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전정국의 홈마다.

시즌3 13화 (완결)

[13]

그날 무대 이후로 나는 무대 위에 오를 수 없게 됐다. 그 날 무대 반응이 좋지 않았다거나 악플을 먹었다거나 하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무리한 스케줄로 몸이 상해서 쓰러진 아이돌 햄이라는 타이틀까지 붙어서 주목 받게 되었고 찾는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나는 무대 위에 설 수 없었다. 내 스스로가 그렇게 생각했다.

'공황장애와 우울증 증상을 동시에 보이고 있네요. 이대로 활동을 지속한다면 위험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휴식이 필요한 기간입니다.'

나는 병원에 입원해 있다. 그 누구와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매니저나 스타일리스트 언니도 포함해서 만나고 싶지 않았다. 다시 무대 위에 올라서기를 시도해봤지만 역시나 불가능했다. 나를 춤 추게 했던 관중들의 함성이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화려하게 보였던 무대의 조명이 무섭게 보였다. 더는 무대에 오르는 것이 즐겁지 않았다.

'햄아. 어디야? 어디 인지 알려줘야 내가 널 찾아갈 수 있잖아. -꾸꾸.'

'미안해. 내가 다 미안해. 그러니까 제발 얼굴만 보게 해줘. -꾸꾸.'

'나 걱정되어서 미치겠어.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어. 햄아. -꾸꾸.'

정국이의 연락도 받지 않았다. 자신이 없었다. 좋은 모습을 보여줄 자신이. 매일 같이 그 날 택배로 받았던 닭의 사체가 떠오르고 핏자국이 보이는 것 같다. 정국이를 만나기가 두려웠다. 또 그런 일을 당할까 봐. 정국이한테 상처줄까 봐. 두려웠다. 내가 어떻게 정국이를 대할 지 몰라서. 그렇지만 만나면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정국이를 피했다. 소속사와도 심각한 이야기가 진행 중이었다. 더 이상 가수 활동을 이어갈 수 없을지도 모르는 지금 나는 선택을 해야했다. 계속해서 이 직업에 매달릴 것인지. 그게 아니면 지금까지 내가 누리고 있던 모든 것을 버릴 것인지.

"정말 다 포기하고 싶다."

처음에는 우울증이란 게 왜 병인지 몰랐다. 그저 부정적인 생각을 많이 하면 생기는 병이라고. 그건 자신의 마음 먹기 나름이라고 그러면 낫는 병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울이란 건 생각보다 사람의 깊숙한 곳부터 갉아먹는 힘이 있었다. 정확히 원인을 모를 우울이 이어지고 우울이 곧 나를 집어 삼켜 죽일 것만 같았다.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약을 복용해야만 온전한 정신으로 있을 수 있었다. 사람의 감정이 사람의 몰골을 이렇게나 망쳐 놓을 수 있을 줄은 몰랐다. 사소하게 던지는 말이, 공인이라면 당연하게 감안해야한다는 행동들이 이렇게나 무서운 것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나는 무릎 위에 얼굴을 묻고 하염없이 우는 일이 많았다. 병실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무거운 몸을 애써 일으켜 병실 문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나는 이제는 나올 것도 없겠다고 생각했던 눈물이 붓물처럼 쏟아졌다.

"정국아.."

"햄아. 너 왜 이렇게! 왜! 연락도 안 받고! 넌.. 왜."

정국이는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은 것 같았다. 하지만 끝까지 이어가지 못하고 나를 덥석 껴안았다. 어째서일까? 만나면 두려울 것만 같던 정국이가. 정국이의 품이 너무나 따뜻해서 그 날 이후 단 한 번도 불안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마음이 편안해졌다.

"미안해. 햄아."

"

"더 빨리 오지 못해서. 미안해. 정말."

내가 알려주지 않아서 내가 있는 곳을 몰라서. 그래서 못 온 걸 텐데. 정국이는 화를 내는 것 대신 나에게 미안하다고 말한다. 몇 번이고 갈망했던 마음이 답을 정했다. 나는 정국이를 사랑한다. 그래서 정국이에게 짐이 될 수 없다. 내가 하고 싶었던 건 정국이가 힘내길 바라는 것. 홈마 활동도 그런 이유로 시작했다. 어떻게 내가 아이돌이 될 기회를 얻고 정국이와 같은 선상에 설 수 있었지만 그건 나에게 너무나 과분한 자리였다. 그게 정국이를 슬프게 만들고 있다.

"정국아."

"응."

"나 찾아줘서 고마워. 내가 아니었다면 나는 마음을 쉽게 정하지 못했을 거야."

"그게 무슨 소리야?"

정국이가 촉촉하게 젖은 눈동자로 나를 바라본다. 이렇게나 가까이에 있을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어. 정국아. 정국이는 이제 정국이가 빛날 수 있는 길로 가. 너는 더 높은 곳에서 빛나줘. 난 항상 너를 지켜보면서 응원할 테니까. 누구보다 더 응원할 테니까.

"나 아이돌 그만둘 거야."

"햄아?"

"그리고 한국을 잠시 떠날 거야."

"어디를 가? 어디를 갈 건데! 내가 여기에 있는데. 어디를 간다는 거야?"

정국이는 끝내 눈물을 보였다. 이렇게나 나를 좋아해주는 너에게 내가 짐이 될 수는 없잖아. 그러니까 조금 더 나쁘지 그랬어? 내가 조금은 이기적일 수 있도록 조금만 나쁜 사람이지 그랬어?

"나 보내줘. 정국아."

"싫어. 싫어. 햄아. 나 너 보내는 거 안 할래. 나 대신 다른 건 다 할게. 그냥 민윤기한테 보내달라고 하면 그러면 나 그렇게 할게. 그런데 그런 건 안 돼. 햄이가 내 눈앞에서 사라지는 건 싫어. 햄아."

나는 그날 처음 알았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내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것이 얼마나 가슴이 찢어지게 슬픈 일인지.

.

.

나에게서 떨어지지 않겠다는 정국이를 매니저들을 동원해서 떼어냈다. 나는 정국이의 마음 정리를 위해서 더욱 마음을 독하게 먹고 움직여야 했다.

"매니저 오빠. 저 계약 해지해주세요. 그게 회사 쪽에서도 바라는 일이죠?"

"정말 그만둘 생각이야?"

나는 매니저 오빠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매니저 오빠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병실을 빠져나갔다. 그게 정국이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마지막이었다.

곧 햄의 연예계 활동 중단 기사가 났다. 정국이는 계속해서 나에게 문자를 남겼다.

'햄아. 부탁해. 나 진짜 부탁할게. 가지 마. 너무 멀리 가지 마. -꾸꾸.'

이제는 문자를 지켜보는 일도 힘들어졌다. 정국이가 나를 보고싶어하는 것보다 더 나는 전정국이 보고 싶다. 독하게 마음 먹고 전화번호도 바꿨다. 이제 더 이상 나에게 전정국과의 사적인 관계는 남아 있는 것이 없었다. 같은 땅에 있으면 계속해서 전정국이 보고 싶을 것 같아서 해외로 여행을 다녔다. 예쁜 풍경도 보고 전정국이 아닌 다른 것들도 사진에 담았다.

"정말 어딜 가도 따라오는구나. 전정국은."

어떤 풍경을 찍어도 전정국이 떠오른다. 내가 카메라로 담은 게 쭉 너여서일까? 그래서 너는 이렇게나 나에게 잔상으로 남아있는 걸까. 우울증과 공황장애는 많이 나아져서 지금은 정상수준에 왔다.

"보고 싶다. 전정국."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너지만. 정말 네가 보고 싶다. 전정국과 헤어진 지 정확히 1년, 전정국은 이미 내가 알던 전정국보다 더 높은 자리에 올라 있다. 정말로 더 빛나는 별이 된 거다. 이제 정국이도 나를 잊지 않았을까? 연예계 생활, 정말 잠깐 했지만 빛나는 사람들이 많았으니까. 나는 정국이를 보러 가기로 했다. 팬 사인회는 너무 가까우니까 팬미팅으로 했다. 그냥 이때까지처럼 정국이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오자. 팬인 거야. 나는. 여전히.

팬미팅의 티켓팅 열기는 확실히 전보다 강해져 있었다. 겨우겨우 1층의 맨끝자리를 양도 받았다. 팬미팅에 나온 정국이는 바쁜 스케줄 때문인지 전보다 수척해져 있었다. 하지만 예쁜 미소를 잃지 않고 있었다. 좋아하는 일에 열심히인 정국이가 나는 너무나 대견했다.

"역시 예쁘게 빛나고 있구나."

정국이가 건강해 보여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안도해서 인지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팬미팅 중에 방탄소년단 전체가 관객석에 가까이 다가가는 시간이 있었는데 윤기와 태형이가 내가 있는 쪽으로 리프트를 타고 다가왔다. 나는 황급히 모자를 써서 얼굴을 숨겼다. 어째서인지 윤기의 시선이 잠깐 내가 있는 곳에 닿았다. 들킨 걸까? 지금이라도 나가야하나 생각했지만 윤기는 별 다른 행동없이 다른 팬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줬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계속해서 공연을 지켜봤다. 정국이는 다른 층으로 간 건지 보이지 않았다. 다행이라고 여겨야 하나. 조금 씁쓸한 마음도 들었다. 가까이서 보고 싶어도 쉽지 않구나.

공연 도중에 나가고 싶어졌다. 더 지켜봤다가는 마음이 약해질 것 같았다. 이제는 정국이도 나도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로 했으니까 미련 두지 말자. 그저 멀리서 응원하자고 생각했다. 공연장을 나가려는 차에 팬들의 환호성이 더 높아졌다.

"어디 가요? 공연 다 안 보고 가는 건 아니죠?"

정국이의 목소리다. 얼굴은 보지 못했지만 분명 그랬다. 생각하지 못했다. 어렵게 구한 방탄소년단 티켓을 두고 공연 도중에 나갈 사람은 흔하지 않은데. 목소리를 들은 것 뿐인데 눈물이 터져 나와버렸다. 문을 열고 나가야 하는데 시야가 흐릿해졌다. 팬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정신 차려야 해. 여기서 피해를 주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콘서트장을 달려나왔다. 한 며칠을 쉬지 않고 울면서 지냈다. 정국이의 목소리만으로 나는 너무 반가워서. 애써 잠궈뒀던 추억들이 봉인이 풀린 것처럼 쏟아져 나와서 도저히 참아낼 수가 없었다.

"그래도 다행이다. 건강해 보여서. 팬들도 전보다 늘었고 말이야."

이제 나도 정리를 해야 하는 거겠지. 그래. 완전히 정리할 수 있겠어. 나는 겉에 보이는 물품은 벌써 정리한 상태였다. 보이면 더 생각나고 아프니까. 하나 정리 못한 부분을 오늘은 정리할 생각이다. 바로 정국이의 사진으로 가득 채웠던 내 개인홈페이지다. 오늘에야 말로 홈페이지 문을 닫겠다고 생각하며 홈페이지로 접속했다. 미처 확인하지 못한 댓글들이 수북히 쌓여 있었다. 활동하지 않아도 찾아주신 팬분들에게 마지막 인사라도 전하자는 생각으로 댓글창에 들어갔을 때 나는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마우스 스크롤을 내렸다. 내가 활동을 접은 동안 매일 같이 작성한 꾸꾸의 댓글이 알림창에 빼곡히 쌓여 있었다.

'오늘도 네 생각을 하면서 연습에 매진했어. 울기만 하는 건 네가 바라는 일이 아닐 것 같아서. -꾸꾸.'

'지금 사진 다시 보니까 진짜 그때가 떠오른다. 나 앞으로도 간직하고 싶은 추억이 많은데. 언제 돌아와 줄 거야? -꾸꾸.'

'서두르지 않아도 돼. 내가 조금 더 멋진 사람이 되어 있을 때까지 천천히 쉬다가 와. -꾸꾸.'

'천천히 오라고 했는데. 하루도 안 되어서 보고 싶다. -꾸꾸.'

일기처럼 빼곡히 찬 꾸꾸라는 닉네임이 흐리게 보였다. 정국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담긴 무거운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나는 너에게서 달아나기만 했는데 너는 날 늘 기다려 줬구나. 꾸꾸의 댓글은 내가 콘서트를 갔던 날에도 쓰여 있었다.

'나 오늘 너를 닮은 사람을 봤어. 정말 혹시나 하고 생각했어. 네가 나를 찾아온 게 아닐까 하고. 근데 조금 더 자세히 보려고 했는데 다시 공연장 안으로 들어오지를 않더라. 덜컥 무서워졌어. 진짜 이대로 네가 돌아오지 않는게 아닐까 하고. -꾸꾸.'

정국이가 알아봤구나. 그게 나라는 거. 나는 또 너에게 뒷모습만 보이고 만 거구나. 콘서트 다음날에도 댓글은 쭉 이어져 있었다.

'곰곰이 생각해봤어. 나는 내 행복만 생각한 게 아닌가 하고. 햄이도 햄이가 나아갈 인생이 있는 걸 텐데. 지금의 나는 어쩌면 너를 또 상처 입힐 지 몰라. 똑같은 일을 반복하고 싶지 않아. 그러니까 내가 햄이를 지켜줄 수 있을 정도로 강해졌을 때, 그 때에는 나한테 돌아와 줄래? 이걸 보고 있다면 짧은 대답만이라도 남겨줄래? 그거면 나 버틸 수 있을 것 같아. -꾸꾸.'

내가 전정국을 잊으려는 수많은 시간 동안 정국이는 나를 잃지 않기 위해 고민해왔다. 이제는 나도 용기를 내야겠지? 그러기 위해서는 나에게도 시간이 필요해. 정국아. 나는 정국이의 댓글에 답글을 쓰기 시작했다. 더 멋진 내가 되어 있을 때까지 기다려 줄래? 네 앞에 당당히 설 수 있게 해줄래? 나는 개인 홈페이지를 그대로 두고 인터넷 창을 껐다.

"용기를 내자. 내가 진짜로 좋아하는 일을 찾는 거야."

하루 빨리 정국이한테 가고 싶으니까.

.

.

방탄소년단의 연습실 정국은 노트북을 한참 동안이나 들여다보고 있다.

"뭘 그렇게 봐?"

윤기가 정국에게 다가오자 정국이 다급히 인터넷 창을 껐다.

"아무것도 아니야! 다들 연습하자! 연습! 언제까지 쉴 거야?"

모처럼 기합이 넘치는 정국의 모습에 방탄소년단 멤버들이 전부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동안에도 정국은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내가 정국이한테 부끄럽지 않은 모습으로 찾아갈 때까지 기다려 줄래? -햄.'

'기다릴게. 얼마든지. -꾸꾸.'

두 사람의 이야기는 이제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

.

가깝고도 먼 팬과 아이돌의 거리 체험 로맨스.

나는 전정국의 홈마다 시리즈.

끝.


완결까지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머리 위로 하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