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녀는 살아남길 원한다
W. 꽃서령
“아니, 그러니까- 남작께서 에덴베르가를 위해 한 것이 무엇이냐 묻고있는게 아닙니까!.”
“어허, 그건 자네가 할 소리가 아니지!!.”
큰 언성이 오고가던 큰 회의장. 서로의 의견이 맞지 않는 듯 서로에게 삿대질을 해가는 모습이 큰 방을 가득 메울 정도로 열기가 가득했다. 한참을 그렇게 언쟁을 하다, 그들중 제일 높은 작위를 가지고 있었던 백작 하나가 목에 두르고 있던 스카프를 풀어헤치며 회의실 책상에 던지듯 놓으며 말했다.
“우리가 이렇게 싸워서 좋을 것 없네.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고대하던 날인가.”
“맞습니다, 맞아!!”
“암살부터 독살까지 무슨 짓을 해도 죽지 않던 공작부부가 죽고, 그에 덤까지 공녀까지 죽어버렸으니 우리에게 더할 나위 없는 행운인데 이런 기회를 싸우느라 놓칠건가!.”
백작이 의지에 가득찬 말을 쏟아내자, 회의장은 순식간에 쥐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문 뒤에서 모든 얘기를 다 듣고있던 카밀라는 그저 벽에 기대 입꼬리만 늘릴 뿐이였다.
그래.
백작의 말이 맞았다. 에덴베르가의 공작부부는 당시 최고 엘리트 가문끼리 만난 가문간의 결합의 증거가 이들이였다. 사교, 정치, 무역, 무예, 하다못해 악기까지 능숙능란하게 다루었던 공작과 공작부인은, 전쟁광이던 카르시아 마저 뷔 외에 인정한 유일한 인간이였다. 그런데 그런 이들을 쉽게 처리했을리가 만무했다. 저들은 그저 맨땅에 헤딩을 했을 뿐이였다. 여태까지.
하지만, 변수가 된거지. 두 사람의 죽음이.
“그러니까, 내 말은 이거요. 에덴베르가를 대표할가주를 뽑되, 통치는 우리가 일부분 나눠서 하자는 거요. 그럼 모두가 공평하지를 않소.”
“큼… 아무리 그런다고한들, 실질적 통치는 가주가 하는거 잖소.”
“아니- 이렇게 신뢰가 없어서야 되겠소?!. 우린 가족이란 말이요. 에덴베르가의 공작부부를 몰아내고 다시 세력을 ‘함께’ 되찾은 가족!!.”
인간의 마음이란 참으로 간악했다. 저 얘기를 듣는 와중에도 머릿속에는 권력을 전혀 나눌 생각이 없고, 그리고 저 얘기를 하는 장본인 머릿속에도 어떻게든 자신이 더욱 강력한 권력을 가지길 원했다. 처음에는 인간의 마음이 이해가질않았는데… 인간이 된 지금은 어쩐지 그 말이 이해가될 것 같은 느낌이였다.
“그럼 백작님은 저희를 믿을 수 있습니까?!. 그럼 제가 가주가 되어도 상관이 없겠지요!.”
“아니 왜 말이 그렇게 흘러가나?!. 내가 이 중에서 제일작위가 높으니 당연히 내가 가주가 되어야지!.”
“그거 보십시오!, 백작님도 저희를 못 믿지 않습니까!.”
“그런게 아니라- 이건 앞으로 보나 뒤로보나, 내가 가주의 자리에 오르는것이 맞는 것이지!.”
적당히 구경했다고 생각한 카밀라는 벽에서 등을 뗐다. 상상만 해도 짜릿했다. 죽은 줄 알았던 공녀가 자신들의 앞에 나타났을 때 지을 저들의 표정이. 그리고, 곧 자신의 앞에 고개를 조아릴 하찮은 놈들의 모습이 안 봐도 눈에 선해지는 것 같아 카밀라는 붉게 물든 입술을 끌어올리며 양 손에 손잡이를 붙잡고 바깥으로 끌어당겼다.
끼익, —
“내가 아무도 들어오지 말라고 했거늘, 감히 내 말을 거역하는것이ㄴ, 헉!!…”
백작의 반응이 눈에 뛰게 놀라자, 모두들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문 쪽으로 시선을 돌린 이들은 순간 자신들의 눈을 의심했다. 공녀가 살아왔다. 그것도 아주 멀쩡한 모습으로. 몇몇은 놀라 뒤로 자빠지기도 하고, 몇몇은 그대로 얼어버리기도 했다. 카밀라는 그저 이 반응을 즐기며 상석을 차지하고 앉아있는 백작에게로 다가갔다.
“오랜만입니다, 백작.”
“…고, 고, 공녀님… 아니, 어떻게, 아니 살아오신 겁니까?!.”
“네, 덕분에. 아주 멀쩡히요.”
백작은 순간 몸이 얼어붙는 것을 느꼈다. 공녀가 살아온것도 놀라운데, 질질 짜며 두려움에 떨기는 커녕 너무나도 여유로운 모습에 이상함을 느꼈다. 허나 분위기, 표정, 말투가 바뀌었다고 한들, 백작 자신이 어릴때 부터 지금까지 자라는 것을 지켜봐온 제 앞의 여인은 의심할 여지없이 카밀라 에덴베르였다.
“비켜주시죠.”
“ㄴ, 네?…”
“에덴베르가의 유일한 혈통인 제가 왔으니, 가주 자리에 대해 본격적으로 얘기 해야죠?.”
상석을 내어준다는 것은 공녀가 백작보다 높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과 다름이 없었지만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날 수 밖에 없었다. 또, 예상치 못한 변수였다. 카밀라 공녀의 생존. 후계자가 죽으면 방계 혈족에까지 상속 권한이 내려오지만, 후계자가 살아있다면 말이 달랐다. 백작은 분하지만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지금은… 공녀를 죽이기보단, 순진한 공녀를 이용해야 할 때였다.
“공녀, 저희가 얼마나 걱정한 줄 아십니까… 마차 사고소식을 들었을 때, 저희가 얼마나 놀랬는지…”
“맞습니다!… 우리 에덴베르가는 이대로 무너지는 건가싶어, 얼마나 무서웠는지…”
수장 격인 백작이 손수건을 꺼내 눈가를 촉촉- 하고 두드리자, 빠르게 눈치를 챈 다른 이들도 하나 둘씩 흐르지도 않는 눈물을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닦아내기 시작했다. 이 상황이 퍽 재미있었다. 조금도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 것 하며, 되지도 않는 눈물을 질질 짜는게… 카밀라는 그에 화답하듯 환한 미소를 내보이며 그들에게 동조를 하기 시작했다.
“이런, 너무 감동입니다. 우리 친척들이 날 이리도 걱정하셨다니…”
“흡, 아닙니다… 다만 가주 자리가 비워져 있다보니 하루 빨리 채워야 하는데, 저희는 그 자리를 공녀께서 채워주셨으면 합니다… 흑.”
“…제가요?.”
“예… 그 대신 아직 공녀님께서 가주자리를 맡기에는 힘이 드실테니, 성년이 되시기 전까지 저희가 이곳에 남아서 대신 사무를 처리하며 공녀님을 돕겠습니다…”
연기 중이라는 사실을 잊고 정색할 정도로, 카밀라는 어이가 없어서 조소할 뻔 했다. 성년까지 가주직을 맡는다. 그건 즉, 그냥 허수아비 가주일 뿐이란 소리다. 권력은 자기들끼리 나눠같고, 자신은 그저 가주라는 타이틀만 가져라. 이 말이지.
성년이 되면 떠나겠다는 말도 거짓일게 뻔했다. 처음엔 단순히 부족하다는 핑계를 대고서 머무르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 기간을 길어질것이였다. 그리고 나중에는 공녀를 죽이고 가주 자리를 차지하면되니, 이얼마나 탄탄대로인가.
하지만, 그 멍청이 같은 계획을 모를정도로 카밀라는 멍청하지 않았다.

“이해합니다. 아주 훌륭했어요. 제가 없는 동안 에덴베르가를 지켜준 여러분들께 정말- 존경을 표합니다.”
박수를 쳐주자 백작은 우쭐스러운 듯 어꺠를 높이 지켜세웠다. 이게 조롱인지 칭찬인지도 잘 알아듣지 못하면서 가주직을 돕는다 말하는 그들이 참 가소로웠다. 얼마안가 그녀의 앞에 한 서류를 내미는 그들에 카밀라는 눈을 내리깔며 서류를 찬찬히 흝어내려가기 시작했다.
[가주 계약서]
1. 을은 가주 자리를 이임받는다.
2. 갑은 을에게 가주자리를 내어주는 대신,
을이 성년이 될 때까지 모든 사무를 이행받아 처리한다.
3. 단, 을에게 사무처리 능력이 없거나
부족하다고 판단이 될시 에덴베르가의 모든 권리의
이행은 무기한으로 연기될 수 있다.
카리소프 에덴베르 백작 (인)
(인)
- 갑, 카리소프 에덴베르 백작
- 을, 카밀라 에덴베르
아주 대놓고 빼앗겠다고 적어놓은 계약서에 헛웃음이 났다. 속이려면 제대로 눈속임을 하던가. 하다못해 갑과 을의 위치라도 바꾸어 주었으면 ‘진짜’ 카밀라라면 속아서 싸인을 했을지도 모른다. 대놓고 상하관계를 정확히 명시해놓은 계약서에 그들이 카밀라를 얼마나 바보처럼 생각하는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싸인하시면 됩니다. 공녀님.”
“… …”
“여기 만연피, ㄹ”

“자꾸 그렇다- 그렇다 맞춰주니까, 누굴 진짜 바보천지로 아네.”
더이상 동조해줄 필요 없다 느끼자마자 계약서를 가차없이 손으로 찢어버리고는 허공위로 던져버렸다. 바람에 팔랑팔랑 흩날리던 종이가 바닥으로 떨어지자, 백작의 얼굴이 곧 울그락 불그락하게 변해 금방이라도 손찌검을 할 기세처럼 변해있었다.
“내가 당신들 진짜 목적이 뭔지 몰라서, 맞춰주고 있다고 생각하나?.”
“공녀, 지금 이게 무슨!!!…”
“시끄러워. 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한심할 예정이지?"
자신의 입을 막아버린 카밀라가 괘씸해 한소리라도 할생각으로 다시 입을 떼려는데, 의자에서 벌떡 일어난 카밀라는 곧바로 문으로 향해 문고리를 잠궈 걸었다. 그리고는 19년 인생 단 한번도 보지 못한 공녀의 모습을 방계 혈족들은 마주할 수 있었다.
“두 가지 선택지 줄게.”
“그게 무슨…!!”
“ 첫 번쨰, 살아서 이곳을 조용히 떠난다. 두 번쨰, 죽어서 이 에덴베르가를 나간다."
“…!!”
“걱정 마. 뭘 선택하던 이 곳을 나가게는 해줄테니. 난 너희들을 에덴베르가에 남겨둘 생각이없거든.”
백작은 힘겹게 입꼬리를 끌어당겼다. 인정한다, 기세 하나 만큼은 매서웠다. 하지만 그래봤자 온실 속 화초로 자란 공녀였고, 검 한번 잡지 못한 일개 귀족가의 영애였다. 아무리 검을 잡지 않고 학문만 한 사내라도, 저런 여리여리한 영애 하나쯤은 제압하고도 남았다. 게다가 여긴 스물이였고, 카밀라는 하나였다. 백작은 더욱 분위기를 타며 한 발자국씩 그녀에게 다가갔다.
“검 한번 못 잡아본 영애가 뭘 하겠다는 겁니까. 그거 아십니까?, 당신을 살려두는 건 제 마음에 따라 달렸습니다.”
“… …”
“내가 기분 좋으면 살고, 내가 기분 안좋으면 ‘너는’ 죽는다고.”
바로 코 앞까지 다가온 백작은 투박한 손으로 카밀라의 턱을 억세게 부여잡아 자신을 올려다보게 만들었다.
“좋은 말로 할때 싸인해. 그럼 나중에는 죽이지 않고, 내 첩으로 삼아줄게.”
끈적하고 음흉한 눈길이 카밀라의 머리부터 발끝을 훑어내렸다. 아, 카밀라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녀가 제일 싫어하는 유형이였다. 그 말만 하지 않았다면 오래 살았을텐데… 속으로 중얼거리며 소매를 팔꿈치까지 끌어올리고서 말했다.

“안되겠다. 너는 오늘 집에 못 가겠다.”
쾅, —
순식간이였다. 길고 추렁추렁한 드레스를 입고 있었음에도 재빠른 몸짓으로 급소를 가격한 카밀라는, 명치를 잡고 컥컥- 거리며 뒤로 나뒹굴고 있는 백작에게 다가가 날카로운 굽으로 명치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떄려눕히고 나니까 ‘진짜’ 카밀라 공녀의 기억이 다시금 떠올랐다. 카르시아가 떄려눕힌 이 백작이라는 사내, 여러번 카밀라 공녀에게 성희롱 발언을 이어나가던 놈이였다.
“크윽, 대체 이게… 어떻게,”
“시끄러워. 니 놈 때문에 보지않아도 될 걸 봤잖아.”
“공녀!!, 나한테 이러면 후회할,”
“후회 안해.”
소매에서 리볼버를 꺼낸 카밀라는 그대로 총구를 백작에게 가져다댔다. 뷔가 다른 나라에서 수입해온 신무기였다. 걸쇠를 잡아당기기만하면 큰 소리와 함께 상대방이 즉사하는 무기. 사실 호신용으로 준거긴 한데, 이런 상황에 쓰게될 줄은 몰랐다. 하지만, 이것도 이것 나름대로 괜찮지 않을까.
“호신용으로 준다고 했지, 죽이지 말라곤 안 했잖아.”
“…그 따위걸로 감히 나를!!!!…”
“잘 가.”
탕, — !!!
내 인생에서 가장 후회하는 일은,
그 놈을 사랑한거야.
재미있게 보셨다면 댓글 한번씩만 부탁드릴게요 : 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