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몰입 장인의 짧글

삼각관계 (1)








 전정국은 착했다. 굳이 따지자면 나쁜 편은 아니니 착하다는 말로 통용될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주변 평이 좋았다. 물론 외적 요소가 상당한 플러스로 작용했지만, 본질은 털털하고도 다정다감한 성격에 있었다. 방긋방긋 잘도 남에게 웃어준다. 심지어는 가까운 사람이라면 더 자주 웃어준다. 이쯤 되면 저한테 반하라고 판을 깔아주는 거 아닌가, 하고 오 년 전의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앞선 말은 그를 향한 내 눈물겨운 일방통행은 오 년째 지속 중이라는 의미와 일맥상통한다. 소꿉친구라는 타이틀은 지독히도 방해스러웠다. 멋대로 밀어붙일 수도, 끊어낼 수도 없게 만든다. 설상가상으로 전정국은 날이 지날수록 타들어가는 제 친구의 속도 모르고. 여전히 그는 아침 여덟 시에 집 앞까지 나를 데리러 오며, 주머니에서 레몬 사탕을 하나 꺼내 내게 쥐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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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 비타민 충전해야지."




 도톰한 애굣살이 사르르 올라오는 무구한 얼굴은 또다른 해악이다. 매일밤 다짐한 고백을 죄 물거품을 만들어 버린다. 좋아해. 좋아한다고. 내가 널··· 많이. 밤새 이불 속에서 꽃피운 자신감은 손쉽게 시들고 말았다. 이상하게도, 나는 전정국 앞에서 이따금씩 고장나곤 했다.




 "··· 땡큐."




 분명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한데. 말이 안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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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정국은 모른다. 십년지기 친구가 제게 남모르게 연정을 품고 있는 줄은. 원체 눈치가 거덜난 녀석 덕에 내 짝사랑은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편이었다. 성격은 착한 축에 속한 데 비해 전정국은 번번이 못된 스킨십을 남발했다. 지금도 봐, 손을 막 잡아. 가락 사이사이 끼워진 온기는 조금의 배려도 없이 제 존재감을 퍼뜨렸다. 손에서 어깨죽지, 어깨죽지에서 목덜미, 목덜미에서 기어이 뺨까지. 내 얼굴에서 열이 마를 날이 없는 건 모조리 전정국의 탓이다.




 "야 근데··· 좀 놔라."




 더운데 자꾸 붙어, 왜. 부러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걸쳐 있던 손을 빼냈다. 무게감을 잃은 제 오른손을 멀거니 바라본다. 그가 고개를 바짝 쳐들었다. 감쳐문 입술로 미루어보아 퍽 아쉬운 눈치다. 친구 사이에 손도 못 잡게 하고, 서운하다 서운해. 그 말엔 한 가지 치명적인 오류가 끼어 있다. 누가 친구끼리 손을 잡는데. 날카로운 지적은 차마 밖으로 나오지 못 하고 내 속만 줄창 괴롭혔다. 내부에서 무슨 고난이 일고 있는지 조금도 알 턱 없는 순한 눈매가 이쪽을 향했다. 나는 괜히 시선을 땅 아래 처박았다. 전정국은 무신경하다.




 "근데 얼굴은 왜 그렇게 빨갛냐."

"···."

 "어디 아파?"




 어쩔 때는 정말 잔인할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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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둘 사이에는 한 쪽은 악연이고 다른 쪽은 인연이라 칭할 그 무언가가 있었다. 어릴 적부터 주위 어른들에게 대범함을 칭찬 받고 자란 나는 커갈수록 간이 콩알만해졌다. 이유는 죄다 전정국, 전정국, 전정국. 사랑은 은근한 감정노동이었다. 어제는 기필코 티를 내야지 싶었으나 또 막상 오늘은 차이면 친구라는 명목으로도 옆에 있을 수 없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에 가슴이 쪼잔해졌다. 무엇보다, 이런 고뇌를 죽어도 모를 전정국. 걔가 제일 밉다. 내 곁에서 한시도 떨어질 생각일랑 않는 그는 우리가 필시 인연이라고 믿고 있을 거다. 아마··· 세기의 베스트 프렌드 정도. 그러나 나는 의견이 다르다.




 "뭘 보고 그렇게 웃어?"

 "아, 옆반 소희. 이번 주말에 만나자던데."

 "··· 엉, 잘 놀다 와."

 "너도 갈래?"




 이건 명명백백히, 엄청난 악연이다. 전정국의 물음은 순수해빠졌다. 그래서 문제라는 거다. 생각해 보니까 둘이 만나면 좀 어색할 것 같아. 같이 가자. 당최 무슨 기대를 품는 건지 마주본 눈에 이채가 감돈다. 전정국은 알아야 한다. 넌 방금 너를 오 년째 좋아하는 내 앞에서 썸녀의 이름을 거론했고, 그것도 모자라 걔와의 데이트를 선언했으며, 그 데이트에 나를 끼워넣겠다는 아주 극악무도한 계획을 세웠다는 걸.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싫어."

 "아 왜-"

 "걔가 원하는 건 너랑 단둘이 만나는 걸 텐데. 것다 날 데려가면 어떻겠냐?"

 "소희도 알지 너 내 친군 거. 신경도 안 쓸걸?"

"···."




 툭툭 흘리는 말이 비수가 된다. 예부터 내 심장이 과녁이라도 되는 양 전정국은 해맑게 상처를 던졌다. 그의 소꿉친구 정여주는 십 년동안 단 한 번도 제 역할을 벗어난 적 없었기에 주변 여자아이들에게도 딱히 견제할 거리가 못 됐다. 짓씹은 입안이 고통을 감내했다. 여즉 친구라는 이름을 잘도 이용해왔다가 이럴 때만 상처받은 척 마음이 찌르르해지는 건 내 변덕일지도 모른다. 탓하려 해도 나서서 맞아주는 건 언제나 나였다. 나는 전정국에게 약했다. 그의 순한 눈망울 앞에선 쉬이 대거리를 할 수 없었다. 제법 오래전부터 그랬고, 앞으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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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줄 거지?"




 더더욱 약해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