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프론트에 서 있는 건 익숙한 일이었지만,
그 사람이 오기 전 몇 분은, 항상 낯설었다.
“여주 씨, 1205호 체크인 예정이래요.
오늘 오후 3시. 이름은… 또 최민호네.”
동료가 툭 건넨 그 말에
여주는 고개를 들지 않고 대꾸했다.
“그 고객님, 커피 머신 있는 방
요청하셨을 거예요.”
“헐. 그걸 어떻게 알아요?
대박. 초능력자세요?”
여주는 살짝 웃었다.
“그냥, 그런 손님들이 있어요.
늘 똑같은 걸 원하는 사람들.”
오후 2시 58분.
엘리베이터가 1층 로비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가 걸어 들어왔다.
깔끔한 재킷에 편안한 바지,
그냥 봐도 아무 티 안 나는 차림인데도
이상하게 사람 눈길을 끄는 존재.
최연준.
여주는 평소처럼 머리를 숙였다.
“어서 오세요. 체크인 도와드릴게요.”
연준은 웃으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오늘은 커피 안 드릴게요.”
“그건 왜요?”
“제가 먼저 주면,
다음에 여주 씨가 줄 말이 없잖아요.”
그 한 마디에
손에 쥔 카드키가 갑자기 미묘하게 무거워졌다.
“객실은 1205호입니다.
예약하신 대로 고층, 조용한 방,
커피 머신 포함입니다.”
“고맙습니다.
역시 당신이 있어서 편해요.”
카드키를 받으며 연준은 시선을 잠깐 내렸다가,
조용히 그녀를 바라봤다.
“…저도 한 마디 해도 될까요?”
“네?”
“이번엔 고객 아니고, 그냥 나로서.”
여주는 침을 삼켰다.
그는 잠깐 망설이다가 말했다.
“이 방에 오면… 나 진짜 사람 같아져요.”
“…무슨 뜻이에요?”
“밖에선 다 연예인처럼 대해요.
근데 여기선… 그냥 내가 되는 기분이에요.”
여주는 아무 말도 못 했다.
그 말이 너무 조용해서,
그 조용함이 오히려 더 크게 울렸다.
그는 마지막으로 인사하듯 고개를 끄덕이고
엘리베이터로 걸어갔다.
여주는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작게, 아주 작게 속삭였다.
“나도요…”
그날 밤,
연준은 룸서비스 대신
프론트로 전화를 걸었다.
“혹시… 야식 가능한가요?”
“네, 어떤 메뉴 원하시나요?”
“아뇨, 음식 말고요.”
“…?”
“그냥… 한 5분, 이야기 같은 거.”
여주는 말이 막혔다.
“통화… 원하시나요?”
“아뇨. 그럼 이상하잖아요.
그냥, 잠깐이라도 로비로 나와주시면…”
10분 후,
여주는 프론트 근처 라운지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슬리퍼에 편한 옷차림,
연준은 손에 들린 편의점 캔 음료 두 개를 내려놨다.
“커피는 좀 지겨워졌죠?”
“…당신한테 듣기 싫은 말
1위일 수도 있어요.”
연준이 웃었다.
“그래서 다른 걸로 사 왔어요.
나름 노력한 거.”
둘은 별 얘기 없이 앉아,
탄산이 목을 타고 넘어가는 소리만 들렸다.
“…진짜 아무 말 안 해도 되네요.”
여주가 작게 말했다.
“응. 괜찮죠?”
연준은 뚜껑을 다시 닫으며 말했다.
“꼭 말해야만 가까워지는 건 아니니까.”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자연스럽게 작은 종이봉투를 내밀었다.
“아, 이거. 방에 두려다가
직접 주는 게 낫겠다 싶어서.”
“이게 뭐예요?”
“딱히 뭘 주고 싶었단 건 아닌데…
그냥, 당신 거 같아서.”
여주는 조심스레 봉투를 열었다.
그 안엔 책 한 권이 들어 있었다.
표지 없이, 헌책방 냄새 나는 문고판.
안쪽 첫 페이지에 작은 메모가 있었다.
“당신한테 어울릴 것 같아서요. – 연준”
다음 화에 계속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