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도부 전선배
※욕설이 많습니다. 트라우마를 유발시키는 요소가 있을 수 있으니 읽기에 앞서 주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빠, 복학하는 거야?"
"...."
"오빠 군대에 있을 때 내가 연락 많이 했는데... 혹시 핸드폰 번호 바꿨어?"
"여주야, 밥은 먹었어? 우리 아직 다 안 먹었는데 같이 먹을,"
"말 좀 해 봐, 정국 오빠. 나 안 볼 거야?"
"...."
숨 막힌다. 석진이 분위기를 살려보려 말을 걸어도 윤여주가 가뿐히 씹고, 윤여주가 관심을 돌리려 애를 써도 정국이 가뿐히 씹고. 얼떨결에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해 윤여주의 옆자리에 앉은 여주는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눈동자만 데굴데굴 굴렸다.
아니, 근데... 석진 선배랑 윤여주랑 사귀는 거 아니었나...? 분위기가 왜 이러지...? 아무리 생각해도 여주가 이해되지 않는 건 이것이었다. 둘이 키스하는 걸 본 당사자이기도 하니 더더욱 이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
"응급실. 일어날래?"
"...네?"
"오빠!"
"나가자. 너 나한테 줄 돈으로 아이스크림 좀 사 줘."
줄 필요 없다면서요.... 라고 대꾸하지 못한 건 그 무엇 때문도 아닌, 자리에서 일어난 정국 때문이었다. 안 갈 거야? 턱으로 바깥을 가리키며 외투를 챙기는데, 여기에 머물고 싶은 사람이 몇이나 될까... 여주는 석진의 눈치를 보다 물건을 챙겨 정국을 따라 나섰다.
그 길로 쭉 학교 밖에 있는 편의점까지 같이 갔다. 나란히 걸은 건 아니고, 여주는 정국보다 두 걸음 뒤에. 멀지도 그렇다고 가깝지도 않은 딱 그 위치였다.
"미안. 돈 안 줘도 된다 했는데 말 바꿔서."
"...괜찮아요. 저도 아이스크림 먹고 싶었어요."
"내가 다음에 아이스크림으로 갚을게."
"그것도 괜찮아요. 마음만 감사히 받을게요."
"...이 말, 어디서 한 번 들었던 것 같은데."
입에 설레임을 문 정국이 그날 밤 응급실 앞에서 나눴던 대화를 떠올리며 픽 웃었다. 정국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은 여주도 입에 탱크보이를 문 채 고개를 끄덕였다.
"너 철벽 친다는 소리 많이 듣지?"
"어떻게 알았어요?"
"융통성 없다는 소리 많이 듣고."
"...저희 어디서 만난 적 있어요?"
"큭, 아니. 응급실 너는, 다 티 나. 그냥 다 티 나."
석진이 형 좋아하는 것도. 다. 티 나. 정국은 마지막으로 튀어나오려는 말을 애써 아끼며 옆 그네에 앉은 여주를 힐긋 바라봤다. 어쩐지 얼빠진 표정으로 탱크보이를 물고만 있는 여주. 하지만 이내 미간을 찌푸리며 끄트머리를 잘근잘근 물었다.
"왜 자꾸 저를 응급실이라고 부르는 거예요?"
"왜? 싫어?"
"아니, 싫다기 보다는... 아까 석진 선배 반응도 그렇고... 설명해야 될 때 손이 왜 다쳤는지까지 말해야 될 것 같잖아요."
"말하면 되지."
"...별로 그러고 싶지 않아요."
끼익. 끼익.
발을 움직여 그네를 앞뒤로 천천히 흔드는 여주에 녹슨 소리가 귀를 울렸다. 정국은 별로 그러고 싶지 않다는 여주의 말을 머리에서 다시금 곱씹다 입안 가득 담긴 아이스크림을 꿀꺽 삼킨 뒤 입을 열었다.
"네가 여주라고 부르는 걸 싫어하는 것 같아서."
"...네?"
"너 여주라는 이름 나오자마자 맥주잔 떨어뜨렸잖아. 어지간히 듣기 싫어하나 보다, 싶어서 그랬지."
"...."
분명 술자리에서 있었던 일을 말하는 것일 터. 여주는 눈을 크게 떠 덤덤한 정국의 옆모습을 바라보다 고개를 돌렸다. 다른 사람들은 생각지도 못한 걸 자연스럽게 하는 배려.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석진과 너무나도 비슷한 모습에 자꾸만 기분이 이상해졌다.
"석진 선배... 랑은 어떻게 친해졌어요?"
그래서, 말을 돌렸다. 불리하다고 느낄 때마다 나오는 습관이었다.
"형? 석진이 형이랑은... 아, 과대 형이랑 석진이 형이랑 친구거든. 1학년 때 축제 끝나고 뒤풀이 하다가 술 마시면서 친해졌다."
"...아, 술...."
"왜? 석진이 형이랑 술 마시고 싶어?"
"네? 아, 아뇨! 아니에요!"
석진에게서 둘이 사귀냐는 질문을 들었을 때보다 더 당황한 여주는 양손을 써가며 정국의 말을 부정했다. 그러면서도 귀 끝은 눈에 띌 정도로 붉어 정국은 웃으며 그네에서 일어났다.
"이제 어디 가?"
"...집 가요."
"택시 불러줄까?"
"아니요, 괜찮아요."
"그럼 데려다 줘?"
"그것도,"
"그것도 괜찮다고 하겠지."
"...."
여주는 일어선 정국을 올려다 보며 입술을 삐죽였다. 알면서 묻는 게 참 짓궂다, 싶었다.
"알겠어. 조심히 가. 다음에 보자, 응급실."
멀어지는 정국의 뒷모습을 보며 여주도 슬슬 그네에서 몸을 일으켰다. 사실 일부러 정국에게 안 보이게 하기 위해 근육통으로 지끈 거리는 팔을 뒤로 숨기던 참이었는데, 이젠 이마저도 찌릿할 지경이었다.
...뜨겁게 지져야겠네. 침대에서 온찜질을 할 생각을 하며 여주는 공원을 빠져나갔다.
* * *
정국은 집에 도착하자마자 옷을 갈아입고 핸드폰을 켰다. 만나자, 술 마시자, 연락 왜 안 보냐 등등의 카톡들은 무시하고 대식의 이름을 찾아 카톡방을 들어갔다.
야 대식아
여주 어떤 애야?
김대식
여주?
나보다 니가 더 잘 알지 않냐
아니 윤여주 말고 고여주
김대식
아
여주...
착하지
그게 끝?
김대식
무슨 답을 원하는데 ;;
갑자기 그건 왜 물어봐
여주한테 관심 있어?
애가 다른 애들이랑 어울리는 걸 못 봤는데
술자리에서도 그렇고 학식 먹을 때도 그렇고
김대식
미친
밥도 같이 먹었냐?
설마
애들한테 따 당하나?
김대식
지랄
여주가 따 당하는 성격 같아 보이냐
어
김대식
...
그래... 넌 이제 봤으니까 그럴 수도 있겠다
뭐가
김대식
여주 별명이 뭔지 알아?
아니 모르겠구나
김대식
독종이야 독종
맞으면 맞다 틀리면 틀리다 자기 의견 확실하고
선배가 자기 가치관에 어긋나는 행동하면
칼같이 자르는 애야
...그래 말하는 거 보니까 그래 보이긴 하더라
김대식
예전에 한 번 태권도부 애들
자기네 여자애들이랑 유도부 여자애들이랑
비교해서 깐 적 있는데
거기에 가슴이 어쩌느니, 엉덩이가 어쩌느니
그런 얘기들도 있었나 봐
자세한 걸 잘 몰라 나도 나중에 상황 알았어서
김대식
그 얘기가 유도부까지 전해졌는데
유도부 2학년 남자애들이 거기다 대고
태권도부 여자애들이 너희보다 몸매 좋은 건 맞잖아
ㅇㅈㄹ 한 거지
ㅅㅂ 그 새끼들 누구야?
유도부에 그딴 새끼들이 있었어?
김대식
뭐래 그렇게 멀리 있지도 않아 병신아
지금 3학년 남자애들 중에도 있고
군대 간 애들도 있어
김대식
아무튼 같은 편이라고 생각했던 애들한테
그딴 얘기까지 들은 마당에
참을 수가 없으니까 여주가 총대 매고 나섰어
근데 갓 스무살짜리 애가 뭘 어떻게 하겠니
김대식
태권도부 찾아가서 비교질 한 새끼 누구냐 따지고
대화가 안 되니까 싸움 붙고
김대식
어찌어찌해서 말리긴 했는데
태권도부 애들이 유도부 2학년 애들한테
선빵은 여주가 먼저 쳤다고
유도부에서는 위계질서를 그따위로 가르치냐고
그러면서 시비를 걸었나 봐
유도부 2학년 애들도 갑자기 지들이 까이니까
짜증나서 여주한테 도로 돌려주고
김대식
뭐 이미 2학년 애들이 태권도부 옹호할 때부터
의리가 박살나긴 했는데
그때 이후로 더 심해졌지
2학년...
그러니까 현재 3학년이랑 친한 2학년 남자애들은
거의 여주 싫어할 걸
걔네 사이에 있으면 분위기 존나 싸늘하다니까?
넌 거기서 가만히 있고 뭐 했냐 등신아
김대식
야 나도 군대 다녀온 후라
적응하고 뭐하고 정신 없었어
유도부 애들이 누구인지도 몰랐는데
내가 뭐라고 다 챙기냐
그럼 여주는 그때 그...
여자애들이랑만 다녀?
김대식
어어 딱 걔네끼리만 다니더라
뭐 애초에 2학년에 여자가 걔네 뿐이기도 하고...
김대식
솔직히 난 여주 안쓰럽더라
무뚝뚝하기만 할 줄 알았는데
단둘이 얘기할 때는 또 되게 애가 어른스럽고 그래
친한 애들이랑 있을 때는
잘 울기도 하고 잘 웃기도 하고
김대식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애가 말술이야
너보다 잘 마시는 사람 처음 봤다니까?
여태 취한 걸 본 사람이 없어
ㅋㅋㅋㅋㅋㅋㅋ 뭐래
김대식
진짜야 ;; 너도 상대가 안 된다고
뭐 그건 됐고
그래서
그때 그 입 턴 태권도부 새끼가 누구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