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미겔을 태우고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훈지 씨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정아 씨. 그때 나를 그렇게 구박하더니
언제 내 각서에 사인해서 넣어놨어요?ㅎ]
나는 메시지에서
그의 미소가 보이는 것 같아
피식 웃었다.
[생각해 보니 별것도 아닌데
훈지 씨를 위해서
그 정도도 못 할까 싶었어요.]
잠시 후, 다시 메시지를 보냈다.
[참. 지금 미겔 태우고
집으로 가고 있어요.
난 절대 포옹을 하지 않았어요.
각서에 있는 것처럼!!]
[좋아요!!👍
나도 이따 짐 갖고 갈게요.
밤에 봐요!!🫰]
[훈지 씨.
오늘부터 바로 오는 거에요?]
[내가 그때 말했잖아요.]
한 달 동안 이 두 남자와의 동거라니...
생각만 해도 짜릿했다.
'그래... 그게 훈지 씨 마음을 편하게
해 주는 일이라면 그렇게 해 주자.'
나는 훈지 씨의 질투를
내 운명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집에 도착한 후
우선 게스트룸에 미겔의 짐을 풀게 했다.
미겔에게 잠깐 쉬고 있으라고 한 뒤
나는 카페로 나가보려 했다.
그런데 미겔이 카페 구경을 하고 싶다며
나를 따라나섰다.
"지성 씨.
오늘 혼자 있게 해서 미안해요.
공항에 친구 픽업하러 갔다가
이제 오는 길이에요."
"인사해요. 이쪽은 스페인에서 온 미겔이에요.
나는 미겔을 바라보며 지성 씨를 소개했다.
"미겔. 이쪽은 우리 카페 일을 도와주는
지성 씨에요."
두 사람은 서로 악수를 주고받으며
인사를 했다.
나는 미겔에게
커피 맛을 보여 주고 싶었다.
"지성 씨.
미겔한테 커피 한 잔 내려 주세요."
"아! 두 잔이요.
나도 오늘 아침부터 바빠서
커피 마실 여유도 없었어요."
지성 씨는 미소를 지으며
카운터 안쪽으로 들어갔다.
"네. 잠깐 숨 좀 돌리고 계세요.
커피 두 잔 가져다드릴께요."
"미겔, 어때요?
내가 미겔의 카페 분위기가 좋아서
비슷한 느낌으로 꾸며봤거든요."
"예뻐요. 편안한 느낌도 들고...
소피가 나처럼 카페 사장이
될 줄은 몰랐어요.
그 때 내 이름을 따서 짓는다고
했을 때도 놀랐어요"
"스페인에 있을 때,
미겔의 카페에서 작업하던 시간이
너무 좋았어요.
그래서 내 작업실을 겸하는 카페에요."
우리는 지성 씨가 가져다준 커피를 마시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미겔이 지성 씨가 일하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내게 물었다.
"한국 남자들은 훈지만 잘 생긴 게 아니었네요.
지성 씨도 멋있고 잘 생겼어요."
"내가 잘 생긴 친구를 뽑은 거죠."
내 안목을 인정받은 거 같아
괜히 우쭐해졌다.
"지성 씨는 인성도 좋아요.
일도 잘하고요."
미겔은 나와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종종 지성 씨를 바라보았다.
미겔이 온 첫날이라
오늘은 번역 일도 하지 못하고
지성 씨와 함께 카페 정리를 하고 나왔다.
"미겔, 오늘 한국에 온 첫 날이니까
우리 환영식 해요."
"아니에요.
그렇게 까지 신경쓰지 않아도 돼요."
"미겔의 첫 한국방문인데 무슨 소리에요~
한국은 웬만한 음식은 다 배달되니까
미겔이 먹어 보고 싶은
한국 음식 있으면 얘기해 봐요."
"지성 씨도 환영회 같이 가는 건가요?"
미겔이 초롱초롱한 눈으로 물었다.
"지성 씨는 카페 일이 끝났으니까
퇴근해야죠."
나는 지성 씨를 바라보며 인사했다.
"지성 씨, 오늘도 고생했어요.
조심히 가고, 내일 봐요!"
지성 씨를 먼저 보내고
미겔과 나는 걸어서 집에 도착했다.
미겔은 한국에 오면 떡볶이와 닭강정을
먹어 보고 싶었다고 했다.
나는 오늘 우리의 저녁으로
미겔이 먹고 보고 싶어 했던 두가지 메뉴에
보쌈까지 추가하여 주문했다.
그리고 그 날 밤,
훈지 씨는 커다란 캐리어 가방을 끌고
집에 도착했다.
"우리 훈지 씨는 하겠다고 하면
하는 남자야.ㅎ"
"나는 내 여친이 외간 남자와 단둘이
지내는 꼴 못 봐. 절대!"
나는 미겔이 먼저 쉬겠다고 방으로 들어간 뒤
훈지 씨를 데리고 내 침실로 들어왔다.
"훈지 씨."
잠시 말을 고르다 입을 열었다.
"그런데 있잖아요."
"뭔데요?
무슨 이야기인데 방으로 들어와서 이야기해요?"
"그게...아닐 수도 있는데...
하긴, 스페인에서 미겔이 나한테 호감을 표현했고,
미국에서 여친도 있었다고 했는데..."
훈지 씨는 눈이 순간 동그래졌다.
"스페인에서 정아 씨한테 호감을 표현했다구요?"
나는 괜한 말을 했다는 생각에
후회가 밀려왔다.
"이거봐. 내가 이래서 온 거라니까.
스페인에서 미겔이 좀 끈적이는 눈빛으로
정아 씨를 봤다고."
나는 급히 훈지 씨의 말을 막았다.
"그런데... 그 끈적이는 눈빛을 아까...
아, 아니에요."
말하려고 보니
앞뒤가 맞지 않는 것 같았다.
"뭔데요?"
"아직은 심증밖에 없어서...
다음에 얘기해요."
이미 훈지 씨는 내 말은 안중에도 없었다.
미겔이 내게 호감을 표현했었다는 사실에
온 신경이 꽂혀 있었다.
나는 밤새 그의 추궁에 시달려야 했다.
미겔이 온 지 일주일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 주말, 나는 미겔과 함께
인사동과 익선동을 구경하기로 약속했다.
그런데 갑자기 미겔이
다른 사람과 함께 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혼자 가는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과 간다는 미겔의 말에 되물었다.
"미겔.
내가 아니라면... 누구랑 가는 거에요?
미겔은 잠시 당황한 듯 했다.
"훈지 씨. 이제 마음 놓아도 될 것 같아요."
<66화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