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 남친과 동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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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빅, 삐비빅-. 시끄럽게 울려대는 알림에 미간을 구겼다. 어제 마음 편히 못 잔 탓일까, 아님 생각할 문제가 여러가지 많았던 탓일까 꽤 오랜 시간 잠이 든 나였다. 퉁퉁 부은 눈을 겨우 떠 차가운 물로 세수를 한 번 하고서 편한 추리닝을 세트로 맞춰입은 채 폰만 챙겨 밖으로 나갔다.
“사장님, 저 왔어요-.”
“어유, 아가씨 왔어? 같이 오던 아가씨는 왜 안 오고!”
“곧 올 거예요. 늘 먹던 대로 맥주 둘에 소주 하나, 따끈한 국물도 하나 부탁드려요!”
사장님은 나를 보자마자 환한 미소로 반겨주셨다. 나는 자리를 잡고 앉으며 강주아와 자주 먹고 마시던 걸로 주문했고, 사장님은 알겠다며 술을 먼저 가져다주셨다.
“국물도 맛있게 해줄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네-, 감사합니다! 내가 이 포차를 자주 오는 이유 중의 하나였다. 술맛도 음식 맛도 분위기도 모든 게 좋았지만 가장 좋은 건 역시 사장님의 온화함이었다. 왠지 모르게 마음 한 켠이 따스해지는 느낌? 강주아가 생각보다 늦어 먼저 술병을 땄다. 치익- 하는 기분 좋은 소리가 저절로 미소짓게 만들었다.
맥주를 컵 한 가득 따라 그대로 꿀꺽 원샷했다. 맥주의 시원함과 톡 쏘는 탄산이 답답했던 속을 조금이나마 편하게 만들었다. 크으-, 이제야 좀 살겠네. 텅빈 맥주잔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자 포차 안으로 들어오는 강주아가 보였다.
“치사하게 먼저 마시고 있냐?”
“지가 늦었으면서.”
강주아는 겉옷을 벗고 가방을 내려두며 내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꼴에 나한테 미안하긴 했는지 더이상 군소리 없이 비어있는 내 잔에 맥주를 한 가득 채워주는 강주아였다. 나는 강주아가 채워준 잔이 무색하게 곧장 입에 털었다. 그런 나를 놀라운 듯 쳐다본 강주아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또 내 잔을 맥주로 가득 채웠다.
“왜, 무슨 일인데 그래.”
“……”
“설마 김태형 그 자식 때문이냐?”
어느새 우리 테이블 중앙에 자리한 오뎅탕이 부글부글 끓으며 모락모락 김을 내뿜고 있었다. 강주아는 이 모든 걸 일으킨 장본인이니 해결책 또한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강주아의 입에서 김태형의 이름이 나오자 나는 또 다시 맥주잔을 입에 대었다. 다 알면서 모르는 척 묻지 마라.
“나 지금 이대로 대가리 박으면 되는 거지?”
“대가리만 박아서 될 일일까?”
“오키, 무릎도 꿇을게.”
“오늘 술값이나 계산해. 나 지갑 안 들고 나왔어.”
“많이 나오면 네 출연료 깔 거다.”
강주아와 나 사이에 왔다갔다 거리는 장난스런 말들이 김태형에 대한 고민을 말하기 전, 한껏 편해진 듯 했다. 야, 넌 왜 나랑 김태형을 다시 만나게 한 거냐?
“음… 재밌을 것 같아서?”
“미친놈인가.”
“구라고, 좀 불쌍해서.”
어묵탕 국물을 한 숟갈 떠먹던 내 손길이 멈췄다. 대체 어느 부분이? 내가 수저를 테이블 위에 가만히 놓고 쳐다보니, 자신의 앞에 말아놓은 소맥을 한 모금 마신 뒤 입을 여는 강주아다.
“서로 아직 좋아하는 게, 미련이 뚝뚝 흐르는 게 눈에 다 보이는데 죄책감 하나로 아무것도 못하고 있잖아.”
“… 방송국 들어가더니 눈치가 빨라졌다?”
“내 눈치가 빨라진 게 아니라 너네가 그 정도로 티를 낸 거야.”
생각해보니 강주아는 학교 다닐 때도 눈치 없기로 유명했다. 누군가 자신을 좋아하는 걸 대놓고 티를 내도 눈치를 못 챌 정도였는데 그런 애가 알 정도라니… 이건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었다는 사실과도 같았다. … 그렇게 티가 많이 났어?
“그래서 만들어준 거야, 필요도 없는 프로그램까지 만들어가면서. 제발 그 죄책감 좀 버리고 다시 만나라고.”
“……”
“이 프로그램에 카메라도, 인원도 최소화로 쓴 게 바로 그 이유야. 이제 좀 알겠냐?”
강주아가 만들어낸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진실을 알아버렸다. 애초에 이 프로그램은 방영을 목적으로 한 게 아니라 나와 김태형을 다시 이어주려고 하는 거였고, 나와 김태형의 선택으로 촬영이 계속될지 말지 결정되는 거였다. 강주아는 내 생각보다 훨씬 미친년이라는 걸 오늘 한 번 더 깨닫는다.
강주아까지 나와 김태형을 다시 이어주기 위해 이렇게 힘을 쓰는데 아직도 망설이는 이유는 대체 뭘까? 김태형은 나를 포기하지 않는다고 했다. 다시는 내가 뒤로 밀려나지 않게 하겠다고 굳은 의지를 보였다. 나만 마음을 열면 모든 게 술술 풀려나갈 일인데 왜…

“김여주, 뭘 망설이는 건데. 걔가 너 싫다는 것도 아니고, 네 마음이 변한 것도 아니고. 문제될 거 하나 없잖아.”
“알아, 아는데… 너무 무서워.”
“뭐가?”
“그때처럼 또 현실에 부딪혀서 서로가 뒷전이 되고, 결국 버려지고 버리게 될까 봐.”
내 말을 잠자코 듣고 있던 강주아가 깊은 한숨을 푹 쉬었다. 그리고 답답하다는 듯 소주를 깡으로 몇 모금 들이키더니 쾅- 하고 테이블 위에 소주병을 내려놨다.
“야, 똑똑히 들어. 지금 하는 말은 오로지 네 친구가 아닌 김태형 친구로서도 말하는 거니까.”
“……”
“그때 우리는 사회 초년생이라 사는 것만으로 힘들어서 사랑까지 하기엔 벅찼던 거라고 쳐. 근데 지금은? 우리 이제 초년생 아니잖아. 어느정도 나이도 먹고, 돈도 벌고, 직장 후배도 생기고. 그때보다 훨씬 여유로워진 거 아니야?”
“맞지.”
“상황이 달라졌는데 왜 자꾸 무서워하는 건지 솔직히 난 이해가 안 돼.”
정말 오랜만에 강주아의 진지한 모습을 본 것 같다. 어쩌면 강주아와 김태형, 그리고 나. 이렇게 셋 중에 가장 어리숙하고 바보같은 건 나였을지도. 많은 걸 깨달은 내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자리잡았다.
“김여주, 너네는 서로를 버린 게 아니라 놓아준 거야. 모든 게 힘든데 자기 때문에는 힘들지 말라고. 그러니까 그 죄책감도 이제는 좀 내려놔. 조금이라도 젊을 때 실컷 사랑 좀 하자.”
“… 강주아 주제에 멋있는 척은.”
“멋있는 척 아니고, 원래 멋있었다.”
“지랄.”
나와 강주아가 동시에 눈이 맞아 풉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우리는 한참을 큭큭거리며 웃었고 인정하기 싫지만 강주아 덕에 김태형에 대한 생각도, 정리도 잘 끝났다. 월요일이 밝으면 김태형을 만나 어떻게 해야 될지 이제는 그 답을 찾은 것만 같다.
댓글 한 번씩 부탁드리고, 오늘도 봐주셔서 감사합니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