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끝

1

눈앞에 쓰러져 빌며 살려 달라던 사람에게 다시 한 번 칼을 휘둘렀다. 피는 감정 없는 이 남자를 피해 그의 옆 바닥에 튀었다. 김선우는 손수건으로 칼을 깨끗이 닦고, 무심히 손수건을 바닥에 내던진 뒤, 어둠 속에서 밝은 곳을 향해 발을 옮겼다.
정말지루해…… 매일 하는 건 고작 이렇다. 사람을 죽이고, 술을 마시고, 또 사람을 죽이고, 또 술을 마시고, 가끔은 집안 사람들이 떠드는 허풍이나 듣는 것.
오늘 이 사람은 그가 죽인 몇 번째 사람이었을까? 그는 기억하지 않았다. 기억하고 싶지도 않았다.
어쨌든 그는 교부의 지시만 따르면 됐다. 아주 간단하고, 쉬웠다.
16년 전, 어린 그는 교부에게 거두어졌고, 그때부터 가족의 일원이 되었다. 교부에게 보답하기 위해, 그는 평생 이곳에서 교부의 권위를 지키겠다고 맹세했다.
그냥 몇 명 죽이는 것뿐, 그냥 몇몇을 팔아넘기는 것뿐…… 괜찮다. 그는 교부가 싫어하는 사람들을 전부 없애기만 하면 된다.
술집에 막 들어서서, 어두운 불빛 아래 평소처럼 마실 술을 서버가 건네는 걸 보고 있는데, 옆에서 누군가 아무렇지 않게 다가와 편지 한 통을 건넸다.
김선우는 편지를 뜯어 한 번에 잔 속의 술을 들이켰다. 다음 목표인 것 같았다.
지시대로라면 그는 목표의 집에 잠입해, 지역의 다른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은 채 조용히, 목표와 그의 아내를…… 그리고 어린 딸을 처리해야 했다.
어린 딸.
김선우는 눈앞에 있는 부부의 시체와, 한 손으로 끌어안은 채 필사적으로 몸부림치는 소녀를 바라보았다.
한 손에 든 칼에서는 아직 피가 뚝뚝 떨어졌고, 다른 한 손으로 안고 있는 소녀는 봐도 열일곱, 열여덟쯤밖에 되어 보이는 젊고 마른 아이였다.
그는 너를 바라보았다. 시선은 네 가느다란 다리에서, 치맛자락으로, 비단으로 된 매끈한 원피스로, 정교한 얼굴로, 마지막엔 하얀 목으로 옮겨 갔다.
그저 하나의 목표일 뿐이었다. 여태껏 그랬던 다른 어떤 대상과도 똑같고, 다를 게 없었다. 칼을 들어 그녀의 아름다운 목을 그어 버리고, 그녀의 눈빛이 서서히 흐려지는 걸 보고, 그녀의 피가 자신의 손바닥을 타고 흐르기만 하면 됐다. 
왜, 팔이 올라가지 않지. 왜, 이 얼굴이 웃을 때 어떤 모습일지 보고 싶지. 왜, 저렇게 반짝이는 눈이 죽은 물처럼 가라앉는 모습을 차마 볼 수가 없지.
왜. 왜. 왜. 김선우는 몇 번이고 자신에게 물었다. 그는 너를 노려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냥 실행하면 된다.” 김선우는 교부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리는 걸 들었다. 그런데…… 그는 망설였다. 
너는 김선우가 정신이 팔린 틈을 타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비명을 지르며 문 쪽으로 달아났다. 안에 있는 다른 주민들의 이목만 끌면…… 문은 김선우가 미리 잠가 두었다.
네가 자물쇠를 열려 하는 동안, 김선우는 이미 네 뒤로 와 있었다. 오른손으로는 네 허리를 감싸 안고, 다른 손에는 칼을 들어 목의 동맥을 겨누고 있었다.
“아주 다정하게 해 줄게.” 너는 김선우가 네 뒤에서 조용히 말하는 걸 들었다. “네 아름다움에 걸맞게.” “당신은 누구예요? 아니…… 누구 편이죠?” 네 목소리는 떨렸다. “알 필요 없어.”
말해 줘, 하늘이여. 이것이 내 운명이라면. 오늘 내가 이 세상에서 떠나야 한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면.
말해 줘, 교부여. 이것이 내 운명이라면. 오늘 내가 이 소녀를 죽였음을 인정해야 한다면. 나는 더 이상 떠나고 싶지 않다.
“말해 줘요, 어떻게 하면 날 놔줄 건지.” 네가 낮게 물었다. “이건 전부 저랑 상관없는 일이에요. 제 부모님이 뭘 하는지 몰라요.”
 네가 말을 끝낸 뒤 한참이 지나도, 뒤에서는 침묵뿐이었다.
“제발…… 내가 여기서 죽게 정해진 거라면, 부디 한 번에 끝내 주세요!”
부드러운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이 김선우의 어깨에 닿아 간질였고, 그의 마음을 가볍게 긁었다. 심장은 몸을 다음 단계로 재촉했지만, 머리는 긴장 속에서 잘못된 명령을 내렸다. 김선우는 자기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는 걸 들었다. “너…… 나랑 같이, 커피 한 잔 할래?”
거실에는 시체 두 구가 누워 있었고, 방 안의 산 사람은 극도로 애매한 자세로 문가에 바짝 붙어 있었다. 죽음과 로맨스는 아마 이곳에서 매일같이 상연되는 극일 것이다.
너는 홀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
차가운 칼이 목에서 떨어지고, 넓은 손이 아랫배에 따뜻함을 가져다주었다. 심장은 아직 뛰고 있었지만, 정작 너 자신도 그게 죽은 부모님 때문인지, 아니면 뒤의 가문을 몰살시킨 원수 때문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너는 그의 코트를 덮인 채 마피아 관할이 아닌 구역까지 옮겨져, 술집 꼭대기의 좁은 방에 혼자 남겨졌다. 그는 모든 걸 잘 처리할 거라며, 아무도 의심하지 않을 거라며 말했다. 그는 네 안전을 지켜 주겠다며, 다른 사람이 너에게 가까이 오게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는 너를 데리고 커피를 마시러 가겠다고, 다른 그 누구도 더는 너와 데이트하는 걸 허락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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