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째, 여주는 선일 캐피탈에서 빠져나간 2억 4천만 원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고 있었다.
계좌 하나가 다른 계좌로, 그 계좌가 또 다른 계좌로.
전에는 성호 실장 선에서 끝났던 흐름이, 이번엔 한 단계를 더 넘어갔다.
마지막 계좌의 예금주란. 손끝이 멈췄다.
선일지주.
곧바로 동민을 불렀다.
"…여기요. 돈이 선일지주로 들어갔어요. 성호 실장이 빼낸 돈이, 결국 이상혁 쪽 회사로 들어간 거예요."
동민이 화면을 들여다보다 숨을 삼켰다.
"…이거면, 단순 횡령이 아니라 지시받고 한 거라는 뜻이잖아요."
"맞아요. 성호는 실행, 이상혁은 수취. 이거면 증거가 돼요."
*
그날 오후, 분위기가 이상해졌다.
운학에게 연락이 왔다. BND 서버 쪽 접근 기록이 어제부로 전부 삭제됐다는 거였다.
"…누가 지운 거예요?"
"관리자 권한으로요. 저도 못 막았어요. 로그란 로그는 싹 다 지워졌어요."
동민의 얼굴이 굳었다.
"…우리가 뭘 찾았는지, 알아챈 거예요. 그것 말고는 이 타이밍에 다 지울 이유가 없어요."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증거를 찾은 지 반나절도 안 돼서, 저쪽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저희 쪽 자료는요?"
"그건 제 컴퓨터에만 있어서 괜찮아요. 근데 이 속도면, 다음은 계좌 쪽 자료일 수도 있어요."
"…더 늦기 전에 움직여야 해요."
*
밤, 셋이 급하게 다시 모였다.
"…금융감독원이나 경찰 경제범죄수사대, 어디든 가야 해요. 더 끌면 저쪽이 먼저 자료를 없앨 거예요."
여주가 말했다. 운학이 고개를 끄덕였다.
"금감원 쪽이 나을 것 같아요. 횡령 자금 흐름 추적은 그쪽이 전문이니까, 자료만 넘기면 바로 조사 들어갈 거예요."
"내일요. 내일 아침에 바로 가요. 정산일이 모레니까, 그 전에 끝내야 해요."
"…그럼 같이 가죠."
운학이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여주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저 혼자 갈게요."
동민의 표정이 그대로 굳었다.
"…무슨 소리예요, 그게."
"자료 들고 셋이 같이 움직이는 거, 오히려 더 위험해요. 성호 실장 쪽이 지금 제일 신경 쓰는 게 이 자료잖아요. 셋이 한꺼번에 노출되는 것보단, 저 혼자 들고 가는 쪽이 나아요."
"그 말, 얼마 전에 저한테 직접 했잖아요. 혼자 감당하려고 운학 씨 끌어들이고, 저만 떼어놓았다고."
동민이 낮게 말했다.
여주가 순간 말을 잃었다.
"…혼자 짊어지는 거, 또 시작하는 거예요?"
"그런 게 아니라—"
"아니긴 뭐가 아니에요. 위험하다 싶으면 혼자 떠안는 거, 그쪽 버릇이잖아요. 저도 운학 씨도 알아요."
운학이 조심스럽게 끼어들었다.
"…저도 형 말이 맞는 것 같아요. 혼자 가는 게 나을 이유, 지금 그쪽이 댄 것 말곤 없어요."
"…그래도."
"안 돼요. 내일은 같이 가요. 셋 다."
동민이 여주의 손을 꽉 쥐었다. 더 말을 못 꺼내게 하려는 듯, 꽉.
"…무슨 일이 있어도, 이번엔 끝까지 같이 있을 거예요."
여주가 입을 다물었다.
지는 것 같은 얼굴이었지만, 마음 한구석은 아직 지지 않고 있었다.
*
운학이 먼저 가고, 동민이 집까지 바래다줬다.
"…동민 씨, 하나만 꼭 기억해 줘요."
"뭔데요."
"두 번 다, 죽은 방법이 똑같았어요. 차였어요. 처음엔 브레이크, 두 번째는 뺑소니. 내일 가는 길에, 차 조심해야 해요. 큰길로만, 인도 안쪽으로."
동민이 걸음을 멈추고 여주를 마주 봤다. 장난스러운 기색 하나 없는 얼굴이었다.
"…알겠어요. 셋 다 그렇게 다니기로 해요. 운학 씨한테도 다시 말해 둘게요."
"…고마워요. 이렇게 말해도, 믿어 줘서."
"안 믿을 이유가 없어요. 두 번이나 겪은 사람이 하는 말인데."
여주가 그제야 웃었다.
동민이 그 어깨를 당겨 안았다.
"…내일은, 저도 긴장할게요. 그쪽 혼자 긴장하게 안 둬요."
"…아까 그 얘기, 아직 서운해요?"
"서운한 게 아니라 무서운 거예요. 그쪽, 아까 표정 보니까 완전히 포기한 얼굴 아니었어요."
가슴이 뜨끔했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연락 끊기면, 저 가만히 안 있어요. 그땐 진짜로 다 제쳐 두고 쫓아갈 거예요."
장난스러운 말투가 아니었다.
이마가 맞닿았다. 짧은 입맞춤 뒤에, 동민이 낮게 속삭였다.
"…모레 아침엔, 그냥 같이 일어나는 평범한 날이었으면 좋겠어요."
그 말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런 날, 올 거예요."
*
집에 돌아와 달력을 봤다.
동그라미 친 그 날짜가 눈앞에 있었다.
안 그런다고 약속해 놓고도, 자꾸 그 말이 마음에 걸렸다.
*
다음 날 아침, 약속한 지하철역 앞에 운학이 먼저 나와 있었다.
동민도 곧 도착했다.
"…여주 씨는요?"
"아직요. 전화도 안 받아요."
몇 분이 더 지났다.
동민이 다시 전화를 걸었다.
신호만 가고 받지 않았다.
문자 한 통이 그제야 도착했다.
"먼저 가 있을게요. 걱정 마요."
동민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씨."
낮게 숨을 삼키고는, 그대로 몸을 돌려 뛰기 시작했다.
"형! 어디 가요!"
운학이 뒤에서 소리쳤지만 대답할 틈이 없었다.
어젯밤 그 표정이, 그제야 완전히 다른 뜻으로 읽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