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구는 가득하지만 어딘가 텅 빈 느낌이 있는 방. 윤기의 방이었다. 침대 가운데에 누워 손을 뻗으며 휙휙 젓지만, 당연하게도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몇 번을 쥐락펴락해도. 여전히 잡히는 것은 없었다. 지금쯤이면, 가이딩을 해준다는 핑계로 손을 맞잡고 있을 텐데. 아. 짧은 탄식이 윤기의 입 겉에 맴돌았다. 잊어야 하는데, 지워야 하는데 과거가 비쭉 흘러샌다. 머릿속 깊이 가둬둔다고 해도 가둬지지 않을. 추억이라면 추억이란 이름을 가진 과거.
아아.
보고 싶다.
여주야.
보고 싶어.

"...."
그래.
이번이 마지막이야.
마지막으로 한 행동을 캐묻는 핑계로 다녀오는 거야.
자신이 생각해도 어이없는 핑계임을 알고도 상체를 일으켰다. 윤기는 가이딩 팔찌를 제 손목에 채우고 재킷을 찾아 나설 듯하더니 이내 주저한다. 만약. 갔다가 감정이 욱해 그 아이에게 상처를 주면 어떡하지.
"... 역겨워. 아무렇지 않게 내 가이딩 받아먹은 거."
... 하지만 이미 줘버렸는데.
이제 와서 망설이면 무슨 의미가 있나. 윤기는 기억한다. 난생 태어나 처음으로 상처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을 응시하던 여주를. 자신이 자리를 피한 뒤 차가운 복도 바닥에 주저앉아 소리 없는 눈물을 삼키던 그녀의 모습을. 왜 그런 모습을 보였을까. 불쌍하다고 어길까 봐? 조금이라도 자신을 믿어주길 바랐나? 손안에 미세하게 맴도는 가이딩을 억제시켰다. 만약 속는 셈 치고 널 지금까지 믿었다면 넌 그때도, 지금도 미래에도 안울지 않았을까. 아. 지금 무슨 생각을, 말을 다 끝마치지 못하고 윤기는 거친 손으로 얼굴을 반복적으로 쓸다 미간을 찌푸렸다.
돌고 돌아 결국 종착지는 하여주였다.
꼬리의 꼬리를 물어도 모든 마지막은 그녀였다.
미련 없이 숙소를 나선 윤기의 발걸음엔 수많은 것들이 섞여들어 그의 속도를 낮추려 했다. 소소한 감정부터 응어리진 감정까지. 셀 수 없을 만큼의 복잡하게 엉켜있는 감정들이 윤기의 발목 끊임없이 잡았지만, 감옥 입구까지 그의 발자국은 끊기지 않았다.
"...."
지하 감옥 6층. 가장 끝에는 여주가 있었다. 그녀가 보이자마자 돌처럼 굳어버린 윤기는. 정면을 향해있던 시선을 거뒀다. 하여주라는 사람이 저렇게 작아 보인 적은 처음이었다. 익숙하지도, 익숙해지고 싶지도 않은 모습. 삐걱. 뒷걸음치던 윤기의 발걸음에 의해 자그마한 소음이 생긴다. 동시에 움찔하며 움츨어든 자그마한 등. 작았던 등이 더 작아졌다. 자기도 모르게 숨을 훅 참아버린 윤기와 얼마 가지 않아 작은 등이 곱게 펴지며 여주가 상체를 일으켰다.
"... 윤기네."
"...."
"... 민윤기다."
눈꺼풀이 파르르 떨린다. 쩍쩍 갈라진 목소리가 퍽 익숙해지지 않는다. 여주야. 하여주. 하염없이 불렀을 그 석 자. 오랜만에 뱉으려니 말문이 쉽게 열리지 않았다. 다가갈까 했지만 자신도 모르게 이미 몸을 돌린 상태였다. 윤기는 마주치기 무서웠다. 과연의 저 모습이.
제 자신이 만든 모습이었을까 봐.
자신이 여주를 망가트린 걸까 봐.
"윤기야."
몸이 딱딱히 굳는다. 계속 들으니 목소리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물을 며칠 못 마신 듯이 거친 숨이 들려온다. 그가 천천히, 떨리는 마음으로 뒤돌아 여주의 얼굴을 자세히 확인했을 땐. 충격에 다리 힘이 풀려 주저앉을 뻔 한걸 겨우 지탱했다.
"윤,기야."
"여주야. 너, 너 얼굴."
"... 아."

얼굴. 맞다.
서로는 서로의 눈을 마주쳤지만 멀찍이 떨어져 있는 거리에 각자 허공을 응시하는 듯한 모습. 그 사이엔 소용돌이가 몰아치고 있었다.
"누가. 누가 그랬어..?"
"...."
"누가 그랬냐고!"
"... 난."
"... 아니야. 아니다."
"...."
"그냥, 그냥 말하지 마."
"...."
머릿속에 번뜩 떠오른 센터. 센터는 여주를 해할 가능성이 높다. 배신자라면 소리 없이 서슴없이 죽일 수도 있을 센터니까. 그럼에도 윤기는 피했다. 누군지 알고, 확신이 들었지만. 문장을 질문의 형태로 바꾸었다. 그랬구나, 가 아닌 그랬을까.
센터가 그랬구나.
가 아닌.
센터가 과연 그랬을까.
센터라는 사실이 인정되면 이곳에 머물러 있는 자신이 원망스러워 버티지 못할 거 같았던 윤기는 질문만 남겼다. 하지만 이윽고 한계가 오자 울먹이던 여주를 매정하게 돌아서 출구로 걸어나갔다.
"가지 마."
윤기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제발, 윤기야."
점점 속도가 붙는다.
"... 너 지금 나가면,"
나 버리는 거야

민윤기. 너 나 여기에 버리는 거야.
여주의 마지막 발악에 발걸음은 잠시 멈추었지만.
"...."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윤기는 빠르게 건물을 벗어났다. 제 석 자를 울부짖던 여주를 몇 번이고 무시하고. 올 때보다 몇 배나 빠른 속도로 뛰쳐나갔다. 괴로움과 죄책감에 발걸음이 재촉되고 짧은 시간 안에 먼 거리에 정착했다. 앞만 보고 달리다 겨우 숨을 고르며 허리를 숙였다. 이기적이야. 민윤기 너 존나 이기적이야. 윤기는 자신을 비해하는 말은 쉽게 끊지 않았다. 숨 쉬고 싶었다. 쉬고 싶어서 외면했다. 자신이 여주의 모든 불행의 화근이라 생각되면 숨이 턱턱 막혀왔으며, 그때 잠시라도 멈춰 서서 여주의 목소리, 눈물, 얼굴만 보아도 정말. 절벽 밑으로 떨어질 거 같았다.
콰앙_!
"...."
하지만 그는 과연 알았을까.
반정부 침입. 반정부 침입. 호명되는 팀들과 리더들은 곧장 지하 감옥 C 건물로 집합해 주길 바랍니다. 다사 한번 알립니다 ...
... U팀. 리더 이석하. GW팀. 리더 선지아
자신이 절벽 끝에 간당하게 서있는지.
O팀. 리더 하여주.
"...."
난.
그들에게 뭐였을까.
잠깐의 행복? 구원?
아니면.
잠깐 쥐고 있을 카드?
여주는 윤기가 하지 말라면 아무 얘기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센터라고 말하지 말라면 말하지 않으려 했으며 욕을 먹으라면 먹을 생각이었다. 그렇지만, 자신에게 등을 보이는 모습은 지독히 피하고 싶었다.
등을 지면 어느 얼굴을 하고 있는지 직접 상상해야 하는 게 싫었다.
그리고 그 상상이 기필코 긍정의 가깝지가 않다는 걸 그녀도 너무 잘 알고 있으니까.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그를 애써 좋게 포장하고 싶었지만,
"...."
.. 눈을 질끈 감았다. 다시 몸을 웅클여 잠에 드려는 순간이었다.
콰앙!!!
"!!!!"
큰 폭발음과 함께 웅클여져있던 몸이 오른쪽으로 쏠리며 단단한 벽에 부딪쳤다. 고통을 느낀 것도 잠시. 여주는 천장이 천천히 내려앉는 것을 보고 무릎을 꼿꼿하게 피고 일어났다.
"이게, 이게 무슨."
폭발이 연달아 일어난다. 센터라면 폭탄이 들고 오기 전에 잡힐 테니, 센티넬이다. 센티넬. 센티넬... 아. 센티넬.
"...."
여주의 시선이 바닥을 향해 툭 떨어졌다. 당신이었구나. 날 없애려고 이 짓까지 꾸몄구나. 폭파 센티넬은 흔하다. 단, 이 정도의 폭발을 일으킬 수 있는 사람은. 여주 머릿속에 단 한 명이었다.
"네가 무시할 수 있는 능력도 끝이 있단다."
"뭐, 물이거나 불이어도 잘 피하면 될 거 같은데요."
"폭발."
"... 아."
"폭발은 피하지 못해. 그 자리에서 즉사하거나 심한 부상을 입지."
"그렇구나."
"걱정 마라. 등급에 따라 다르니까. 즉사를 일으킬 수 있는 사람은 나 말곤 없어."
"센터장님 폭파였어요?"
"응. 손가락 까딱하면,"
"저 감옥도 무너질 거다."
"... 저 감옥도, 무너질 거다."
센터장이 현재 여주가 감금된 감옥을 향해 한 말들이었다. 뚝뚝 끊기는 홀로그램 벽. 그리고 곧 이내 절대 깨지지 않을 거 같던 벽이 아무 소음 없이 사라졌다. 그럼에도 여주는 뛰쳐나가지 않았다. 제대로 허탈한 모습.
난.
이제 다 그만하고 싶어요.
엄마. 아빠.
난 이제 아무도 믿기도, 아끼기도 싫어요.
그때. 여주 머리 위에 있던 철판이 삐걱거리더니 소름 끼치는 소리와 동시에 추락했다. 감각이 예민한 센티넬인 여주는 알아차리고 피할 법하지만. 끝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배신자가 되어버린 신세. 이젠 믿던 사람의 손에 죽어야 하는 인생을 살아가기엔 세상이 너무 미웠다.
센터 간부들이 날 때리며 뭐라고 했더라.
반정부 새끼라고 했던가.
개새끼라고 했던가.
쿵_!
그게 뭐였든 날 향한 비판인 건 다름없으니.
"...."
아프지 않다.
"그쪽 겁이 없는 거야, 아니면 죽고 싶어서 환장을 한 거야?"
... 저승사자 목소리인가.
"눈 좀 떠봐."
"...."
이미 여주를 깔고 있어야 할 철판이 그녀의 정수리 바로 위 허공에 두둥실 떠올라 있었다. 살았네. 왜. 왜. 왜 살았지. 툭. 투둑. 곧 끝내 상실함에 눈물이 흐른다. 어떤 마음으로 가만히 있었는데. 물 한 방울 없이 메말라 있던 사막은 슬픔이라는 비에 잠겨 밤바다로 변하였다. 그 짙고 어두운 바다에는,
"왜, 날 살려줬어요?"
"...."
"왜 살려줬냐고!"
"...."
"그냥, 그냥 콱 죽어버리게 두지...."
수면이 아닌, 지하로 향해 팔을 허우적거리며 자신을 끌어내리려는 사람이 있다.
"아니면 너도."
"...."
"내가 더 고통스럽길 바라는 거야?"
"...."
"말해봐."
너 반정부잖아.

너희가 나 이렇게 만들었잖아.
희번뜩하게 뜬 그녀의 눈은 소름 끼치지 않았다. 되려 너무나 서글퍼 얼굴을 쳐다보지 못할 정도였다지. 반정부는 눈을 낮게 깔고 그녀의 눈물이 멎을 때까지 기다렸다. 말해. 말해보라고! 그러나 점차 여주의 발악이 심해지는 거와 더불어 자그마치 저 멀리에서 센터 센티넬들의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예상 밖으로, 시간이 촉박해졌다.
"...."
하지만 이리 고통에 허우적거리며 우는 사람을 보지 못했던 이유로 반정부는 아무 행동도 하지 못하며 여주가 자신의 어깨를 계속 때릴 때도 가만히 있었다. 여주의 눈을 계속 응시하며. 저 눈 보기 싫다. 저렇게 서글픈 눈. 그가 그녀를 달랜 이유는 하나였다. 저 눈을 볼 수 록 마음이 이상해져서.
"... 울지 마."
"...."
"우리가 그러지 않았어. 지금은 단지."
"...."
널 구하러 온 거야.
내 신분을 걸고 약속해.
하얀 마스크가 바닥으로 떨어지며 얼굴이 드러났다. 또렷한 이목구비.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도 아픈 눈빛으로 여주를 바라봤다. 반정부가 신분을 밝혀다는 건 제 인생을 건 거나 마찬가지. 신분이 사회에 알려져 추방당하는 건 시간문제였으니까.
"널 구하러 왔어. 하여주."
"... 으흑."
"이 마스크를 걸고."
내 신분을 걸고.

내 얼굴 잘 봐둬.
만약 내가 널 배신하면.
너도 날 배신해도 좋아.
단 한순간이었다.

반정부의 목을 끌어안아 숨을 애써 진정시키는 여주의 행동. 그녀의 이미는 곧 끝내 그를 믿었다는 뜻이었다. 둘 사이의 간격이 여주의 행동으로 인해 사라지며 그는 서둘러 마스크를 다시 쓰며 순간 이동을 하려는 틈에 무너진 건물 사이로 밝은 빛이 그의 눈을 비췄다.
"하여주!"
"...."
"하여,"

"...."

"...."

누가 들어도, 정국의 목소리였지만 여주는 목을 끌어안은 팔에 힘을 실었다. 마주하기 싫다는 신호였다. 정국과 눈을 마주한 반정부는 차가운 시선을 한 채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마스크를 다 쓰지 못해 반정부의 눈만이 정국에게 보였지만, 그는 알 수 있었다. 제 친구이자 반정부에 의해 잃어버린 친구.
이젠.
"... 김태형."
친구가 맞는지도 모르겠는 친구.
"... 성공했습니다."

"카피얼이 성공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