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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묘한 악당들

W. 그쁨




- 센티넬버스 세계관을 이용하나, 센티넬 > 에스퍼 로 명칭을 바꿔 사용하며, 센티넬 고유의 능력을 '이능'이란 단어로, 센티넬의 발현을 '개화'라는 단어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 이 외 다른 설정들은 센티넬버스 고유의 세계관과 유사하나, 몇 가지 차이점이 있을 수 있음을 알립니다.

-경고! 작가는 주인공을 상당히 비도덕적인 인물로 생각·표현하고 있습니다.

- 작가가 또 급발진해서 썼습니다.















"S730928번, 투약 시작합니다."




굵은 주삿바늘이 팔의 얇은 피부를 뚫고 들어오는 감각은 몇 번을 겪어도 익숙해지질 않는다고 소녀는 생각했다. 따끔함보다는 끝없이 밀고 들어오는 주삿바늘의 느낌이 더 싫어 소녀는 입술을 감쳐물었다. 그렇지 않으면 우는소리를 낼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주사기를 가득 채운, 정체를 알 수 없는 황금빛 액체가 소녀의 몸으로 흘러들어갔다.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소녀의 몸에 액체가 흘러들어간 것을 확인한 연구원이 조심스레 소녀의 팔에서 주삿바늘을 빼냈다. 그와 동시에 팔을 타고 올라오는 고통과, 잘게 경련하기 시작하는 몸뚱이에 소녀가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리며 눈을 감았다.




"이번이 몇 번째 투약이지?"

"9번째입니다."

"마지막인가? 그렇다면 형질도 완전히 바뀌었겠군."

"지난 투약 때만 해도 거의 완성에 가까웠으니, 이번만 잘 버텨주면 형질 변화는 끝날 겁니다. 밑작업은 오늘이 끝입니다."

"바로 이식을 시작해도 문제없을 정도인가?"

"예? 아, 아마도 그럴 겁니다."

"그래…, 그렇다면 바로 이식을 시작하도록 하지."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자, 빈 주사기를 손에 쥐고 있던 연구원이 고개를 한번 숙여 보이곤 실험실을 나섰다. 방탄유리 너머로 보이는 발작하는 소녀의 모습을 눈에 담던 남자가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드디어. 낮은 음성을 나지막이 내뱉은 남자는 소녀에게서 시선을 뗄 줄을 몰랐다. 거품까지 물며 고통에 몸부림치던 소녀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안정된 모습을 보였다. 아홉 번의 투약 동안 꾸준히 있었던 일이었다. 발작 증세가 멎고, 거칠게 씨근덕대던 숨이 차분해질 때 즈음, 실험실을 나섰던 연구원이 원형의 함을 들고 돌아왔다.




"그 이능은 뭐지?"

"독입니다."

"독? 저 아이가 직접 선택한 건가?"

"네, 그렇습니다. …바로 이식을 시작할까요?"

"그러도록 하지."




어지간한 폭발에도 끄떡없을 정도로 강력하게 만들어진 실험실의 문이 열렸다. 연구원이 발작 증세를 멈춘 소녀에게 다가가는 것을 보며 남자는 소파에 몸을 파묻었다. 성공이 코앞이었다. 소녀에게 무어라 말을 전한 연구원이 원형의 함을 열어 소녀에게 내밀었다. 땀에 푹 젖은 얼굴로, 기력이 없어 눈을 반밖에 뜨지 못한 채 실험실의 의자에 널브러져 있던 소녀가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렸다.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함에 있던 초록빛의 구슬을 집어 든 소녀는 연구원이 재차 무어라 말하는 것에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곤 망설임 없이 구슬을 제 입으로 밀어 넣었다. 목구멍으로 구슬을 밀어 삼키는 것을 확인한 연구원이 뛰다시피 다가와 실험실의 문을 열어젖혔다. 철컥, 굳게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소녀는 구슬을 완전히 삼켰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소녀가 고통스러운 신음을 토해냈다. 투약했을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고통으로 가득 차있는 비명이었다. 이윽고 제 가슴께를 쥐어뜯으며 울부짖는 소녀의 모습에 소파에 앉아있던 남자는 당황스럽단 표정으로 연구원을 쳐다보았다. 이식하는 과정일 뿐입니다. 진땀을 흘리며 연구원이 남자에게 설명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실험실 안의 소녀의 움직임이 죽은 듯 멎고, 그 입에서 검은색에 가까운 초록빛 액체가 뚝뚝 떨어지기 시작하자 연구원의 얼굴이 희멀겋게 질렸다. 남자가 거친 몸짓으로 연구원의 멱살을 잡아챘다.




"네 입으로 성공에 가깝다고 하지 않았나? 저게 성공한 실험체의 모습이 맞냐고!!"

"컥, 커억, 이, 이론상으로는 분명, 성, 공에 가까운 상태가 맞았, 맞았습니다!"

"그래, 저 모습이 성공에 가까운 모습이라고?"




침대에 힘없이 축 늘어진 소녀는 이제 입뿐만 아니라 몸의 모든 구멍에서 초록빛 액체를 뿜어내고 있었다. 독, 생명에 해가 되는 성분. 그 위험천만한 이능을 삼키게 된 만큼 실험이 쉽지 않을 것이란 사실은 남자 또한 알고 있었지만, 성공이 바로 눈앞에 있다 기대하던 순간 처참한 실패를 맛본 지금, 그는 이성적인 생각을 이어갈만한 상태가 아니었다. 그래, 네 눈엔 저게 성공으로 보인단 말이지. 남자가 연구원의 멱살을 잡은 채 실험실의 문을 열었다.




"성공이라 했나? 그렇다면 네가 그 안에서 뒤지지 않고 살아남을 가능성도 있겠군."

"커헉, 국, 국장님…!"




철컥, 실험실의 문이 잠기는 소리와 연구원이 미친 듯이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시끄럽게 울렸다. 소녀의 몸에서 나온 초록빛 액체들이 기화하기 시작했다. 이능의 효과였다. 곧 실험실 안의 공기는 죄다 독으로 가득 찰 것이었다. 공포에 질린 연구원이 미친 듯이 울부짖다 실금하는 꼴을 남자는 미동도 없이 지켜봤다. 제 목을 감싸 쥐고 컥, 컥, 하는 소리를 내다 픽 쓰러지는 모습을 볼 때도 그랬다. 남자는 흐트러진 앞머리를 쓸어넘기며 소파에 주저앉았다. 실패다. 이번에야말로 성공하리라 호언장담을 했건만은.

담배에 불을 붙여 한 모금 깊게 빨아마신 남자가 유리창 너머를 응시했다. 초록빛으로 가득 찬 실험실. 저 안엔 더 이상 살아 숨 쉬는 생물이 존재할 수 없을 것이었다. 그가 가장 귀애하던, 가장 상태가 좋던 실험체인 소녀 또한 결국 죽었으리라. 참담한 심정으로 담배를 빨아마시던 남자의 시야에 꿈틀거리는 무언가가 잡혔다. 남자의 눈이 가늘어졌다. 설마, 하는 생각과 함께 몸을 벌떡 일으킨 남자의 발치로 반도 채 타지 못한 담배가 떨어졌다. 남자의 입꼬리가 말려올라갔다. 소녀가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성 박사를 불러, 지금 당장."




주머니에 처박아두었던 핸드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건 남자가 '예, 국장님.' 하는 상대의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명했다. 여전히 그의 시선은 소녀에게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영문을 모르겠단 얼굴로 온통 초록빛으로 가득한 실험실을 둘러보고 있는 소녀에게. 그리고 이어진 소녀의 행동은 남자의 볼에 기어이 보조개가 파일 정도의 웃음을 선사할 수밖에 없었으니, 마치 제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양, 소녀는 양손을 가지런히 모았다. 소녀의 손으로 초록빛 독성들이 죄다 빨려 들어갔다. 실험은 더없이 완벽하게 성공했다.

이능이 개화한 것이다.

남자는 지체할 것 없이 실험실의 문을 열었다. 실금한 채 죽어있는 연구원의 시체를 아무렇게나 발로 밀어 치운 남자가 소녀에게로 다가섰다. 성큼성큼 다가서는 남자를 보는 소녀의 눈에 초록빛이 감돌았다. 남자는 미소가 만연한 얼굴로 소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S730928번,"

"……."

"네 이름이 뭐지?"




소녀가 눈을 깜빡였다. 식은땀으로 축축하게 젖은 소녀의 머리를 다정하게 쓸어넘겨주며 남자가 다시 물었다. 네 이름은? 소녀의 작은 입이 열렸다.




"김지원입니다."

"…김지원?"




…우연의 일치인가? 남자는 중얼거렸다. 이윽고 뭐가 됐던 상관없다는 듯, 진한 미소를 지으며 소녀의 뺨을 사랑스럽다는 듯 쓸어내렸다. 성공했다. 인위적으로 에스퍼의 이능을 개화시키는 실험은, 그 누가 뭐라 하더라도 성공이었다. 실험의 결과물인 완벽한 소녀가 바로 남자의 눈앞에 있는데, 감히 누가 실험의 성공에 반박할 수 있겠는가.

남자는 만족스레 웃었다. 그 두 눈에 검은 욕망이 일렁거렸다.















새 연재작!
잘 부탁드려요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