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도 치료가 가능한가요

31ㅣ필요 없는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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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ㅣ필요 없는 존재








나는 서이만 다른 곳으로 데리고 왔다. 서이는 말 없이 나를 따라왔으며, 사람이 잘 오지 않는 외진 곳에 도착해 아무 말 없이 서이를 쳐다보았다.

“… 무슨 할말이 있는데?”

“몰라서 묻는 거야, 지금?”

“너 우리 교수 님 번호 땄다며.”

“… 내가 언제?”

“너 그거 모르지, 네가 거짓말 하면 동공 흔들린다는 거.”

“네가 나를 말로는 속여도 몸으로는 못 속여.”

“우리 교수 님 잘생겼지, 서이야.”

“…”

“네가 한눈에 반할 정도면 말 다 했지, 뭐.”

“언니 교수 님이랑 무슨 사이야?”

“네가 그걸 알면 뭐할 건데, 연인 사이라도 되면 뺏기라도 하게?”

“그 분도 나 좋아하는 눈치였어.”

헛웃음 밖에 나오지 않았다. 서이가 예쁜 외모를 가진 건 맞지만 교수 님이 좋아하는 눈치였다니. 번호 따인 후 바로 나에게 와 알리던 교수 님이었다. 나에게는 걱정 말라며 연락 와도 차단할 거라고 안심 시켜주던 교수 님이 좋아하는 눈치였다는 게 말이 안 됐다.

“그렇구나, 착각 아니고?”

“아니야, 그럼 번호를 주셨을리 없지.”

“그냥 내 동생이라고 하니까 주신 거야, 네가 교수 님이랑 맞는다고 생각해?”

“경고 하는데, 이제 더이상 내 곁에 있는 것들을 뺏어가지 마.”

“다시는 찾아오지도 말고… 교수 님이랑 나랑 연인 사이니까 건들지 마.”

“어차피 네가 아무리 들이대도 교수 님은 안 넘어갈 거라 상관은 없지만.”

나는 그 말을 끝으로 다시금 병원으로 향했다. 서이는 벙찐 표정을 한 채 나를 계속 째려보는 듯 싶었다. 일부러 교수 님께 접근한 건지 정말 반해서 접근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번호까지 땄다는 걸 알고 식겁했다. 교수 님이 바로 알려줘서 다행이지, 아니면 모르고 지낼 뻔 했다.

어릴 때부터 남자를 좋아하고 자기의 세상에 있던 남자가 다른 여자를 바라보기라도 하면 질투심에 눈이 멀어 무슨 짓이든 하던 서이가 걱정 되긴 했지만 이제 환자에게 신경 쓰기로 했다.

오늘은 막장 드라마를 한 편 보는 듯한 내 인생이 너무나도 비참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가족이랑 연을 끊고 산다는 거, 쉽지 않은 일이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엄마라고 불러주기도 아까웠다, 그 사람은.

이미 엄마와 동생만으로 상처를 받았는데, 여기서 아버지까지 나타난다면 어떻게 할지 상상조차 가지 않는다. 공부에 엄격했던 건 엄마지만 내가 가장 무서워 했던 건 아버지였기에. 엄마만 바라보는 아버지는 엄마가 시키는 일이라면 무슨 짓이든 할 사람이었다.

내 인생은 왜 이러는 걸까, 막장 드라마의 여주인공보다 더 비참한 인생 같았다. 열심히 노력해서 얻어낸 자리인데, 이제는 이 자리에도 회의감이 들었다.

내가 사라지면 모두가 마음이 편할까, 내 인생이 이리도 비참한 건 모두 내 탓일까. 아무리 힘들어도 긍정적인 생각을 하려고 노력했지만 가면 갈수록 비극인 내 인생에 부정적인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과연 내가 이 자리에 있는 게 맞을까, 과연 내가 살아있어도 되는 걸까, 나는 누구에게도 필요 없는 존재가 아닐까. 내 인생과 나라는 사람 자체가 싫어지려고 했다. 이런 상황일수록 내가 더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하는데, 나는 그만큼 강한 사람이 아닌가보다.

나는 과연 필요한 존재인가, 의문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