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에 있던 상처를 자세히 보려던 나를 뿌리치고 도망가듯 밖으로 나간 범규를 굳이 잡지 않았다.
그래 그렇게 나온다 이거지?
교실로 돌아와 자리에 앉자마자 긴장이 풀렸다. 왜 최범규만 보면 이렇게까지 긴장이 되는지 모르겠다.
"하아.."

"왜 한숨 쉬어"
"..어 태현아. 언제부터 있었어?"
"복도에서 계속 불렀는데.. 네가 못 듣길래 따라 들어왔지"
"미안해 내가 정신이 좀 없나봐"

"야 오늘 김여주 아프대 건들지마"
"뭐? 어디 아파? 약이라도 구해다 줄까?"
"아니..."
그냥 다 말 걸지 말아줘..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최대한 버티고 싶었지만 벌떡 일어나 교무실로 향했다.
선생님, 저 조퇴 시켜주세요.. 담임이 나를 쓱 쳐다보더니 당황스러운 눈으로 입을 열었다.
"어.. 그래 어디 많이 아프니? 병원부터 가봐라"
네.. 감사합니다.. 조퇴증을 받고 교실로 향했다. 담임이 보기에도 내 꼴이 너무 거지 같았나? 바로 조퇴 시켜주네. 별 시덥잖은 생각을 하며 걸으니 벌써 교실에 도착했다.
"엥? 뭐야 너 조퇴해?"
"어 뒤질 것 같아"
"에바야... 오늘 연준이 형 네 걱정 존나 하겠네"
수빈이의 중얼거림에 내 가방을 들어주던 태현이가 궁금한 듯 질문을 했다.

"근데 그 형은 여주 좋아하는 거야?"
"..."
"..."
저,어.. 음.. 그게 그러니까. 태현이의 말에 수빈이가 내 눈치를 보며 대답을 얼버무렸다. 그래 남들이 보기엔 연준 오빠가 날 좋아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
"아니. 그 오빠 그냥 죄책감 때문에 그래"
"무슨 죄책감?"
"그냥.."
"..."
"여주야 얘랑 잘 해봐. 범규,내가 진짜 아끼는 애야"
아, 또 옛날 생각 하니까 머리 아프네
지끈거리는 머리를 애써 무시한 채 가방을 맸다.
정문까지 데려다 줄게. 나를 따라나오는 태현이에게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주야 이거 입고 가"
"..어? 이거 네 겉옷 아니야?"
"밖에 추워 잘못 하다가 감기 걸려"
"그럼 너는.."
"난 몸에 열이 많아서 괜찮아"
태현이는 다정했다. 항상 날 챙겨주고 신경 써주고..
근데 이 느낌이 어색해서 좋은건지는 잘 모르겠다.
범규에게 너무 익숙해져서 그런가
생각해보니 범규도 초반에는 이랬었다.
고등학교 들어오고 .. 지금까지는 별로 안 좋은 기억만 가득했다.
"고마워 태현아 잘 입을게"
추운데 얼른 들어가. 태현이에게 손을 흔들어주자 예쁘게 웃으며 나보다 더 크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얘도 참 대단해.. 근데 마음을 주고 싶지는 않아.
옛날이랑 너무 똑같은 상황이야.
***
지잉- 지잉-
..으, 뭐야.. 한참 잘 자고 있었는데 아까부터 자꾸 울리는 진동 소리에 잠이 깨버렸다. 아 어떤 새끼야..
"여보ㅅ.."
["큰일났어! 지금 연준이 형 싸움났어"]
"..뭐? 누구랑"
["걔, 걔 있잖아 박태정!"]
시간을 확인해보니 학교는 아닐 것 같았다. 조금은 가벼워진 몸을 일으켜 아까 태현이가 준 겉옷을 챙겨 입고 급하게 밖을 나갔다.
"아오 미친.. 그래서 지금 어디야"
["여기 지금 ㅇㅇ공원.. 야 어떡해 빨리와 너밖에 못 말려 시발"]
"기다려"
왜 자꾸 사고 치는거야 최연준 뒤질라고
수빈이가 말한 장소는 집에서 꽤나 가까운 곳이였다.
박태정..안 좋은 의미로 우리 학교에서 제일 유명하다. 자기 마음에 안 들면 무조건 주먹부터 날리는 애
그런 애가 연준 오빠랑 싸우고 있다니 많이 걱정됐다
하아.. 이 쯤 어디일텐데?

"일어나. 안 일어나?"
아으윽..., 소리가 들리는 곳을 보니 바닥에 쓰러져 있는 박태정과 그 옆에 안절부절 못 하는 김예림
그 옆에서 죄인처럼 고개만 숙이고 있는 최범규
그리고 뒤에서 불안한지 손톱만 물어 뜯는 최수빈이 보였다. ..무슨 상황인지 전혀 모르겠는데?
"오빠!!!"
일단 사람 한 명 죽일 것 같이 패고있는 연준오빠부터 말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빠를 크게 부르며 성큼성큼 걸어가니 연준오빠가 하던 짓을 멈추었다.
"뭐 하는 거야 지금.. 오빠 진짜"
"...여주야 나 지금 저 새끼-"
"하지마"
쟤 무시 하기로 했잖아. 밖에서 이게 뭐 하는 짓이야
연준오빠가 내 말에 잠시 할 말을 잃더니 머리가 아픈지 이마를 붙잡으며 말 했다.
"너.. 쟤가 이제까지 무슨 짓 했는지 알아?"

"형, 말 하지마"
..이건 또 무슨 상황이래. 뭐냐고 물어볼 참에 옆에 있던 범규가 연준오빠를 붙잡고 말렸다. 둘이 사이 안 좋지 않았나?
"..범규야 이제 이쪽으로 와야지"
김예림이 쓰러져있는 박태정을 잠시 부축 하는가 싶더니 곧 벌떡 일어나 범규한테 지한테 오란다. 뭐 자기 남자친구니까 챙기는 건가? 그럴 수도 있ㅈ..

"정신 못 차렸지 김예림"
연준오빠가 범규의 팔을 붙잡고 못 가게 막았다.
도대체 이게 뭔..지금 나만 머리가 안 돌아가는건가?
"선배, 박태정 이만큼 때렸으면 충분하잖아요"
"너도 저만큼 맞아볼래?"
"하, 진짜!..."
"네가 제일 괘씸해 미친년아. 한번만 더 최범규한테 허튼 짓 해봐 그때는 너도 쟤처럼 되는거야"
"..."
연준오빠가 멍 때리는 나를 붙잡고 집에 가자며 공원 밖으로 이끌었다. 뒤를 슬쩍 보니 김예림이 울고불며 욕짓거리를 하는게 보였다.
"이제 무슨 상황이였는지 말해줘"
내 말에 잠시 침묵하던 연준오빠가 범규를 툭 쳤다.
네가 말해야지 범규야. 범규가 그제서야 내 눈치를 보며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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