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녀는 살아남길 원한다
W. 꽃서령
“그래서, 공작께서 절 이리 급히 부르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눈 앞의 찻잔을 디저트 삼아 눈꼬리를 어여삐 접은 제이홉이 물었다. 뷔는 처음 생각해놓은 계획을 토대로 그에게 털어놓았다, 마력에 대해. 처음에는 깊게 생각하는 것처럼 보이더니, 곧 그는 웃음을 빵- 터트렸다. 웃는 모양새가 정말 웃겨서 터져나온 웃음이 아니란걸 알았기에, 뷔는 미간을 좁힐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는 미리 알았던 모양이다.
뷔가 그에게 털어놓은 이야기 모든게, 전부 자신이 아닌 다른 이의 이야기라는 것을. 제이홉은 곧, 찻잔을 내려놓고 양 무릎 위로 팔꿈치를 얹어 손깍지를 끼었다. 누가봐도 거만한 행동이였지만, 딱히 지적하지 않았다.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였다. 그가 카르시아님을 고쳐줄 수 있을 것이란 희망.

“공작님은 절 바보로 아십니까?.”
“…그게 무슨 뜻이지?.”
제이홉은 얼굴에는 여전히 미소가 지워지지 않았다. 설마 알아챘을까 싶으면서도, 뷔는 애써 침착함을 유지했다. 그리고 그 노력은 헛되지 않을 정도로, 다른 이가 본 뷔의 모습은 정말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문제는 제이홉 피델리오. 상대가 마탑주라는 것과, 모든걸 꿰뚫어보는 통찰력을 가졌다는 것이 문제였다.
제이홉은 곧장 검붉게 핀 장미 여러 송이가 꽂혀있는 화병 몇에 곱게 놓여있는 찻 주전자를 들었다. 그저 제 찻잔에 차를 따르기 위한 행동이라 보일 수 있었지만, 제이홉은 상상보다 더 치밀한 사람이였다.
“전 마탑주입니다. 그것도 반은 악마의 피를 이어받은.”
“… …”
“전대 마탑주와는 차이가 날 수 밖에 없죠. 저는 그들과는 레벨 자체가 다르니까요. 그런데, 이런 제가-“
제이홉의 손길에 뜨거운 찻물이 반도 채 마시지 않은 뷔의 찻잔에 따르다 못해 흘러넘치기 시작했다.

“당신이 아닌 이 저택의 다른 이의 몸에서 마력이 흘러넘치고 있단 사실을, 제가 못 알아챌 것 같으셨습니까?"
처음에는 단순히 재미였다. 짐승으로 악명높은 뷔 프로메테우스 공작의 편지가 마탑에 처음 도착했을 땐, 이 지체높은 나으리께서 대체 무슨 바람이 들은걸까. 이런 생각이 다였다. 단지 흥미로웠고, 우스웠을 뿐. 정말 그게 다였다.
하지만, 금방 포기할 것으로 예상한 것과는 다르게 그는 편지를 꾸준히 보내왔다. 마침내, 일곱 여덞 통째가 마탑에 닿은 날 제이홉은 그의 인내심을 시험해보기로 했다. 그렇게 열 통째가 도착하던 날, 제이홉의 호기심은 극에 달했다. 대체 무슨 부탁을 하려기에 이렇게까지 자신을 찾는지.
처음엔 별 부탁이 아니라 생각했다. 간절해보이면, 대충 들어주고 보상금이나 두둑히 받아챙길 생각이였는데, 그 생각은 제이홉이 공작저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단번에 바뀌어버렸다. 비정상적이게 불안정한 마력과, 거꾸로 흘러가는 마력.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뛰어넘는 방대한 마력의 기운을 느끼고서 제이홉은 생각을 고쳐먹었다.

‘이건 공작의 마력이 아니야, 색이 달라.’
그리고 확신했다. 뷔 프로메테우스 공작이 누군가를 이 넓은 공작저에 숨겨두고 있다는 사실을.

“… …”
강한 것은 알고 있었지만 마력의 색까지 읽을 수 있을 줄이야. 뷔는 카르시아의 존재를 들킬까 초조했다. 그녀는 지금도 충분히 강하지만, 이제 카르시아는 카르시아가 아니였다. 정체를 들킨다면 똑같은 일이 반복되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 그래서 함부로 입을 열 수 없었다. 차라리, 그녀가 힘을 잃는 것을 선택할 지언정. 다시 죽는 카르시아의 모습을 볼 자신이 없었기에.
“대체 무엇을 숨기고 계신 겁니까.”
“…내가 무엇을 숨기고 있다는 거냐.”
“이 저택에 흘러넘치는 방대한 마력 하며, 모두가 다 아는 마녀의 개였던 당신이 그녀의 죽음을 알고도 황제 폐하를 찾아가지 않은 것.”
“… …”
“제가 볼때는 충분히 이상한 것 투성인데요.”
제국의 몇 안되는 마력 보유자가, 저런 사나운 눈빛으로 서로를 죽일 듯이 노려보니 곁에서 지키고있던 카렌은 숨이 막힐 지경이였다. 제발, 누구라도 나서서 이 상황을 무마시켜주면 좋으려만… 뒤늦게라도 말려볼 요량으로 발걸음을 내딛으려던 순간.
끼익, —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카르시아,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카밀라의 몸을 차지한 마녀가 문을 열었다.
“당신은…”
매섭게 쏘아붙이던 눈빛이 카밀라의 등장으로 유순하게 바뀌었다. 제이홉은 곧장 굽혔던 허리를 세우며, 공작과 카밀라를 번갈아가며 보았다. 혼란스러웠다. 공작과 공녀가 이토록 친밀한 사이였던가?, 미처 결론을 내리기도 전에 뷔의 다급한 말이 튀어나왔다.
“카르, 아니… 카밀라. 대체 여기는 왜 나온겁니까?!.”
무의식적으로 카르시아, 라고 부를뻔 했던 뷔는 재빨리 말을 틀었다. 평소라면 금방 눈치챘을 법한 그 였지만, 그녀의 등장에 시선을 빼앗겼던지라 차마 뷔의 말을 신경쓰지 못했던 것이 천만다행이였다.
“제가 설명드리겠습니다.”
“…공녀께서 말입니까?.”
“예, 그리고… 마탑주께서 궁금해 하시는 것도 전부. 알려드리죠.”
희귀한 관경이였다. 뷔는 곧장 카밀라에게 다가가 작은 음성으로 다급하게 속삭였다. ‘안됩니다, 마탑주 저 놈은 믿을게 못 됩니다. 모든 걸 가르쳐주어선 안 돼요.’ 걱정으로 가득한 그의 모습과는 다르게, 카밀라는 얼굴색 하나 바뀌지 않은 모습으로 뷔의 팔을 끌어내리며 둘만 들릴 거리에서 속삭였다
“걱정하지마. 나만 믿어.”
“하지만…!!”
“중요한 패는 까지 않을거야. 나 믿지?, 태형아"
‘태형아’ 라는 애칭에, 뷔는 그 자리에서 더이상 말리지 못하고 응접실 밖으로 나왔다. 닫힌 문 너머로 고개를 뒤로 젖혀 기댄 뷔는 등 뒤로 몰래 손이 하얗게 변할 정도로 주먹을 꽉- 쥐었다. 너무 싫었다. 자신을 제외한 것도, 단 둘이서만 은밀이 얘기를 주고받는 것도. 문 너머로 대화를 나누고 있을 두 사람을 생각하면, 저절로 욱- 하고 구역질이 날 것 같아 손등으로 입술을 짓눌렀다.
울렁이는 마음, 곧 터질 것 같은 시한폭탄 처럼 느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