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후회가 먹고 싶었다

𝑰𝑰𝑰.





마지막 회의로부터 열흘이 지난 시점. 여주는 피폐해졌다. 몸도 마음도, 그 어느 곳 멀쩡하지 못했다. 센터장의 걱정으로 몇 명의 리커버리를 데려와 치료를 시도했지만,



"치료가,"
"...."
"치료가 안됩니다."


이그노어인 여주가 될 리가. 모든 것을 잃은 표정으로, 아니 모든것을 잃은 여주는 윤기가 자신에게 등을 보인 후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센터장은 물론, 센터에서도 모든 정신이 여주에게 팔려있었다. 전 세계의 몇 안 되는 이그노어 센티넬을 잃는다면 세계적으로 피해가 갈 테다. 여기서 여주가 제일 힘겨운 건. 결국엔 저의 능력 때문에 자신을 살리려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나는 이들에게.

무슨 존재였을까.


그저 자신들의 명령 아래에 움직이는 꼭두각시? 로봇? 그것도 아니면,


그저 개새끼에 불과했을까.



물음표 대신 마침표. 여주는 정의를 내렸다.



난,


그들의 개새끼였다.















달도 해도 존재하지 않는 시간. 누군가 요란하게 여주의 방문을 두들겼다. 차가운 새벽 공기가 맴도는 방에 뜨거운 여주의 입김이 터져 나온다. 창문을 안 닫았구나. 짧은 탄식을 뚝 끊은 건 다시 들려오는 노크 소리.

여주는 느릿하게 방문을 열었고 그 앞엔 술에 절어있는, 보라색 눈빛으로 번득이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남준이 서있었다. 손을 겨우 뻗을 수 있을 정도로 문이 열리자 무섭게 큼지막한 손으로 여주의 팔목을 덥석 잡는 그.


"남, 남준."
"안 읽혀."
"...."
"왜, 왜 안 읽혀."
"남준아."
"제발 그 능력 좀 풀어봐. 제발."


제발. 제발. 여주야. 나 너 미워하기 싫다.


사이코 메트리. 그 어느 곳에 손이 닿으면 기억을 읽을 수 있는 남준은, 여주의 기억을 읽지 못하는 걸 뻔히 알면서. 여주를 끌어안으면서까지 읽으려 아등거렸다.


"남준아."
"제발."
"김남준."
"여주야."
"...."


넌 왜.


"그 능력인 거야."
"...."
"왜 그런 뭣 같은 능력을 갖고 태어난 거야."


넌 왜.


널 오해하게 해.


왜 널 버리게 해.


버리다. 그 한마디에 여주는 남준의 목을 두 팔로 끌어안았다. 제발, 읽어. 제발 읽어서 나 좀 살려줘 남준아. 버리지 말아 줘.

하지만

잔인한 현실에 자비는 존재하지 않았다.

남준의 머릿속은 온통 검은색으로 뒤덮여있다. 온통의 암흑만 읽히는 여주를 밀어내고 그는 다급하게 벽에 걸린 액자에 손을 댔다.


"야! 빨리 안 와?"
"남준아 너 키가 좀 컸다?"
"나도 컸지 않아?"
"윤기야. 미안하지만 넌 똑같다."
"싸울래?"
"미안."


원망스러울 만큼 선명한 기억들이 암흑을 걷어낸다. 보라색 빛 눈 색이 검은색으로 돌아오고 날카로운 남준의 눈꼬리에 눈물이 매달린다.

여주는 모르겠지만, 오늘 센터 모든 센티넬과 가이드들의 신상 정보가 반정부에게 털렸다. 여주의 팀만. 오직 그 팀만 제외하고. 의심은 깊어지고 확신이 피어났던 오늘날. 남준은 도저히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해 술을 기울였고, 여주를 찾았다. 사실을 알 수 있는 사람은, 자신 밖에 없었으니까. 그렇게 믿고 싶었으니까.

그러나.

끝내. 마지막까지 읽지 못하자. 남준은,


"적어도 넌."
"...."
"그러면 안 됐지."
"... 김남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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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위해서라도 그러면 안 되지.."


이성을 놓고 말았다.















눈을 떴다. 차가운 공기 대신 습하고 더운 공기가 방에 머물렀다. 몇 시간 전 기억이 너무나 뚜렷해서, 여주는 울었다. 차라리 꿈이길 바랐던 그 장면이 현실이었다는 게 잔인해서. 이젠 길었던 행복보다 짧은 슬픔이 더 뚜렷해서. 비교할 수도 없는 시간들이. 그녀를 더 울게 만들었다.


남준아. 남준아. 김남준.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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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버리지 말아 줘.


아무도 듣지 못할 말만 삼킨 채. 마지막 회의의 아침을 맞이했다.















센티넬 하여주.

묻는 질문에 답하거라.



심판에 가까운 마지막 회의가 시작되었다. 센터를 배신하면 형벌이 내려지고, 봉사부터 퇴출까지 나뉜다. 저지른 죄의 무게에 따라 형벌이 주어지면, 사회로부터도 외면받는 건 한순간. 여주는 어떻게든 오해를 빠져나와야 했다.


긴장되는 분위기 속, 센터장은 한 번 더 여주에게 물었다.


센티넬 하여주.

다시 한번 묻겠다.

넌 왜.


"센터를 배신했는가."


자비란 건 갔다 버린듯한 센터장의 말투에 여주는 입꼬리만 쓱 올렸다. 오염된 사회는 오직 자신들의 확신으로만 단정 짓고 정의한다. 어이없음에도 현실이라 결코 웃지 못하는 말.

초췌해진 모습의 여주는 공허한 눈동자로 자신의 주위를 쓱 훑어봤다. 센터장, 센터 윗대가리들 그리고 제 소중한 팀원들까지. 하나같이 괴물 보듯한 눈빛이 여주를 찌른다.


대답하거라.

넌 왜.

센터를 버렸는지.


그 누구한테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 했던 그녀는, 여주는, 하여주는. 센터장 자리를을 보며, 시선만 그곳에 고정한 채 모두에게 물었다.


그럼 저도 묻겠습니다.


그쪽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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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날 버려요.


정적. 숨 막히는 정적에 그 아무도 말을 이어가지 못한다. 묻잖아요. 왜 날 버리냐고. 대답해. 대답해!!!

발악한다.

모든 것을 무시하며 감정에 단단할 줄 알았던 그녀가, 저의 옷자락을 꾹 쥐고 무너진다. 그럼에도, 그 누구도 다가가 위로해 주지 않는다. 헐떡이며 흐느끼는 소리만이 울려져오던 회의실에, 윤기의 목소리가 끼어든다.


"버린 건,"
"...."
"우리의 믿음을 버린 건."
"아, 아..."
"우리를, 나를 버린 건."


너잖아. 하여주.

왜, 너만 괴로운척해.

제일 괴로운 게 누군데.

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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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책감에서라도, 울면 안 되지.


툭. 둔탁한 소리와 함께 흐느낌이 멈췄다. 마지막 발악의 눈물의 추락 후로 여주의 눈에 초점이 잡히지 않는다. 죄책감. 그래. 다, 다 내 잘못이었어. 내가 여기 있지 않았으면. 내가 너희를 만나지 않았으면.

내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너희는,



행복했을까.



그래서 나는.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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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져야 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