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세상아
앙탈 씀.
BGM (꼭 이 표지의 노래를 들어주세요..!)

* 본 이야기는 두 번째 제목 : 세상으로부터 의 과거 버전입니다 관람에 참고해주세요 근데 세상으로부터 안 읽어도 되긴 함
넌 예전부터 웃음이 참 많은 아이였다.

"난 내가 틀린 줄 알았어."
즐거워도 웃고, 흥미를 잃더라도 웃고, 민망해도 웃고, 슬퍼도 괜찮다고 웃던 아이가, 너였다. 그래서인지, 난 네가 바보 같아서 싫었다. 아니, 네가 싫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너의 그 모습이 싫었다는 거다.
모든 걸 쉽게 생각해서.
가볍게 생각하는 네 모습. 그게 싫었다.
"오늘은 넥타이 안 맸네?"
"…헐?! 어떡해? 오늘 선도 빡세다던데. 아 난 왜 또 이걸 까먹고 그러냐…."

"바보."
"…야, 네 거 안 줘도 돼. 넌 어쩌려구."
"조금 혼나고 말면 되니까, 뭐."
"…고마워 정국아. 진짜 넌 너무 착하다!"
넌 언제나 너보다 주변 사람들이 먼저였고, 넌 항상 그 뒤였다. 스스럼없이 챙겨주고, 네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을 양보해 주고, 그리고 웃어주고. 그래서 싫었다. 그렇게 해서 네게 남는 건, 그렇게 해서 몰려든 친구들 뿐이잖아.
그것 말고 네가 얻는 게 있었냐고, 정말 그랬냐고 묻고 싶었지만,
쉽게 입 밖으로 내지는 못했다.
"여주- 너 과제 있지? 도와줘?"
"...아니? ....괜찮은데."

"내일까지 제출 아니야? 같이 하면 더 빨리 끝내고 좋을 텐데."
”…됐어. 나 혼자 하면 되는데 굳이.“
그랬기에 너의 호의를 거절하는 사람은 오로지 단 한 명, 나였다. 그리고 네가 웃을 때마다 매번 따라 웃지 않던 사람도 오로지 단 한 명, 나.
그런데, 그럼에도 넌 다른 사람들보다 나와 유난히 더 가까이 지냈다. 나에게는 더 많이 웃어주고, 더 많이 챙겨주고. 뭐든지였든 간에, 다른 사람들에게 베푸는 것보다 내게 베푸는 것이 2배, 3배로 많았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냥, 그냥 결론적으로 정리하자면
넌 나를 좋아했고, 난 너를 좋아하지 않았다.
…
우리는 흔히 말하는 십년지기 소꿉친구였다. 유치원 때, 여섯 살이었는지 아님 일곱 살이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부터 그냥 알고 지낸 사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딱 친구 그 사이. 난 그런 줄로 알고 있었다.
매일같이 붙어 다니는 게 익숙해 등교도 둘이서 하고, 밥도 둘이서 먹고, 하교도 둘이서 하고. 어느새 너의 집은 나의 집이 되어있었고, 내 집은 네 집이 되어있었다.
아침식사는 항상 네가 우리 집에 와서 했으며, 가족 파티는 언제나 네 집에서 성대하게 했었다.
난 그게, 그런 걸 하는 이유가, 우리가 진정한 '친구'였기 때문인 줄로만 알았던 것이다.
그런데, 그는 그게 아니었다면.
'이거 진짜 비밀인데.'
'비밀인데 왜 말함.'

'너 입 무겁잖아.'
'...그렇긴 하지, 뭔데? 비밀이.'
'....나 좋아하는 사람 생겼어.'
언젠가 너는 내게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고 한 적이 있었다. 한평생 너와 지내면서 그 흔한 사랑 소식 하나 들려오지 않던 네가 처음으로 밝힌 게 짝사랑이었다.
누구? 누군데? 누구나 당연히 친구의 짝사랑 상대를 궁금해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나 또한 그랬기에 제일 먼저 물은 게 그거였다, 네 짝사랑 상대가 누구냐고.
하지만 너는 많이 부끄러웠는지, 아니면 그것까지 알려주고 싶지 않았는지 내 질문에 대답하지 않는다.
'언젠간 알려줄 거지?'
'.......코치코치 안 캐묻네.'
'나도 그렇게까지 할 마음은 없어서~'

'.....ㅎ'
근데. 어쩌면 네가 대답을 피한 이유가.
많이 부끄러워서도 아니고, 깊이 알려주고 싶지 않았던 것도 아닌,

"너는 나 어떻게 생각해."
너의 마음을 간지럽히게 만든 그 사람이, 나라서 그랬다면.
…
"응?"
"나 어떻게 생각하냐고."
"....바보."
"뭐?"
"바보 인마. 아무한테나 실실거리는 바보. 전정국 진짜 바보탱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넌 진짜...."
그런 거 말고. 전정국은 자기가 원했던 답이 아니었는지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이게 아닌가. 난 나름 진지했는데. 아무한테나 웃어주니까 사람들이 널 호구로 알잖아. 란 의미였는데. 이런 게 아니었나 보다.
"뭐, 어떤 대답을 원하는데?"
"없어."
"......"
"편한 친구 사이만 아니면 돼."
"...엥."
그날 내가 널 향해 어이없는 눈빛으로 아무렇지 않게 내뱉은 한 마디.
"우리가 편한 친구 사이지 그럼 뭐야?"

그 한마디 때문에 전정국의 환하던 표정이 순간 사라진다.
삽시간에 굳어진 그의 표정에 의아해서 눈썹을 위로 올려 표정이 왜 그러냐는 신호를 보냈다. 하지만 텔레파시는 통하지 않은 건지, 아니면 통했는데 네가 무시한 건지 바닥에 앉아 날 올려다보던 넌, 고개를 옆으로 틀더니 이내 양손을 짚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됐다."
그래서 이젠 내가 널 올려다본다.

"내가 너한테 뭘 바라."
"뭐가. 뭔데, 뭘 바라는데 니가 나한테."
"없어~ 땅콩아."
큰 손바닥으로 내 뒤통수를 짧게 쓰다듬고선 방에서 나가는 너였다. 뭐야 쟤 왜 저래. 괜한 이상한 기분에 애꿎은 정수리만 만지작댔다. 뭘 바라는 데 뭘. 얘기를 꺼낼 거면 사람이 알아듣게 꺼내야지 뭘 말하자는 거야 이건.
대체 포인트가 뭐야.
그때의 난 정말이지, 눈치 꽝이었다.
…
그 뒤로 우린 잘만 지냈다. 예전처럼, 평소처럼.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사실 정말 아무 일도 없었긴 했지만, 꼭 이렇게 설명을 해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다른 점을 굳이 뽑자면, 그건 아마도 전정국, 너겠지.
넌 그날 이후 사람들에게 잘 웃지 않았다.
심지어 나한테도. 사춘기가 온 건가, 싶었다. 하긴, 남자들은 보통 열여덟에 사춘기가 온다던데 마침 우리의 나이가 딱 열여덟이었으니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렇지만, 네가 웃는 걸 싫어하던 나도 막상 표정이 굳은 널 보니 네가 다시 예전처럼 돌아왔으면 했다. 뭐 그래도, 언젠가는 다시 웃겠지. 크게 걱정은 하지 않았다. 어차피 사춘기는 금방 지나갈 테고, 너의 그 바보 같은 웃음도 돌아올 테니까.
"야, 전정국."
하지만 야속히도,
너의 사춘기는 지나갈 생각을 하지 않더라고.
"왔어? 또 늦었네. 며칠 전에 내가 시간 약속 지키라고 했는데도."
그날은 내가 전정국을 집 앞 카페로 부른 날이었다.
"야."
"넌 항상 이런 식이지. 나만 맨날 널 기다리고."
"야!!!"

"뭐."
"...너, 너....."
"너 왜 게시물 다 내려. 나랑 찍은 사진들 왜 다 내리냐고."

".....겨우 그거 때문에 여기로 불렀어? 톡으로 해도 됐었네."
"네가 절대로 안 내린다고 했잖아. 우리 절교할 때까지 추억 남겨둔다고 그랬잖아."
"응. 그랬지."
"근데 왜 지금 내 핸드폰에 네 게시물이 안 보이냐고. 이거 무슨 의미냐고 지금."
"그러게, 무슨 의미일까."
"너 지금 진심으로 싸우자는 거냐?"

"여주야."
"........."
"화내지 마, 나 너 화내는 모습 보기 힘들어."
"아니, 친구가 절교하겠다는데 안 놀라는 사람이 어딨냐고."

"절교 안 해, 우리."
"그럼 왜 내렸는데."
"내가 너 좋아하니까."
"어 날 좋아하니까, .....뭐?"
그리고 그날 전정국이 내뱉은 말은 지극히 비현실적이었다.

"내가 너 좋아해."
"미쳤냐?"
"진짜야."
"........"

"너무 많이. 너무 많이 좋아해 내가."
"......"
"그래서 (게시물도) 내렸어. 우린 고작 친군데 얼굴 맞대고 셀카 찍은 사진이 한가득 보이는 게 너무 싫어서.”
“………”

“난 너랑 얼굴을 가까이할 때마다 죽을 심정인데 넌 아무렇지도 않잖아."
"........"
"그렇게 해서 찍은 사진이 여기 대놓고 수두룩인데. 그게 너무 싫었어."
".....야."
"우리 친구잖아."
"......."

"친구끼리 좋아하면 안 되잖아."
"......."
"근데, 내가 널 좋아해."
"....."
"미안해."

"…..나 너랑 친구 못할 것 같아."
그날, 너의 우는 모습을 처음 봤다.
그리고, 그날,
처음으로 이상한 감정을 느꼈다.
"놀라지 말고 들어."
새로운 감정.
"이런 말 하기 기분이 너무 이상한데,"
어쩌면, 전정국이 더 이상 울지 않을 수 있을,
".....나도 너 좋아하는 것 같아."
그런 감정 말이다.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