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정국이의 분위기가 가라앉았다고 생각했는데 정국이는 금세 활기를 되찾았다.
"우리 회사 가는 길에 맛있는 거 사갈까?"
"그럼 윤기 것도 사가자."
"햄아."
"응?"
"윤기 형 이야기는 내가 할래. 그러니까 햄이가 하지 마."
뭐지. 정국이가 윤기를 나한테 뺏기고 싶지 않는 걸까. 역시 멤버들 사이에 끈끈한 정같은 게. 어쩌면 팬픽같은 일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을지도 몰라. 나 홀로 건너편 행성까지 다녀온 사이에 정국이가 뭔가 이상한 낌새를 채고 내 이마에 살짝 꿀밤을 먹였다.
"무슨 생각하는지 알겠는데. 그거 아니거든."
"아, 아니구나."
"난 남자에 취미 없어. 단지 햄이가 윤기형만 너무 챙기는 것 같아서."
조금 질투했을 뿐이야. 질투라니. 정국이가 나한테 질투를 해주는 게 이렇게 기분이 좋은 거 였나? 정국이는 윤기를 찾지 말라고 했지만 그 말을 들으니 더 윤기를 챙기고 싶다. 그때마다 정국이가 질투를 해준다는 거니까. 내가 정국이에게 있어서 특별해진 기분이잖아.
"그래도 윤기가 나한테 여러 가지 가르쳐줘서 고마우니까."
"나도 가르쳐 줄게! 춤!"
"춤, 나 엄청 못 추는데."
"연습하면 나아질 수 있어. 같이 해!"
"못 춰서 보여주기 부끄러운데."
수줍어하는 내 모습을 바라보는 정국이의 눈빛이 한동안 나에게 고정됐다. 내가 정국이를 물끄러미 올려다보자 정국이가 자신의 손으로 내 뺨을 감싸려다 멈칫한다.
"아. 미안."
"응? 뭐가?"
"빨리 회사로 가자."
정국이는 항상 나를 기다려줬는데 오늘은 먼저 몇 발 앞서서 걸었다. 어쩐지 외로운 느낌이 든다. 조금만 더 닿고 싶다는 생각을 할수록 정국이는 나에게서 멀어져만 가는 것 같다.
"햄아. 빨리 와."
우울해하는 중에 나를 부르는 정국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정국이는 어느새 나를 돌아본 채로 나에게 손을 내밀고 있었다. 그래. 아직 슬퍼하지 말자. 아직은 정국이가 나에게 손을 내밀어 주고 있으니까. 나는 정국이의 손을 맞잡았다.
"어라. 어쩌다보니 햄이랑 손잡았네."
나는 주변 시선을 의식해서 손을 빼내려고 했지만 정국이는 더욱 단단하게 내 손을 붙잡았다.
"이렇게 가자."
햄이랑 나랑 손잡고. 전정국은 해맑은 얼굴로 나를 설레게 만들고 동시에 나를 참기 힘들게 만든다. 그럼에도 나는 정국이의 행동에 기뻐하고 있다. 정국이가 잡고 있는 손이 나라는 이유만으로.
회사에 있는 동안은 쭉 윤기와 함께였다. 물론 그것도 윤기가 있을 때 이야기이지만 말이다. 방탄소년단이 따로 스케줄이 있을 때면 나는 연습에 매진했다. 일반 연습생들이 있는 연습실을 썼는데. 아무래도 나는 환영받지 못하는 인물임이 분명했다.
"쟤 아냐? 빅히트 낙하산."
"평범하게 생겼는데 어떻게 들어왔대?"
"회사 내에 스폰서가 있다는 소문이 있어."
"대박. 그러니까 바로 데뷔를 코앞에 두지."
"얼마나 거물을 잡았으면 민윤기선배가 집중 코어를 한대?"
"몰라. 몸을 더럽게 쓰는 애 사정을 내가 어떻게 아냐?"
내가 윤기의 마음에 들어서 회사에 들어온 이유로 연습생들 사이에서 이상한 소문이 돌았다. 그럴 만도 한 게 연습생들 전체한테 내가
어떤 경로로 회사에 들어오게 됐는지 말하게 된다면 그건 그것대로 방탄소년단에게 문제가 가는 일이었다. 안 좋은 소리를 듣는다고 해도 참는 수밖에 없었다. 저들보다 짧은 기간에 내가 데뷔를 앞두게 된 건 사실이니까.
"햄아, 나와."
"윤기야. 아니, 선배!"
"녹음실로 가자."
연습생들의 뒷담은 윤기가 등장함으로서 멈췄다. 윤기는 연습생들을 한 번 돌아봤다.
"연습 열심히 하고 있지?"
"네. 선배. 완전 존경해요."
"그래. 고맙다."
"꼭 선배같은 뮤지션이 되고 싶어요."
윤기는 정말 존경받는 가수구나. 새삼스럽게 느끼게 됐다. 윤기는 역시나 나와 다른 세계에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단순히 연습생이 되었다고 해서 그들에게 가까워졌다고 생각한 건 정말 내 착각이었다고.
녹음실에 들어와서도 좀처럼 연습에 집중하지 못했다. 다른 연습생들은 나보다 오랜 시간 연습을 해왔지만 데뷔에 닿지 못했다. 나는 윤기랑 정국이를 안다는 이유만으로 데뷔를 너무 손쉽게 앞둔 건지도 몰랐다.
"햄아."
"응?"
"오늘 왜 이렇게 집중을 못 해?"
"아. 미안해. 자꾸만 잡생각이 나서."
윤기는 녹음을 중단 시켰다. 나는 윤기가 화가 났을 거라고 생각했다. 남들은 한 번 가지기도 어려운 데뷔기회에 윤기의 집중 레슨까지 받고 있는데 잡생각이 든다는 게 미안했다.
"오늘 녹음은 여기까지 할까."
"미안해. 윤기야."
"뭐가?"
"다른 사람보다 좋은 기회를 쉽게 얻었으면서 이렇게 망설여서."
"넌 내가 널 그냥 뽑았다고 생각해?"
윤기는 내가 정확히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를 알아차린 것 같았었다.
"그야 난 딱히 잘난 게 없으니까."
"그랬다면 난 널 데뷔시키려고 하지 않았을 거야."
"..."
"난 네 작곡실력과 음색이 마음에 들었어. 다듬어지지 않았는데 이 정도라면 훨씬 더 빛날 수 있다고 생각해. 너에 대해서 확신을 가지지 못 하는 건 네가 고치지 않으면 안 돼. 하지만 내가 숨은 보석을 찾았다는 생각에 변화는 없어."
그렇구나. 윤기는 나를 단순히 친해서 선택한 게 아니구나. 다만 내가 내 능력을 의심했을 뿐이다. 내 가능성을 묻어버리고 있을 뿐이었다. 오히려 어필해야하는 건 나인데. 내 자존감이 이렇게나 낮아져 있었나?
"미안해. 윤기아. 정말 미안해."
어째서 일까. 윤기의 말이 너무 큰 위로가 되어서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연신 미안하다고 말하는 나를 윤기는 조심스레 감싸 안아줬다.
"나한테 미안할 필요 없어. 나한테는 얼마든지 의지해도 좋아."
"..."
"그러니까 네가 제일 편해질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제일 힘들지 않은 방법을 찾아. 누구를 제일 가까이 두면 네가 편해질 수 있는지. 그걸 생각해."
윤기가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했는지는 알지 못했지만 윤기가 나를 지극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만은 알았다.
"햄아!"
윤기가 나를 품에 안아 다독이는 중에 녹음실의 문이 열렸다. 나와 윤기의 모습을 본 정국이의 얼굴이 눈에 띄게 굳어졌다.
"정국아?"
"내가 타이밍을 잘못 잡았나보네."
"정국아. 그게 아니라."
정국이는 애써 떨리는 눈동자를 숨기며 나에게서 뒤돌아섰다. 정말 나는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야. 휘청거리는 나를 윤기가 부축했다.
"신경 쓰여?"
"..."
"전정국이. 오해할까 봐?"
나를 바라보는 윤기의 눈은 정국이만큼이나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었다.
정국이가 오해를 해버렸다. 분명히 그랬을 거야. 나 윤기한테 안겨 있었으니까. 나만 신경쓰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정국이 분명 당황한 것 같았으니까.
"신경 쓰이는 것처럼 보여?"
"응. 아주 많이."
"정국이도 그걸 알까?"
윤기는 정국이가 달아난 쪽을 돌아봤다.
"그 녀석은 눈치가 없어도 너무 없어."
"그래. 그렇구나."
다행이다. 내 마음을 몰라서. 알았다면 지금처럼 지내지도 못했을 테니까. 하지만 이대로 윤기와 내 사이를 정국이가 오해해버린다면 그건 그것대로 지금의 관계를 유지하기가 힘들어진다.
"나 정국이한테 다녀올게."
"아니."
가지마. 정국이에게 네가 생각하는 상황이 아니라고 빨리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윤기의 손에 붙잡혀 버리고 말았다. 윤기는 나를 보내고 싶지 않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는 네가 신경 쓰여."
"응?"
"네가 전정국을 신경 쓰는 그 이상으로. 네가 신경 쓰여 미치겠어."
윤기가 지금 나한테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걸까. 아무리 들어봐도 이건 고백 같아. 마치 윤기가 나를 좋아하고 있다는 말처럼 들리잖아.
"그게 무슨 뜻이야?"
"너도 정국이랑 다를 게 없어."
"..."
"눈치가 너무 없어."
내가 이렇게나 항상 너를 놓치지 않고 보고 있는데. 전정국한테 향해 있는 눈은 한 번도 나한테 닿질 않았어. 윤기는 장난을 하고 있는 게 아니었다.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한 얼굴이었다.
"그거 날 좋아한다는 말이야?"
"단순하게 말하자면 그래. 널 좋아하고 있어."
그래서 전정국한테 널 뺏기고 싶지 않아. 전정국이 차라리 오해해줬으면 해. 너와의 내 관계를. 윤기가 낯설어 보였다. 항상 편하게만 생각해서 갑작스럽게 남자로 의식하게 된 윤기에게 쉽게 적응이 되지 않았다.
"미안. 나 생각을 좀."
나는 윤기의 손을 뿌리치고 녹음실에서 빠져 나왔다. 윤기는 나를 더 이상 붙잡지 않았다. 상처 받았을까? 상처 받았을 거야. 나라면 그럴 거야. 전혀 모르고 있었다. 윤기는 단순히 내 목소리를 마음에 들어서 나에게 관심을 주는 줄 알았다. 나 생각보다 많은 순간에 무의식적으로 윤기한테 상처를 준 게 아닐까. 혼자 있을 공간이 필요했다. 회사 안은 너무나 많은 눈들이 있었다. 누가 나를 도와줬으면 하고 절실해지는 순간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