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선을 넘지 않기로 했다

122화. 사고



우리는 4일 동안의 여행을 마치고

프리힐리아나로 돌아왔다.





잊지 못할 멋진 여행이었지만

훈지 씨의 질문을 받고,

아직 대답을 하지 못한 나는

큰 짐을 안고 있는 듯했다.





여행에서 돌아오는 차 안에서

그가 말했다.





"선택을 강요하고 싶지는 않아요.

난 내 선택을 했고, 이제 당신 차례에요.

어떤 선택을 하든... 그건 당신 몫이에요."





나는 아직 그의 인생에 뛰어들 자신이 없었다.


그를 좋아하는 대가로

치러야 할 많은 일들이 두려웠다.





우리는 그 일은 덮어둔 채

여행을 가기 전의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훈지 씨는 운동을 하러 나가고

나는 집에 남아 청소를 하고 있던

주말 오후였다.





휴대폰이 울려 확인해 보니

김대표였다.




"어. 태형씨."




"여행은 잘 다녀왔어?"




"응."




"혹시 옆에 훈지 있어?"





"아니. 운동하러 나갔어.

나 혼자야."





"훈지한테 영화 이야기 들었어?"





"자세한 이야기는 안 했어.

촬영이 빨리 시작돼서 안 하겠다고

얘기했다는 것만 알아."





"제작사도 메이저고,

감독님도 이전에 훈지랑 작업해 보신 분이야.

대본도 탄탄하고 놓칠 이유가 없잖아.

오히려 이런 기회를 놓치면 바보지."





"..."




"내 말 듣고 있어?"




"어. 듣고 있어.

나보고 훈지 씨 설득하라고 전화한 거지?"





"1년을 굳이 꽉 채울 필요는 없는 거잖아.

필요에 따라 일찍 올 수도 있고 그런 거지.

안 그래?"





"그건 그런데...

문제는 그 영화를 찍게 하려면

나보고도 결정을 하라고 하는 게 문제야..."




"너한테 무슨 결정을 하라고?"





"함께 한국으로 돌아가자고..."





"아...

너는 아직 너희 둘에 대한 결심이 안 선 거야?"





"응..."




"그렇다면 네 입장에서는

적극적으로 설득할 수 없겠구나."





"나도 훈지 씨가 그런 좋은 기회를

놓치는 걸 원치 않지만...

지금 당장 훈지 씨에 대한 결정을 하는 것도

부담스러워."





"알겠어. 그런 상황이라면...

내가 너한테 부탁하기도 힘들겠다.

내 입장에서 훈지를 더 설득할 수밖에 없겠어."





"도움을 줄 수 없어서 미안해..."





"아니야...

네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니까."





김대표와의 전화를 끊고

내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막막했다.





영화를 선택하라고 할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그와 함께 한국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집에 있으면

계속 그 생각만 하게 될 것 같아

책 한 권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공원으로 갈까 하다가

미겔의 카페로 방향을 바꿨다.

그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주말 오후,

카페 안에는 이미 손님이 몇몇 앉아 있었다.





"소피. 주말에 웬 일이에요?

주말에는 번역 일 안 하잖아요?"




"그냥 책이나 읽으려고 나왔어요."




"아... 그럼...

잠깐 나 좀 도와 줄 수 있어요?"





"어떤...?"





"원두 배달이 예정보다

좀 늦어진다고 해서

내가 가서 직접 받아 오려구요.

잠깐 카페 좀 봐줄 수 있어요?"





"나는 커피를 못 내리는데요?"





"아니. 만들 필요는 없고,

여기 손님들만 잠깐 봐주면 돼요.

아무도 없으면 문을 잠그고 갔다 올 텐데

그럴 수가 없어서요."





"아... 그런 거라면 내가 있을게요.

걱정하지 말고 다녀와요."





"고마워요.

대신 내가 다녀와서

맛있는 커피 내려줄게요."




"좋아요."




나는 미겔을 배웅하고

한 테이블에 앉았다.





책을 읽는 사이

손님들은 하나둘 나가고

결국 나 혼자 남게 되었다.




'이제 이곳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가야 할 텐데...

언제쯤이 좋을까...'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때 카페 문이 열리고

미겔이 들어왔다.




그의 품에는

원두 한 자루가 들려 있었다.




"새로 온 손님은 없었어요?"




"네. 미겔이 나간 후

들어온 손님은 없었어요."





"지금 막 받아 온 신선한 원두로

커피 내려 줄 테니 마셔 봐요."




"기대해도 되죠?"




"물론이죠!"




원두 자루를 풀던 미겔이

내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까 시내에서 교통사고가 있었대요.

동양인 남자 한 명이 차에 치여서

병원으로 실려 갔다고 하더라고요."




"동양인이라고요?"




"네.

관광객일 수도 있고..."




그 순간,

훈지 씨가 머릿속을 스쳤다.




'운동하러 나간 지 시간이 꽤 지났는데

왜 나한테 전화가 없지...?'




나는 황급히 휴대폰을 꺼내

그의 번호를 눌렀다.




신호음이 길게 이어졌다.




하지만

그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훈지 씨!!!" <123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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