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인데요

네가 생각난단 말이야 <한동민>

Gravatar


네가 생각난단 말이야


<한동민>

단편인데요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


"동민아"


언제봤다고 "동민아" 다. 게다가 이번이 겨우 2번 마주한 얼굴이었다. 새 학기 첫날 한번, 그리고 지금.


"나, 팬 한 번만"


자리에서 몸을 돌린 그녀는 한동민의 책상 앞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동민이 쥐고 있는 팬 하나를 콕콕 가볍게 건드리며 웃었다. 가장 눈에 먼저 들어온 것은 그 햇살 같은 미소였다. 다음으로는 노란색 명찰 위에 새겨진 이름 석자 '김여주'


"...여기."


한동민은 김여주에게 쥐고 있던 팬을 건넸다. 필통에서 팬 하나 꺼낼 생각을 못 하고 한동민도 모르게 자신의 쥔 팬을 내어줬다. 


김여주는 동민에게서 팬을 받았다. 그리곤 부드럽게 내려앉은 긴 생머리를 넘기며 귀에 꽂는다. 얕은 미소 뒤에 "고마워"라 말하며 다시 앞을 향해 몸을 돌렸다. 긴 머리가 찰랑이게 등진 뒷모습에서 한동민은 넋을 놓았다. 시선을 빼앗겼다고 해야 하나.


그날 이후 한동민의 시선은 그녀를 쫓았다. 주변에서 오고 가며 들었던 김여주의 대한 것들도 일기장에 기록하듯 담아냈다. 웃을 때 눈이 먼저 감기는 습관, 밝은 성격 탓에 주변에 항상 사람들이 많다는 것, 클래식에 뮤지컬을 좋아하는 취향, 습관처럼 스티커 사진을 자주 찍는 것도.


접점이라고는 서로가 앞 뒷자리인 것 빼고는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김여주는 자주 한동민이 있는 뒷자리에 몸을 돌려 앉았다. 딱히 대단히 할 말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대부분이 시시콜콜한 대화 주제였다. 아마 그녀의 심심함을 달래줄 친구 1 정도였지 않았을까.


"동민아, 너 향수 뭐 써?"


"향수? 안 쓰는데"


선물 받은 것만 해도 지금 한동민 집 서랍장에 먼지 쌓인 채 방치되어 있을 게 분명하다. 향수 쓰는 법도 잘 모르겠고 종류도 뭐가 그렇게 많은지 모르겠던 한동민이었다.


"근데 냄새 좋다, 섬유 냄새인가?"


김여주는 동민의 왼팔 하나를 슥 가져다가 한동민 교복 소매에 자신의 코를 박고 냄새를 맡았다. 저항 없이 끌려간 팔이 경직됐다. 겉으로 신경 안 쓰는 척 굴었지만 속으로 온몸의 신경이 왼팔에 곤두섰다. 손목에 맥박이 빨라지는 게 느껴질 정도다.



그날 한동민은 집에 돌아와서 가장 먼저 세탁기 앞으로 다가갔다. 선반에 놓인 섬유 유연제에 멈춰 섰다. 그리고 섬유 유연제가 담긴 통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빼곡한 성분표를 읽어 내려갔다. '코튼향' 이라고 적힌 문자에 눈을 번쩍였다. "이거다"


동민 다시 방으로 돌아와 서랍을 뒤지기 시작했다. 선물로 받은 먼지 쌓인 향수들을 뒤적거리며 '코튼향'이 적힌 향수 하나를 발견했다. 포장 박스도 안 깐 향수 위 뽀얗게 쌓인 먼지를 털어냈다. 


한 번 소매 위로 찍 뿌려보고 냄새를 맡았다. 얼추 집에서 쓰는 섬유 냄새랑 비슷했다. 그때부터 한동민은 향수에 관심이 생겼다. 어쩌다 보니 코튼향이란 코튼향을 죄다 향수 선반에 하나 둘 채워나갔다.


.

.

.






다음날, 어제의 내가 우습게 김여주의 옆에 웬 처음 보는 남자애가 웃고 있었다. 듣기로는 김여주를 좋아한다는 놈이라고 학교에서 유명하다. 사실 저놈뿐만 아니라 다른 녀석들도 호시탐탐 김여주를 노리고 있다는 게 문제다. 늑대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결국 나도 똑같은 놈이겠지만. 인기가 많은 건 진작에 알았으니 됐다. 



고 생각 했는데 미묘한 눈빛이 한동민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때와 또 다른 놈인데도 그동안 처음 보는 김여주의 얼굴을 내가 아닌 저놈에게 보여주고 있는 게 아닌가. 한 학년 선배인 박성호라는 남자. 김여주의 같은 동아리 선배라고 한다. 둘이 언제부터 부쩍 가까워진 건지 학년 층이 다름에도 저 박성호라는 남자는 자주 김여주를 불러냈다. 그런 김여주는 상기된 얼굴로 따라 나간다. 그 뒷모습이 영락없는 사랑에 빠진 소녀 같았다.


그 얼굴을 나는 꿈에서 마주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분할뿐이다. 게다가 네 생각에 뒤척이는 날에는 그런 꿈도 꾸지 못한다. 오늘도 아직 초 가을인데도 추위에 몇 시간째 깨어있는지 모르겠다. 난 자꾸만 생각나는 네 때문이라고 버럭 애꿎은 너를 탓하고 있었다. 짜증 나게 인기는 또 많은 네 탓이라고.




-


"남자들은 나 같은 여잔 별론가?"


"...갑자기?ㅋㅋ"


"그냥..~"


"..."


선배랑 또 뭐가 잘 안 됐나보다. 네 생각대로 마음대로 넘어오지 않나보지? 조금 통쾌했다. 그 남자랑 잘되고 있지 않다는 생각에 속으로 좋아하는 내 모습이 참 찌질하다. 내가 뭐 어디가 꿀려서 그런 짐승한테 끌렸는지. 한동민은 계속해서 김여주가 걔랑 안될 이유만을 찾았다. 





-


황금 같은 주말 침대에 누워 하루를 소비하고 있던 한동민에게서 뜻밖의 이벤트가 발생했다. 오후 4시, 김여주에게 전화가 걸려온 것이다.


"뭐해"


"집인데?"


"잠깐 나와, 나 심심해~"


"...어딘데?"


.

.

.





"하이, 동민~"


"...뭐야"


김여주의 전화에 번화가 앞으로 달려 나온 한동민 앞에 잔뜩 꾸미고 온 김여주가 서 있었다. 전에 약속이 있었나. 한껏 꾸민 김여주에게서 찝찝한 생각이 물씬 느껴졌다. 저 꾸밈이 한동민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닌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약속 있었어?"


"..어ㅎㅎ"


여주는 머쓱하게 미소를 짓더니 방금 전 선배랑 데이트하다가 중간에 파투가 나버렸다고 말한다. 기껏 꾸미고 왔는데 중간에 들어가기 싫다고 나를 불러낸 것이다. 


결국 뭘 하기에도 어쩡쩡한 시간에 단 둘이 저녁을 먹었다. 그리곤 돌아가는 길에 사진을 남겨야겠다는 김여주의 부탁에 스티커 사진 한 장 남기도 돌아가는 길이다.



"데려다 줄게"


"뭐야~, 스윗해~"


여주는 한동민에 팔에 팔짱을 끼웠다. 흠칫. 한동민은 놀란 듯 움찔거렸지만 그래도 남자 자존심이 있지. 아무렇지 않은 척 굴었다. 그럼에도 머릿속은 밀착된 상체가 괜히 신경 쓰였다. 


집 앞에 다다랐을 때, 스륵 내게서 김여주의 팔이 풀렸다. "고마워, 조심히 들어가!" 손을 흔드는 김여주 앞으로 발걸음을 멈춰 섰다.


"야, 김여주"


"응?"


한동민은 김여주를 불렀다. 여주는 태평한 얼굴로 뒤로 돌아본다. 한동민이 무슨 말을 할 줄 알고 저렇게 해맑을까. 동민은 살짝 머뭇거리다 이내 툭.


"...나는 어때"


"..뭐?"


"그 사람 말고 난 어떠냐고.."


작아지는 목소리에서 김여주의 눈을 피했다. 은근슬쩍 자신의 마음을 내보이는 한동민의 나름 고백이었다.


"..."


잠깐의 정적 끝에 여주는 "내일 봐"라는 한마디를 던지고 사라졌다. 못 들은 척 넘기는 듯 보였다. 아.


...괜히 말했다.





한동민은 집에 돌아오자마자 방금 전 고백을 후회하는 중이다. 괜히 좋아한다는 자각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조급함만 늘었다. 네가 그 선배한테 홀라당 넘어갈까봐. 


네가 다른 사람에게 마음이 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지만, 나를 밀어내지 않는 김여주도 참 나쁘다고 해야할지. 내가 좋아하는 거 알면서 내 앞에서 그 선배 얘길 꺼내는 것도 잔인하기 그지없다. 다가올 것처럼 끌어당겨놓고 내가 한 발짝 다가가면 너는 더 뒤로 밀고 밀어서 벽에 처박히는 내 마음을 아는지. 나쁜 건 알았지만 모른 체 수밖에 없는 나도 바보다. 그녀의 어장 속에 갇혀 허우적거리는 물고기 하나. 그게 바로 한동민이다.


.

.

.






한동민은 김여주가 선배랑 잘 됐다는 소식을 다른 사람을 통해 들었다. 그렇게 졸졸 따라다니더니 결국 성공했나 보다. 김여주 앞에서는 태연한 척 굴었지만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 후로 김여주의 연애상담은 한동민의 몫이었다. 


처음에는 외롭고 쓸쓸할 때 나를 찾는 김여주라도 좋았다. 그렇게라도 얼굴 한번 더, 목소리 한 번 더 볼 수 있다는 것에 좋았다. 너를 이대로 놓치긴 싫은 마음이 앞섰기 때문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김여주는 툭하면 나를 찾아와 고민을 늘어놓았다. 



"동민아, 넌 어떻게 생각해?"


"..."



솔직히 나도 지칠대로 지쳤다. 좋아하는 상대의 연애상담이라니 비참할 일이다. 그럼에도 김여주의 전화 한 통이면 벌떡 일어나는 한동민이었다. 김여주도 솔직히 느끼고 있을지 모른다. 아니... 이 정도면 알아야 된다.



"…내가 니 좋아하는 거 알면서"


"..."


동민은 헛웃음이 나왔다. 어디까지 날 짓밟고 무너트리는 건지. 김여주 넌 자각은 하고 있는 걸까? 처연하게 뱉어버린 한동민의 고백에 여주는 우물 주물 아무 말도 못 하다가 조심스럽게 동민에게 묻는다.


"...나 말고 다른 여잔 어때?"


"..."


또 한동민 속 뒤집어지는 소리 한다. 어떠긴 뭐 어때. 너 걔랑 잘 안되길 빌 거야. 딴 사랑 못해. 한동민은 속으로 생각하는 모든 말들을 토해내고 있었다. 뱉지도 못하면서.




"난 너랑 친구도 좋아"


그냥 옆에만 있을 수 있다면..는 무슨, 하나도 좋지 않다. 귀찮게 굴지 않겠다며 여주 앞에서 쿨한 척 구는 내 모습이 역겹기만 하다. 그런 내 마음은 아는지 모르는지 그 말에 너는 좋단다. 



...그래, 그럼 됐지.




집에 돌아와서 침대에 몸을 눕혔다. 땅이 꺼져라 내리쉬는 숨에 우울하기 짝이 없다. 짝사랑도 이런 짝사랑 없을 것이다. 친구 놈은 이제 손 떼라는데 정작 내 마음 하나가 그녀를 붙잡고 매달렸다. 


한동민은 책상 앞에 놓인 애꿎은 스티커 사진만 만지작거렸다. 그날 김여주와 찍었던 스티커 사진이다. 보고 있자니 더욱 비참해지는 게 버릴까. 싶은 마음이 울컥 차올랐다.


쓰레기통 앞으로 손이 올라갔다. 결국 손에서 그 사진 하나 놓지 못할 거면서...


'나 진짜 왜 이래 미쳤나'


속으로 열번, 천 번 내가 드디어 미친 거라고 같이 찍은 스티커 사진에 분풀이를 했다. 분풀이 와중에도 네가 제발 내 곁에 있길, 다시 나를 불러주길 전화만 오매불망 기다린다.


돌아와서 하는 생각이라고 네 생각뿐인 내 머릿속은 정신이 돌아올 생각이 없다. 점차 미쳐가는 내 모습에 창밖을 바라보았다. 때마침 창밖에 내리는 비가 적적하다. 떨어지는 빗방울이 내 마음 같아서 얄궂다. 어느새 새벽이다. 비는 그칠새 없고 나는 추위에 몇 시간째 깨어있다. 내가 잠들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너라는 변명을 하면서 


난 자꾸만 네가 생각난단 말이야.


.

.

.











*


Gravatar

+) 어쩐지 처연하게 김여주만 보고 있을 것 같은 한동민이 너무 찌통나서 울고싶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


한동민 자작곡 네가 생각난단 말이야를 누가 요청해주셔서 낋여왔어요..


쓰는데 좀 오래걸렸죠..? 


근데 제가 짝사랑을 뭐 해봤어야.. 그 맛을 알텐데

쓰면서 넘 어렵더라구요 하하..


Gravatar



그래서 짝사랑 플리만 조지게 듣고 왔습니다.


어찌저찌 빨리 끄적인거라 급하게 끝을 냈는데


이런 느낌을 원해서 요청하신 건진 모르겠네요..

(이런 느낌이 아니라면 죄송함다, 제 글재주가 이것이 한계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