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바투 범규] 아리도록

13화. 닿지 않는 손

정신이 든 건, 낯익은 천장 아래였다.

소스라치듯 몸을 일으키려 하자, 욱신거리는 발목이 그제야 존재감을 드러냈다.

 

"아가씨! 정신이 드세요?"

 

곁을 지키고 있던 단이가 반색하며 다가왔다.

 

"범규 나리는…… 그 사람은요?"

 

단이의 얼굴이 어두워지는 걸 보고, 여주는 이미 답을 짐작하고 말았다.

 

"…끌려가셨어요. 연준 오라버니도 어떻게 손을 쓸 수가 없었대요."

 

정신을 잃기 전 마지막으로 보았던, 어둠 속으로 사라지던 그의 눈빛이 다시 떠올랐다.

여주는 붕대 감긴 발목으로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아가씨, 아직 못 걸으세요!"

"걸어야 해. 지금."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한 채, 여주는 곧장 사랑채로 향했다.

 

 

 

*

 

 

 

"아버지! 그 사람을 구해주세요. 아버지껜 밀서가 있잖아요!"

"…안 된다."

"왜요? 그거면 조승학의 죄를 낱낱이 밝힐 수 있잖아요!"

"그걸 꺼내는 순간, 조승학은 우리 가문부터 짓밟을 게다."

"그럼 이대로 그 사람이 죽게 놔두시겠다는 거예요?"

 

김유형은 입을 다물었다. 그 침묵이, 십 년 전 그날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아버지는 늘 그러셨죠. 두려움 앞에서 침묵하시는 거."

"…여주야, 너는 아직 몰라서 하는 소리다."

"저는 아버지처럼 살지 않을 거예요."

 

여주는 매달리듯 아버지의 소맷자락을 붙잡았다.

 

"최시헌 어른도, 그분 부인도, 이렇게 아무것도 못 하고 잃으셨잖아요. 그런데 또 이러실 거예요?"

 

김유형의 어깨가 움찔했다. 그러나 끝내 시선은 피한 채였다.

 

"…지금은 그때와 다르다. 조승학의 힘이 얼마나 커졌는지, 너는 모른다. 잘못 움직였다간 우리 가문 전체가 무너져."

"그럼 평생 이렇게 사세요. 저는 아버지 없이도 그 사람을 구할 거예요."

 

여주는 아버지의 손을 뿌리치고 방을 나섰다.

 

 

 

*

 

 

 

그날 저녁, 단이가 다급히 소식을 전해왔다.

 

"…범규 나리가, 내일 새벽 한양으로 압송된다 합니다. 역모죄인의 자식이니 지체 없이 처결하겠다는 모양입니다."

 

여주의 눈앞이 아득해졌다. 하루도 아닌, 반나절도 채 남지 않은 셈이었다.

 

"관아에는…… 지금 몇이나 지키고 있어?"

"아가씨, 설마……"

"몇이냐고 물었어."

 

단이는 차마 대답하지 못하고 시선을 떨궜다.

 

"아가씨, 위험합니다. 대감마님께 다시 한번 말씀을……"

"아버지는 이미 답을 주셨어. 더 매달릴 시간 없어."

 

여주는 서찰 한 장을 남길 여유도 없이, 곧장 방으로 들어가 채비를 서둘렀다.

아버지도, 시간도 믿을 수 없다면, 남은 건 스스로 움직이는 것뿐이었다.

 

 

 

*

 

 

 

그날 밤, 여주는 무명옷으로 갈아입고 몰래 방을 빠져나왔다.

절뚝이는 발목을 옷자락으로 단단히 동여맨 채, 담을 넘어 관아 쪽으로 향했다.

 

옥사는 관아 뒤편, 낮은 담장 너머에 있었다.

인적이 뜸한 틈을 타 담을 넘던 여주의 눈에, 창살 사이로 웅크린 그림자가 들어왔다.

 

"…범규 나리."

 

낮게 부르는 소리에, 그림자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아가씨? 여긴 어떻게……"

"아가씨 발목은 괜찮으십니까...?"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여기저기 베인 상처에 마른 피딱지가 앉아 있었다.

 

"말은 나중에 해요. 지금 빼드릴게요."

"…안 됩니다. 여기 계시다 발각되면, 아가씨까지 위험해집니다."

"이미 각오했어요. 그러니 가만히 계세요."

 

떨리는 손으로 자물쇠를 만지작거리는 여주를, 범규는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

 

 

 

자물쇠가 좀처럼 열리지 않아 손끝이 자꾸 미끄러지던 그 순간, 등 뒤에서 횃불이 확 밝아졌다.

 

"게 누구냐!"

 

순찰 돌던 옥졸들이었다.

여주는 도망칠 새도 없이 그대로 붙들리고 말았다.

 

"…놓으세요! 놓으라니까요!"

"이년이 감히 죄인을 빼돌리려 했겠다!"

 

거친 손이 여주의 팔을 짓눌러 끌고 갔다.

창살 안에서 범규가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발목에 채워진 족쇄가 그를 붙들었다.

 

"…아가씨!"

 

멀어지는 여주의 뒷모습을 향해 뻗은 손이, 끝내 창살에 가로막혔다.

옥사 마당에 무릎이 꿇린 채, 여주는 횃불 아래서 오라에 묶이고 말았다.

 

"아버지껜…… 연락하지 마세요. 어차피 오시지도 않을 텐데."

 

체념 섞인 그 말과 달리, 여주의 눈에서는 눈물이 그치지 않았다.

 

창살 너머, 범규는 무너지듯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이번에도, 지켜주지 못했다는 자책이 가슴을 짓눌렀다.

 

 

멀리서 새벽닭이 울었다. 압송이 시작될 시간이 코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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