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석 단편 모음
우리만의 작은 아지트

정화랑
2026.08.22조회수 8
오솔길 가장자리에 조용히 자리 잡은, 세월의 흔적이 묻은 작은 붉은색 목조 건물을 지나치는 순간, 문이 끼익 하며 열렸다.
모퉁이 뒤에서 낯익고 눈부신 얼굴이 쏙 고개를 내밀었다. 지석이었다. 녀석은 이마에 묻은 먼지 얼룩을 닦아내고 있었고 흑발은 살짝 헝클어져 있었지만, 내 눈과 마주치는 그 짧은 찰나에 얼굴 가득 찬란하고 자랑스러운 미소를 띠어 보였다.
"우리만의 작은 아지트 다 만들었어!" 녀석이 소리쳤다. 나직한 목소리 속에는 소년 같은 설렘과 다정함이 한가득 묻어 있어, 듣는 순간 내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나도 모르게 깜짝 놀라 킥킥 웃음이 터졌고 심장이 기분 좋게 요동쳤다. 나는 친구들을 돌아보며 오솔길 아래쪽을 가리켰다. "트램펄린 창고는 저 나무들 바로 통과하면 있어! 먼저 가고 있어, 나 금방 따라갈게!" 친구들은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고, 나는 곧장 발길을 돌려 낮은 계단을 뛰어 올라가 붉은 건물 안으로 지석이를 따라 들어갔다.
문턱을 넘어선 순간, 나도 모르게 숨을 흐릿하게 들이켰다.
"지석아, 여기 진짜 대박이다." 나는 완전히 매료된 채 주변을 둘러보며 미소를 지었다. 아담한 공간이었지만 아주 정교하게 디자인되어 있었다. 복층 구조의 두 층 모두 우리가 완전히 허리를 꼿꼿이 펴고 서 있기에 공간이 아주 충분했다. 내부 원목은 내추럴하면서도 살짝 짙은 갈색으로 칠해져 있었고, 어찌나 매끄럽고 예쁜지 계단 난간에 빛이 유리처럼 반짝이며 비쳤다.
"여기 아래부터 먼저 봐봐." 지석이가 나직하게 중얼거리며, 나를 안내하듯 내 허리 아래쪽을 손으로 부드럽게 감싸 쥐었다.
1층에는 아기자기한 미니 주방이 만들어져 있었는데, 선반에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과자와 음료수들이 깔끔하게 채워져 있었다. 그 바로 옆에는 땅을 동그랗게 파서 만든 근사한 독서 공간이 자리 잡고 있었다. 온전한 편안함을 주는 비밀 동굴 같은 분위기였다. 벽면은 빌트인 책장으로 가득 차 있었고, 매끄럽고 시원한 돌 테두리가 푹신한 베개 산으로 가득 찬 커다랗고 고급스러운 소파 구역을 감싸고 있었다. 그 위로는 따스한 알전구 천장이 부드럽게 반짝이며 공간 전체에 마법 같고 아늑한 불빛을 드리우고 있었다.
"그리고 위층은 여기야." 지석이가 반짝이는 나무 계단 위로 나를 이끌며 내 손을 부드럽게 잡아당겼다.
계단 꼭대기에 다다르자 파스텔 톤의 귀여운 하늘색과 연한 노랑색의 꽃무늬 커튼이 입구에 걸려 있어 부드러운 문 역할을 해주고 있었다. 녀석은 길고 우아한 손가락으로 패브릭 커튼을 가볍게 젖히며, 아늑하고 완벽하게 미니멀한 침실을 보여주었다. 커다란 매트리스가 벽과 벽 사이에 딱 맞게 놓여 있어 머리부터 발끝까지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고, 그 바로 옆에 있는 넓고 깨끗한 창문 너머로는 햇살이 쏟아지는 야외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마음에 들어?" 녀석이 특유의 차분한 태도로 돌아와 내 표정을 살피며 부드럽게 물었다. 내 허락을 간절히 바라는 듯, 순간 눈에 띄게 수줍어하는 모습이었다.
"너무 좋아." 내가 진심을 가득 담아 말하며, 고개를 돌려 녀석의 목을 두 팔로 감싸 안았다. "우리 위해서 이걸 다 한 거야?"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다." 녀석이 안도감과 깊은 애정이 어린 미소를 입술에 띠며 속삭였다. 녀석은 내 허리를 단단히 감싸 안더니, 내 몸을 가볍게 들어 올려 두 걸음 떨어진 매트리스 위로 나를 데려갔다.
우리는 함께 푹신한 이불 위로 스르륵 쓰러졌고, 바깥의 건조하고 혹독한 열기는 완전히 잊어버렸다. 침대에 자리를 잡고 낮잠을 청하자 세상이 나른한 리듬으로 느리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지석이는 완전 내 껌딱지라도 된 것처럼 긴 팔다리로 나를 꼭 감싸 안았고, 나는 녀석의 가슴팍에 완전히 안긴 채 유리창 너머로 고요하게 흘러가는 세상을 바라보았다. 녀석은 내 어깨 굴곡 사이에 자신의 시원한 코끝을 콕 묻으며 만족스러운 긴 한숨을 내쉬었다. 지석이의 손가락은 내 손목을 따라 느릿하고 여운이 남는 선을 그리며 우리 둘을 감싸 안았고, 그렇게 우리는 새로 만든 우리들만의 아지트가 주는 평화롭고 안전한 품 안에 온전히 가두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