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날. 아주 먼 옛날. 변두리에 위치한 어느 한 왕국에서 공주가 태어났어요.

그의 이름은 김석진.



어... 누가 봐도 남잔데 왜 공주냐고요?


제 마음인데요. 왕국 전체, 아니 전세계를 통틀어도 석진 공주보다 예쁜 사람은 없으니 그냥 공주 시켜줍시다.


아무튼.



왕은 공주의 빼어난 미모를 보자마자 왕비의 불륜을 의심했지만, 태어난 지 삼십 분만에 아버지 머리채를 신명나게 잡아뜯는 싸가지를 보니 지 자식이 분명해 그런 못된 생각은 0.1초컷으로 접어뒀습니다.


석진 공주도 물론 본인이 심상치 않은 비주얼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애진작 깨달은 상태였어요. 어떻게?


"빵야"


"으아아아아아악 공주님!!!!!!!"

이렇게. 공주의 애교 한 방에 껌뻑 죽는 시늉까지 하는 주접쟁이 신하들을 곁에 두니 지 얼굴이 월드 와이드 프리티라는 걸 알게 되는 것도 한순간이에요. 이래서 주변환경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여러분.


시간이 흐르고 흘러, 석진 공주가 이쪽 세계로 치면 중학생이 되던 해.


신하들보다 더한 주접력을 지닌 왕은 공주가 예쁘고 참하게, 잘 자라길 바라면서 성대한 축제를 열었어요. 왕국의 모든 사람들은 물론 저어기 먼 곳에 얌전히 박혀 살던 요정들까지 부른 인맥 쩌는 딸... 아니 아들바보 아버지였답니다.


무급으로 와서 일하라는 명령에 빡친 요정들은 깽판이라도 놓을 요량으로 씩씩거리며 축제에 입장했건만,


"홀리씻... 미모 갓댐."


때마침 단장을 마친 오늘의 주인공, 석진 공주의 얼굴에 홀딱 반해버리고 말았어요. 최저임금도 안 주면 뭐 어때. 한평생 오징어 꼴뚜기 같은 놈들만 보고 살다가 오늘부로 안구가 황홀해졌으니 된 거죠. 만사 오케이.


어쨌든 공주의 프리티 앤 핸섬함이 멱살 잡고 캐리한 축제는 슬슬 끝물을 향해 달려가고, 곧 요정들의 순서가 다가왔습니다. 이제 차례대로 석진 공주에게 축복을 내려줄 예정이었지요.


그러나 한 가지 문제가 있었으니. 그건 바로...


"그럼 마지막으로 공주에게 영원히 지지 않는 아름다움을..."

(대충 얼굴로 세월을 재패하는 짤)

"아, 아니 레전드 피지컬을..."

(대충 피지컬로 모두를 압도하는 짤)

"어 그... 그 뭐냐... 범접불가 꾀꼬리 같은 음색을..."

(대충 가볍게 아이유 3단 고음 하는 짤)

"씨팔 다 가졌네..."


축복을 내리기엔 석진 공주의 모든 것이 이미 완벽하게 갖춰져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세 요정들이 예정에 없던 난항을 겪고 있을 때, 누군가가 궁전의 대문을 벌컥! 열어재끼고 찾아왔어요.


"너무해!"

"...?"


너무해 너무해. 암 라잌 티티. 다짜고짜 트와이스의 TT를 외치는 의문의 여자. 쿠팡에서 최저가로 산 검정 망토를 두른 채, 어깨에는 웬 망충해보이는 까마귀를 달고 온 여자는 진심 서운한 목소리로 그 자리에서 아무도 궁금하지 않은 지 사정을 주절대기 시작했어요.


"전국민이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는 축제라고 했으면서... 아무도 나한테 초대장 안 보내주구... 나도 맛있는 거 잘 먹을 수 있는데... 나도 비트에 신나게 몸을 맡길 수 있는데... 나두... 나도 오고 싶었는데 왜 나만 안 초대하구... 힝."

헉. 그제야 모두들 여자의 정체를 알아챕니다. 저 무해한 말투, 저 물만두 같은 얼굴, 저 괴상한 복장!

틀림없이 변방의 마녀였어요. (뚜둔)

나무위키에 등재된 정보를 따르면 마녀의 본명은 김여주. 나이는 스무 살이고 주량은 소주 다섯 방울, 그리고 올해 운전면허 기능시험을 합격했으며...


음. 너무 티엠아이니까 그만 알아보도록 해요.


어쨌거나 저쨌거나 악명 높은 마녀의 등장에 왕실이 소란스러워졌어요. 사람들은 순식간에 겁에 질렸고 왕과 왕비는 그 틈을 타 초대자 명단을 다시 훑어봤습니다.


"흠흠... 확인해보니 한 명이 빠져 있군."

"얘 봐라 사태파악 못하고 흠흠 이 지랄 진짜 콱 너 내가 축제 전까지 명단 꼼꼼히 확인하랬지 돌리라는 연락은 안 돌리고 허구한 날 랭겜만 돌리고 있으니 누락자가 생기는 거 아니야 이 사시사철 띵가띵가 처 노는 배짱이 같은 새"

"...여봉봉 진정. 백성들이 보고 있소."


한참 주댕이를 털던 왕비는 그제야 쌍욕파티를 멈추고 살며시 입을 다뭅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살짝쿵 띄워주는 엘레강스한 미소가 왜인지 살벌하게 느껴져요.


암튼, 여봉봉의 잔소리에 한바탕 기가 죽은 왕은 여주에게 사과를 하기로 합니다.


"미안하네. 내가 아주 골백번 죽을 죄를 저질렀어. 자네가 원한다면 사죄의 의미로 내 손가락을 내어주겠네. 하지만 검지와 엄지만은 안 될세. 그게 없으면 내가 게임을 못 해."

"아. 아뇨 전 괜찮은뎅..."

"......"

"그리고 님 손가락... 어따 써요... 징그럽게시리..."

비위도 약하고 마음도 약한 여주는 그렇게 막 큰 잘못도 아니니 이만 왕을 용서하고 나가려 했어요. 사실 아침에 가스 불 안 끄고 온 것 같아서 얼른 집에 가야 하거든요. 에구 칠칠이.


하지만, 내내 조용했던 까마귀가 별안간 귀를 콕 찌르며 발걸음을 옮기는 여주를 저지합니다.


"아얏! 야 아파아..."

"마녀님! 이대로 가면 체면이 말이 아니십니다! 고의가 아니었더라도 저희를 무시한 인간들에게 본보기를 보여줘야 됩니다! 그게 마녀의 숙명입니다!"

"아니 그래두... 잘못했다는데 굳이..."

"(콕)"

"아얏! 너 이 시끼 자꾸...!"

"(콕)"

"아얏! 아 알겠다구...... 그만해..."


사냥꾼 엽총에 곧 뒤질 것 같던 놈을 살려줬더니 은혜를 모르고 주인을 부리고 있어요. 언젠간 이 새...끼를 암시장에 헐값에 팔아넘기겠다 다짐하며 여주는 쓰라린 귀를 붙잡아요.


여기서 문제. 마녀의 상징은 무엇일까요?


삐빅, 정답. 저주입니다.


여주는 오컬트 마니아인 까마귀를 만족시키기 위해 대상을 물색합니다. 너무 심각한 건 본인도 싫기도 하고, 귀찮기도 하고. 그냥 가벼운 저주 한 번 갈겨주고 바로 집에 귀가할 예정이었답니다.


그리고 때마침 그녀의 눈에 띈 건,


"......"


왕국에 무슨 대참사가 일어나는지도 모르고 세상 꿀잠을 자고 있는 석진 공주였어요. 자고 있는데도 미모가 작살나네요. 솔직히 이건 마녀도 반하겠다. 인정?


"아, 아니그등!"


누가 봐도 홀딱 반한 것마냥 입을 헤 벌리고 있던 여주는 자신을 정면으로 꿰뚫는 나레이션에 삔또가 상한 모양인지 결국 공주에게 저주를 내리기로 했어요.


후회할 텐데. 뭐, 본인의 업보니까 어쩔 수 없죠.


마녀는 일단 자세를 잡고 주문을 외워봅니다. 음 그게... 그러니까... 뭐였더라?


"...비비디바비디부!"

"마녀님! 그게 아닙니다!"

"어... 그럼 비비고 만두!"

"맛있겠네요! 하지만 그것도 아닙니다!"

씨이... 저주를 내려봤어야 알지. 아무리 명색이 마녀라지만 여생을 착한 시민으로 살아온 여주는 꼬꼬마 시절 익혀뒀던 저주 주문을 그만 까먹고 만 것이에요.


근데 여기서 물러나기엔 뽀대가 조금···. 여주도 은근 존심이 쎈 편인가 봅니다.


그렇게 존심 쎈 마녀는 한참 고민하다가, 주문을 생략하고 그냥 머릿속에 생각나는 문장을 그대로 뱉어버렸답니다.

"다, 다들 잘 들어라! 마녀를 무시한 죗값으로 이 아름답고 사랑스럽고 핸섬한 공주에게 저주를 내리겠다!"


우르르 쾅쾅. 함 던져본 게 먹혔는지 하늘에서 천둥이 내려쳐요. 조금 의기양양해진 여주가 신나서 말을 잇습니다.


"공주 너는! 물레에 손가락을 콕 찔릴 것이다! 열다섯! 은... 너무 어린 것 같은데..."

"스물은 어떨까요! 그때 되면 법적으로 성인입니다!"

"그래 스물...! 스무살이 되는 해 물레에 손이 찔려 깊은 잠에 빠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영원히 깨어나지 못... 하는 건 좀 불쌍하구..."

"사랑의 키스를 받으면 깨어나는 걸로 하죠!"

"어어 맞아! 사랑의 키스! 그걸 받으면 잠에서 깨어나게 된다-!"

꽈광. 그렇게 90% 정도 까마귀의 에스코트를 받은 마녀의 엉성한 저주가 끝나고, 왕과 왕비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두려워하며 숨을 죽였어요.



여주는 그 정적이 너무나도 뻘쭘해 서둘러 대문을 열고 후다닥 꽁무니를 뺐답니다.


마녀가 떠난 축제 자리. 위기를 절감한 왕은 그제사 서둘러 왕국의 모든 물레를 불태우라고 명했고, 이 소란 속에서 석진 공주는 눈을 끔벅 떴습니다.

photo

"얼굴 다... 봐놨어."

실은 진작 잠이 다 깨서 여주의 쌩쇼를 다 지켜보고 있던 석진 공주였어요.


참고로, 공주는 뒷끝이 아아주 길답니다.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