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상과 현실 언저리

내 방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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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방황은
: 내 방황은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은 방황을 한다. 방황이라는 단어 안에서 누군가는 자신의 몸을 망가뜨리고, 다른 누군가는 자신의 마음을 망가뜨린다. 나는 항상 의문이었다. 방황을 한다면 꼭 내가 망가져야 하는 걸까? 과연 내가 망가지는데도 행복할까? 참 모순적이게도 망가지는 건 두려웠고 행복은 하고 싶었다. 두 갈래길 앞에서 갈팡질팡하며 하루를 버티듯 살아낸 나는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피식 웃음이 새어나온다. 아, 겁쟁이 새끼. 헛웃음 마냥 조금씩 새어나오던 웃음은 이내 폐와 목이 아플 정도로 크게 점층된다. 그렇게 한참을 웃었다. 힐끗대는 사람들의 시선 따윈 안중에도 없는 듯, 나는 배까지 부여잡고 웃다 끝에선 눈물까지 흘려보낸다. 확실히 웃고 있었다. 잔뜩 올라간 광대와 입꼬리, 휘어진 두 눈까지 분명 웃고 있던 게 확실한데…





“아파. 가슴이 너무 답답해…“





 
사람들은 모두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벗겨지지 않게 꼭 붙잡고 있어야 한다는 것도. 하지만 그날따라 유독 나의 가면이 무거웠던 탓에, 가면 벗는 법을 잊어 평생을 그렇게 살아온 탓에 나는 스스로 가면을 깨버리고 만다.










내 방황은
: 내 방황은










가면을 스스로 벗어던지고 얼마 안 됐을 때, 마지막 피난처로 학교 뒤쪽의 낡은 폐창고를 찾았다. 말했다시피 나는 겁이 많은 사람이었기에 내 몸을 망가뜨리는 짓은 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행복은 해야겠어서, 미치게 행복해지고 싶어서 도망친 곳이 겨우 여기였다. 도망쳐봤자 학교 안이라는 게 자존심 상해 이를 꽉 물고서 나는 전체적으로 녹이 슨 창고 문을 당겼다. 끼이익-. 귀를 찌르는 소리가 한참 맴돌고 창고 내부를 본 순간 나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폐창고라길래 당연히 거미줄이 가득 쳐있거나 지네나 바퀴벌레 같은 것들이 기어다닐 줄 알았는데, 밖과 문만 녹슬어 그렇지 안은 깔끔하다 못해 사람의 손길이 어제까지도 닿은 듯 보인다.

나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조심스럽게 들어와 안을 쭉 훑었다. 입구 쪽 바닥에 깔린 카페트 위로 소파와 작은 테이블, 그 맞은 편에는 빔프로젝터 스크린이 걸려있고 그 옆에는 새우맛, 문어맛, 감자맛 같은 조금 촌스런 입맛의 과자들이 모아진 트레이가 있었다. 협소한 공간 덕에 소파 옆 일미터 정도 거리에 놓인 매트리스와 침구까지. 소박하지만 아늑한 공간이 꽤나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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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때, 마음에 들어?“

“아! 깜짝이야…!”





넋 놓고 구경하느라 인기척도 못 느낀 건지 갑자기 들리는 남자 목소리에 흠칫 몸을 떨었다. 재빠르게 뒤를 돌아 목소리의 출처를 확인하면 머리를 파랗게 물들인 남자 하나가 입꼬리를 올려 웃고 있다. 느낌상 저 남자가 이 공간의 주인인 건 바로 알 수 있었다. 애초에 이렇게 으슥한 곳까지 들어올 사람은 나 아니면 이 공간을 만들어낸 사람 뿐일 테니까. 옥상에나 가야겠다 하며 그대로 나가려다 남자가 내게 내민 손에 무슨 뜻인가 미간을 찌푸렸다.





“여기서 잠깐 놀다 갈래?“

“… 그래도 돼?“

“거기 편한데 앉아.”





파란 머리 남자는 창고 문을 닫고 들어와 천장 중앙에 늘어진 얇은 줄을 한 번 잡아당겼다. 적당히 환한 불이 창고 전체에 번지고, 나는 소파에 조심스레 엉덩이를 붙였다. 보면 볼 수록 아늑한 공간에 저절로 입꼬리가 슬금슬금 올라가고 있을 때, 그 남자가 매트리스 위 담요 하나를 집어 내 다리 위에 덮어줬다. 약간 사납게 생긴 겉모습과 달리 다정한 모습에 한 번, 이런 배려는 처음이라 두 번 당황해 두 눈을 끔벅이면 남자는 매트리스 위에 앉아 피식 웃음을 터뜨린다.





“이름이… 여주 맞아? 김여주?“

“어떻게 알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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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명찰.“

“아…”





명찰은 생각지도 못한 듯 약간은 멍청하게 입을 벌리고 걔를 쳐다보면 걔는 파란색 앞머리를 손으로 약하게 털어낸다. 그 틈을 타 왼쪽 가슴팍에 달린 명찰을 확인해 그의 이름을 천천히 눈에 담았다. 최연준. 이름이 참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간 찢어진 무쌍 눈과 높은 콧대, 특히나 붉은 도톰한 입술을 가진 그의 이목구비와 썩 잘 어울리는 이름인 것 같다는 생각이다. 한 번 눈이 가기 시작하면 끝까지 쳐다보는 내 이상한 습관 덕에 나는 최연준을 계속 눈에 담았다. 파란 머리가 정말 잘 어울리는 하얀 피부와 긴 목, 약간은 날티가 나는 얼굴에 와이셔츠부터 넥타이까지 전부 갖춰입은 교복이 괜히 어색한 것 같아 픽 웃어버린다. 최연준은 그런 나를 보며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아, 왜 웃는데-.”

“비밀이야. 넌 몰라도 돼.”

“김여주 완전 치사해!”





아늑한 공간의 분위기 때문일까 괜히 같이 있는 사람도 편해지는 느낌이다. 아마 거기엔 잘 웃는 최연준의 성격과 대화를 어색하지 않게 잘 이끌어 나가는 재주가 한몫한 것 같기도 하고? 덕분에 우리는 가벼운 것부터 조금은 무거운 서로의 이야기를 마음에 담았다. 말을 하고 들으면서 웃기도, 자신의 이야기엔 함부로 울지 못하는 서로를 위해 대신 울어주기도 했다. 최연준의 이야기를 듣기 전까진 나는 최연준이 마냥 사랑만 그득 받고 자란 줄로 알았다. 잘 웃고, 사람 좋아하고, 몸에 밴 매너와 다정함은 누가 봐도 좋은 집안에서 사랑 받고 자란 애들의 특성이었으니. 그러나 최연준의 상황은 내가 생각했던 모습과 정반대였다. 따뜻한 분위기에서 자랐을 것만 같던 최연준은 어릴 적부터 부모에게 버려져 고아원에서 자랐다고 했다. 심지어 지금은 혼자 이 공간에서 지내고 있다는 사실도 놀라웠다. 그의 이야기 중 가장 마음이 아팠던 건 이 모든 것들을 덤덤히 말하는 최연준 그 자체였다. 덤덤하다 못해 아무렇지도 않아보이는 최연준에 괜히 내 눈에서 눈물이 울컥 차올랐고, 결국 눈물이 한 방울 툭 떨어지고 만다.





“말은 내가 하는데 왜 네가 울어-.”

“아, 몰라… 너 왜 아무렇지도 않아? 네가 너무 덤덤하니까 괜히 내가 슬프잖아…!“

“울지 마, 사람들은 원래 본인 일엔 금방 무뎌지는 법이래.“

”다 큰 척하지 마, 바보야. 우리 아직 많이 어리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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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도 알아.“





나의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일은 가족이 죽는 것도, 사랑했던 게 없어지는 것도 아닌 너무 빨리 커버린 우리였다. 어릴 때는 분명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너무 빨리 이루어진 건지 제 나이가 되지 않아 커버린 너와 내가 너무 안쓰러울 뿐이었다. 그래서 더 눈물이 흘렀고 최연준은 그런 나를 한참 바라보다 고개를 돌려 눈가에 손 부채질을 했다. 아무래도 붉어진 눈시울을 가리느라 그런 것 같았다. 최연준은 한참 그러고 있더니 어느새 진정이 된 건지 다시 입꼬리를 올리며 나를 향해 입을 열었다.





“너는, 넌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최연준이 진정하는 동안 나 역시 옷 소매로 눈가를 벅벅 닦으며 울음을 삼켰던 게 무색할 정도로 다시 한 번 눈가가 시려워지려고 한다. 이유라면 누군가 너는 어때? 라고 물어봐 줬다는 것. 딱 그거 하나였다. 울컥 차오르는 눈물을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는 걸로 최대한 삼켜낸 나는 천천히 내 속을 들어내기 시작한다. 나는 최연준에 비하면 정말 괜찮은 삶을 살아온 사람이었다. 부모도 멀쩡하게 있고, 학교도 제때 다녔고, 정말 부족한 거 없이 살았으니까. 누군가는 복에 겨워서 이런 말을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때로는 너무 완벽해도 숨통이 조인다. 심지어 겉으로만 완벽할 때는 더더욱. 나는 언제나 속이 뻥 뚫려있는 사람이었다. 부모가 원하는, 선생이 원하는, 친구들이 원하는 내가 되기 위해 그 어떤 순간에도 가면을 벗을 수 없었고, 내 삶은 내 무언가를 바라는 사람들만 있었을 뿐 나 자체를 온전히 봐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는 여태 마음껏 울어본 적도 웃어본 적도 없었다. 항상 거짓된 가면 앞에 하염없이 미소만 지었던 게 전부인 내 감정은 무뎌진지 오래이기에. 더이상 웃는 방법도, 우는 방법도, 속을 드러내는 법도 알지 못하는 내게 어쩌면 최연준은 그 방법을 다시 알려주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할 때쯤, 최연준 눈에서 눈물이 한 방울 툭 떨어졌다.





“너야말로 왜 울어. 울지 마…!“

”네가 꾹 참으려니까 내가 더 아픈 걸 어떡해… 아까 네가 나 볼 때 이런 느낌이었나 봐.“

“어, 완전.“

”… 여주야, 나 부탁 하나만 해도 돼?“

“뭔데?“

“지금부터는 내가 먼저 너한테 손을 내밀게. 꼭 그럴 테니까,“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는 최연준과 두 눈이 마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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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그때마다 나랑 같이 도망 쳐주라.“





찰나였다. 나의 눈에서도 닭똥 같은 눈물이 툭, 투둑 떨어지기 시작했다. 왜인진 모르겠다. 그냥 함께 도망쳐 달라는 저 말이 슬픈 것보다 행복해서 콱 조였던 숨통이 같이 손 잡고 도망가자는 최연준의 말 한 마디에 탁 풀리는 것 같아서 눈물이 멈출 새 없이 터져나왔다. 두 눈에서 양 뺨을 따라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지금 내 모습이 얼마나 볼품 없을진 몰라도 나는 최연준을 바라보며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어, 그럴게. 우리 같이 도망가자. 몇 번이고 속으로 뱉던 말이었다. 울음에 먹혀 입만 뻐끔거릴 뿐 밖으로 내뱉진 못했지만 최연준은 다 알아들었다는 듯 환한 웃음으로 답했다. 우리는 눈가에 물기를 한 가득 머금은 채 서로를 위해 활짝 웃었다.

그래, 이건 내가 망가지지 않는 방황이다. 정확하게는 행복하기 위한 우리만의 도망이고. 최연준은 나의, 나는 최연준의 방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