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는 쓰레기통에

5화 - 소문

요즘 학교에서 소문이 돈다.

잠잠해지는가 싶었던 유부남 사건이 다시 끌려 나온 모양이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이상원까지 같이 엮였다.

둘이 교양 수업에서 붙어 앉아 장난을 쳤다느니, 교수님이 대놓고 연애는 수업 끝나고 하라고 했다느니. 아무래도 그날 교양 시간에 시선을 끈 게 시발점이었나 보다.

 

수업을 같이 듣는 애들은 지나가다 나를 보면 한 번씩 쳐다봤다. 다른 과까지 이야기가 퍼졌는지 처음 보는 얼굴들도 뒤에서 수군거렸다.

 

'유부남 다음은 이상원이래.'

'둘이 끼리끼리 만났네.'

 

직접 들은 것만 해도 그 정도였다. 별것 아닌 말이 붙고 붙어서 이미 둘이 잤다는 이야기까지 돌고 있었다. 누구 하나 나한테 사실이냐고 묻지는 않았다.

 

뭐, 그렇다고 해명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붙잡고 말해봤자 믿지도 않을 테고, 믿어달라고 매달리는 꼴은 더 싫었다.

 

다만 이상원과는 거리를 두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나도 피곤하고, 걔한테도 좋을 건 없었다. 원래도 소문이 더러운 애가 나와 엮여봤자 거기에 쓰레기 하나가 더 얹힐 뿐이었다.

 

 

점심시간이 조금 지난 뒤, 운동장을 둘러싼 가파른 계단에 자리를 잡았다.

다음 수업까지 한 시간 반쯤 남아 있었다. 사람이 많은 학생회관에 들어가기는 싫었다. 계단 아래로 운동장을 내려다보며 휴대폰을 켰다.

친구에게서 메시지가 와 있었다.

 

[ 너 이상원이랑 뭐 있어? ]

 

메시지를 읽자마자 화면을 껐다. 너까지 왜 그러냐.

 

 

“후우.”

 

휴대폰을 옆에 내려놓고 턱을 괴었다. 운동장 한쪽에서는 사람들이 공을 차고 있었고, 트랙 위로는 수업을 마친 학생들이 떼를 지어 걸어갔다.

 

다들 할 일도 없나. 왜 남이 누구랑 앉았는지, 누가 누구를 보고 웃었는지까지 기억하고 다니는지 모르겠다.

 

생각이 꼬리를 물고 있을 때, 옆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이상원이 계단에 가방을 놓고 있었다. 한 손에는 편의점 봉투를 들고 있었다.

 

 

“뭐야.”

 

 

말이 절로 쌀쌀맞게 나왔다. 상원은 나를 한 번 내려다보더니 그대로 옆에 앉았다.

 

 

“심심해 보여서.”

“안 심심해.”

“그래?”

 

 

내 의사는 상관 없다는듯, 편의점 봉투에서 포장된 샌드위치와 우유를 꺼냈다. 샌드위치 포장을 뜯는 손길이 태평했다.

누가 보면 원래 같이 점심이라도 먹기로 한 줄 알겠다.

 

 

“다른 데 가서 먹어.”

“왜?”

“자리 많잖아.”

 

 

상원이 샌드위치를 베어 물며 나를 쳐다봤다. '새삼스럽게 뭘' 하고 묻는 얼굴이었다. 그 태평한 얼굴에 그냥 입을 다물었다. 그래 너한테 말해서 뭐가 바뀌겠냐. 나는 미지근한 시선 그대로 고개를 돌려 다시 운동장을 바라봤다.

 

이상원은 아무 말 없이 포장을 뜯은 샌드위치를 먹었다. 바삭거리는 포장지 소리만 옆에서 계속 들렸다. 곁눈질로 보니 샌드위치를 한 손에 든 채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내 시선이 느껴졌는지 상원이 남은 샌드위치 반쪽을 들어 내 앞에서 흔들었다.

 

 

“먹을래?”

“니나 먹어.”

 

 

상원은 별말 없이 샌드위치를 다시 거둬갔다.

표정이 펴지지 않았다. 어차피 이상원과 엮이면 내가 피곤해질 뿐이었다. 내 소문도 이미 좋지 않은데, 나와 붙어 다녀서 이상원에게 좋을 것도 없었다.

 

일 때문에 여자를 상대할 뿐, 평소에는 여자한테 별 관심도 없는 애 같았다. 굳이 나 때문에 또 이상한 소문에 휘말리게 할 필요는 없었다. 거리를 두자. 서로 좋을 게 없으니.

 

생각을 끝마치니 행동은 쉬웠다. 옆에 내려놓은 휴대폰을 챙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간다고 말하려다 입을 닫았다. 그럴 사이도 아니고.

 

그 순간 상원이 내 손목을 잡았다.

 

 

“뭐야?”

 

 

신경질적으로 상원을 내려다봤다. 상원은 나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운동장에서 뛰고 있는 사람들만 바라보며 물었다.

 

 

 

“유부남한테 꼬리쳤다는 거 진짜야?”

“뭐?”

 

 

상원이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그래서 뺨, 맞은 거야?”

 

 

한 손에는 먹다 만 샌드위치를 든 채였다. 계단에 앉은 상원이 나를 올려다봤다. 장난치는건가? 그건 아닌 것 같다. 꽤 진지한 눈빛을 하고있었으니.

 

 

“니가 알아서 뭐 하게.”

“알아두려고.”

 

 

동문서답에 슬슬 짜증이 났다. 손을 빼려고 하는데 상원이 손목을 잡은 채 아래로 힘을 줬다. 중심을 잃은 몸이 그대로 끌려갔다.

 

 

“아! 뭐하는…”

“앉아. 목 아파.”

“놓고 말해.”

 

 

상원이 손을 놓았다. 주변 사람들도 슬슬 이쪽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여기서 손을 뿌리치고 가면 오히려 더 눈에 띌 것 같았다.

 

잠깐 고민하다 다시 계단에 앉았다. 아까보다는 조금 거리를 벌렸다.

상원이 샌드위치를 한 입 더 먹었다.

 

 

“오늘 기분 안 좋아 보이네.”

“너랑 상관없잖아.”

“뭐, 그건 그렇지.”

 

 

순순히 인정하는 대답이 더 어이없었다. 이 새끼는 대체 무슨 생각이지.

묻고 싶은 게 있어서 붙잡은 건지, 정말 내가 심심해 보여서 옆에 앉은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정작 유부남 이야기를 꺼내놓고는 더 캐묻지도 않았다. 나는 한동안 입을 다물고 있다가 먼저 말을 꺼냈다. 속을 알 수 없는 놈이니 직접적으로 말을 해주는게 효과적이겠지. 하고 생각한 탓이었다.

 

 

“근데 너 나랑 있으면 더 안 좋은 소문 난다.”

“무슨 소문.”

“요즘 너랑 나랑 엮인다고. 유부남 건드린 여자랑.”

 

 

비소를 흘리며 말을 이었지만 상원은 당황하지 않았다. 자리를 옮기려는 기색도 없었다. 얼굴 근육 하나 바뀌지 않고 샌드위치만 오물오물 씹고있었다.

 

 

“나랑 엮여서 좋겠네.”

“뭐가 좋아.”

“나 잘생겼잖아.”

 

 

얼척이 없어서 말문이 막혔다. 내가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는거지.

말을 씹곤 너른 운동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트랙을 따라 뛰는 사람들, 도시락을 싸 와 잔디에 앉아 먹는 사람들, 한쪽에 붙어 서로의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커플들이 눈에 들어왔다. 평화롭네. 그런 생각이 잠시 스쳤다. 옆에 앉은 상원도 얌전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샌드위치 포장지가 작게 흔들렸고, 작은 부스럭소리를 냈다. 그렇게 한동안 우리 둘 사이엔 바람소리와 사람들의 소리로 채워졌다. 내내 운동장만 보고 있는데 상원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나는 유부녀인 줄 알고 꼬신 적 있는데.”

“…….”

 

 

고개가 천천히 돌아갔다. 상원은 여전히 운동장을 보고 있었다.

 

 

“뭐, 영업을 위해서였지만.”

“…내가 넌 줄 아냐. 난 몰랐어.”

 

 

상원의 시선이 내게 향했다.

 

 

“몰랐다고?”

“그래.”

 

 

말이 먼저 튀어나왔다. 아차. 얘한테 말할 생각 없었는데. 그럼에도 한 번 뚫린 입에선 말이 술술 나왔다. 내가 가장 남에게 하고싶었던 변명. 딱 한 마디.

 

 

“말해도 안 믿겠지만, 난 그 새끼 유부남인 줄 몰랐어.”

 

 

상원은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잠시 바라봤다.

 

 

“흐응.”

 

 

그게 끝이었다. 뭐야, 지가 물어봐놓고. 정말 속을 알 수 없는 놈이야.

상원은 들고 있던 샌드위치의 마지막 조각을 입에 넣고 우물우물 씹었다. 반응이라고는 고작 저게 전부였다.

 

역시 말하지 말 걸 그랬나. 혹시 말을 유도한건가, 싶었다. 말빨로 먹고 사는 놈이니 충분히 그럴 수 있겠지. 괜히 입맛이 썼다. 믿든 말든 상관없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털어놓고 나니 상원의 대답을 기다리게 됐다.

상원이 포장지를 접으며 말했다.

 

 

“믿어.”

 

 

잘못 들었나 싶어 상원을 쳐다봤다.

 

 

“뭐?”

“그리고 난 거짓말이야.”

 

 

상원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옷에 묻은 부스러기를 털고 가방을 한쪽 어깨에 걸쳤다.

손대지 않은 샌드위치 반쪽을 내 옆에 내려놓고선, 가방 안에서는 작은 우유 하나까지 꺼내 그 옆에 탁 세웠다.

 

 

“유부녀 꼬셨다는거.”

“…….”

“먹어. 난 수업 간다.”

“야!”

 

 

상원은 대답하지 않고 그대로 계단을 몇 칸씩 성큼성큼 내려가더니, 그대로 운동장을 가로질러 멀어졌다.

내 옆에는 샌드위치와 우유만 남아 있었다.

 

진짜 뭐 하는 애야.

거짓말까지 해가며 굳이 내 말을 들으려 한 이유도 모르겠고, 그렇게 쉽게 믿는다는 이유도 알 수 없었다.

 

 

“하아….”

 

 

다가오는 놈을 밀어낸 적은 많은데, 안 떨어져 나가는 놈도 많긴 했는데. 이 정도로 제멋대로인 놈은 처음 본다. 나는 내 옆에 놓아진 샌드위치의 포장을 뜯어 한 입 베어 물었다. 너른 운동장을 바라보며 천천히 씹었다.

 

 

“맛있네.”

 

 

오늘의 공강 시간은 조금 덜 지루할 것 같았다.

 


 

상원 팬이 많이 읽은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