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연과 조연의 상관관계
그가 여주에게 톡 쏘아붙였다. 여주는 그들의 눈치를 보며 다가갔지만, 이내 제 손을 잡아오는 연이에 마음이 한시름 놓였다.
"여주야, 다음수업 때 나랑 같이 앉자!"
"어..?"

"연아, 넌 우리랑 앉기로했잖아."
"너네랑 앉기로했지. 그니까 여주도 같이 앉자고-"
연이를 제외하고 또 한번 여주를 곱지 않게 바라보는 그들이었다. 아마 연이랑만 앉고 싶었던 자신들의 생각이 들어맞지 않아 여주를 노려보고 있는 것 같다. 그렇게 달갑지 않은 그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은 채 연이를 따라 발걸음을 옮기면, 궁궐 안으로 들어간 후, '세미나실'이라는 표지판이 걸려있는 곳으로 들어갔다.
"너희는 여기앉아. 난 여주 옆에 앉을래!"
".. 그냥 너 하고싶은대로 해라."
"연아, 우린 바로 뒤에 앉을게."
주연이 부러웠다. 어떻게 하면 저들의 사랑과 관심을 한 몸에 받을 수 있는건지, 나라면 절대 하지 못할 일이었다. 그렇게 얼떨결에 연이의 옆자리에 착석하면, 곧 앞문이 열리고 누군가 들어왔다. 그 사람의 외향모습은 길고 덮수룩한 흰 수염을 가졌고, 걸음걸이는 매우 느렸다.
"저 분은 누구셔..?"
"코르니 교수님이셔! 우리 푸아바르 왕국의 역사학을 가르쳐주시는 분인데, 목소리가 완전 자장가야.."
"저, 연아. 나 궁금한게 있는데 여기서는 뭘 배우는거야..?"
"응? 입궁했을때 설명은 다 들었을텐데. 대위님이 알려주시지 않았어?"
코르니 교수님, 푸아바르 왕국, 대위님. 당최 무슨 말인지 모르는 것들만 늘어놓는 연이였다. 아무것도 들은게 없는 여주는 그 말들의 의미를 모르는게 당연했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연이에게 물음표만 날리는 여주를 보고, 옅은 웃음을 터뜨리는 연이였다.
"집중해서 안 들었구나. 내가 다시 설명해줄테니까, 이번엔 집중해서 들어-"
"응!"
"이 궁궐의 이름은 푸아바르야. 그래서 궁 사람들은 모두 이곳을 푸아바르 왕국이라 불러."
"푸아바르..?"
"응. 이 궁에서는 여러가지 수업들을 배우는데, 지금이 제일 중요한 푸아바르의 역사수업이고, 필수로 들어야 할 또 다른 수업은 정치학과 경제학. 나머지 간단한 수업들은 선택이야! 예를들면, 음악이나 미술같은..?"
일반 고등학교에서 배울만한 그런 수업들은 아니었다. 내가 다니던 학교에서는 국영수사과를 배웠다면, 이곳의 수업은 무언가 더 심오하고 복잡할 것 같은 수업들이었다.
"정치학, 경제학..? 그걸 왜 배우는건데?"
"그야, 이 푸아바르 왕국의 통치자가 되기 위해서지. 왕국을 이끄는데 꼭 필요한 정치와 경제를 배우는거야."
"그럼 여기 있는 학생들은 모두 통치자가 되기 위해 수업을 듣는다는거야?"
"응! 35년 전까지만 해도 이 왕국을 통치하는 왕과 여왕이 있었는데, 두 분 모두 돌아가시고, 그 이후로부터는 이 왕국을 통치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어."
"왜..? 이렇게 학생들이 많이 있는데?"
"통치자가 되기 위해선 이 궁궐에서 치루는 마지막 최종시험에 합격해야하거든. 하지만 지금까지 35년동안 그 시험에 통과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나봐-"
이 궁궐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것들이 이제 조금씩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연이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면, 어느새 수업이 끝난건지 코르니교수님은 책을 덮고 수업을 마무리하고 계셨다.
"헉, 미안해.. 나 때문에 수업도 못 듣고.."
"괜찮아, 입궁한지 얼마 안되서 모르는게 많을거야- 또 궁금한 거 있으면 언제든지 물어봐!"
"응! 고마.."
"연아, 밥 먹으러가자. 오늘 저녁 너가 좋아하는 옥수수스파게티 나온데."
"진짜?!?! 빨리가자!!!"

"그게 그렇게 맛있어, 연아?"
한껏 밝은 표정을 짓는 연이에 석진이 연이의 흘러내려온 잔머리를 귀 뒤로 넘겨주며 살풋 웃었다. 여주가 책상 위에 놓여있는 책을 챙기는사이에, 이미 세미나실 밖을 나서는 그들이었다. 연이의 친절함에 자신도 모르게 뭐라도 된 줄 알았지만, 현실은 이게 맞는거지. 오늘 저들은 나를 처음만났고, 연이가 생각하는 나는 그저 같은 반 학생이였을 뿐이니까.
"아 맞다, 여주 같이 밥 먹을 사람 없을텐데.."
"알아서 먹겠지. 늦게가면 음식없다-"
"그래도.."

"넌 너무 착해서 탈이라니까. 그렇게 남만 생각하면 너는 언제 챙겨."
이내 태형이 연이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었고, 그렇게 여주를 세미나실에 둔 채 연이의 등을 떠밀며 식당으로 향하는 그들이었다. 그에 책을 챙기던 여주는 별로 배고프지도 않고, 이 궁궐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궁의 구조를 어느정도 파악해야겠다 싶어 궁궐 내를 돌아다니기로 했다.
"와.. 진짜 크다-"
높이 솟아있는 천장, 거기에 달려있는 화려한 샹들리에. 길게 늘어진 복도, 수많은 방들. 이 중에 내가 지낼 곳은 어디인가, 긴 복도를 계속 걸어가다보면, 맞은 편 벽에 어느 한 여인이 그려진 아주 큰 액자가 걸려있는 것을 보았다. 한 눈에 담기 힘든 크기. 여주는 그 액자를 이리저리 살펴보며 액자 속의 여인을 주시했다.
빠져들어갈 것 같은 깊은 눈동자, 그림으로도 느껴지는 그녀의 기품. 무엇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여주는 넋이 나간 채 그 그림을 바라만보았다. 시간이 계속 흘러가는지도 모른채, 그 액자 속 여인의 눈동자를 바라보고있으면, 언제부터 있었던건지 옆에서 누군가 말을 꺼냈다.

"여왕님이셔. 35년 전, 푸아바르 왕국의 마지막 통치자."
"으악!!!"
"뭘 그렇게 놀라, 아까부터 서있었는데."
갑자기 나타난 그의 등장에 여주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진정을 하면, 뭘 그렇게까지 놀라냐며 여주에게 손을 내미는 그였다. 주연의 무리 중 한명이었던 그가, 자신에게 처음 보인 친절이었다. 넘어진 사람을 일으켜주는 당연한 행동인데, 그 행동이 왜 이렇게 고마운건지. 내민 그 손을 얼른 잡고 다시 일어서면, 다시 입을 여는 그였다.
"입궁한지 얼마 안됐다며. 연이한테 들었어."
"응.. 모르는것도 아직 많아. 이 궁, 푸아바르 왕국에 대해서."
"힘들어도 악착같이 살아. 적어도 이 궁에 들어왔으면."
"어..?"
"내 이름, 정호석이야."
악착같이 살아. 이 말이 크게 와닿았다. 이 세계로 오기 전, 삶을 포기할만큼 힘들고 고달팠던 여주에게 그 말은 큰 위로가 된 모양이었다. 가슴 속에서 무언가 뜨거워지고있었고, 마음 한 쪽 구석이 저리고 아파왔다. 결국 주저앉아 고개를 푹 떨구고 울음을 터뜨리는 여주에 호석은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흑… 끄읍… 미안 호석아…
"야, 너 괜찮.."
"여주야!!!"
울고있는 여주를 보고 놀란건지, 저 멀리서부터 여주에게 한달음 달려가는 연이였다. 같이있던 정국과 남준도 그런 연이를 뒤따랐다. 순식간에 여주의 주위는 그들에게 둘러쌓였고, 여주를 걱정해주는건 연이였다.
"야, 정호석. 너가 여주한테 뭐라했어?"
"연아, 호석이 잘못아니야… 오히려 고마운걸…"
"일단 내가 방으로 데려다줄게. 푹 쉬는게 좋겠다."
이내 여주를 일으켜 부축하는 연이였다. 여주를 데려다주고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겠다며 남준, 정국, 호석은 그 자리에 머물렀다. 그렇게 연이의 도움을 받으며 발걸음을 옮기면, 어느새 내 이름이 적힌 팻말이 걸려있는 방에 도착했다.
"오늘은 이제 더 이상 수업 없으니까, 들어가서 푹 쉬어."
"고마워, 연아.."
"그럼 내일 봐! 좋은 꿈 꿔-"
"아! 연아 혹시.. 호석이한테 고맙다는 말 전해줄 수 있어..?"
"전해줄 수는 있는데.. 왜, 무슨일이야?"
"날 위로해줬거든. 아까 거기서.."
잠시동안 여주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는 연이였다. 이내 밝게 웃으며 호석이에게 꼭 전해주겠다고 한 뒤, 여주의 방문을 닫고, 아까 그곳으로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여주는 연이에게 참 고마웠다. 이렇게까지 착한아이가, 내 편이라는게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까 호석이의 말대로, 정말 악착같이 살아야지. 여기서 이뤄야 할 내 목표는 이 왕국의 통치자가 아닌 궁극적인 내 행복을 찾는거니까. 정말 열심히 살다보면 행복이라는게 나에게도 언젠가 찾아와줄 것이라고 믿는다.
"으… 피곤해…"
오늘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하루종일 들고다니던 무거운 책을 책상위에 올려두고, 그대로 침대에 몸을 던지며 얼굴을 이불 속에 파묻었다. 정말 피곤했는지, 침대에 눕자마자 바로 잠이 든 여주였다. 이때, 책상 위에 올려두었던 책의 표지가 넘어가더니, 비어있는 책장의 첫번째 장이 펼쳐졌다.
<연이에게 소중한 친구가 생겼다. 석진, 윤기, 호석, 남준, 지민, 태형, 정국. 그들은 연이의 새로운 친구를 반기지 않았지만, 연이는 새로운 친구가 생겼다는 사실에 신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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