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진짜 많다. 누가 읽는 거지.
바쁠텐데 읽을 시간이 있나.”
세븐틴이 오기까지 얼마나 걸리려나. 그 생각을 하는 순간 찬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 여주! 아직 안 갔네? 진짜 잘했어!”

“어,어… 안 가긴 했는데…”
“갑자기 확 변해서 적응 안 되지.”
“네… 어제까지만 해도 거의 반쯤 죽어있던 애잖아요.
괜찮아보이니 다행이긴 한데…”
“하… 권순영 쟤 왜 저래.”

“진짜 왜 저러냐고…”
“쟤 원래 저런 사람 아니잖아.”
“걱정돼서 그러는 거 같은데.”
“뭐, 누가. 권순영이 여주를?”

“나 풀 수 있을 것 같아.
일단 적어도 날 싫어하는 건 아니네…”
“와, 호시 형 나쁘네.
애한테 그런 생각까지 들게한 거야?”
“해볼게.”
“응, 여주 화이팅.”
“꼭 풀어… 오늘 아침에도 분위기 장난 아니었거든…”

“순영이 오빠, 나 여준데.”
“나 너한테 할 말 없어”
“내가 할 말이 있어. 문 안 열어주고 싶으면 열지 마.
난 오빠가 문 안 열어줘도 여기서 말할 거거든.”
“왜 그러는데?”
“우선… 나 걱정해줘서 고마워. 하지만…”
“하지만…?”

“오빠가 뭘 걱정하는지 모르겠어.
날 여기서 살지 못하게 하는 이유도 모르겠고.”
“…미안해서.”
“ㅇ,응?”
순영이 오빠는 내 눈을 바라보지 않았다. 난 계속 순영이 오빠를 바라보고는 있는데 내 눈을 볼 생각이 없어보인다.
“여기서 지내고 싶은 이유를 모르겠어, 난.
우린 널 제대로 봐줄 수가 없어.
너한테 돈을 얼마 쓰지도 못할 거고 말이야…
우리보단 좋은 고아원 가는 게
너한테 더 이득일 거 같아서 그래…”
“근데 널 위하는 길이 멤버들은 여기 남아있는 거라잖아. 난 그게 안 믿겨서 그래.
우리가 언제 유명해져서,
돈도 많이 벌고 널 위해주겠냐고…”

“오빠 마음이 그런지 정말 몰랐어. 속으로 욕만 했다고.”
“나 너 안 싫어. 난 너 너무 좋아. 좋아서 이런 거야.
진짜로 널 위하는 길은 놓아주는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응, 무슨 말인지 알겠다.”
“오해하게 해서 미안해.”
“아직 그 생각은 여전해?”
“…응”
“난… 여기가 더 나아.”
“글쎄, 난 그렇게 생각 안 하는데…”

“나, 중3 때 거기서 무슨 일 있었는 줄 알면
그런 말 못할 걸?”
“…잘 살았던 거 아녔어?”
“그럼 내가 도망칠 이유가 없잖아.”
“무슨 일 있었는데…”
“14살 때부터 맞고 자랐고…
열여섯에는 성폭행을 당했는데…
근데도 난 돌아가려고 하는 거야.
그 악몽 같은 곳으로. 이 세상이 내게 너무 차가우니까…”
“…몰랐어, 미안.”

“당연하지. 말 안 했으니까.”
“오빠들한테 동정이랑 선의, 안 바랐었는데
이렇게 되니까… 나도 미안해.
갑자기 나타난 여자애가 맘에 안 드는 게 당연해…
게다가 갑자기 같이 살자고 하면 더 당황하겠지.”
“나 너 안 싫다니까… 좋아한다니까…”
“오빠, 날 진짜로 위한다면 그냥 여기 있게 해주면 돼.
그게 내게 가장 큰 선물이고, 행복이야.”
“진심이야…? 너 여기 살면 더 힘들 수도 있어…
허락 받을 때까진 숨어 살아야 하고,
팬들 알 때까지도 숨어야 되는데도?”
“적어도 나 혼자 살 때보단 행복할 거 같아.
초반엔 숨어지내는 것도 재밌다고 느낄 거 같은데?”
“…정말?”

“허락해준 거지? 그런 걸로 안다?”
“응, 당연하지.”
“고마워. 나 진짜 잘할게.”
“그냥 가만히 있어도 될 거 같은데…?”
“그럼 내가 불편해서, 요리하고, 청소하기로 했어.”
“그래. 네가 편한 게 우선이지.”

“나 잠깐만”
“얘기 잘 됐어!”
“그럼 대표님만 설득하면 되겠네.
부사장님이랑 연결해서 갈까?”
“나중에 단체로 가는 게 가능성이 높지.
부사장님이랑 같이 가자.”

“내일 갈까?”
“응, 내일 가자.”
“순영이가 저런 마음일지 상상도 못했어.”
“나도. 그냥 어려워서인줄 알았는데…
호시가 생각보다 생각이 깊네”
“라임이냐?”
“이제 날 숨쉬게 하는 모든 것은
오빠들이 될 수 있을 거 같아.”
“앞으로 잘 부탁해요”

“앞으로 잘 부탁해요”
“앞으로 잘 부탁해 친구야.
친구 맞으니까, 편하게 생각해, 편하게.”
“응, 나도 친구 생겨서 좋다!"
“여주, 살 때 부담 갖지 않았음 좋겠다.”

“그래, 편하게 생각해. 이제 우리가 가족이니까.”
“가족이라…”
가족은 날 보호해주는 든든한 울타리 같은 느낌. 살아가는 이유이며 조건. 그 이름을 부르면 마음이 따뜻해진 등불, 힘들고 위험할 땐 도망칠 수 있는 비상구, 인생이란 전쟁에 용감하게 뛰어들 수 있게 하는 든든한 방탄복. 도서관에서 빌린 에세이에 나온 말이었다. 난 이런 가족 없이 힘들게도, 벅차게 살아왔다. 이제 내게 비상구가 생겼다는 게 마음이 뭉클했다.
“가족이야, 우리. 피 하나 섞이지 않고,
이제 본 애한테 뭔 가족이냐만은!
그래도 우린 가족이다. 알았지, 장여주.”

“괜찮아요. 기분… 좋았어…”
“우리 너랑 나이 차이, 많아도 고작 다섯이야.
편하게 오빠라고 부르고, 말도 놓고.”
“음… 응! 알았어, 오빠. 앞으로 잘 부탁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