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제이 (현진) 단편 모음
우리 잘해낼 수 있겠지?

정화랑
2026.08.23조회수 4
그는 짙은 회색 오버사이즈 트레이닝바지를 입은 채 나무 바닥 위를 안절부절못하며 서성이고 있었는데, 넓은 어깨를 잔뜩 움츠린 모습이 그야말로 극적인 패닉 상태 그 자체였다.
"나 못 하겠어. 아기 부러뜨릴 것만 같단 말이야. 진짜로 내 손이 너무 덤벙대서 그래." 그가 방 한구석에 놓인 요람을 향해 격하게 손짓하며 큰 소리로 조잘거렸다. 당황한 탓에 목소리가 한 옥타브나 껑충 뛰어올랐다. 요람 안에서는 친한 친구의 갓 태어난 아기가 뜨개 이불 아래에서 꼼지락거리며 칭얼거리는 작은 소리를 내고 있었다. 현진이는 요람 위로 몸을 숙인 채 굵은 은반지들이 끼워진 길고 우아한 손가락을 초조하게 떨었지만, 정작 아기에게 손을 대지는 못했다. "내 손가락 좀 봐! 이건 피아노 건반이나 치라고 만들어진 거지, 이렇게 조그만 아기를 만지라고 있는 게 아니잖아! 그러다 떨어뜨리기라도 하면 어떡해? 손이 너무 세서 다치게 하면 어쩌냐고!"
나는 침대 한가운데에 산더미처럼 쌓인 푹신한 베개에 몸을 기댄 채 가만히 웃음을 터뜨렸다. 부드러운 스웨터 아래로 만삭이 되어 단단하고 둥글게 부푼 내 배 위로 자연스럽게 손이 갔다. 임신 8개월 차였다. "현진아, 네가 아기를 부러뜨릴 일은 절대 없어. 그냥 목만 잘 받쳐주면 돼."
"말은 쉽지! 모성애라는 본능이 있잖아!" 아기가 다시 한번 나직하게 울자, 그가 무서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까만 눈을 동그랗게 뜨며 엄살을 부렸다. "나한테는 그냥 '사고 치는 대형견' 같은 본능밖에 없다고! 난 시한폭탄이나 다름없어!"
"이리 와봐." 내가 침대 바로 옆자리를 톡톡 두드리며 부드럽게 지시했다.
그는 괴로운 듯 앓는 소리를 내면서도 얌전하게 다가와 침대 가장자리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았다. 나는 몸을 앞으로 숙여 요람에서 작고 가냘픈 아기를 조심스럽게 안아 올렸다. 파스텔톤 이불에 포근하게 싸인 아기는 품 안에서 마치 무게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부드럽고 따스한 기적 같았다. 나는 현진이를 돌아보며 그의 팔꿈치를 툭 쳤다. "베개에 등 기대고 앉아봐. 다리는 양반다리 하고."
그는 침대 헤드보드에 등을 똑바로 기대며 마른침을 삼켰다. 턱관절에 잔뜩 힘을 준 채 다리를 딱딱한 요람 모양으로 고정하는 모습이, 마치 시한폭탄을 해체하려는 사람처럼 보였다.
나는 아주 천천히, 그리고 신중하게 조그만 아기를 그의 가슴과 무릎 사이의 공간으로 내려놓았다.
무게중심이 그의 품으로 이동하는 순간, 현진이의 요란하고 소란스럽던 에너지가 마법처럼 흔적도 없이 증발해 버렸다. 방 안은 숨이 멎을 듯한 고요함에 휩싸였다. 그의 초록색 셔츠에 기대어 잠든 아기의 얼굴을 내려다보는 현진이의 전신이 눈에 띄게 뻣뻣하게 굳었고, 입이 살짝 벌어졌다. 이 작고 소중한 생명이 얼마나 가볍고 부드러운지 그 날것 그대로의 실감이 육체적인 파도처럼 그를 강타한 듯했다.
두 사람의 물리적인 대조는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다웠다. 피아니스트 같은 현진이의 길고 예술적인 손이 정성스러운 손길로 작은 뜨개 이불을 감싸 안았다. 피아노 건반을 누를 때의 그 정교하고 유려한 우아함이 그의 자세에 고스란히 묻어났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귀한 도자기를 다루듯 길고 가는 손가락을 안쪽으로 둥글게 말아 쥐며 손길을 조심스럽게 조절했다. 고요한 방 안에서 아기의 살결과 이불이 맞닿은 그 선명한 풍경은, 현진이 특유의 부드럽고 포근한 아이돌 아우라와 완벽하게 어우러졌다.
아기는 만족스러운 듯 아주 작은 한숨을 내쉬며 현진이의 가슴팍 부드러운 천 속으로 얼굴을 깊숙이 묻었다.
현진이는 한참 동안 아기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은은한 호박색 조명이 그의 선이 고운 얼굴 실루엣을 부드럽게 비추었고, 입술 끝에는 다정한 미소가 아스라하게 맴돌고 있었다. 몸을 완만하게 흔들던 걸 멈추지 않은 채, 그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의 부드럽고 따스한 시선이 내 눈과 똑바로 마주쳤고, 이내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은 우리 아이 위에 올려진 내 두 손을 가만히 좇았다.
우리 사이에 흐르는 정적이 점차 깊고 묵직해지며, 말로 다 하지 못한 아련한 약속으로 가득 차올랐다. 그가 한 손을 뻗어 오더니, 남은 한쪽 팔로는 아기를 든든하게 받친 채 자신의 따뜻하고 매끄러운 손바닥을 내 손 위로 슬며시 겹쳐왔다. 그리고 내 배 위를 지긋이 눌렀다.
"우리 잘해낼 수 있겠지?" 그가 속삭였다. 그의 눈동자가 걷잡을 수 없이 벅차오르는 감정의 열기로 일렁이는 바람에 내 가슴마저 꽉 조여왔다. "이제 딱 몇 주만 지나면... 우리 아기를 안을 수 있잖아."
"넌 정말 좋은 아빠가 될 거야, 현진아." 내가 나직하게 화답했다. 눈앞에 펼쳐진 풍경이 사무치게 아름다워 눈시울이 시큰하게 붉어졌다.
그는 안도감이 섞인 부드러운 웃음을 터뜨리며 침대 위로 몸을 기울여 내 이마에 부드럽고 여운이 남는 입맞춤을 꾹 눌러 내렸다. 그러고는 우리 둘을 자신의 품 안으로 단단히 끌어당겨 안아주었다. 우리는 어두워진 고요한 방 안에서 서로에게 꼭 붙어 체온을 나누었다. 그의 품에 안긴 작은 생명을 가만히 바라보며, 그렇게 우리는 우리들의 새로운 미래가 찾아오기를 함께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