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정류장은 삼성동 힐스테이트 1차입니다.’
아니면 그 끔찍한 곳에 다시 혼자 있어야하니. 버스 자리에서 일어나 지수 오빠한테 전화했다.
왜 지수 오빠한테 전화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음방 때처럼 내리다가 걸린 지훈이 오빠한테 전화한 것도 아니고 그냥 지수 오빠한테 전화하고 싶었다.
“도착했어?”

“이제 내릴 거야”
“알았어. 애들 몇 명 데리고 갈게.
어두운데 혼자 오지 말고 진짜 잠깐만 기다리고 있어.
알았지?”
“아니야. 나 혼자 갈게”
“버스 정류장에서 좀 걸어야 되잖아.”
“혼자… 괜찮아?”
걱정이 조금 옅어진다 했더니 톡 보내자마자 다시 걱정이 일기 시작했다.
상관 없었다. 잠시 옅어진 순간에 혼자서 엄청 불안해했으니 다시 폭발적인 걱정이라도 아무래도 좋았다.
“괜찮을 거 같은데?”
“괜찮긴 개뿔… 우리 집 오는 길 많이 멀고 어두운데?”

…아무래도 좋았다. 그냥 13명만 있으면, 13명의 가족과 함께라면 뭐든 좋았다.
“왜 넌 모든 게 다 괜찮다고 해?”
“우리한테 기대도 괜찮아.”
“그리고 우리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잖아.”
“피해가 갈까 봐. 나중에 오빠들이 해주는 모든 것들이
권리라고 생각할까 봐. 너무 당연하게 생각될까 봐.
그게 불안해서… 그래서 자립하려고 하고 있는 거야.
기대지 않으려고 하는 거고…”
이제서야 뱉었다. 그들이 나를 기다려준 것에 부응했다. 적어도 그들이 듣고 싶어하던 것을 말해주었다. 그것에 대한 판단과 반응은 그들의 몫이지만.
잠시 정적. 나도, 그들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때까지 본 적 없는 찬이의 진지한 말을 들을 수 있었다.
“권리 맞아. 그리고 너에게 해주는 모든 것들은
우리의 의무야. 우리가 데리고 왔으니 좋든 싫든
책임은 져야하고, 넌 그걸 받을 권리가 있단 얘기야.

게다가 우리는 너에게 해주는 모든 일들이 너무 행복해.
너에게 베풀면서 나도 행복해지고 있어.”
“나랑 정한이랑 갈게. 잠시만 기다리고 있어, 마음아.”
“결국 이럴 거면 왜 그랬을까.
알았어, 밝은 데서 기다리고 있을게”
“어어! 나도 갈래!”
“나… 복 받았다. 나 데리러 와주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다니”
“나가는 거 알았으니까 딱 기다리고 있어.”

“알따, 오빠야…”
“뭐야 장마음! 왜 민규 형한테만 사투리 써주는데!”
“일단 온나. 오면 내가 사투리 한 번 써주께”
“오올”
“내린다. 우선 끊을게”
“응, 우리도 나왔어.”
정한이 오빠, 슈아 오빠, 원우 오빠, 민규 오빠, 그리고 찬이. 피식 웃곤 전화를 끊었다.
잠시 머무를 버스 정류장에 내렸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노래를 틀었다.
얼마가 지났는데도 카톡이나 전화는 오지 않았다. 잠시 머물것이라 생각했던 버스 정류장에는 생각보다 더 오래 있어야 했다.
겨울이라 바람은 꽤 차갑고, 빛은 가로등에서 나오는 한 줄기 빛과 버스 정류장에서 나오는 게 다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카톡이나 메시지에 들어갔지만 온 메시지는 없었다. 카톡 알람 소리가 시끄러워도 세븐틴과의 단톡방의 알람은 끄지 않았다. 알다시피 시끄러운 걸 좋아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들이라서, 그들이라서. 단지 그 뿐이었다.
“시간이… 너무 지났는데.”
으스스한 분위기와 그 때의 느낌, 그리고 시리도록 추운 바람이 나를 강타했다. 상처를 할퀴고 가면 낫지 못할 정도로 세게.
‘무서워, 무섭다고… 이 길을 혼자 걸어가는 건
더 무섭겠지…? 아 제발 빨리…’

잊으려 해도 잊히지 않았던 그 기억이 지금과 너무 비슷했다. 아예 살리고 싶지도 않았나봐. 2살짜리가 혼자 있다는 건 죽어간다는 거니까.
그들이 오기를 바랬겠지. 부모님이 오기를 간절히 바랬겠지, 그 어린 나이에. 그리고… 결국 그들은 돌아오지 않았겠지.
엄청난 두려움에 눈물이 한 줄기 흘러내렸다. 얼굴을 손에 묻었다. 지금 믿을 수 있는 거라고는 이어폰에서 나오는 세븐틴 노래와 그들이 올 거라는 믿음 뿐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