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녀는 살아남길 원한다.
W. Flower_화령
“나를 위해 죽어줘. 카르시아.”

검붉은 선혈들이 뚫린 검에 의해 쏟아져나왔다. 꿈인가… 아니였다. 배에 느껴지는 신음조차 나오지 않을 통증이 그 증거였다. 연인을 꿰뚫은 사내의 눈빛은 참으로 무심했다. 한때 서로 사랑했다는 사실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처럼. 금방이라도 숨이 끊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몸을 겨우 붉은 물이 고인 대리석 바닥에 손을 짚고서 고개를 들어올렸다. 하인스 이안 헬리오. 마녀였던 그녀가 사랑했던 사내. 갈라진 목소리에는 의문이 담겨있었다.
“대, 대체 왜…”
왜 이러냐고, 묻고싶었으나 그 마저도 잠긴 목소리에 막혔다. 이젠 숨을 쉬는것 조차도 힘겨워진 그때, 몸이 휘청거리며 앞으로 쏠렸다. 풀썩- 하고 쓰러진 시야 사이로 쭈그려앉아 그녀를 찌른 검을 든채 눈을 맞추는 그가 보였다. 밝은 갈색빛을 띄는 눈동자. 옛날엔 다정한 눈빛이라 생각했는데… 죽을 때가 되니 서늘하기 짝이 없었다.
“카르시아, 이건 네 탓이야.”
“… …”
내 탓이라고?… 흐릿해져 가는 시야로 맑은 물기가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사랑했다. 그래서 모든것을 내어주는 것도 모자라, 그가 원하는 황위까지 쥐어주었는데 내 탓이라고?. 분노보다도 허무했다. 자신이 이런 말을 들으려고 그를 위해 나선 것이 아닌데…
“넌 언젠가 내 숨통을 조여오겠지.”
“… …”
“그리고 나를 죽이고 황위를 차지할 거야. ‘그 녀석’과 함께.”
“… …”
“그래서 죽이는거야. 내가 죽기전에 너를.”
참 웃기지 않나. 그토록 사랑하던 이가 자신을 불신하고 있었다는 것도 모자라, 제게 자격지심과 열등감을 가지고있었다니… 인생에서 이것보다 더 허무한 것이 뭐가 있겠나.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오백년을 살면서 후회한 적이 없었다. 근데, 결말이 이럴 줄 알았더라면… 사랑하지 말걸…
하인스, 널 사랑하지 말았어야 해.
가쁘게 오르락 내리락 하던 가슴팍이 점점 멎기 시작했다. 죽음이 다가왔다. 카르시아의 눈이 감기는 것을 확인한 하인스는 그녀를 찔렀던 검을 바닥에 내팽겨치듯 하고서 새까만 흑발에 손을 올렸다. 제 딸을 재우듯 머릿결을 만지는 손이 퍽, 다정했다. 죽은 카르시아가 이 손길을 느꼈다면, 예전처럼 웃어주었을까. 하인스는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네 뜻대로 그 아이는 살려줄게.”
“… …”
“그 아이도 알아야지. 진정한 승자가 누군지.”
이제는 살아있다고 믿기지 않을만큼 온 몸이 식어버린 카르시아를 보며 왠지 미묘한 감정이 들었다. 방해물을 치워서 기쁜가 물으면, 아니다. 그렇다고 슬픈가, 라고 물어도 답을 쉽게 내놓지 못했다. 차라리 기뻤으면 더 다행이였다. 이건 안도감이였다. 지금 상황과 절대로 어울리지 않았지만 확실했다.
“끝까지 나쁘게 되었어.”
하지만, 후회는 하지않아. 이런 상황을 만든 장본인 답지 않게 하인스의 곱게 접은 눈가는 어여뻤다. 정리를 하기위해 낮추었던 시야를 일으키기 무섭게 황홀 밖으로 무섭게 말발굽 소리가 성 안을 메웠다. 벅차고, 무거우며 급한 소리. 하인스 대충 예상이 갔다. 말의 주인이 누군지.
“카르, 카르시아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멀리서부터 뛰어오는 사내, 카르시아의 심복이자 어느날 갑자기 나타나 저를 거슬리게 했던 남자. 뷔 프로메테우스였다.
“카르시아, 님… 대체 왜…”
재빠르게 뛰어오던 그가 붉은 웅덩이 위에 쓰러져있는 카르시아를 보고서 발걸음을 뚝- 하고 멈추었다. 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는 듯 무거운 숨을 내뱉었다. 하인스는 그런 그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황궁에 오기까지 못해도 사흘은 걸릴줄 알았는데. 쯧, 하고 혀를 차자 뷔의 시선이 하인스에게로 닿았다.
“서, 설마… 당신이, 하인스 당신이 이런겁니까?!!.”
“무엄하다. 난 황제다. 그동안은 카르시아 앞이라 봐주었지만, 이젠 그녀도 죽었으니 예를 차려라.”
뭐?… 말이 나오지 않았다.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투성이였다. 카르시아님은 왜 죽은것이고, 그녀의 연인이던 하인스는 왜 저리도 태연한가. 뷔의 시선이 피가 묻은채 버려져있는 검을 향해 옮겨갔다. 설마… 라는 말이 멤돌고 멤돌았다. 사내로써 마음에드는 자는 아니였어도, 그녀를 사랑하는 마음은 진실이라 여겼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하인스의 입꼬리가 태연하게 올라갔다.
“그래. 내가 죽였다.”
쿵. 심장이 발끝으로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저런 말을 어떻게 태연하게 할 수 있는가. 그것도 그녀의 연인이던 자가… 눈이 뒤집혔다. 온몸에서 무거운 마력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공기가 무거워지는 것은 물론이고, 숨을 쉬는것 조차 힘들어지는 하인스는 바닥에 주저앉아 가쁘게 숨을 내쉬었다.
“…다시 한 번 말해봐.”
“크윽!, 지, 지금, 반역이라도 저지르겠다는 거냐?!.”
반역?, 못 할것도 없었다. 그녀가 저놈에게 내어준 자리이니, 그녀의 곁을 늘 지켰던 자신에게도 권리는 있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저놈을 죽이지 않으면, 속에 있는 분을 표출할 곳이 없었다. 뷔는 손을 뻗었다. 저 놈도 죽이고 저도 카르시아를 뒤따라 갈것이다. 마음을 먹은 그는 손에 마력을 모았다. 평범한 기사출신 황제야, 제 손에선 파리 목숨이였으니까.
모은 마력을 표출하려던 그때, 갑자기 뷔의 몸이 멈췄다. 순간적으로 휙- 하고 돌아간 그의 시선이 죽은 카르시아의 몸으로 향했다. 뷔의 눈에만 보이는 일렁이는 잔빛이 카르시아의 몸을 감쌌다.
“설마…”
다급히 모았던 마력을 풀고 카르시아의 시신을 품에 안아들었다. ‘이건 분명…’ 중얼거린 뷔의 뒤로 몸이 훅- 하고 풀린 하인스는 부들거리는 몸을 겨우 일으키며 뷔를 바라보았다. 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거냐, 라는 말을 꺼내려던 그때. 몸을 안아든 뷔가 황궁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제발, 늦지 않게 해주세요.”
뛰쳐나간 뷔는 카르시아의 시신을 들어올린채 필사적으로 계단을 빠르게 내려갔다. 무슨 짓을 써서라도 영혼이 떠나지 않은 그녀를 살려야했다.
그게 설령 악마와 계약을 하는 것이라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