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N G에이중그리고
15번
W. 설하
트라우마 유발 요소 주의!
유혈 주의,
잔인한 묘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부들부들 떨리는 팔을 들어 올려 총을 겨누었다. 마물의 미간 정 중앙을 마력탄이 관통함과 동시에 그 거대한 몸뚱이가 바닥으로 무너졌다. 배를 까뒤집고 죽은 마물을 확인함과 동시에 몸에 힘을 풀었다. 손가락 까딱할 힘도 남지 않은 몸뚱어리가 바닥에 힘없이 주저앉았다. 와, 죽겠다. 떨어져도 마물 소굴 정 중앙으로 떨어질 건 또 뭐란 말인가. 근 3일간 수도 없이 보았던 광경과 다를 것 없는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산처럼 쌓인 마물의 사체 더미, 그나마 하급 마물들이었기에 혼자서도 처리할 수 있었던 것이리라.
“…아, 어깨가…,”
힘이 들어가질 않는 왼쪽 어깨에서부터 끔찍한 통증이 일었다. 탈골된듯한 그 모양새에 막막함은 배가 되었다. 더군다나 뒤통수 부근에서 뜨끈한 것이 자꾸만 흘러내리는 게, 떨어지며 머리를 어딘가에 잘못 부딪힌 것도 같았다. 멀쩡한 손으로 뒤통수를 슬쩍 헤집어보니 역시나, 붉은 선혈이 손에 한가득 묻어 나왔다. 불행 중 다행인지, 그저 피부가 찢어진 것일 뿐, 어디 한 군데가 크게 잘못되거나 한 곳은 없는 것 같았다.
일단 움직여야 한다. 벌써 해가 지고 있었다. 넝마가 된 옷을 길게 찢어 대충 탈골된 팔을 고정시켰다. 응급처치 수준에도 못 드는 허술한 처치였지만, 지금 이 상황에 뭘 더 할 수도 없었다. 언젠가 쓰고 남겨두었던 만능 연고를 꺼내 뒤통수에 대충 바른 뒤, 몸을 일으켰다. 아, 발목이 욱신거리는 것으로 보아 접질린듯싶었다. 이쯤 되면 성한 구석을 찾는 쪽이 더 빠를 것이다.
근처에 흐르는 물로 목을 축인 뒤 계속해서 움직였다. 김태형과 전정국은 코빼기도 비추질 않았지만, 생각이란 걸 할 수 있다면 물길을 따라 날 찾던가 할 터였다. 나는 폭포 쪽으로 계속해서 걸음을 옮겼다. 다행스럽게도 내 생각은 틀리지 않아서, 오래지 않아 모닥불 근처에 앉아있는 전정국을 발견할 수 있었다.
“…! 율리아…!”
“김태형은?”
“근처를 수색하러 갔다. 다행히 우리는 멀지 않은 곳에 떨어졌지만, 네가 보이질 않아서…, 너, 어깨가…,”
“운이 나빴어. 마물 소굴 한가운데로 떨어질 줄은 나도 몰랐지. 탈골된 거 같은데…,”
대충이라도 좀 끼워봐, 하며 팔을 감싸고 있던 천을 풀었다. 통증이 계속해서 일었다. 탈구된 뼈를 끼울 땐 이보다 더 심한 통증이 생길 것이었다. 자칫 혀라도 깨무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에 팔을 감싸고 있던 천을 둥글게 말아 입에 물었다. 전정국은 빠진 내 팔을 잡고는 망설이는가 싶더니, 재촉하는 내 눈빛에 마지못해 내 어깨를 붙잡은 채 강하게 힘을 주었다. 눈물이 찔끔 날 만큼 아팠다. 순간 눈앞이 아찔해진 것 같기도 했다.
“…괜찮나?”
입에 물었던 천을 퉤, 하며 바닥에 뱉어냈다. 마물의 피가 묻어있던 천이라 그런지, 입안에 비릿한 향이 가득했다. 괜찮다는 의미로 대충 손을 휘저어준 뒤 계곡물로 입안을 헹궜다. 어깨는 여전히 욱신거렸지만, 계속 빠진 상태로 방치되는 것보단 나을 터였다.
“이리 와라, 뼈는 끼웠지만 되도록 이쪽 팔은 쓰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내 움직임을 퍽 불안불안하게 지켜보던 전정국이 나를 향해 손짓했다. 나는 별다른 거부 없이 전정국에게 다가섰다. 그는 입에 물었다 뱉은, 엉망이 된 천을 한 번, 제 옷을 한 번 보더니 한숨을 푹 내쉬고는 상의를 벗어젖혔다. 물에 젖어 반투명해진 셔츠 하나만을 입고 있는 꼴이 뭐랄까…, 퍽 민망한지라, 나는 헛기침을 내뱉으며 슬그머니 시선을 돌렸다. 젖은 셔츠 아래로 전정국의 굴곡진 몸이 다 보였기에.
셔츠 위에 덧대 입던 옷을 길게 찢은 전정국이 빠른 손놀림으로 천을 휘감았다. 다친 어깨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멀쩡한 반대쪽 어깨에 천을 감싼 그가 풀리지 않게끔, 몇 번이고 매듭을 묶었다.
“…넌 정말, 이상하게 느껴질 만큼 침착하군.”
“…내가? 그런가?”
“보통 짐승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해서 폭포 아래로 떨어질 생각을 하지는 않으니까. 그리고…,”
“…….”
“이만큼 다쳐놓고, 너처럼 의연하게 대처하기도 힘들지 않나,”
“…….”
“…꼭, 이런 일에 익숙한 사람 같다, 너는.”
…그런가? 하는 내 대답을, 전정국은 아무런 대꾸 없이 받아들였다. 더 이상 말을 얹지 않은 탓에 우리 사이로는 잠깐의 침묵이 내려앉았다. 매듭을 단단히 묶은 전정국이 멀쩡한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다 됐다, 조심해라. 하는 그 짧은 걱정 어린 말을 들으며,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게임 내에서
김태형이 모닥불 근처로 돌아왔을 때쯤엔 이미 숲 전체에 어둠이 내려앉은 후였다. 이거, 아카데미에서 난리 났겠는걸-, 하며 키득거리는 김태형을 필두로 우리는 계속해서 걸음을 옮겼다. 근처를 수색하다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서 동굴을 발견했다는 김태형의 말 때문이었다. 아무튼, 강가에서 아무런 보호막 없이 모닥불을 지핀 채 밤을 새우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없었기에, 우리는 해가 진 숲이라는 위험요소를 감수하며 동굴로 이동하기로 했다.
가는 길이 순탄했다 하면 거짓말일 터였다. 무엇보다도 이 계곡은 마물의 서식지 중 한 곳이었고, 그렇기에 우리는 마물들을 수없이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근 3일간의 토벌이 효과가 있었던 모양인지 나타나는 마물의 수가 현저하게 줄었다는 점이었다. 덕분에 한쪽 팔을 못 쓰게 된 탓에 무용지물이 되어버린 내 [난사] 스킬 없이도 전정국과 김태형, 둘만으로도 마물 퇴치가 가능했다. 부상자인 나로서는 뒤에서 총 몇 번을 쏴 주는 게 전부였다. 세 명분의 몫을 두 명이서 해내고 있음이 분명한데도, 전정국과 김태형은 마물을 쓰러트리는데 모자람이 없었다. 시원시원하게 휘두르는 전정국의 장검과, 소리 없이 움직여 급소만을 찌르는 김태형의 움직임 합이 좋았기 때문이리라.
"율리아, 교대하자. 눈 좀 붙여."
"아, 그래."
유독 길게만 느껴지는 밤이었다. 마물 서식지 한가운데서 밤을 지새우는 만큼, 어디서 무엇이 튀어나올지 몰랐기에 마음 편히 쉬는 건 사치였다. 한 명이 동굴 입구를 지키고, 나머지 두 사람은 잠시나마 눈을 붙이는 식으로 휴식을 취하는 것이 전부였다. 내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쉬라는 전정국의 말에 동굴 입구에 쭈그려앉아있던 몸을 일으켰다. 오랫동안 한 자세를 유지한 탓에 몸 곳곳에서 뚜둑, 하는 소리가 났다.
"별일 없었나?"
"응? 응. 딱히…, 근처에 마물은 없는 것 같아."
"그거 다행이군,"
들어가라, 날이 차다. 하는 전정국의 말에 수고해-, 하는 한 마디를 남겨둔 채 동굴 안으로 걸어들어갔다. 김태형이 피워둔 모닥불 근처, 웅크린 자세로나마 옅은 잠에 취한 김태형이 보였다. 아마도 방금까지는 전정국이 덮고 있었을, 두터운 담요가 반대쪽에 나뒹굴고 있었다.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라며 인벤토리에 담요를 챙겨두었던 김태형의 덕에 조금이나마 따뜻한 밤을 날 수 있었다. 나는 전정국의 온기가 아주 약간 남은 담요를 모닥불 근처 딱딱한 돌바닥에 깔고는 몸을 뉘었다.
하루를 너무 스펙터클하게 보낸 탓일까, 온몸에 피로가 덕지덕지 묻어있는데도 쉽사리 잠에 들지 못했다. 한참을 뒤척이다가 결국엔 몸을 일으킨 나는 모아둔 장작 몇 개를 모닥불 안에 던져 넣었다. 화르르-, 타오른 불꽃이 순식간에 장작을 삼켰다. 타닥이는 소리가 순간적으로 커졌던 탓인지, 건너편에 누워있던 김태형이 으응-, 하며 잠투정을 하는 것이 들렸다. 그 모습을 잠자코 지켜보던 나는 담요를 어깨에 두르고는 걸음을 옮겼다. 자박자박, 하는 발걸음 소리가 동굴 안에 아주 작게 울려 퍼졌다.
전정국은 아까의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동굴 입구에 멀거니 앉아있었다. 울창한 숲은 이따금 부는 바람에 섬뜩한 소리를 내는 것 말고는 조용했다. 나는 아무런 말 없이 전정국이 걸터앉은 바위 옆에 가 주저앉았다. 줄곧 동굴 입구를 보고 있던 전정국의 눈이 흘긋, 내 쪽을 향하는 것이 느껴졌다.
"…왜 안 쉬고 나왔나,"
"잠이 안 와서. 너라도 좀 더 잘래?"
"됐다, 나도 그다지 피곤한 건 아니라…."
"……."
"……."
더 이상 말을 얹지 않았기에, 둘 사이에는 침묵만이 흘렀지만, 불편함은 없었다. 바람에 휩싸여 굴러가는 나뭇잎을 바라보던 나는 슬쩍 전정국의 팔에 머리를 기댔다. 전정국이 움찔하는 것이 고스란히 느껴졌지만, 나는 기댄 몸을 바로 세우지 않았다. 맞닿은 부분에서부터 온기가 퍼져나가는 것 같았다. 그로부터 한참이 지난 후에야,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난 홀어머니 밑에서 컸어,"
갑작스러운 이야기의 시작에 전정국이 눈을 홉뜬 채 내 쪽을 바라보는 것이 느껴졌지만, 나는 일부러 그에게 시선을 돌리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
"형편이 좋은 편은 아니었는데도, 하나 있는 딸 모자람 없이 키워보겠다고 해보고 싶다 조르는 건 거의 다 하게 해주셨어. 덕분에 나는 이런저런 것들도 많이 경험해 봤고…,"
"……."
"여러 캠프도 다녀봤고, 배구, 농구, 탁구, 안 해본 운동이 없었고, …사격도, 그중 하나였어."
"…사격을 배웠었나?"
"응,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그래서 시스템이 총을 내밀었을 때 그렇게 반가웠어,"
그 뒤로도 나는 조잘조잘, 내가 생각나는 이야기들을 내뱉었다. 대부분 내가 '율리아'가 되기 전의 이야기들이었다. 전정국은 별다른 반응이 없었지만, 이따금 응, 그랬군, 하는 추임새를 넣으며 듣고 있다는 걸 표하곤 했다.
"…가끔 이렇게, 자기 전에 예전 일들을 떠올려 보면 내가 내 이름을 잊어버렸다는 사실 하나가 그렇게 억울할 수가 없어."
"……."
"그렇잖아, 그 이름 하나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는데, 그걸 잊어먹나 싶고…."
"네 탓이 아니다."
"맞아, 그건 내 탓이 아니야. 난 내 이름을 잊어버렸을 뿐, 내 인생을 통째로 잊어버린 건 아니거든."
묘하게 날이 선 어투였다. 전정국도 이를 느낀 것일까, 줄곧 울창한 숲만을 바라보던 그 시선이 내게로 와닿는 것을 느꼈다. 나는 그를 바라보지 않았다. 그의 어깨에 기대고 있던 몸을 일으켰다. 살짝 엉킨 머리를 정리하고, 몸을 일으켜 바지에 묻은 먼지를 성의 없이 털어내며, 나는 전정국을 바라보았다. 그는 여전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난 율리아가 아니야."
"……."
"비록 그 애의 몸을 빌리고 있더라도, 내 본질은 율리아가 아니고, 그녀의 인생이 내 것이 되는 일 따위는 없다는 건 명백한 사실이야."
"…어째서,"
"어째서 이런 말을 하느냐고? 그건 이제부터 네가 잘 생각해 봐야 할 문제야. 전정국,"
"……."
"넌 카일로스 체슬라 폰 크레아가 아니야."
내가 전정국으로부터 느낀 아주 자그마한 위화감, 그것은 전정국이 그가 '전정국'이었다는 사실을 잊어가는 건 아닐까 하는 아주 작은 의심일 뿐이었다. 말투, 행동, 그 무엇 하나 황태자스럽지 않은 곳이 없는 그 모습을 처음 마주했을 때만 하더라도, 그저 '그럴 수 있다'라 안일하게 생각하고 넘어갔으나, 이제는 아니었다. '전정국'이라면 알 수 없는 것들을 알고, '전정국'이라면 생각해내지 못할 리 없는 생각들을 하지 못한다. 그는 저도 모르는 새 카일로스가 되어 있었으며, 그 사실은 결코, 우리에게 좋은 소식은 아니었다.
"잘 생각해, 네가 누군지."
그 말을 남긴 채, 나는 서서히 전정국으로부터 멀어졌다. 동굴 밖으로 걸음을 옮기는 날 보던 정국은 어디 가느냐 따위의 말을 건네지 않았다. 그저, 어딘지 모르게 복잡한 눈을 하고서는 나를 빤히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있을 뿐이었다.
/
"와, 이게 다 몇 개야,"
이리저리 엉망으로 퍼져있는 마물의 사체를 보며 내가 중얼거렸다. 발걸음을 이쪽으로 옮긴 건 그저 우연일 뿐이었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것이란 생각도 하지 못한 채 한참을 걷다 보니, 전정국과 김태형이 박살 내놓은 마물의 사체들을 발견한 것뿐이었다. 그제야 약간의 현실감이 돌아오는 듯싶었다. 우리가 아카데미에 다니고 있던 것과, 지금은 실습 기간이라는 것 등. 결과적으로, 내 앞에 놓여있는 이 마물의 사체들에 있을 핵을 채취해 두는 것이 내 성적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사실까지도. 사실 성적이야 좋으나 나쁘나 퇴출당할 정도만 피하면 되지만 그래도, 이왕 하는 김에 성적이 높으면 더 좋지 않은가. 진의 얼굴을 볼 면목도 생길 테고.
인벤토리에 넣어두었던 단검을 꺼내들며 가장 가까이 있던 마물의 사체로 향했다. 거죽이 두꺼운 것이, 쉽게 칼날이 박히지 않을 것 같아 부러 마물의 사체를 발로 차 한 번 뒤집었다. 아무리 마물이래도 약점이 없을 수는 없는 터라, 단단한 등 부근의 표피를 노리는 대신 상대적으로 약한 배 쪽의 표피를 가르는 것을 택하는 것이었다. 시퍼렇게 날이 선 단검은 무리 없이 마물의 살을 갈라냈다. 단전쯤에 자리하는 핵을 채취하는 것은, 이제는 눈 감고도 할 수 있을 만큼에나 내게 익숙해진 일이었다.
"…이게 원래 이런 색이었나?"
설마 중급 마물을 죽였다거나 하는 건 아니겠지. 그렇다기엔 핵을 품고 있던 마물의 개체가 매우 약한 종에 속해 있었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물에게서 뽑아낸 핵은 묘한 색을 가지고 있었는데, 마치, 평범한 핵에 달빛을 씌워둔 것 마냥 묘하게 반짝거리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마물의 핵을 조금 더 잘 볼 수 있도록 허공으로 치켜들었다. 달빛을 받은 핵이 더욱이 반짝거렸다.
"예쁘긴 하네,"
보석 같은 영롱함은 아니었으나, 은은하게 달빛을 머금은 것이 꽤 예뻤다. 다른 핵이랑 대체 뭐가 다른 거지. 혹시 옆에 두고 비교해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인벤토리를 열었다. 연보라색 마물의 핵 하나를 꺼내든 나는, 그대로 어? 하는 얼빠진 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이게, 왜…."
꺼내든 마물의 핵 또한, 달빛을 머금은 것처럼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나는 닫았던 인벤토리를 열었다. 마물의 핵을 있는 대로 꺼내들었다. 하나하나 살펴볼 필요도 없었다. 인벤토리에서 꺼내는 그 즉시, 마물의 핵은 은은하게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이거 설마…?'
나는 서둘러 퀘스트 창을 열었다. 낮에 마물의 핵을 쥔 채로 퀘스트 창을 확인했을 때, 매개체를 찾으라는 조건은 완료되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그 매개체가 발하는 조건 중 하나가 '낮'이 아닌 '밤'에만 해당되는 것이라면? 나는 빠르게 퀘스트 창의 [조건]을 확인했다.
[메인 퀘스트 : 수색]
필수 퀘스트
[메인 퀘스트 : 협력]을 완료하였습니다.
연계 퀘스트로의 진입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였습니다.
관련 퀘스트가 자동 부여됩니다….
크레아 제국 : 북부 지역의 수색을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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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 1] '매개체'를 찾으시오. (완료)
[조건 2] '근원'을 찾아내시오.
[조건 3] 조건부 공개
"미친, 찾았다."
마물의 핵이 매개체였다.
나는 마물의 사체에서 핵을 꺼내야 한다는 사실조차 잊은 채 동굴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달빛을 받아 빛을 발하는 마물의 핵을 손에 꼭 쥔 채로. 나도 모르는 새 꽤 멀리까지 나왔던 모양인지, 동굴까지 가는 길이 꽤 멀었다. 마물의 핵을 손에 쥐고 달리는 동안 알아낸 사실 한 가지는, 내가 동굴 쪽으로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마물의 핵이 발하는 빛이 더더욱 밝아진다는 사실이었다. 이거, 잘 하면 조건 2까지 그냥 클리어하겠는데, 하는 생각과 함께 나는 쉴 틈 없이 뜀박질했다.
여전히 동굴 앞을 지키고 있는 전정국은 어쩐지 생각이 많아 보이는 표정이었다. 그 이유가 내가 했던 말 때문임을 잘 알고 있었기에 약간의 어색함마저 느끼고 있었으나, 그보다 더 중요한 건 퀘스트였다. 전정국은 저 멀리서부터 빠르게 다가오는 나를 보더니 큰 눈을 더 크게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뛰지 마라, 넘어진다…!"
"찾았어,"
매개체 말이야, 나는 손에 쥐고 있던 마물의 핵을 전정국에게 보여주었다. 달빛을 받아 예쁘게 반짝이는 마물의 핵을 보던 전정국이 이내 자신의 퀘스트 창을 열어 수색 퀘스트를 확인했다. 조건 1, 완료됐지? 하며 묻는 내 말에 전정국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하지만 아까는 분명 반응이 없었는데…."
"맞아, 분명 낮에 마물의 핵을 들고 퀘스트를 확인했을 땐 아무런 반응이 없었단 말이지? 요컨대 핵심은 저거야."
나는 하늘 위, 둥그렇게 떠 있는 달을 손으로 가리켰다. 달, 매개체는 '밤'에만 그 역할을 다 한다.
"그리고 두 번째 조건인 '근원'도, 어쩌면 찾아낼 수 있을 것 같아."
"어떻게?"
"저쪽 숲에서 마물의 핵을 뽑아냈을 땐, 빛이 이렇게까지 밝지 않았어. 은은하게 빛나는 정도였는데, 동굴에 가까워지면서 빛이 더 밝아졌어."
"동굴 안에 무언가가 있단 소리겠군."
"맞아,"
전정국과 나는 지체 없이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모닥불 앞에 깊게 잠든 김태형이 보였다. 김태형, 일어나라. 전정국이 김태형을 흔들어 깨웠다. 제 몸에 손을 대자마자 번쩍 눈을 뜬 김태형이, 저를 깨운 것이 우리임을 깨닫고는 눈을 비비며 몸을 일으켰다. 왜? 아침이야? 피곤에 젖은 그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김태형에게 마물의 핵을 보여주었다. 아주 밝게 빛나는 그것을.
매개체, 김태형이 중얼거렸다. 그는 퀘스트 창을 한 번 열어보더니, [조건 1]이 완료되어 있는 것을 확인하곤 완전히 몸을 일으켰다. 근원? 조건 2의 내용을 중얼거리는 김태형을 향해 내가 짧은 설명을 덧붙였다.
"그 근원이라는 게, 저 동굴 깊은 곳에 있는 것 같아. 밖에 있을 때 보다 동굴 안에서 핵의 빛이 더 밝아졌거든,"
내 설명을 들은 김태형이 재빨리 몸을 일으켰다. 우리가 저를 깨운 이유를 짐작한 듯했다. 김태형이 바닥에 널브러진 담요를 주워 인벤토리에 넣는 동안, 나와 전정국은 아직까지 활활 타오르는 모닥불을 꺼트렸다.
동굴의 안쪽으로 걸음을 옮길수록 빛은 더 밝아졌다. 그저 은은할 정도로 빛을 발하던 것이 이제는 형광등처럼 동굴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썬글라스도 챙길 걸 그랬다는 김태형의 우스갯소리에 픽 웃어 보였다.
"잠깐만, 막다른 길이야,"
김태형이 걸음을 늦추며 말했다. 그의 말대로였다. 마땅히 뚫려있어야 할 동굴은 더 이상의 길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아까보다 더욱 밝은 빛을 내뿜는 마물의 핵을 흘긋 보던 전정국은, 자그마한 틈새가 있는지 찾아보겠다며 벽을 더듬거렸다.
손이 쥐고 있던 마물의 핵을 이리저리 비춰보며 나는 벽을 살펴보았다. 뭔가, 뭔가 이상한데…. 무언가 석연치 않은 느낌에 벽 부근을 살피던 내 눈이 가늘게 좁혀졌다. 틈, 아주 미세한 틈이었지만 그건 분명히 틈이었다. 길게 이어진 틈을 따라 고개를 들어 올리던 나는, 틈 근처의 벽을 툭툭, 건드려보았다. 아무래도 이거, 이상한데. 말 그대로 '툭툭'건드린 것뿐인데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돌 부스러기가 떨어져 나왔다.
"누가 인위적으로 벽을 세워둔 것 같은데, 이거."
김태형이 말했다. 그의 시선은 동굴의 천장을 향해 있었다. 주먹으로 벽을 툭, 건드리자, 기다렸다는 듯 와르르 쏟아지는 흙먼지들. 반대쪽에서 사람이 들어갈만한 구멍을 찾던 전정국이 김태형 쪽으로 다가왔다.
"부수고 들어갈까?"
"내가 할게, 율리아 데리고 좀 멀리 떨어져 있어. 다친다."
전정국이 장검을 빼들며 말했다. 잠시만, 이걸 부수겠다고? 하는 경악 어린 내 말에 둘은 뭐가 문제냐는 듯, 어깨를 으쓱여 보일 뿐이었다. 그게 가능해? 아니, 마물 때려잡던 거 생각해 보면 가능할 것 같기도 하고…. 김태형이 내 팔을 붙잡고는 전정국으로부터 살짝 멀리 떨어졌다. 파편이 튀지 않을 정도의 거리임을 확인한 전정국이 칼을 휘둘렀다. 카강-, 하며 칼이 벽과 맞물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벽과 맞닿아있던 전정국의 검이 새파랗게 물들기 시작했다.
검기(劍氣), 전정국의 스킬이었다.
콰르르, 하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벽이 무너져내리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시야를 전부 가릴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흩날리는 흙먼지에 팔로 얼굴을 가리고 눈을 꾸욱, 감았다. 그새 먼지가 들어간 눈이 따끔거렸다.
무언가가 무너지는 소리가 점차 멎어들었다. 이제 귀에 들려오는 소리라고는 투둑, 하는 작은 돌멩이들이 굴러다니는 소리뿐이라서 나는 얼굴을 가리고 있던 팔을 치워냈다. 흙먼지 너머, 거대한 벽이 숨기고 있던 곳을 눈에 담은 나는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로얄가드로 무너져내리는 돌무더기를 막아내던 전정국도 말을 잃고 그 너머를 바라보고 있었다.
동굴 안의 장소라고는 쉽게 믿기지 않을 법한 광경이었다. 무엇보다, 싱그러운 이파리들을 뽐내며 호수 근처에 자리 잡은 나무들이 그랬다. 깊이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어두운색을 띤 넓디넓은 호수, 그중에서도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단 하나였다. 호수의 정 중앙, 정체를 알 수 없는, 은은하게 빛나는 구(球) 하나,
[메인 퀘스트 : 수색]
필수 퀘스트
[메인 퀘스트 : 협력]을 완료하였습니다.
연계 퀘스트로의 진입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였습니다.
관련 퀘스트가 자동 부여됩니다….
크레아 제국 : 북부 지역의 수색을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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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 1] '매개체'를 찾으시오. (완료)
[조건 2] '근원'을 찾아내시오. (완료)
찾았다, 김태형이 중얼거렸다. 손에 들린 마물의 핵이 미친 듯이 빛을 발한다.
[조건 3] '근원'을 보호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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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벅, 저벅하는 조용한 발걸음 소리가 동굴에 울려 퍼졌다. 마치 무언가를 찾듯,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동굴로 걸어들어오던 새카만 머리칼의 사내가 돌연 걸음을 멈추었다. 동굴의 입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 타다 만 장작들과 숲에서 주워온 듯한 나뭇가지들이 쌓여있는 것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사내가 천천히 고개를 치켜들었다. 사내가 허공을 응시했다. 사내의 시선을 따라 옅은 새카만 연기가 이리저리 휘날렸다. 여기? 사내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새카만 연기가 사내의 주위를 빙글빙글 맴돌았다. 긍정의 뜻이었다.
"…진짜 이런, 이런 깊은 숲까지 들어왔다고?"
불을 피웠던 혼적을 내려다보던 사내가 몸을 틀었다. 동굴 입구에서부터 누군가가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찾았어, 하는 사내의 조용조용한 음성에 동굴에 들어서던 옅은 갈색 머리의 남자가 흠칫했다. 진짜? 하며 묻는 그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새카만 머리칼을 가진 사내, 민윤기가 서 있던 곳까지 걸음 한 그가 모닥불의 흔적을 보며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진짜네, 이미 떠난 것 같지만."
"밖으로 나간 게 아니라 안쪽으로 들어갔어."
"어? 동굴 안쪽으로?"
"응."
저쪽에서, 이상한 소리가 난대. 민윤기가 말했다. 갈색 머리칼의 사내, 정호석은 그 말에 흠칫, 몸을 떨며 민윤기에게 한 발짝 더 다가섰다. 들어가야겠지? 잔뜩 겁먹은 그 음성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민윤기가 걸음을 옮겼다. 느린 걸음이었으나 그 목적지는 확실했다. 갈림길? 오른쪽이라고? 돌무더기…, 아아, 마치 누군가와 대답을 하듯, 허공을 향해 중얼거리는 민윤기의 모습에 정호석이 몸을 움찔거렸다. 이 산을 수색하는 내내 몇 번이고 봐온 광경이었지만 역시나, 적응이 되질 않는다. 어느새 벌어진 민윤기와의 거리에 정호석이 화들짝 놀라며 걸음을 빨리했다.
"이 안쪽으로 들어간 거 확실해?"
"확실해."
민윤기가 대답했다. 확신 어린 그 목소리에 정호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하는 대답에 더 이상의 의심은 없었다. 그들은 점점 더, 동굴 깊은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누군가의 얼굴에 짙은 미소가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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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끗!
글 옮기는 것도 일이네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