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석 단편 모음
입맛, 나잇값

정화랑
2026.09.01조회수 3
가판대 구석을 이리저리 기웃거리던 지석이 마침내 원하는 것을 찾아낸 어린아이처럼 눈을 반짝이며 내 옆으로 성큼 다가왔다. 그의 손가락 끝이 가리킨 곳에는 알록달록하고 화려한 포장지가 붙은 과자 상자가 놓여 있었다.
"얼마야?"
내가 주머니에 손을 넣으며 묻자, 지석은 상자 아래에 붙은 조그만 가격표를 보더니 슬그머니 손가락을 굽혔다.
"흠..."
"지석아..."
단번에 눈치를 채고 낮게 이름을 부르자, 그가 뺨을 긁적이며 말꼬리를 길게 늘였다.
"좀 비싼데 오랫동안 맛보고 싶은 과자야..."
"다음에. 이거 넘 비싸. 오늘은 못 사 줄 것 같아……."
차가운 현실을 짚어주는 내 말에 지석의 어깨가 눈에 띄게 시무룩하게 내려앉았다. 평소의 당당함은 어디로 가고, 가만히 나를 응시하는 큰 눈망울이 눈에 밟혔다.
"누나.."
"왜?"
풀죽은 모습이 귀여워 나도 모르게 작은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지석은 내 눈치를 살피며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오더니, 소매 끝을 살짝 쥐고 나직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과하지 않게, 그러나 단번에 내 마음을 강렬하게 흔들어놓는 조심스러운 몸짓.
"제발.. 사줘.."
"너 나보다 돈 많잖아? 그리고 이 맛은 좀 애들 취향이야. 진짜 먹고 싶어?"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지으며 팩트를 찌르자, 지석은 입술을 삐죽이며 억울하다는 듯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그리고는 이내 눈을 반짝이며 비장의 무기를 꺼내 들었다.
"누나가 사면 집에 도착하자마자 뽀뽀 2개 줄게."
"에이, 좀."
생각지도 못한 뻔뻔하고 당돌한 거래 조건에 어이가 없어서 시선을 피하자, 지석은 다급하게 내 팔을 붙잡으며 목소리를 한 톤 더 낮췄다.
"누나...."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에 은근한 애교가 섞여 드는 순간, 더는 버텨낼 재간이 없었다. 결국 깊은 한숨을 내쉬며 가방을 열 수밖에 없었다.
"나이값 좀 해라. 아휴, 사 줄게. 근데 너도 내가 원하는 걸 사줘야겠다."
"넵."
내 허락이 떨어지기 무섭게 지석의 얼굴에 살짝 보이는 미소가 가득 번졌다.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장난기 어린 눈빛으로 세상을 다 가진 듯한 표정을 지은 그는, 마음이 바뀌기 전에 결제하려는 듯 과자 상자를 품에 꼭 안고 계산대로 잽싸게 뛰어갔다.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느슨하게 올라갔다.
소박한 과자 상자 하나를 소중히 받아 든 지석은 계산을 마치자마자 곧장 내게로 다시 다가왔다. 약속을 잊지 않았다는 듯, 그는 내 손을 자연스럽게 이끌고 근처의 소품숍 가판대 앞으로 향했다.
"누나는 뭐 갖고 싶어? 내가 약속한 거 사줄게."
투덜거리는 기색 하나 없이, 오히려 내게 무언가를 선물할 수 있다는 사실이 기쁜 듯 그의 눈빛이 다시금 다정하게 휘어졌다. 내가 조그만 꽃 모양 키링을 가리키자, 지석은 흐뭇하게 웃으며 망설임 없이 지갑을 열었다.
가게를 나선 우리는 자연스럽게 집으로 향하는 길을 걷기 시작했다. 주황빛 노을이 길게 내려앉은 골목길, 지석은 제 품에 소중히 안은 과자 상자를 만지작거리더니 이내 빈 손을 슬그머니 내밀었다. 내가 그 손을 가만히 바라보자, 그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내 손가락 사이로 제 손가락을 단단히 얽어맸다. 빈틈없이 맞닿은 손바닥 사이로, 기분 좋은 온기가 잔잔하게 스며들었다.
서두를 것 없는 걸음걸이로 나란히 발을 맞추며 걷는 길, 우리의 그림자가 나란히 겹쳐 길게 늘어졌다. 맞잡은 손을 가볍게 앞뒤로 흔드는 그의 얼굴에 편안하고 아늑한 미소가 잔잔하게 머물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