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선을 넘지 않기로 했다
7화. 새로운 제안

sophie97
2026.06.17조회수 0
치킨을 먹으면서 수업을 땡땡이 친 적도 있었지만.
그는 꽤 모범생이었다.
늘 수업 시간 전에 먼저 와서 날 기다렸고,
내가 내 준 과제와 연습하라고 한 문장들도 모조리
외워 왔다.
덕분에 수업 횟수에 비해,
발음도, 실력도 눈에 띄게 좋아지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대표님, 어쩐 일이세요?"
"선생님,
혹시 이번 주 금요일 점심 때쯤 사무실에서 뵐 수
있을까요?"
"잠시만요... 이번 주 금요일 괜찮습니다.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시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아니요. 무슨 일이 있어서는 아니고...
훈지가 수업 만족도도 높고,
감사해서 점심 식사 대접해 드리고 싶은데요.
부담 갖지 마시고, 편하게 오시면 됩니다."
"아, 그런 거라면 마음만 감사히 받겠습니다.
제가 할 일을 하고 있는 건데요."
"그렇게 단번에 거절하시면 제가 너무 민망하죠.
혹시 불편하셔서 그러신 거면 훈지도 부를께요.
하하.,"
"불편해서 그런 건 아니구요.
바쁘실 텐데, 그렇게까지 신경 쓰시지 않으셔도 된단
의미였어요. 초대 감사합니다.
그럼, 이번 주 금요일에 12시까지 가겠습니다."
며칠 후 점심 시간에 맞춰,
목이 졸리며 인터뷰를 보러 갔었던 기획사 사무실로
갔다.
주차하고 걷다 보니,
인터뷰 본 날이 생각나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사무실에서 대표를 만나,
근처 스시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식당으로 함께 걸어가면서,
올 거라고 기대했던 그가 보이지 않아
나는 주변을 두리번 거렸다.
"훈지는 식당으로 바로 오기로 했어요."
"아..네.."
"훈지랑 수업은 어떠세요?"
"지금까지 학생들 중에서 가장 모범생인 것 같은데요."
"생각보다 두 분이 더 잘 맞는 것 같네요."
함께 걸어 가면서 저 멀리 오토바이가 다가오는 것이
보이자, 대표는 말없이 나를 인도 안쪽으로 갈 수 있게끔
배려했다.
'생각보다 배려심이 많은 사람이구나...
냉철한 비니지스맨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식당에 도착해,
어느 룸으로 안내를 받았다.
문을 열자,
이번에도 역시 그가 미리 와 있었다.
"선생님, 그 날은 잘 들어가셨어요?
좀 늦게 끝나서 운전하기 불편했을 거 같은데.."
"안녕하세요 훈지씨,
사실 그날 길을 계속 잘 못 들어서 엄청 돌아서 갔어요.
하하.."
"선생님, 여기 앉으세요."
그는 자연스럽게 자기 옆자리 의자를 빼 주었다.
"아, 감사합니다."
내가 자리에 앉자,
대표는 잠깐 말없이 우리를 보더니,
맞은편 의자에 앉으며 헛기침을 했다.
"나는 안 보이냐? 박훈지"
"대표님은 어제도 뵙잖아요. 하하.."
식사를 시작하고 얼마 안 있어,
대표가 흥미로운 제안 한 가지를 했다.
"훈지가 선생님께 수업 받기를 잘 했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사실 오늘 식사 자리는 한 가지 제안을
아니지..
부탁을 드리고 싶은 게 있어서 뵙자 한 거에요."
'제안? 뭐지?'
"네. 훈지씨가 잘 따라와 주는 덕분에
저도 수업하면서 재미있고, 즐거워요.
오래 간만에 새로운 일을 하니 활력도 되구요."
"그렇다면 더 잘 됐네요.
요새 배우들은 외국어 한, 두가지는 기본이라서
저희 소속사 배우들 전담으로 영어 수업을 맡기고
싶은데요.
어떠세요?"
"네? 배우들요?"
너무 예상치 못 한 제안이라 깜짝 놀라기도 했고,
당황스러웠다.
"번역 일이 주 이신 건 아는데...
너무 과한 부탁인가요?"
물론 나쁠 거 없는 제안이었다.
수입도 늘고, 경력에도 도움이 될 테니까...
오히려 계속 번역 일을 붙잡고 있는 것보다 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대표의 말에 순간 대답을 고민했다.
그 때였다.
조용히 물컵을 내려 놓던 그가 처음으로 말을 끊었다.
"대표님."
평소보다 낮고, 단호한 목소리였다.
"아직 제 실력이 많이 부족해서요."
그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말을 이었다.
"다른 수업까지 하시면...
제 수업 퀄리티가 떨어질 것 같은데요.
물론 선생님께서 수업 준비 잘 해 오시겠지만,
수업이 많아지면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생기니까요.
시간 조율도 그렇구요."
"야. 그 정도는 아니지 않냐?"
대표가 웃으며 말했지만,
그는 잠깐 내 쪽을 바라보더니, 말을 이었다.
"저는 선생님이 제 수업에 조금 더 올인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덧붙였다.
"그리고, 이제 수업 관련된 건 제 번호로 연락주세요."
순간 식탁 위 공기가 아주 미묘하게 달라졌다.
"대표님, 선생님 곤란하게 하지 마세요."
<8화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