했던 적이 있었나? 의아했다. 그날 일방적인 나만의 종결이 아닌 윤설도 포함이었던 것 같아서 입꼬리가 슬금슬금 올라갔다.
“뭘 웃냐, 길바닥에서 쓰러진 주제에. 그렇게 멋있는 척 다 하고 갔으면 밥이나 잘 챙겨먹던가.”
“치… 윤설, 우리 이제 진짜 친구하는 거야?”
“… 응. 친구하자, 우리.”
처음으로 윤설의 웃는 모습을 봤다. 나를 차갑게 바라보던 윤설의 모습이 아닌 나를 바라보고 웃는 윤설에 자칫 눈물이 나올 뻔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윤설과 내가 사이를 허물고 친구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는데, 참 끈질겼던 인연이 드디어 끊겼다.
친구하자는 윤설의 말에 나 역시 활짝 웃음을 지어보였다. 윤설도 나도 너나 할 것 없이 곧장 서로를 따라 웃었고 오래 미워한 시간만큼 어느샌가 정이 흠뻑 든 우리였다.
“네가 한 말들 다 맞는 말이더라. 내 못난 열등감이 너를, 아니 나 조차도 망가뜨리고 있었어. 그날 난 내 자신한테 얼마나 실망했는지 몰라. 내가 겨우 이런 사람이었을 줄이야…”
“……”
“여태 너한테 했던 모진 말들, 행동들 전부 다 사과할게. 미안해, 김여주.”
사실 윤설이 나를 왜 괴롭히는지 몰랐을 땐 윤설의 사과가 죽을 만큼 듣고 싶었다. 아마도 윤설이 나에게 무릎 꿇는 모습이 보고 싶었던 거겠지. 근데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윤설의 상황도, 윤설의 열등감도 다 이해할 수 있었기에. 나 같아도 그랬을 것 같아서 윤설의 사과가 크게 다가오진 않았다.
“고마워, 사과해줘서. 솔직히 나도 잘한 건 없으니까 쌤쌤이라고 치자. 어때?”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그걸 똑같ㅇ,”
“우리 둘 다 유치했다, 그치?”

“… 그러게. 진짜 유치했네.”
나는 먼저 윤설에게 손을 내밀었다. 윤설의 모진 말들과 행동에 상처를 받고 울었던 게 작은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 역시 윤설에게 똑같이 모진 말을 했으니 잘한 건 없었다. 그래서 서로 미안한 거 없이 둘 다 유치했던 걸로 하자며 오른손을 윤설에게 슬쩍 내밀었다. 그랬더니 윤설은 곧 내 손을 꽉 잡았다.
“전정국 뒤에 숨는 겁쟁이라는 말, 그 말은 취소할게.”
“어?”
“겁쟁이는 네가 아니라 전정국인 것 같으니까.”
그게 무슨 말이야…? 너 설마 전정국을 봤어? 겁쟁이는 내가 아닌 전정국인 것 같다는 윤설의 말에 두 눈이 커졌다. 윤설은 내가 모르는 무언가를 분명히 알고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전정국 전학 수속 밟던 날에 나한테 찾아왔었어. 자기 대신 너를 좀 지켜봐달라고.”
“전정국이… 정말, 정말 너한테 그랬어…?”
“자기는 더이상 네 옆에 있어줄 수 없다고 나한테 부탁하더라. 황민아도, 다른 사람도 아닌 나한테.”
윤설의 입에서 나오는 얘기들은 요 며칠 들었던 어떤 말보다 귀에 쏙쏙 박혔다. 전정국의 이야기라면 아직도 내 몸이 먼저 반응하는 게 참 웃겼다. 심지어 며칠간 쏟아서 더이상 나오지도 않을 것 같던 눈물이 또 한 번 차올랐다. 그래서…? 그래서 뭐라고 했는데?
“알려달라고 했지, 티가 날 정도로 좋아하는 애 옆에서 떨어지려는 이유가 뭐냐고.”
“……”
“전정국이 너네 집에서 일하기로 했을 때, 너네 아빠랑 약속한 게 있었던 모양이야. 너랑 절대 친구 이상의 관계가 되지 않는 것. 그게 네 옆에 있을 수 있는 조건이었대.”
윤설이 해주는 전정국의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 수록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다 우리 아빠랑 한 약속 때문에 그런 거였어…? 내가 좋다고 들이댈 때도 끝까지 나를 밀어내던 것도, 우리 아빠가 알자 바로 그렇게 나와 끝낸 것도… 나는 내 몸을 덮고 있던 이불을 끌어안고 눈물을 흘려보냈다.
“김여주, 이거.”
“… 이게 뭐야?”
서럽게 울던 내 등을 가만히 토닥여주던 윤설은 내가 고개를 들자 주머니에서 꼬깃한 종이 쪽지 하나를 꺼내 나에게 건넸다.
“전정국이 너한테 꼭 전해달라고 했어.”
윤설이 말하길, 전정국은 이 쪽지 하나를 건네면서도 오로지 나만 걱정했다고 했다. 갑자기 자신이 사라져서 많이 놀랄 거라고, 많이 울지도 모른다고. 그 말에 눈물이 또 한 가득 차올랐지만 꾹 참으며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부여잡고 꼬깃한 쪽지를 폈다.

쪽지를 한 글자, 한 글자 읽어나갔다. 꼬깃해진 종이 조차 이렇게 슬플 수가 없었고 전정국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내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전정국의 마지막 인사를 쪽지로 받아 마음이 아플 뿐이었고, 끝까지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지 않은 전정국이 미웠다. 나는 쪽지를 손에 꽉 쥐고 엉엉 하염없이 울었다.
“울지 마, 전정국이 많이 안 울었으면 좋겠다고 했잖아…”
“흐윽, 흑… 나, 왜 이렇게… 끅, 마음이 아프지…?”
“많이 좋아해서 그래. 너무 많이 좋아해서 많이 아픈 거야.”
“흐읍… 흐으, 흐어어엉-.”
윤설은 자리를 옮겨 베드에 걸터앉아 나를 꼭 끌어안았다. 길 잃은 애 마냥 불안하고 초조해하며 눈물을 계속 흘려보내는 나의 등을 토닥토닥 쓸어주는 윤설이었고, 그런 윤설의 손길이 매번 날 달래주던 전정국이랑 겹쳐보여 더욱 숨이 멎을 것처럼 끅끅거렸다. 그러자 윤설은 뭔가 결심한 듯 안고 있던 손을 놓고 내 두 어깨를 양손으로 잡았다.
“김여주, 정신차리고 내 말 똑바로 들어.”
“흐… 전정국, 전정구욱……”
“OO동에 있는 OO남고로 가.”
“……”
“전정국이 원래 다녔던 학교고, 다시 전학 간 학교도 거기일 거야.”
“뭐…?”
“예전에 찾아봤어, 전정국이 어디서 온 애인지 궁금해서. 택시 타고 가면 40분쯤 걸릴 거야.”
“거기도 없으면 어떡하지…?”
“일단 가봐야 아는 거잖아. 빨리 가, 김여주.”
내 옆에 붙어있는 전정국이 어디서 어떻게 온 사람인지 궁금해서 알아본 적이 있다는 윤설에 나는 팔로 눈물을 벅벅 닦아냈다. 전정국의 쪽지를 손에 꽉 쥔채 전정국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안고 학교 밖으로 뛰쳐나갔다. 전정국, 제발… 제발 거기에 있어줘……
오늘도 봐주셔서 감사합니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