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안, 네가 빛나길 원하지 않아."

이렇게 부잣집 딸처럼 자라오던 내게는 앞으로의 길이 열려있을 줄만 알았다. 내 옆의 태형이는 거의 대학병원 선택이 완료되었을 때쯤, 나도 그 병원으로 가려고 했다. 병원에서의 인턴생활은 큰 돈을 벌 수 없다.
"갈거지? 여기로."
"아마, 너랑 같이 가는게 좋지."
남자친구와 함께 같은 직장을 다닌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꽤 즐거웠다. 그 전화를 받은것도 다른때와 다름없는 한적한 점심쯤이었다. 주인 없는 남자친구 집에서 강아지와 놀고 있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엄마의 연락에 당연히 내 진로에 대해 묻을 줄 알았던 내가 어리석었다.
"응, 엄마. 왠일이야?"
"....여주야."
"무슨 일인데, 왜그래 엄마"
"아빠가 돌아가셨어."
".......그게 무슨 소리야, 건강한 우리 아빠가 왜. 거짓말."
"...얼른 여기로 와, 주소 보내줄게."
"잠깐ㅁ...!"
아빠는 차사고로 돌아가셨다. 택시 타고 외근나간 길에 택시기사가 음주운전을 했단다. 아빠는 앞좌석에 탔고, 앞에서 달려오던 차와 크게 충돌해 사망까지 이르렀다고 한다. 한 달정도 지나니 생각보다 우울함은 많이 줄었다. 생각해보니, 우리는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아빠가 돌아가셨다는 것은, 이렇게 말하기엔 조금 죄송스럽지만, 우리는 더이상 수입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였다. 내가 대학병원에서 인턴을 하며 벌 수 있는 돈으로는 너무나 부족했다.
나에게는 처음겪어보는 문제였기 때문에 더 당황스럽고 혼란스러웠다. 이런 상황을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나는 2주동안 스트레스에 휩싸여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자기야, 괜찮아? 어디 아픈 건 아니지?"
"아..,응.. 미안. 요즘 머리가 좀 아파서.."
아무걱정 없이 놀러다니자는 너를 처음으로 발견했다.
'아, 우리가 지금까지 정말 아무 걱정없이 돈을 썼던 거였구나.'
그나마 우리에겐 1년정도를 먹고 살만큼의 돈은 있었다. 하지만 1년 뒤면 없어질 걸 알기에, 나는 인턴을 선택할 수 없었다. 긴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었지만 태형이에게 말하기가 망설여졌다. 과연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싶기도 했다.
"태형아, 있잖아••"
"응, 왜?"
"나.., 병원 못들어갈 것 같아."
"....어?"
자초지종을 설명하기가 어려웠다. 얘가 나를 계속 만나줄까 싶기도 했다. 그러나 다행인건지 태형이는 "....그랬구나. 고민 많이 했을텐데.., 수고했어." 라며 나를 위로했다. 그때부터는 태형이와 무엇을 해야할지 고민해봤다.
그 뒤로 태형이는 계속해서 점점 더 높아졌고, 나는 계속해서 같은 자리에 맴돌았다. 태형이에게 가끔 받는 모든 것들이 미안했고, 부담스러워졌다. 이미 태형이 너는, 나와 너무나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내가 힘들어할 때, 너는 쾌적한 병원에서 하고싶은 일 하고 있겠지?' '내가 이만큼 벌 때, 너는 몇 배를 더 벌겠지?' 라고 계속해서 우리를 비교했다.
그렇게 1년이라는 시간이 또 갔다. 생각해보니 내가 이렇게 옆에 있으면 오히려 너의 인생에 방해가 되지 않을까 라는 걱정이 들었다. 결국 나는, 영원을 다짐했던 나는, 너와의 이별을 결심했다. 그를 예전부터 자주갔던 레스토랑에 불러 이별을 고했다.
그 레스토랑의 노란 장미와 함께.
"태형아, 미안. 나는 네가 빛나길 원하지 않는 것 같아. 부족한 나랑 지금까지 함께해줘서 고마웠어."
어쩌면 그때는 몰랐었던 것 같다. 사실 너의 성공을 빌었지만 그저 내 모습이 초라했기 때문에 이별을 다짐했다는 걸. 너의 빛남을 원하지 않았던 게 아니라는 걸.

사랑했어.
*빨간장미 : 영원한 사랑
노란장미 : 질투, 사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