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지민... 공작?"
"아아, 일이 있어서 늦었습니다."
수군수군
박지민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모두들 당황하고 말았다. 예기치 못한 일이 생겨나니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겠지.
"조용."
황제 폐하의 말에 회의실은 조용해졌다. 이로 인해 결과는 정해졌다며 오늘 회의는 이정도로 마무리 하자는 말에 귀족파들의 표정이 좋지 못했다.
"대공, 수고했네."

"... 감사합니다ㅎ"
세아의 기분은 좋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것도 할 줄 모르던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걸 이루고 지켜내고 싶은 걸 지켜냈으니 말이다.
"축하드립니다."
세아를 축하해 주는 반면, 귀족파들의 귀족들은 아무말 없이 회의실을 벗어났다. 세아는 신경도 쓰지 않았지만.
저벅저벅 -
"오랜만이네요."
"...박지민... 공작."

"축하가 늦었습니다. 임시긴 하지만 가주의 자리까지 올라오시다니, 대단합니다."
"···어색하네요."
"...그러게요."
어색했다. 한순간에 세아의 위치는 더욱더 높아졌고, 아무리 박지민이라고 한들, 대공인 세라에게 예전처럼 다가갈 순 없었다.
한때는 약혼한 사이였던 이 둘. 물론 직접적인 파혼은 하지 않았지만 세라가 대공인 이상, 파혼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세라는 혼인할 생각이 전혀 없으니까.
"아쉽네요. 대공님과 혼인을 원했는데 말이죠."
"...미안해요."
"대공님께서 미안하실 일이 아니에요ㅋㅋ 각자의 짝이 있듯이, 대공님과 제가 짝이라면 언젠가 이어지겠죠."
"물론 짝이 아니면 굉장히 슬프겠지만."
"...하하."
"오늘 고마웠어요. 공작께서 조그만 더 늦었다면..."
"혹시나 늦을까 봐 굉장히 노심초사했습니다."
세아는 궁금했다. 전쟁 때 이후에 본 적이 없었다. 소식도 듣지 못했다. 오랜만에 만나서 좋았긴 했지만... 어째서 중립파인 공작이 제 편을 들어줬을까? 그리고 제 소식을 어떻게 들었길래 타이밍 맞게 찾아온 거지?
세아는 궁금한 게 너무나 많아 보이는 표정으로 지민을 쳐다봤다. 그리고 그걸 눈치챈 지민은 웃으며 말했다.

"ㅋㅋㅋㅋ 궁금한 게 많아 보이네요."
"알려줄 테니까, 저한테 시간을 내주실래요? 저는 대공님께 내어줄 시간은 많거든요."
세아는 당황했지만 할 말도 있고 궁금한 것도 많았기에 시간을 내주기로 했다.
"좋아요."
.
.
.
.
"차를 준비할까요?"
시녀는 박지민 공작을 힐끗 쳐다보더니 세아에게 물었다. 무엇을 준비하면 좋을지를.
"저는 커피로 부탁해요."
지민의 말에 시녀는 대답했고, 세아는 늘 먹던 거로 부탁한다고 했다. 시녀가 자리를 떠나고 두 사람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오늘 바로 시간을 내어주실 줄은 몰랐네요."
"시간이 오늘 밖에 없을 거 같아서,"
"....."
지민은 가볍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왜 그 미소가 씁쓸해 보였을까.
"말 놓아줘요. 예전처럼..."
"제가 어떻게 그러겠습니까···"
"...나 이제 내 곁에 있는 사람 몇 없는 거 알잖아요."
어쩌면 욕심일지도 모른다. 1명이라도 더 자신의 편이 있다면 조금이라도 편해질 거니까. 내 편은 없다는 건 무서우니까.
"....."
"....."

"...다행이네."
그는 아까와는 다른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저 기분 좋은 미소. 누가 저 미소를 짓고 있는 사람을 박지민이라고 믿을까. 세아도 세아지만, 참 많은 게 변한 사람 중 한 명은 박지민이 아닐까 싶다.
"···뭐가요."
"네가 나를 잊지 않아서."
어떻게 잊겠어. 능글맞지만 그의 매력에 빠지면 헤어 나오기 힘든데. 왜 예전의 세아가 박지민을 좋아했는지 알겠어. 이 사람은 존재 자체가 사람을 끌어당겨.
"당신은 참 좋은 사람이에요."
"글쎄, 나를 그렇게 얘기해 주는 사람은 없었어."
"내가 있잖아요."
피식
"그렇네."
내가 당신을 피하려 하지 않고, 혼인을 해버렸다면... 우리는 과연 좋은 관계가 되었을까요?
어쩌면... 내가 그렇게 행동했기에 우리가 여기까지 온 게 아닐까요?
"궁금한 게 많지? 뭐부터 얘기해 줘야 될까."
"난 지금 길드장으로 지내고 있어. 약속이 있어서 말이야."
"약속...?"
"응, 약속.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서 나는 이 약속을 지키기로 했어."
"아..."
소중한 사람. 그게 누구일까. 뭔가 기분이 이상했다. 소설엔 그가 지키기로 한 사람은 김여주였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지. 모든 게 변했으니까.
이 사람에게 김여주가 아닌 새로운 인연이 나타난 걸까? 나는 이걸 축하해 줘야 되는 건가.
"소중한... 사람인가 봐요."
"응, 너무 소중해서 항상 조심스러워져. 유리구슬과도 같아서, 마음이 단단해 보일지 모르지만 아주 약한 사람이거든. 그 사람은."
"···그렇군요."
"나는 이때까지 그 사람을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하고 있는 중이야. 아무리 얻는 게 없다고 해도 말이지.
"별일 없었던 거 같아서 다행이네요."
"제일 이것저것 일이 많았던 사람은 그대가 아닌가?"
"아... 뭐, 제가 해야 할 일인 걸요."
"살인을 당할 뻔한 것도 네가 해야 할 일이었던가."
세아는 놀란 표정으로 지민을 쳐다봤다. 입단속을 분명 시켜뒀는데... 어떻게 알고 있는 걸까.

"길드는 모르는 정보가 없답니다."
정보를 구하기엔 길드보다 좋은 곳은 없을 것이다. 모르는 정보가 없다는 게 과언이 아닐 정도거든.
어떻게 보면 무서운 곳이기도 하다. 정보로 거래가 이어지고, 그 정보로 인해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지. 돈만 있다면 사람을 죽여달라는 의뢰도 가능한 곳이니까.
"대단하네요."
"그대에 비해선 아무것도 아니지. 그대가 앉은 자리가 얼마나 높은지는 자신이 더 잘 알 텐데."
"높으면 뭐 하나요. 그만큼 무거운 자립니다. 높을수록 불안함은 더 크답니다."
"그대는 잘하고 있어. 그러니 너무 무리하진 말아."
"제가 한 게 뭐가 있다고..."
"쉴 수 있을 때 쉬는 것도 전략이야. 지금은 그대에게 여유로움이 없지. 하지만 여유로움이 생긴다면 그때는 그대가 정말 강한 사람이 되었다는 게 아닐까."
맞는 말이다. 쉬지도 못하고 일만 하는 건 내가 부족해서 이이다. 쉴 땐 쉬고, 일할 땐 일을 하며 나아가는 사람이 완벽한 사람이 아닐까.
사람은 완벽할 수 없다는 걸 알지만, 완벽을 목표로 하여 노력할 것이다. 내 가족을, 모든 것을 지켜내기 위해서.
"저도 언젠가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이미 충분히 잘하고 있어. 앞으로도 잘할 거고."
"···고마워요."
"내가 필요하면 언제든지 불러. 난 네가 지구 반대편에 있어도 너에게 갈 거니까. 어떡해서든."

"...! 무슨..."
"표정이 왜 그래?"
"네...?"
"왜, 다시 반하기로 했나?"
"왜 얘기가 그렇게 되는데요!!"
"큭큭, 아님 말고~"
그냥 내 바람일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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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