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현과 박우진. 그들은 연습생 시절부터 서로를 못 죽여서 안달난 사이였다. 왜냐고? 월말평가를 하면 춤으로는 김동현이 박우진을 이길 수 없었고 보컬로는 박우진이 김동현을 이길 수 없었으니까. 항상 그 둘은 1, 2위를 두고 싸웠다. 이번에는 내가 너를 비참히 짓밟아주겠어. 이런 마인드로 평가 결과를 기다리다 결과가 나오면 서로 자신이 잘할 건 내가 이겼겠지 하고 안 보고 질 거만 보고 또 으르렁거리며 싸우는 일이 허다했다. 같이 연습하는 애들은 둘이 사이가 그렇게 안 좋은 걸 알았다. 매일 서로가 하는 거 보고 비웃고, 시비 터는 게 그들의 일상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었으니까. 그런데 소속사는 몰랐다. 그냥...서로 선의의 경쟁을 하며 더 발전할 수 있는 좋은 사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래서 같이 데뷔를 시키자고 결심했으니까.
그들은 꽤나 잘나가는 아이돌이 되었다. 그러니까 서로 친한 척하면서. 팬들은 동현이와 우진이 케미를 되게 좋아했다. 서로 툭툭 던지는 디스가 매우 현실적이고 재밌다고. 그게 진짜 서로를 깎아 내리려고 하는 거라고 누가 감히 상상이나 했을까? 그들은 항상 밝게 웃으며 서로에게 욕을 하는데. 그냥 현실 형제 같은 느낌으로, 서로에게 악의는 없지만 뭔가 본능적으로 서로를 욕하는 그런 거라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날은 한국에서 안 보는 사람 찾기가 엄청 힘들다는 그런 큰 예능 프로그램에 그들이 초대되어 나가게 되던 날이었다. 팀 내 분위기 메이커였던 동현은 텐션을 최고치로 높에 방송하자고 신나는 노래를 틀고 멤버들과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동현이보다 독립적이고 매사에 조용하고 진지한 성향을 가지고 있던 우진은 방송도 진지하게 해야 되는 거 아니냐고 시끄럽다며 혀를 찼다.
“야, 너 때문에 방송 망치면 책임질 수 있냐? 그런 거 아니면 닥치고 너도 하지? 그 재미없는 성격으로 나랑 사이 안 좋다고 전 국민한테 보여주고 싶은 게 아니라면 말이야.”
“허, 야. 그러는 너야말로 방송 망치고 싶은 게 아니면 좀 닥치지? 너 맨날 방송 장난하듯이 하잖아. 난 너 그러는 거 초짜가 괜히 나대는 거로만 보이는데?”
“이게 형한테 진짜!!!”
그때 매니저가 들어와서 간신히 그들이 싸우는 것을 막았다. 하지만 여전히 그들은 서로를 노려보며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곧 촬영 시작하니까 흥분 적당히 가라앉으면 나와.”
“네.”
우진은 한숨을 푹 쉬고는 큰 두 손으로 자산의 얼굴을 감싸 마른 세수를 했다. 그는 5분 동안 그러고 있더니 벌떡 일어나서 동현보다 빨리 나가려고 했다. 동현은 그를 따라 빠르게 일어나더니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그를 뒤로 돌렸다.
“뭐 하는 거야?”
“너 오늘 잘해. 나도 참아주는 건 한계가 있어.”
동현은 그렇게 말하고는 일부러 우진의 아깨를 퍽- 하고 치고 촬영장으로 향했다. 우진은 그의 뒤통수에 대고 욕을 퍼부을 생각을 잠시 했지만 이러다가는 평생 흥분을 가라앉히기 힘들겠다 싶어 꾹 참았다. 저 쓰레기가 나보다 인기가 많다니. 우진은 주먹을 꼭 쥐고는 한참을 신나게 걸어가는 그를 바라보았다.
예능은 모두의 예상과는 달리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웅과 대휘가 멘트를 할 때 몰래 서로를 노려보고 있는 것만 빼고. 대놓고 싸우는 일은 없었다. 서로에게 괜히 시비를 거는 일도 없었다. 그러다가는 둘의 사이가 안 좋다는 것이 전국으로, 아니 전 세계로 퍼져나가는 것을 어느정도 막기 위함이었다.
그들은 퀴즈를 푸는 시간에 결국 터져버렸다. 둘은 같은 팀이 되어 문제를 푸는데 의견 충돌이 너무 심했다. 예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투닥거림이 아닌 진심으로 서로가 너무 답답하고 짜증이 난다는 느낌으로. 결국 퀴즈의 정답은 동현이 말했던 게 맞았다. 방송에서는 ‘형제즈 또 투닥투닥...’이라는 자막과 함께 싸우는 장면이 나갔다. 이를 본 대부분의 시청자들은 그냥 싸우는데 무슨 투닥투닥이냐는 반응이었다. 그들의 소속사에서는 그 장면 관련 영상은 빠르게 지웠고 재방송에서는 그 장면이 등장하지 않았다. 그러자 네티즌들은 그들이 그 전에 투닥거리던 장면들을 올리며 원래도 그랬다며 불화설을 제기했다.
“너희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뭐, 예능에서 싸워? 너희 도대체 생각이라는 게 있기는 해?”
그들은 서로를 노려보다가 고개를 푹 숙이고 죄송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논란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소속사에서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해 했다. 지금 이 상황에서 필요한 게 뭘까? 논란을 잠재울 큰 게 없을까? 사과문? 그건 일을 더 키우는 것에 도움을 줄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핑곗거리? 이건 무엇이냐에 따라 다를 것이다. 논란을 잘 포장시킬 거. 그냥 그 방송 촬영 전에 음식 같이 간단한 거 가지고 싸웠다가 감정의 골이 깊어졌다라든가, 뭐 그런 거.
“내일까지 시간 줄 테니까 둘이 어떻게 할지 상의해서 나한테 전달해. 알겠지?”
그들은 말 없이 고개만 끄덕이고 방을 나왔다. 서로가 서로를 탓했다. 너만 아니었으면 이런 일이 생기지도 않았어. 너 같은 새끼랑 왜 같이 데뷔를 해서 일이 이렇게 꼬이냐고. 팩트를 체크해 보자면, 둘 다 잘한 거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둘 다 방송 전에 시비 털다가 싸운 것도 맞았고 방송 중에도 서로 언성을 높여가며 싸운 것도 맞았다. 그동안 불화설이 안 터졌다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야, 박우진.”
우진은 동현을 가볍게 무시했다. 우진은 어차피 얘는 뭐 해결책을 마련했을 거 같진 않았고 지금 상황에서 얘랑 괜히 말을 섞었다가는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뒤로도 대여섯 번 동현이 우진을 불렀지만 우진은 모두 무시했다.
“야! 너 나 무시하냐?”
우진은 어이없다는 듯이 헛웃음을 짓고는 뒤를 돌아봤다.
“좀 닥쳐. 안 그래도 짜증나 죽겠으니까.”
그러고는 다시 뒤돌아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동현은 짜증이 가득 섞인 목소리로 본인의 신경을 건드린 우진에게 욕을 해주었다. 평소랑 똑같이. 우진은 자리에 그대로 서서 주먹을 꽉 쥐고 흐느꼈다. 원망스러움과 억울함이 동시에 터져나왔다. 동현은 어떻게 하지, 잠시 머뭇거렸다.
“야, 리더. 니가 책임져.”
우진은 잠시 멈칫했고 두 손으로 눈을 쓱쓱 비비고 뒤를 돌아보았다.
“뭐? 너 지금 나 탈퇴하라고 그러는 거야?”
“그게 왜 그렇게 되냐. 우리가 사귀는 척해야 한다는 거지. 너만 책임감 가지고 하겠다고 하면 당장 가서 말씀드릴게.”
“내가 왜 그래야 하지? 너 따위랑 왜 사귀는 척해야 되는데? 방법이 그거 하나뿐인 건 아니잖아!”
“그거 밖에 없어. 들어 봐, 우린 싸웠어. 그것도 유명 예능 프로그램에서. 사과문을 올리는 건 너도 알겠지만 우리의 불화설을 인정하는 수단일 뿐이지. 그 전에 작은 일로 조금 싸우다 감정의 골이 깊러졌다는 핑계? 초딩들 변명으로만 들리겠지. 우리가 사귄다는 배경이 있잖아? 그러면 사랑싸움인 거야, 사람들은 오히려 귀엽다고 더 좋아할걸?”
우진은 아무런 말 없이 듣다가 동현을 바라보았다. 한동안 침묵이 이어지더니 동현이 답답한 듯이 빨리 대답하라고 소리치려고 했다.
“딱 한 번만 너 믿어본다. 실패하면 니 내 손에 죽는다.”
“오케이. 대표님께 말씀드릴게.”
“동현 씨랑 우진 씨 사귄다는 게 사실이에요?”
“네, 세 달 조금 넘었어요.”
그니까 그들은 사귀는 거라고, 사랑싸움이나 하다가 예능에서 터진 거라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물어보면 답할 설정을 조금 잡아놨다.
1. 그들은 21년 10월 7일에 사귀기 시작했다. 기념일 같은 건 그냥 지나가는 말이라도 물어볼 간단한 질문이다. 10월 7일, 그들의 세 번째 미니 앨범 활동 당시였다. 그들의 페어 안무가 돋보였던 그때. 그 활동으로 첫 1위를 하던 날이었다.
2. 그들은 대기실에서 선풍기 때문에 싸웠다. 이게 뭔 개똥같은 소린가 싶겠지만 우진이 대휘한테 선풍기 바람을 쐬주니까 질투한 동현이가 그거 갖고 화를 내다가 싸움으로 번진 뭐 대충 그런 거다. 우진은 너무 유치하다고 다른 거로 하자고 했지만 결국에는 이거로 하기로 했다.
3. 고백은 우진이 했다. 이건 가위바위보로 정한 건데 3판 모두 우진이 지게 되면서 어쩔 수 없이 정해진 거라고나 해야 할까.
이걸 정하자는 의견은 동현이 냈다. 괜히 다르게 말했다가는 거짓말한 게 들통날 게 뻔했기 때문에. 우진은 계속 의심했다. 이걸 하면 진짜 우리 불화설이 묻히는 거 맞아? 그들은 아이돌이고 대중에게 받는 사랑은 그들의 밥줄이었기 때문에 돌다리도 한 번 두드려보고 건넌다는 심경이었다.
그날은 사람들에게 ‘저희 사귑니다! 진짜 사귄다고요!!!’를 광고하고 다니기 위해 대놓고 마스크나 모자같은 것도 쓰지 않고 낮에 사람들이 북적이는 시내를 그들이 손을 꽉 붙잡고 돌아다녔다. 그들은 드라마에도 출연하면서 연기 실력을 쌓아왔기에 실전이다는 생각으로 미친 연기를 보여주고 있었다. 대충 보기에는 진짜로 둘이 사귀는 거라고 생각하게끔.
“야, 우리 계속 이러고 있을 거야...? 나 창피한데...”
“씁, 아니지. 우리 커플링도 맞추고 인생 네 컷도 찍어야 돼. 어디부터 갈래?”
“진짜 미쳤나 봐...”
“빨리 정하세요, 공주님.”
우진은 끔찍하다는 표정으로 동현을 노려봤지만 동현은 귓속말로 ‘사람들 보잖아, 병신아.’라고 말했다. 우진은 긴장한 듯이 침을 삼키고는 동현의 손을 더 세게 잡고 근처 상가 화장실로 들어갔다. 우진은 동현과 같은 칸에 들어가서 그를 벽 쪽으로 밀고는 제정신이냐고 소리쳤다. 동현은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큭큭 거리며 웃었다. 그는 우진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ㄴ, 너 진짜 미쳤어? 왜 이렇게 가까이 와!”
“넌...전 세계 사람들을 상대로 사기를 친다는 게 쉬운 줄 아냐? 이 정도도 감당 못하면서 방송에서는 나랑 사이 안 좋다고 아주 쇼를 하던데? 나도 잘못이 있겠지만 먼저 짜증을 낸 건 너였어. 리더면 리더답게 더 책임감 있는 모습 보여주라고.”
“니가...니가...나한테...!”
동현은 우진의 말을 듣지도 않고 화장실 칸 문을 열고 우진의 어깨를 치고 나갔다. 우진은 다시 칸 문을 닫고는 주저앉았다. 니가 나한테 그런 말을 할 자격이나 돼? 아까 하지 못한 말을 속으로 중얼거렸다. 밖에서 물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보아 동현이 손을 씻거나 세수를 하는 것 같았다. 저 자식은 사람을 괴롭게 하는 게 무척이나 즐겁나 보다. 누가 힘들든 말든 그냥 그게 좋은가 보다. 우진은 주먹으로 가슴을 쾅쾅 두드렸다. 내가 왜, 어쩌다가 저딴 개자식이랑 잘못 엮여서...우진은 모든 게 본인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그냥 연습생 때 퇴사하고 다른 기획사 알아보지. 그냥 가수라는 꿈은 포기하고 취업 준비나 하지. 과거의 그 동현을 보컬로 이기겠다고 발악하던 자신이 너무 한심하게만 느껴졌다.
그 일이 있고 며칠이나 지났을까. 우진은 매일매일 본인의 방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밥도 제대로 안 먹었고 동현의 얼굴에 대고 욕도 퍼붇지 않았다. 동현은 그런 그를 직접 챙겨주지는 않았고 SNS에 대충 걱정되니까 밥 좀 챙겨먹으라는 식으로 올렸다. 물론 가식이 100퍼센트 섞여있었지만. 우진은 그걸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지만 무시했다. 괜히 나섰다가는 논란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갈 것이 뻔했기도 했고 그를 상대할 힘도 없었다.
“우진이 형! 형 안에 있어요?”
“...대휘?”
“형, 뭐라도 좀 먹으라고 이거 사왔어요. 이러다가 형 쓰러지는데 왜 안 먹고 그래요. 초콜렛은 당 땡길까 봐 넣었어요.”
“고마워.”
몇 분 동안 정적이 흘렀다. 대휘는 우진이 죽을 먹는 것을 조용히 바라만 보았다. 우진은 슬쩍슬쩍 대휘 눈치를 살폈다. 대휘는 살짝 고민하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 대휘야.”
먼저 그 긴 정적을 깬 건 우진이었다.
“이거 너한테는 말해야 될 거 같아서...나 진짜 김동현 싫었는데 나도 진짜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는데 나 김동현 좋아하나 봐. 걔만 보면 막 심장이 뛴다? 나 무슨 정신병이라도 걸린 게 분명해. 그 재수없는 새끼를 좋아한다는 게 말이 안 되잖아?”
“우진이 형.”
“나 걔 얼굴 보고 살아야 된다는 게 너무 싫어. 확 탈퇴나 해버릴까?”
“형 진짜 미쳤어요? 형이 왜요? 할 거면 김동현이나 하라고 해요! 저 형 탈퇴하면 저도 탈퇴해버릴 거예요!”
푸흐- 우진의 입에서는 대휘가 귀엽다는 듯이 웃음이 새어 나왔다. 대휘는 왜 웃은 거냐며 투덜거렸지만 그럴수록 우진은 더 큰 소리로 웃어댔다. 대휘가 툴툴거리는 게 너무 귀여운 것운 사실이었다. 애초에 생긴 것도 귀엽고 말투도 귀엽고 동생인지라 안 귀여워할 수 없었다.
한참이 지나고 대휘는 우진을 강제로 눕히고는 잘 자라고 말하고 나왔다. 밥을 먹고 대휘랑 수다를 떠느라 시간이 지나서인지 머리를 대자마자 잠에 들었다. 몇 시간 뒤에 우진은 눈을 떴고 그 옆에는 동현이 앉아서 우진의 이마를 자신의 손으로 만지고 있었다. 우진은 서둘러 그의 손을 쳐냈고 벌떡 일어서 앉았다. 동현은 어이가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우진을 바라보았다.
“야, 누가 보면 내가 너한테 이상한 짓이라도 하는 줄 알겠다?”
“그게 아니면 뭔데? 왜 함부로 남의 방에 들어와서 이러고 있는데?”
“너 진짜...! 에휴, 됐다. 내가 너랑 뭔 말을 하냐.”
한 4분 동안 정적이 흘렀다. 서로를 노려보면서. 그러다가 동현이 시선을 피했고 자신의 뒤에서 뭔가를 꺼내들었다. 우진은 인상을 쓰며 그것을 바라 보았다. 초콜렛? 갑자기? 우진은 당황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동현은 우진에게 그것을 내밀고는 자신의 뒷머리를 벅벅 긁어댔다.
“...독이라도 탔냐?”
“선물을 준 사람한테 그딴 걸 예의라고 생각하고 말한 건 아니겠지?”
“이걸 왜 주는데.”
“오늘 발렌타인데이잖아. 사랑하는 사람한테 초콜렛 주는 날. 그래서 주는 거야.”
“너 뭐 쇼를 숙소에서까지 하냐? 나 단 거 안 좋아하고 초콜렛이라면 대휘한테 많이 받았어. 너나 처먹어.”
“너 대휘한테도 이딴 식으로 말했냐?”
우진은 당황한 듯이 눈을 크게 뜨고 동현을 보았다. 잠시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대휘는 날 걱정해서 초콜렛을 준 거란 말이야, 너처럼 가식을 떠는 게 아니라. 우진은 작게 중얼거렸지만 동현의 귀까지 그 소리가 들어가지는 않았다. 동현은 길게 한숨을 쉬고 우진의 어깨를 잡고는 자신의 얼굴을 들이댔다. 뭐 하는 거야. 우진은 분명히 짜증이 났지만 그 팔을 쳐내지는 않았다. 동현은 진짜로 연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에게 예쁘게 웃어줬다.
“난 너 진짜 싫어. 난 너 이길 수도 없고 대놓고 미워할 수도 없어서. 그래서 니가 아픈 것도 싫어. 괜히 쇼하는 것 같기도 하고 내가 너 챙겨줘야 되잖아. 아니, 그냥 난 니가 하는 모든 게 싫어. 근데...좋아.”
“뭔 개소리야. 낮부터 술 처마셨냐?”
“푸흐- 아니, 나 너 싫어하는데 좋아한다고.”
우진은 진심으로 동현이 낮술을 했다고 확신했다. 싫어하는데 좋아할 수가 있나? 우진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동현의 말에 술 마시고 얘기를 안 해봐서 몰랐는데 취하면 더 또라이가 되는구나고 생각했다. 좋아하면 좋아하는 거고, 싫어하면 싫어하는 거니까. 내가 왜 저 바보같은 놈을 좋아하는 거지? 우진은 이해가 안 됐다. 그의 원래 이상형은 똑똑하고 잘생기고 착한 사람이었으니까. 물론 동현은 잘생긴 거 맞다. 근데 우진이 느끼기에 그는 전혀 똑똑하지도 않고 착한 사람도 아니었다.
“야, 박우진. 너 내가 미쳤다고 생각하는 거야?”
“당연한 거 아니야? 씁, 술냄새는 안 나는데...그냥 원래 제정신이 아닐 확률이 매우 높아.”
“바보야, 진짜. 에휴, 말을 말자.”
누가 누구한테 바보라고 하는 거야. 우진은 이해할 수 없다는 식으로 미간을 구겼다. 그러자 동현이 본인의 손으로 그의 미간을 폈다. 그는 바로 뭐 하는 짓이냐고 소리치려고 했으나 동현이 먼저 본인의 품 속으로 그를 끌어당겼다. 동현은 한 손으로는 그의 등을 토닥여 주면서 한 손으로는 그가 본인의 품 밖으로 못 빠져나가게 막고 있었다. 우진은 잠시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다가 두 팔로 동현을 안았다. 뭔가 그렇게 해야만 할 것 같아서.
“너 내 이상형이 뭔지 알아? 안 궁금하다고 하지 말고.”
“...몰라.”
“난 너야. 너는?”
“또라이 새끼.”
“너도 나라는 거지? 그 또라이 새끼라는 건 나잖아. 그치?”
동현은 진짜로 바보같이 웃었다. 우진은 그를 향해 인상을 썼지만 그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동현 시점
나는 우진을 처음 봤을 때부터 좋아했다. 근데 나는 표현이 서툴기도 했고 모르는 애가 갑자기 자기를 좋아한다면 이상하게 생각할 거라고 생각했기에 우진에게 다가갈 방법이 필요했다. 월말평가 때 항상 내가 춤으로 걔 못 이기던데. 나는 그때 시비를 걸면서 다가가기로 했다. 우진은 다른 애들이랑 있을 때는 막 웃었는데 내가 다가가면 인상부터 썼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걸까? 그 뒤로 나에게는 몇 년이라는 시간이 주어졌다. 그 사이에 사과를 한 번이라도 제대로 했으면 사이가 좋아졌을까? 매일 사과할 타이밍을 잡지 못해서 그냥 내 첫사랑을 접어야 겠다는 생각을 하던 어느날, 일이 터졌다. 방송에서 우진이랑 심하게 싸운 거였다. 나는 어쩌지하고 고민을 많이 했다. 우진이에게 도움도 안 되면서 피해나 주다니. 불화설이 터진 날은 내 인생에서 가장 끔찍했던 날이었다.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하지? 그러다가 위기는 기회다라는 말이 생각났다. 그래, 기회로 바꾸는 거야. 나는 우진이에게 사귀는 척하자고 했다. 우진이는 처음에 개소리하지 말라고 했지만 내가 말도 안 되지만 이유를 대충 설명하니 우진이도 알겠다고 했다. 나이스, 이제 사람들 앞에서도 그냥 내가 우진이를 좋아하는 마음 그대로 표현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건 우진이 뿐이다. 내가 어떻게 해서든 우진이가 나를 좋아하게 해야겠다. 그런데 어떻게? 나는 우진이와 시내에 나와 데이트를 했다. 좀 오글 거리는 멘트들도 여러번 했지만 우진이는 불편해하기 바빴다. 우진이가 많이 짜증이 났는지 나를 화장실로 끌고 가서 따지려고 했다. 아, 어쩌지.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우진이에게 리더답게 행동하라고 되려 화를 냈다. 우진이는 내가 얼마나 싫었을까. 나는 먼저 화장실 칸을 나왔고 그 안에서는 작게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혹시 지나가다가라도 누가 들을까 봐 나는 물을 세게 틀었다. 내 마음은 그게 아닌데. 나는 너를 정말 사랑하는데. 이 마음 언제 밝혀야 하는 거지? 그렇게 또 며칠이 지났다. 우진이는 매일 방에서 나오지도 않고 밥도 안 먹었다. 나는 걱정이 돼서 대휘한테 죽 좀 사서 우진이한테 주고 먹는 거 보고 나오라고 했다. 대휘는 살짝 놀란 눈치였지만 알겠다고 했다. 웅이 형보다는 대휘랑 더 많은 시간을 보냈던 우진이니까 잘 먹겠지 싶었다. 나는 그날이 발렌타인데이니까 편의점에 가서 초콜렛을 사왔다. 우진이가 초콜렛을 그렇게 안 좋아하던 걸 알았지만 그래도 아프면 당이 땡기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대휘가 한참 뒤에 우진이 방에서 나왔다. 대휘한테 우진이 다 먹었냐고 물었더니 고개를 끄덕이고는 웅이 형이랑 놀러 갔다 오겠다고 했다. 나는 잘 갔다 오라고 하고 바로 우진이 방에 들어갔다. 우진이는 곤히 잠을 자고 있었다. 귀여워. 한참을 바라 보고 있었더니 우진이가 깼다. 우진이에게 초콜렛을 주었더니 예상했던 반응이었다. 그런데 대휘가 우진이한테 초콜렛을 줬다고? 나는 왠지 모르게 화가 났다. 나 우진이한테 오늘은 사과하려고 했는데 다른 날과 다름없이 말이 거칠게 나갔다. 아이씨, 나 왜 이래. 나는 무작정 우진이를 안고 토닥였다. 우진이는 그렇게 싫다는 느낌은 아니었다. 휴, 다행이다. 이제 슬슬 사과 아닌 사과, 그니까 고백을 해야 할 타이밍이라고 생각해서 생각나는 데로 말했다. 우진이는 내가 낮술을 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아니, 나는 너 진짜 좋아해, 우진아. 그런데 대휘도 널 좋아할까 봐 겁이 나. 내가 대휘보다 너한테 마음에 들 수는 없겠지? 그동안 정말 미안했는데. 앞으로 더 잘해줄게.
*우진 시점
연습생 시절부터 김동현은 나한테 항상 먼저 시비를 털었다. 처음에는 몇 번 하다가 말겠지 했는데 몇 년째 그러는 중이다. 나는 그에게 굉장히 화가 났다. 내가 힘들어서 인상을 쓰고 있을 때도 그는 나한테 원래도 못생겼는데 인상 쓰니까 더 못생겼다고 했고 내가 서럽게 울고 있을 때도 그는 나한테 가뜩이나 노래 못하는 놈이 목 더 상하라고 쇼를 한다고 했다. 김동현은 내가 죽었다가 다시 깨어나도 증오할 거다. 그는 항상 나만 미워했으니까. 대휘랑 웅이 형은 항상 내 걱정을 해줬는데. 정말 서럽기만 했다. 나는 내 최선을 다하는데도 그를 뛰어넘을 수 없다는 게 너무 억울했다. 그래서 나도 그와 똑같이 시비를 털었다. 처음에는 그도 당황한 것 같았는데 이제는 그 전보다 더 많이 시비를 털어온다. 나 뭐 잘못한 거 아닌데...왜 나는 항상 이런 소리를 들으면서 살아야 되는 거야? 나는 김동현이라는 사람이 너무 싫었다. 결국엔 예능에 나갔다가 불화설이 터졌다. 나는 짜증이 머리 끝까지 차올라서 미칠 것 같았는데 김동현은 환하게 웃으면서 사귀는 척을 하자고 했다. 어이가 없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가 그렇게 노력했던 그 순간들이 물거품이 되겠다 싶어서 알겠다고 했다. 김동현과 사귄다고 하자 사람들은 김동현이 훨씬 아깝다고 했다. 그래, 나 같은 거랑 저 잘생기고 노래 잘하는 애랑 사귀는 게 그렇게 싫은가 보지. 나는 그 짧은 사이에 더 많은 상처를 받았고 김동현은 더 행복해 보였다. 진짜 재수없는 새끼. 근데 쟤 웃는 게 원래도 저렇게 예뻤나? 진짜 더 짜증만 났다. 내가 저딴 애랑 비교 당하는 것도, 저딴 애가 그와중에 예뻐 보이는 것도 그냥 다 싫었다. 내가 어딜 나가기만 해도 사람들은 김동현이랑 사귀는 애 맞냐고 했다. 난 박우진인데. 김동현이랑 사귀는 애가 아닌. 그래서 그 어느곳도 가지 않겠다고 방에서 나오지도 않았다. 그러고 있으니까 김동현이 SNS에 내가 걱정된다고 밥 좀 먹으라고 올렸다. 머리로는 나를 이용해서 더 좋은 이미지로 변신하려는 김동현이 미웠는데 나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나 진짜 왜 이러는 거지? 나는 아무런 생각도 없이 평소처럼 댓글을 봤다. 왜 사람들은 나를 그렇게 미워하는 걸까? 왜 사람들은 항상 김동현만 사람 취급해주는 건데. 댓글에는 내가 김동현 걱정시켰다고 욕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무시해야지, 싶으면서도 계속 보게 됐다. 내가 진짜로 그 자식한테 걱정하게 만든 것도 아닌데. 김동현한테 속는 사람들이 너무 바보 같았다. 왜 내 마음은 몰라주면서 그 개자식 마음은 그렇게 생각하는 건데. 그때 대휘가 들어와서 죽이랑 초콜렛을 줬다. 죽을 다 먹고 초콜렛을 먹었는데 평소와 다르게 달고 맛있었다. 난 분명히 단 걸 안 좋아하는데...대휘가 줘서 그런 건가? 대휘는 나가면서 나한테 자라고 했다. 진짜 푹 잤다. 깨어나 보니 김동현이 내 머리에 손을 대고 있었다. 순간 깜짝 놀라서 손을 쳤다. 그는 당황한 눈치였다. 나는 괜히 시비를 털었다. 머리로는 나가라고 하고 싶었는데 입으로는 그게 안 됐다. 그냥 짜증만 냈다. 김동현은 왜 때문인지 낮부터 술을 마신 것 같았다. 한신한 놈. 그러다 갑자기 김동현이 나를 끌어 안았다. 나는 당황해서 몸이 굳어버렸다. 몇 분이 지나고 나도 모르게 두 팔로 그를 끌어안았다. 나 정말 바보 같은 거 알지만, 이 개자식을 좋아하는 것 같다. 사실 예전부터 좋아했는데 인정하기 싫었던 거일 수도 있다. 내가 나를 매일 욕하는 놈을 좋아할 리가 없잖아? 하면서. 물론 김동현은 아니겠지. 사람 헷갈리게 하는데 장인이시니까. 난 정말 바보임에 틀림없다.
*다시 3인칭 시점
“우진아! 어, 둘이...뭐 해?”
“아, 웅이 형 진짜 눈치없게!”
동현과 우진은 서로를 끌어안고 있었고 웅과 대휘는 밖에서 신나게 놀다가 들어왔다. 웅과 대휘는 우진에게 줄 선물까지 사 왔는데 그 전까지만 해도 서로 욕을 하던 둘이 끌어안고 있으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대휘는 서둘러 방 문을 다시 닫고 웅에게 둘이 오붓하게 있는데 왜 끼어드냐고 다그쳤다. 그게 물론 동현과 우진의 귀에도 다 들렸다. 우진은 빨리 나가서 아니라고 하려 일어났는데 동현이 그를 붙잡았다.
“우리 둘이 있자. 저기도 둘이 있을 시간이 필요하고. 근데, 웅이 형이랑 대휘 원래도 저렇게 사이 좋았나?”
“엥. 몰랐어? 둘이 데뷔 전부터 사귀고 있었는데.”
동현은 웅과 대휘가 사귄다는 사실에 놀랐고 우진은 동현이 그걸 아직도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에 놀랐다. 아니...왜? 아니...대놓고 사귀었는데? 동현은 잠시 놀란 표정을 짓다가 창피함에 얼굴을 가렸다. 아니, 그러면 내가 남친이 있는 애를 데려다 우진이한테 초콜렛 줬다고 질투한 거야? 우진은 동현을 보며 ‘왜 저래’라는 표정을 지었고 바로 다시 일어나 방 밖으로 나갔다.
“야, 우진아. 너 쟤랑 무슨 일 있는 거야? 설마 몰카? 아니면...”
“아니, 아니. 아마도 화해. 근데 어디 갔다 왔어?”
“아, 데이트! 우리 목걸이 맞췄어! 이쁘지!”
“정확히는 발렌타인데이 기념 선물로 재가 사줬죠.”
하트 모양 목걸이였는데 뒷면에는 이니셜이 적혀있었다. 우진은 액세서리에 그렇게 관심이 없어서 부러워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저거 김동현이 하면 예쁘겠다...”
“뭐? 지금 우리 커플 목걸이를...!”
“아니, 그런 건 아니고. 그거 어디서 샀어?”
“야, 김동현! 이거 받아.”
“이게 뭔데? 목걸이? 갑자기?”
우진은 웅이 말해준 곳으로 찾아가 목걸이를 샀다. 물론 디자인이랑 색이 조금 다른. 우진은 급하게 준비하느라 동현의 마음에 들까 하고 주고 살짝 동현의 눈치를 살폈다. 동현은 처음에는 뭐지, 하고 있다가 이걸 열심히 준비했을 우진을 상상하더니 피식-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거 왜 사주는 건데?”
“그냥 니가 하면 괜찮겠다 싶어서. 아, 절대 너 사주려고 갔던 건 아니야. 내 친구랑 우정링 맞추러 갔다가 산 거야. 오케이?”
“그래서 그 우정링은 어딨는데?”
우진은 살짝 머뭇거리다가 얼굴을 붉혔다. 어쩌다 내가 이런 실수를. 그는 우정링을 맞추고 그럴 친구는 없었다. -친구가 아예 없다는 건 아니고 다들 액세서리 같은 건 안 좋아하는 애들이었다.- 동현은 그런 우진이 어이없으면서 웃겼다. 나 사주려고 간 거네, 그러면? 아니라고.
“아, 근데 너 언제까지 나 김동현이라고 부를 거야? 정떨어지게...”
“왜? 싫어? 음...그러면 뭐로 불러줘. 개새끼? 멍청이? 바보?”
“아니, 야. 왜 그런 생각만 하는 건데. 동현이 형! 그게 좋겠다.”
“그건 내가 싫어. 오글거리잖아.”
“동현이 형이 난 좋은데!”
아, 싫은데. 우진이 투덜거리자 동현이 우진에게 불쌍한 표정을 지었다. 어쩔 수 없게 동현이 형이라고 부르게 하려고. 그렇지만 우진은 남달랐다. 강아지 같다는 생각에서 시작해서 어른이니까 개고...그러면, 개자식! 그래, 개자식이 좋겠다. 우진은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동현은 충격 받았다와 억울함과 어이없음이 표정에서 묻어 나왔다. 그냥 김동현이라고 불러! 아니야, 너 말대로 정떨어지는 것 같아, 개자식이 좋겠어!
“아니면 자기야라고 불러.”
“음...나는 그냥 개자식이라고 부를래!”
“허, 진짜.”
동현은 어이없어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얘 왜 귀엽게 개자식이라고 부르냐고. 우진은 동현을 놀리는 게 너무 재밌었다. 아, 시비 털어서 인상 쓰는 모습만 보다가 웃는 거 봐서 그런가. 너무 예쁘다.
동현은 우진의 배를 손가락으로 간지럼을 피웠다. 우진은 갑작스럽게 들어온 손가락에 크핳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자기야라고 부르는 것도 안 돼? 어? 앙?”
“크핳, 알겠어, 자기야. 자기야! 그만해, 간지러워.”
그들은 서로 시비를 걸며 얼굴을 붉히던 첫 만남을 시작으로 다른 의미로 서로 얼굴을 붉히는 사이가 되었다. 마치 운명처럼 얽혀있었던 것처럼, 아주 자연스럽게 라이벌에서 연인이 되었다.
‘어둠의 끝에는 항상 빛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