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나의 여름에게

02 . 친애하는 나의 여름에게

 















02




오랜만에 한 번에 눈이 떠진 것 같다. 그것도 설레는 마음으로. 우스웠다. 처음 만났고 아직 말 한 번을 못 붙여본 그 애 때문에 학교 가는 일이 이렇게 즐거울 줄이야. 잘 안 하던 화장도 조금 해볼까 하다가 너무 오버하는 것 같아서 화장품을 다시 집어넣었다. 마지막으로 거울을 보는데 립 정도는 발라도 될 것 같아서 다시 꺼내 옅게 발랐다. 거울 속 내가 마음에 들어 콧노래를 부르며 가방을 한 쪽 어깨에 맸다. 다녀오겠습니다.





평소에 신경도 안 썼던 7반 앞에서 주머니 속에 네잎클로버 열쇠고리를 만지작거리며 머뭇거렸다. 그때 뒷문으로 나오는 남자 애 한 명을 붙잡아 물었다.


“지금 반에 전정국 있어?”


그러자 그 남자애 뒤에 있던 우뚝 솟은 파란 머리가 낮은 목소리로 되물으며 반으로 나왔다. 전정국? 전정국은 왜. 키 큰 파란 머리는 역시나 김태형이었다. 내려다보는 큰 눈과 뚜렷한 콧대, 구린 빛 볼가에 콕 박혀있는 점, 굳게 다물은 선홍빛 입술. 충분히 몽환적인 이목구비였다. 나는 별다른 대답 대신 주머니에서 네잎클로버 열쇠고리를 꺼내 보여줬다.


태형은 내 손바닥 위에 있는 열쇠고리를 보자 작게 인상을 썼다. 이걸 왜 니가 가지고 있. 미세하게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내게 묻는데 말이 다 끝나기 전에 옆에 인기척이 느껴졌는지 말을 하다 말고 멈췄다. 태형과 내가 동시에 고개를 돌려 옆을 쳐다보니 정국이었다. 오늘도 교복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정국은 뛰어왔는지 숨을 고르며 나를 한 번 보더니 태형을 쳐다봤다.


“무슨 일이야?”

“아직 아무 일도 없었어. 얘가 너 찾길래.”


태형의 말을 들은 정국은 대답을 바라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아, 그 어제 노래방에 같이 갔었는데. 네가 이거 두고 가서, 전해주려고. 정국은 내 말을 듣고 손 위에 있는 열쇠고리를 보고 웃으며 가져갔다.


“고마워. 엄청 찾고 있었거든.”

“전정국. 이걸 잃어버려? 우리의 우정은 끝이야. 알아?”


정국의 대답에 태형이 갑자기 끼어들었다. 태형은 서운한 듯 눈썹이 축 처졌지만 화가 난 듯 가자미눈을 한 채 정국을 노려봤다. 그런 태형에 정국은 웃으며 태형의 볼에 있는 점을 손가락으로 톡 건드렸다.


“알았어, 알았어. 이제 이런 일 없을 거야."
“아. 그리고 찾아줘서 정말 고마워. 그… 보답하고 싶은데 오늘 시간 되면 같이 밥이나 먹을래? 사거리에 음식점 많으니까, 정 안되면 매점도 좋아. 정말 고마워서 그래.”

“아냐 아냐. 별것도 아닌데, 뭐.”


멋쩍어서 손을 휘저으며 어색하게 웃자 그런 모습을 보고 정국도 웃겼는지 정국의 눈이 환하게 휘어진다. 그러다 정국은 갑자기 교복 위 명찰을 가리고 있던 내 머리를 살짝 치우더니 명찰을 확인했다.

“그래서… 여주야, 오늘 시간 돼?”

“어… 응. 오늘 시간 되는데.”

“그럼 혹시 끝나고 떡볶이 같이 먹을래? 아님 아이스크림도 좋고.”

“그래, 난 상관없어.”

“좋아. 이따가 학교 끝나고 복도에서 보자.”


태형은 어색하게 대화하는 둘을 빤히 쳐다보더니 대화가 끝나자마자 정국에게 어깨동무를 하고 매달렸다. 정구강, 형아가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은데 같이 매점 좀 가자.


“어? 알았어. 여주야 이따가 봐!”

“어어…”


정국이 거의 끌려가듯 걸음을 옮기자 키도, 덩치도 비슷한 둘이 엉켜서 복도를 지나갔다. 나는 그 모습을 둘의 형태가 흐릿해져 사라질 때까지 가만히 바라보았다. 기분이 조금 이상했다. 정국과의 어색했던 그 기류 때문이지, 정국과 대화할 때 얼핏 보였던 김태형의 표정 때문인지. 볼이 뜨거워진 것 같기도 하다.





수업 듣는 내내 집중하지 못하고 시간만 확인했다. 수업에 집중하려고 해도 30분은 지났나 싶어 시간을 확인하면 고작 10분만 지나가 있었다. 그냥 밥 한 번 먹는 거지만 내심 기대가 되는 건 사실이었다. 어제 처음 본 남자 애에게 호감이 생기고 하루 종일 그 애만 생각하고 운이 좋아 어쩌다 말도 섞어보고 단둘이 밥도 먹게 되었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눈을 떠도 눈을 감아도 동그란 눈에 까맣고 투명한 그 눈동자가 아른거렸다. 정국의 눈에선 자꾸만 별이 보였다. 그래서 계속 눈을 마주치고 싶었다. 그냥 그 별이 너무 예뻐서.





절대 안 갈 것 같은 시간이 흘러 드디어 학교가 끝났다. 종례를 마치고 헐레벌떡 복도로 나오자 먼저 기다리고 있던 정국이 보였다. 그리고 정국의 옆에는.


“야. 쟤 나왔어.”


또 김태형이었다. 삐딱하게 벽에 기대 있다가 먼저 나를 발견해 정국을 툭툭 쳤다. 그러자 정국은 시선을 돌려 날 바라봤다.


“미안. 많이 기다렸어?”

“아냐. 나도 좀 전에 끝났어.”

“뭐래, 우리 종례 개빨리 끝나서 오래 기다렸는데.”


야… 눈치 없이 끼어들어 퉁명스러운 태형에 정국은 눈치를 주며 팔꿈치로 건드렸다. 야, 김태형. 또 뭐가 마음에 안 드는데. 너도 끼어줬잖아.


“아 맞다, 혹시 진짜 괜찮으면 태형이도 같이 먹어도 될까?”
“얘가 급식을 안 먹어서 배고프다고 같이 먹고 싶대서…”

“아… 괜찮아. 같이 먹자 그럼.”

“고마워…”

“그것 봐 괜찮대지? 빨리 먹으러 가자 떡볶이. 나 배고파.”




학교 앞 사거리는 차도 많고 사람도 많았다. 주변에는 노래방이나 음식점 같은 가게들이 많아 학생들이 놀기 좋은 환경이었다. 그래서 사거리에 가면 아는 얼굴들과 마주치기 십상이다.



“여주야. 매운 거 잘 먹어?”

“매운 거? 잘은 못 먹어.”

“그럼 제일 순한 맛 시킬게.”


새로 생긴지 얼마 안 된 음식점에 들어갔다. 정국은 지갑을 들고 카운터에 가서 주문을 하고 결제를 했다. 셋이서 4인용 테이블에 앉았는데 정국과 마주 보는 자리엔 내가 앉고 정국의 옆자리에는 태형이 앉았다. 정국이 결제하러 간 사이 태형과 나는 단둘이 있게 되었는데 너무 어색해서 괜히 먼 곳을 바라봤다. 째려보는 건지 태형의 눈이 너무 커서 그렇게 느껴지는 건지 태형으로부터 따가운 시선이 느꼈다. 그럼에도 느껴지는 김태형의 시선에 눈을 마주쳤다. 역시나 잘생겼다. 긴가민가했던 태형의 시선은 눈을 마주치니 고의로 째려봤다는 생각이 확신으로 바뀌었다. 새초롬하게 쳐다보는 태형이 다시 무서워져 눈을 옆으로 굴렸다. 그때 김태형이 입을 열었다.


“너… 전정국 좋아하냐?”


심장이 차갑게 식더니 발끝까지 낙하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정국을 좋아하는 거였나. 언제부터? 이게 좋아하는 건가. 머릿속은 온통 엉망이 되어 속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우선 이런 고민은 나중에 해야 할 것 같다. 아까 정국을 쳐다보던 그 가자미눈으로 태형이 쳐다보고 있어서 부정이 우선이었다. 근데 정국이 결제를 마치고 오는 바람에 대답을 하지 못했다.


“무슨 얘기 하고 있었어?”


태형은 계속해서 날 쳐다보더니 입을 열려고 하자 나는 벌떡 일어섰다.


“어? 여주야? 왜?”

“어? 어… 그 물 좀 가져올게.”

“아 맞다. 물 가져와야 하지. 3명이라 물컵 혼자 들기 힘들 텐데, 태형아 앉아만 있지 말고 네가 도와주고 와. 난 단무지 가져올게.”

“…오키.”


짧은 거리를 빠르게 걸어가 정수기 앞에 섰다. 내 뒤로 생기는 길쭉한 그림자에 등골이 오싹해졌다. 


“대답은.”

“…ㅇ, 안 좋아해.”


내 대답에도 미심쩍은지 계속해서 특유의 가늘게 뜬 눈으로 날 쳐다보며 물컵을 집었다. 그런 태형에 다급하게 말을 덧붙였다. 진짜야! 나 진짜 안 좋아해. 그러니까…


“그럼 됐어. 내가 컵 두 개 들게. 넌 하나 들어.”


태형은 내 손에 들려있던 물컵 하나를 뺏어 들고 먼저 자리로 걸어갔다. 얼이 빠진 듯 멍하니 서있다가 벌써 자리 앉아있는 둘이 보여 정신을 차리고 걸어갔다.




떡볶이를 한참 동안 먹어 거의 다 먹어갔다. 아 배부르다, 여주야 맛있었어? 응. 맛있었어. 내 대답에 정국은 또다시 활짝 웃었다. 다행이다. 내 자리로부터 대각선에 앉아있는 태형은 죽기 직전이었다. 쓰읍. 하.를 계속 반복하며 물을 엄청 마셔댔다. 눈물이 나는지 휴지 몇 장을 뽑아 눈가에 대고 있다가 콧물도 나오는지 흥하고 풀고 쓴 휴지를 돌돌 말아 휴지통에 버렸다.


“태형이가 매운 걸 잘 못 먹어서… 요즘도 가끔씩 김치 씻어 먹지?”

“쓰읍. 아니거등, 하. 김치는 잘 먹어. 쓰읍. 김치는.”


겨우 대답하는 태형은 보고 웃음이 터진 나와 정국은 자리를 대충 정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갈까?



앞서 말했듯 사거리는 아는 얼굴들과 마주치기 쉬웠다. 그것도 학교 끝난 후에는 더더욱 학생들이 많았다. 중요한 점은 전정국은 나름 학교에서 잘생긴 애로 유명했다는 것이고 김태형은 전교생이 알만큼 더 유명했다는 것이다. 이 말은 지금 사거리에 있는 모든 시선이 우리에게 집중되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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