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4. 대체 뭔 생각을 하신 거예요
말랑공 씀.
“어쩔 수 없죠. 몸으로 때우는 수밖에.”
“?!”
태형은 몸으로 때울 수밖에 없다는 연화의 말을 듣고서 잔뜩 놀라며 두 팔로 제 몸을 감싸안고는 연화를 경계하듯 봤다.
“아가씨 그렇게 안 봤는데……”
“아니, 대체 뭔 생각을 하시는 거예요. 노동을 하라구요, 노동을!”
노동을 하라는 연화의 말에 태형은 어쩐지 아쉬워하는 듯 보였다.
“왜 아쉬워하는 것처럼 보이죠…? 기분 탓이겠죠?”

“기분 탓이 아니야, 아가씨.”
아까까지만 해도 제 몸을 감싸며 경계했던 태형이가 갑자기 연화에게 대번 다가갔다. 연화는 당황하는 내색 없이 그저 왜 그러냐는 의문을 품으며 갸우뚱거릴 뿐이었다. 태형은 무슨 비장의 무기라도 꺼내듯 연화의 턱을 잡고서 위로 올려 제 눈과 마주하게 했다. 그러곤 매혹적인 눈빛을 보냈다.
“…”
그러나 역시 이번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는 이연화. 태형은 그런 연화의 반응에 시무룩해진 듯 보였다. 연화는 그것을 보고는 아, 놀라기라도 하자, 라고 생각하며 놀란 척 연기를 했다. 그게 발연기였다는 게 문제였지만.
“우와, 깜짝이야! 헐! 너무 놀랐어요! 와, 사람이 맞나? 아 참, 여우 요괴였지… 아무튼 와, 대박!”
“……그럴 거면 그냥 하지 마요. 더 비참해져…”
“알겠어요. 아무튼 몸으로 때우기로 하신 거 맞죠?”
“아가씨, 우리에게는 노동이라는 참된 단어가 있어요. 몸으로 때운다는 그런… 숭한 말은 그만하기로 해요.”
“여우 요괴 씨…… 응큼하네요.”
“아직 응큼한 게 뭔지 제대로 안 보여 줬는데.”
“빨리 노동이나 합시다. 해 떨어지기 전에.”
응큼한 게 뭔지 아직 안 보여 줬다는 태형의 말에 아무런 대답 없이 흠흠, 거리기만 하며 다른 화제로 돌리는 연화를 본 태형은 그저 어깨를 으쓱였다.

처참하게 무너진 화단을 치우면 치울수록 연화의 마음은 무거워져만 갔다. 정말 몇 년이나 소중히 가꾸던 화단이었는데. 연화는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연화가 무거운 한숨을 내쉴 때마다 태형은 연화의 눈치를 보곤 했다. 그래도 양심은 있었던 태형은 끈적한 땀이 등줄기에 흐를 때까지 열심히 했다. 영계에선 부잣집 도련님이었어서 이렇게 땀을 흘려 본 적도, 흘리고 싶었던 적도 없었다. 그러나 이렇게 땀을 흘리고 고생을 하니 힘들기도 했지만 어쩐지 무료했던 일상이 조금씩 흥미로워지고 있는 것 같다고, 태형은 그렇게 생각했다.
“이제 이것만 치우면 돼요.”
화단이 무너지며 바닥에 흩뿌려지게 된 흙을 전부 치우고, 연화가 제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손등으로 닦아내며 말했다. 그들의 앞에는 몇 조각 안 되는 화단의 파편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이제 이것만 치우면 끝이다. 거의 다 끝나간다.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태형은 파편을 집으려 손을 갖다댔다. 그 순간 옆에서 아야,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태형은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어 연화 쪽으로 몸을 틀었다.
“아야……”
연화는 화단 파편을 치우다가 손가락을 베었는지 반대쪽 손으로 검지 손가락을 움켜쥐고 있었다. 태형은 무슨 일이냐며 연화의 손을 붙잡고 제 쪽으로 확 끌었다. 그러자 연화의 검지 손가락에 꽤 큰 상처와 그 속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괜찮……”
연화가 괜찮다고 말하기도 전에 태형이 연화의 검지 손가락을 제 입속으로 가져다댔다. 흔히 드라마나 영화에서 나오던 그런 방법으로 지혈을 하겠다는 의미였다. 영화나 드라마에선 상대방이 제 검지 손가락을 본인 입에 갖다대면 섹시하게 보이거나 설레거나 그런 반응들이 보이는 게 대부분이었지만 연화는 그저 무미건조한 반응을 보일 뿐이었다.
“어, 제 손에 흙 묻었는데.”
“엣퉤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