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모음집

bittersweet_우리들 사이, 그 미묘한 감정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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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 추워."


 "김민규!"


 "어, 왔어."





 멀리서부터 이름을 부르며 다가오는 이여름에 김민규가 반갑게 웃으며 맞아주었다. 벌써부터 입김이 나오는 날씨에 김민규는 코트를 꺼내 입었는데, 이여름은 정말 제 이름에 동기화라도 된 것인지 여름인 것처럼 검은 원피스를 입고 나타났다. 춥지도 않은가.





 "원우는? 어디쯤이래?"


 "···거의 다 왔대. 저 앞 사거리."


 "그래? 빨리 좀 오라 그래."





 이여름의 입에서 전원우의 이름을 듣자 김민규가 순간 멈칫했던 것 같다. 전원우를 기다리며 사거리를 쳐다보는 이여름의 눈빛이 초롱초롱했다. 대체 어느 부분에서 그렇게 신이 난 건지 김민규는 도저히 알 수 없었다. 하여튼 애라니까, 이여름은.

 사거리 신호등을 사이로 전원우가 보였다. 참 빨리도 오네. 김민규가 피식 웃음을 샜다. 전원우는 이여름과 김민규를 발견하고는 작게 손을 흔들었다. 부끄러움이 많아서 일부러 작게 손을 흔든 것임에도 이여름은 온 힘을 다해 팔을 휘저었다. 전원우는 창피한지 주변을 잠시 돌아보고는 코트 사이로 입술을 파묻었다. ···오늘 전원우도 코트 입었네?

 길었던 신호등이 열리고 전원우가 건너왔다. 이여름은 반가운 목소리와 얼굴로 전원우에게 팔짱을 꼈다. 저한테도 안 하는 걸 전원우한테는 왜 하는 거야? 연인 사이도 아니면서. 김민규가 짧게 미간을 찌푸렸다.





 "나 배고픈데, 밥 먹으러 가자~"


 "그래, 뭐 먹을 건데?"





 이여름이 전원우에게 팔짱을 낀 채로 선두에 섰다. 뭐가 좋다고 저렇게 받아주는지, 심술이 났다. 김민규가 이여름의 어깨를 잡고 쑥 앞으로 달려갔다. 이여름은 깜짝 놀랐는지 이상한 소리를 내며 밀려나갔다. 전원우는 잠시 타인에 의해 빠져나간 팔짱을 꼈던 팔을 봤다. 날이 추워져서 인지는 몰라도, 귀 끝이 빨갰다.





 "야, 깜짝 놀랐잖아!"


 "그러게 누가 나만 두고 가래?"





 언제나 그랬듯 이여름과 김민규가 투닥거리자 그 사이를 전원우가 가로막았다. 제발 그만 좀 싸우라며 열을 식혀주던 전원우는 다 왔다고 말하며 음식점 앞에 섰다. 식당보다는 바 느낌이 물씬 풍기는 곳이었다.





 "예쁘네~"


 "여기 칵테일이 유명하대. 러브 코미디였나?"


 "술 이름 한 번 귀엽네."





 분위기 있는 곳을 좋아하는 이여름은 이 가게를 마음에 들어 했다. 전원우는 공들여 찾았을 가게의 정보들을 읊어주었다. 음식과 술을 시키고 김민규가 잠시 화장실을 간다며 자리를 비웠다. 유리로 된 벽이 밖과 안을 연결시켜주는 것 같았다.





 "..원우야."


 "응?"





 유리창 너머 사람들을 보던 이여름을 유심히 바라보던 전원우가 흠칫 놀라며 언제 이렇게 가까워진지 모를 몸을 고쳐 앉았다. 무언가 결심한 듯 단단한 눈빛을 한 이여름이 전원우를 바라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전원우는 왠지 모르게 점점 뛰어가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이여름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민규 없어서 하는 말인데."


 "응."


 "나 사실, 민규 좋아한다?"


 "··· ···. ···아, 그랬어?"





 혹시나, 하고 기대했던 전원우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애써 웃으며 이여름의 말의 맞장구를 쳐줄 때마다 전원우의 마음은 점점 더 가라앉았다. 언제부터, 어떻게 좋아하게 되었는지, 어떤 부분에서 설렜었는지. 한 번 털어놓기 시작하자 폭포수 터지듯 흘러나왔다. 전원우는 보는 사람에게 마저 설렘이 전해지는 이여름의 표정을 그저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 ..자기 때문에 억장 무너지는 사람은 보이지도 않지. 전원우는 여전히 웃고 있다.





 "무슨 얘기를 하는데 이렇게 신이 났어?"


 "응, 안 알려줄 거야."


 "..전원우 너도?"


 "여름이가 말하기 싫다는데, 나도 함구해야지."


 "같이 놀자고 불러 놓고 사람 따 시키네?"





 모퉁이 너머로 김민규가 돌아오는 모습을 보자 이여름이 놀라며 어색하게 웃었다. 전원우도 웃으며 반겼다. 김민규가 자리에 앉으며 흘끗 전원우의 표정을 살폈다.





 "분홍색이네?"


 "러브라서 그런가?"


 "사랑이면 다 핑크색이냐..?"





 주문한 음식과 술이 나왔다. 러브 코미디라는 이름에 반전은 없었다. 사랑에 빠진 사람의 붉어진 뺨처럼 수줍은 색이었다. 맛도 달달했다. 분위기 좋은 곳에서 그저 그런 평범한 식사를 마쳤다. 저녁이라 그런지, 구석진 골목이라 그런지. 식당을 나오니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식사할 때만 해도 사람이 많이 지나다녔던 것 같은데.





 "배도 부른데, 소화도 시킬 겸 뛸까?"


 "그러다가 탈 나."


 "뭘 또 뛰어."


 "달려어!"





 장난꾸러기처럼 웃은 이여름이 정말 달렸다. 어쩔 수 없이 이여름을 따라 달렸다. 천천히 달리던 전원우가 이여름을 추월했다. 김민규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철없던 때로 돌아간 것 같잖아. 열심히 전원우와 이여름의 뒤에서 달리던 김민규가 곧이어 숨을 헐떡이며 멈췄다. 막 전원우를 다시 추월하던 이여름도 멈췄다.





 "저질체력."


 "나도 알아···."


 "이제 막 신나려던 참인데!"


 "근데, 너, 통금은?"





 숨을 고르며 손목에 찬 시계를 본 김민규가 이여름에게 말했다. 12시 통금이 걸려있는 이여름은 신데렐라 마냥 항상 같은 시간에 사라졌다. 통금이라는 말에 헉하고 놀란 이여름이 김민규를 나무랐다.





 "그러게, 내가 일찍 만나자고 했지?"


 "시간 없던 건 너였거든? 힘들게 얻은 인턴 생활 망하려고?"


 "에이 씨, 일단 나 먼저 간다! 연락해!"


 "데려다 줄,"





 전원우가 황급히 떠나는 이여름을 붙잡으려 했지만 김민규의 손에 잡히고 말았다. 이여름이랑 정반대편에 사는 게, 차라리 내가 가고 말지. 김민규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고개를 돌렸을 때 이여름은 이미 지하철로 들어가고 없었다. 김민규가 숨을 뱉으며 허리를 폈다.





 "..빠르네. 우리도 그만 갈까?"


 "어, 가자."





 새벽을 향하는 늦은 저녁 시간, 집으로 가는 길은 조용했다. 전원우도 김민규도 먼저 입을 때지 않았다. 그렇게 쭉 같이 걷다가 이내 갈림길이 나왔다. 여기서 인사를 하고 헤어지려는데, 투둑, 툭. 거칠게 비가 쏟아져 내렸다. 하늘을 본 전원우는 소나기라고 생각했다. 머리 위에 가림막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이 날씨에 비를 맞았다가는 지독한 감기에 걸리고 말았을 거다.





 "비다."


 "곧 그칠 것 같으니까 여기서 좀 기다리자."


 "··· ···꼭,"


 "··· ···."


 "그럴 필요는 없지 않아? 마침 아무도 없고,"


 "..야, 김민규."


 "가끔 이렇게 비를 맞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잖아."





 당황한 기색이 눈에 띄는 전원우를 향해 김민규가 웃으며 손짓했다. 결국 못 이기는 척 김민규를 따라 빗속으로 들어갔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운 좋게 비가 내렸다. 전원우는 생각했다. 저가 좋아하는 사람이, 제 친구를 좋아하는 상황이라면, 여기서 어떻게 해야 할까. 어려웠다.

 김민규는 사실 들었다. 이여름이 저를 좋아한다고. 저는, 좋아하는 사람이 따로 있는데. 친구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저를 좋아한다고. 그렇게 전원우에게 이여름이 말했다. 전원우가 누구를 좋아하는지, 저가 누구를 좋아하는지는 꿈에도 모르고.

 우수수 쏟아지는 비를 향해 손바닥을 펼쳤다. 여전히 웃고 있는 김민규가,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고 있는 전원우를 봤다.





 "이대로 집까지 달릴까?"


 "네 체력으로 갈 수는 있냐."


 "우리 집이 더 가까우니까 될지도 몰라."





 나는, 너를 좋아하는데.

 중학생 때부터 이어져온 우정에 금이 갔다는 걸 그들은 깨달았다. 같은 시선으로 서로를 바라봤음에도, 그 속은 다르다는걸. 이제서야 깨달았다. 달기만 하던 우정 사이에 조금씩 쓴맛이 스며들었다. 사랑. 사랑과 우정 사이에서 우리는 어떤 결정을 내려야 더 나은 결말을 맞이할 수 있을까.

 사랑은, 어쩌다 사랑이 되었을까. 그 해답은 여전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