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선을 넘지 않기로 했다
100화. 중재

sophie97
2026.08.05조회수 25
나는 집을 나와서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했다.
한국도 아니라 마땅히 만날 친구도 없었고,
시간을 보낼 곳도 떠오르지 않았다.
조용히 동네나 걸을 생각으로 발길을 옮기던 중,
맞은편에서 퇴근해 집으로 돌아오던
미겔과 마주쳤다.
"소피 어디 가요? 저녁 시간에?"
"아... 미겔 퇴근하는 거에요?
나는...
남자친구랑 다퉈서 나왔는데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네요."
"말할 친구가 필요해 보이는데요?
술이나 한잔 할까요?"
"미겔이 내 술친구가 되어 주려구요?"
"필요하다면?"
"고마워요."
미겔과 나는 근처 펍으로 들어갔다.
미겔은 맥주를, 나는 와인 한 잔을 주문했다.
미겔이 내 눈치를 보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무슨 일로 다퉜는지 물어봐도 돼요?"
"그게... 남자친구가 내 책 속에서
예전 남자친구와 주고받은 편지를 발견했어요.
그런데 그 편지 내용에
내가 그 사람 집에서
함께 지냈다는 이야기가 있었나 봐요.
한국에서는 아직 결혼 전에 남녀가 함께 사는 걸
흔하게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아니거든요.
그리고,
특히 남자친구가 그 부분에 대해 예민한 것 같아요."
"그 문화가 보편적이지 않다면...
그럼 그 부분은 소피가 이해해 줘야 할 것 같네요.
남자친구 입장에서 싫어할 수도 있는 부분이니까요."
"그런가요?
그런데 집에 돌아오자마자
다짜고짜 거짓말을 했냐고 따지니까
나도 모르게 화가 났어요.
거짓말을 한 게 아니라,
굳이 그런 이야기까지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말하고 싶지 않은 부분을 들킨 거네요.
남자친구는...
당신이 거짓말했다고 생각해서 화가 난 걸까요?"
"내가 보기엔 두 가지 모두에요.
내가 다른 남자와
같은 공간에서 생활한 적이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는 것...
아니... 지금 이야기를 해 보니...
전자 인 것 같아요."
"내가 생각하기에도...
그런 것 같아요."
"그런데 그건 이미 지나간 일이잖아요.
게다가 집을 구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한 달간이었다면 이해할 수도 있고요.
아니, 어쩌면 기간의 문제가 아닐 수도 있겠네요.
하...
사랑하는데도 왜 이렇게 힘든 걸까요?"
"함께 살았다는 사실 자체를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수도 있고요."
"그런데 아이러니한 게 뭔지 알아요?"
"뭐가요?"
"그 사람도 나와 함게 살려고 여기까지 온 거에요.
본인도 먼저 같이 살자고 해놓고,
다른 남자와 함께 산 건 안 된다는 거잖아요."
"하하... 정말 그렇네요."
"정말 웃기죠?"
나는 생각했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란 말이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거구나...'
"그래서 소피는 어떻게 할 거에요?"
"모르겠어요..."
"이미 지나간 일은 돌이킬 수가 없는 거고,
그건 남자친구도 알고 있을 거에요.
감정의 문제라면,
상처받은 마음을 먼저 풀어 주는 게 좋지 않을까요?"
"음... 감정의 문제라..."
'그래... 훈지 씨는 감정에 솔직한 사람이니까.
마음을 먼저 이해해 주면 금방 풀릴 거야.'
미겔과 이야기하면서
훈지 씨를 좀 더 이해할 수도 있게 되었고,
내 화도 진정되었다.
"미겔과 이야기하면 마음이 편안해져요.
나이도 나보다 훨씬 어린데 어른 같은 느낌이에요.
미래의 미겔 여자 친구는 얼마나 좋을까요?"
"그럼 나랑 사귈래요?"
"네? 나는 이미 남자친구가 있잖아요..."
"헤어지고 나랑 사귀면 되잖아요?"
"아... 그건 좀...
지금 남자친구가 좀 많이 귀엽고, 사랑스러워요."
"진짜 이럴 거에요?" <101화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