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아이돌

06: 결국은

점심시간 종이 치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 바로 급식실로 향하는 다른 학생들과 달리 우석은 쥐고 있던 샤프를 놓지 않았다. 우석네 반을 지나가던 담임선생님은 그런 우석을 보고 혀를 찼다.


“또 속이 안 좋은건가...”


결론부터 말하면 절대 아니다. 우석은 일부로 점심을 늦게 먹고 있었다. 방송일 때문에 늦게 먹을 수밖에 없는 승연과 같이 먹겠다는 핑계와 더불어서 속이 좋지 않았다는 핑계로. 왜 우석이 점심을 늦게 먹곤 하는지 승연은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


[나 오늘은 점심시간 되기도 전에 밥 먹어. 그러니까 나 기다리지 마.]


점심시간 직전에 승연한테서 온 톡을 본 우석은 말없이 폰을 바라보다가 내려놓았다. 승연이랑 같이 먹는 게 우석이 점심을 늦게 먹는 이유는 아니었으니 별 상관없었다. 우석이 점심을 늦게 먹으려고 하는 건 한결 때문이었으니까.


“형은 이 시간에 밥 먹어?”

“어. 아침에 먹은 게 오전 수업 내내 속 안 좋게 해서 이 때 먹어야 해.”

“아 그렇구나.”


몇 번 만나자마자 친해진 요한이 우석을 발견하고는 옆에 앉았다. 요한의 말에 대답을 바로 해주기는 하지만 우석의 시선은 딱 두 곳만을 향했다. 자기 식판, 그리고 저 건너에 있는 이한결.


“형 진짜 한결이 팬이긴 하구나.”


자꾸 우석의 시선이 닿는 곳을 바라본 요한이 신기하다는 듯이 말했다. 조금은 놀리는 말투였지만 우석은 그런 요한의 반응을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한결의 팬인 건 사실이었으니까.


3일에 한 번 꼴로 한결을 보다보니 눈을 감아도 한결의 실물을 그려낼 수 있었다. 우석이 느끼기에 실제로 보는 한결은 확실히 티비 속에서나 무대 위에서의 모습과 달랐다. 단지 훨씬 더 잘생겼다는 얘기가 아니다. 뭔가 풍기는 느낌이 달랐달까. 학교 축제 때 봤던 한결은 정말 아이돌 그 자체였다. 범접할 수 없고 한 번이라도 직접 보면 소원이 없을 것 같은 연예인 이한결. 근데 급식실이나 학교 안에서 보게 되는 한결은 그렇지 않았다. 그냥 평범한 남자 고등학생이었다. 여러 친구들과 두루두루 친하게 지내는 사교성 좋은 까불거리고 풋풋한 고등학생 이한결.


그래서 우석은 한결 앞에서 자신이 팬이라는 것을 티낼 수 없었다. 고등학생 이한결에서 연예인 이한결을 일상 속에서 억지로 끄집어내는 것이 아닐까 싶어서. 힘든 연예인 생활은 연예계에서나 하고 학교에서는 그냥 평범한 일상을 지냈으면 해서. 만일 나중에 한결이 정말 유명해진다면 지금의 사소한 일상들이 사실상 사라질테니까.


“근데 한결이 언제쯤 학교 안 나와?”

“응? 좀 예상치 못한 질문이다, 형. 한결이 볼 수 있는 거 좋지 않아?”


친구들과 함께 밥을 먹고 있는 한결을 보며 하는 우석의 말에 요한이 놀라며 물었다. 여전히 시선은 한결에게 두면서 우석이 입을 열었다.


“좋지.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을 학교에서 자꾸 보는 거, 대체 얼마나 많은 팬들이 그럴 수 있겠어. 근데 난 쟤 무대 위에 있는 모습도 좋아. 솔직히 팬이 된 건 쟤의 무대 위 모습 때문인 걸. 컴백 준비 언제하는 건가 싶어. 그룹 자체가 요즘 활동을 잘 안한단 말이야.”

“하긴 컴백 준비하느라 바쁘면 학교 잘 안 나오겠지.”

“그리고 저렇게 급식도 잘 먹지는 못할 걸. 다이어트를 할 때 급식은 정말 아니야. 급식 한 끼가 1000kcal 가까이 되는데... 아, 다이어트 얘기하다보니까 갑자기 입맛 떨어졌어.”

“그냥 급식이 맛없는 것 같아. 코다리강정을 줄거면 잘 좀 만들어주지. 매점이나 가야겠다. 형도 같이 갈래?”

“아니, 난 먼저 올라갈게.”


대화를 끝내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난 요한과 달리 우석은 천천히 식판 위 음식을 한 곳에 모으면서 자리를 비웠다. 급식실에서 완전히 나가기 전까지 괜히 한결을 쳐다보다가 한결이 고개를 돌리자 시선을 돌리는 우석이었다.


-


“괜히 급식실에서 거의 맨날 본 게 아니었네...”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우석은 공지를 몇 번이나 다시 읽었다.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까지는 아니었다. 그냥 믿고 싶지 않았다. 수험생 생활이 끝나면 팬싸나 음방을 가고 대학 축제 무대에서 볼 수 있을 거라는 상상이 정말 상상일 뿐이었다고 단언하는 공지였다. 평생 그 상상은 현실이 될 수 없을 거라고.


공지에 나와있는 이유는 발목 부상이었다. 일상생활을 할 때는 몰라도 안무를 할 때마다 발목 부상의 후유증으로 계속 아픔을 호소했다고, 팀에서 나와 치료와 회복에 전념하기로 했다고. 팬들을 위한 배려였는지 ‘탈퇴’라는 단어는 쓰지 않았다. 그래서 팬카페 내 팬들은 한결이도 영원히 **의 멤버라고, 언젠가 다시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몇 개의 글들을 보던 우석은 한숨을 푹 쉬며 중얼거렸다.


“진짜 발목 때문만일까... 당장이라도 활동 그만둬야 할 것 같은 몸상태여도 계속 활동하는 아이돌도 있던데.”


아무튼 탈퇴를 한 진짜 이유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이제 사실상 무대 위의, 티비 속의, 아이돌 이한결을 볼 일이 없다는 것이 우석에게는 가장 중요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팬이 그러듯 우석이 이한결을 잊게 될 수 있다는 사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