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 그 피아노 연주하지 마요 • 1‘후, 떨지 말자. 그냥 학교야. 학교.’
이제 겨우 성인이 된 것 같은데 벌써 대학교에 입학이라니 실감도 안 나는… 줄 알았으나 부들부들 춤을 추며 멈출 생각을 않는 여주의 다리가 온몸에 떨림을 전달했다.
자신이 긴장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흠칫 움츠러든 여주는 주변을 슥 둘러보고는 아무렇지 않은 척 발걸음을 뗐다.
‘서울데미대학교 신입생 여러분, 환영합니다.’
담백한 그리스 신전의 입구 흉내를 내는 듯한 정문으로 들어서자 정문 양옆 벚나무에 늘어지듯 걸려있는 커다란 플랜카드에 여주는 가슴이 벅차올랐다.
한껏 들뜬 여주는 환희에 찬 얼굴로 함박눈처럼 내리는 벚꽃잎들을 바라보았다.
분홍빛 벚꽃들이 팝콘처럼 만개한 따스한 봄날, 대학교에 처음으로 발을 디디니 설렐 수 밖에.
그와 동시에, 두근거림으로 가득해야할 여주의 마음 깊은 곳에서 씁쓸함이 스멀스멀 일어났다. 그 이유야 말할 것도 없었다. 여주는 친구들 하나 없이 혼자 데미대학교에 붙었다. 친구들이 그리 많은 것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다른 친구들은 짝지어 같은 학교에 붙었던데 자신만 떨어진게 좀 억울했다. 물론 자신이 붙은 학교가 친구들 학교보다 좋다며 잊어보려고도 해보았다.
하지만 결국 그냥 포기하고 이 상황 자체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계속 그 사실에 시달린다고 해서 바뀌는 것도 없을 거라는 걸 알고있었던 여주였다.
‘여긴가..?’
데미대학교는 매년 특별한 신입생 환영식을 한다. 여주는 고등학교 진로선생님께 얼핏 들은 적이 있었지만 정확히 어떤 환영식인지는 알지 못했다.
대학 합격 후, 신입생 환영식 안내문을 보게 된 한달 전의 여주는 이게 맞나? 싶었다..
데미대학교
“신입생 여러분을 ‘데미의 밤’ 으로 초대합니다!”
50년 전통을 자랑하는
데미대학교의 특별한 환영식으로
신입생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마술동아리의 눈이 튀어나오는 마술쇼’
‘댄스동아리의 시선강탈 매력폭발 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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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동아리의 고급스러운 랩소디’
데미대학교만의 열정과 비전을
몸소 느끼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2015년 3월**
19:00 - 21:00
데미대학교 레아관
‘무슨 초등학교도 아니고..’
여주는 초등학생 때나 했던 학예회같은 느낌의 환영식 안내문을 보고는 어리둥절하면서도 대학교만의 학예회가 궁금하기도 했다.
안내문에 적힌 날, 아직도 환영식에 대한 느낌은 그대로였다. 레아관 옆 높은 시계탑의 커다란 시곗바늘은 오후 6시 40분을 가리키고 있었고 대학교 입학에 어울리지 않는 이 늦은 시간이 여주의 마음 속 위화감과 호기심을 더욱 증폭시켰다.
여러가지 기대 아닌 기대을 안고 레아관에 들어선 여주는 밖에서 바라본 것보다 웅장한 내부에 적잖이 놀라 잠시 주춤했다.
여주는 이 거대한 고래뱃속같은 곳을 거의 다 메운 인파를 비집고 무대에서는 가깝지만 가장자리 쪽 자리에 겨우 앉았다. 그리고는 시간이 날 때 읽으려고 가방 안쪽에 고이 모셔둔 책 한 권을 꺼내들었다. 책의 제목은 ‘나의 시선으로’. 단조로우면서도 은근 몽환적인 느낌을 가진 보라빛의 책표지에 이끌려 책을 샀지만 아직 제대로 읽기를 시작하지도 못했다.
책을 펼쳐 표지보다 연한 보라색의 속지를 넘기려는 찰나 거대한 고래뱃속을 비추는 횃불들이 꺼졌다. 이번에도 책을 읽기는 글렀다고 생각한 여주는 책을 덮고 잘 보이지도 않는 가방을 더듬거리며 책을 집어넣고는 불빛이 유일하게 비추는 무대로 시선을 돌렸다.
“데미의 밤을 더욱 빛내주실 여러분, 반갑습니다.”
“저보다는 곧 펼쳐질 무대가 더 기대되실 여러분들을 위하여 긴말 안하겠습니다. 데미만의 특별한 밤을 즐겨주세요!”
화려한 비즈들로 꾸며진 정장을 입고 같은 디자인의 모자를 쓴 사회자로 보이는 남자는 무대에 등장하자마자 짧은 인사를 하더니 곧바로 무대 옆 대기실로 연결된 듯한 통로로 향했다.
몇몇 황당한 관객들이 수군거렸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는 그의 모습으로 인해 새어나오는 웃음소리를 이길 순 없었다. 여주도 대담한 사회자의 말투와 걸음걸이에 자신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여주는 유쾌한 사회자와는 다르게 환영식에는 그리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도 여주와 같은 심정이었는지 무대에 집중을 하지 않고 잠을 자거나 화장실에 가는 척 하며 이 어색한 분위기가 흐르는 공간을 빠져나갔다.
‘나도.. 그냥 나갈까…?’
주변 눈치를 보며 슬슬 자리에서 일어서려던 여주는 새빨간 와인색의 암막커튼이 서서히 올라가며 끝에 다다랐을 때 다시 자리에 앉았다.

무대 위에는 시크하고 깔끔한 갈색의 그랜드 피아노가 위치하고 있었다.
선배, 그 피아노 연주하지 마요 • 1
마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