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선을 넘지 않기로 했다(시즌2)

88화. 믿음직스러운 훈지



그렇게 자지 않으려고 노력했는데,

결국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는 잠이 들어 버리고 말았다.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아파트 주차장이었다.





옆을 보니

훈지 씨도 운전석에서 잠들어 있었다.






"언제 도착한 거야?

 훈지 씨. 일어나 봐요.

 우리 올라가서 편하게 자요."






"어... 깼어요?

 정아 씨가 너무 곤히 자고 있어서

 차마 못 깨우겠더라구요.

 벌써 1시간이나 지났네."






"정말요?

 훈지 씨도 피곤할텐데

 그냥 깨우지 그랬어요.

 내일 촬영도 가야 하는데..."






"잘 잤어요? 우리 세모네모."





그는 두 손으로 내 볼을 감쌌다.






"오늘 재미있게 놀았어요?

 세모네모?"






"넵!!

 오늘 최고로 재미있었습니다!!"






"그럼 됐어요.

 우리 올라가요~"





놀이공원에서 에너지를 너무 쏟았는지

우리는 눕자마자 곯아떨어졌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떠 보니 훈지 씨는 이미 나가고 없었다.






훈지 씨에게 전화를 걸려고

휴대폰을 확인했더니

언니에게서서 메시지가 와 있었다.






[정아야.

 엄마가 너 남자 친구 있는 거 같다고

 나한테 아는 거 없냐고 물어보시더라.

 그날 뭐 들켰어?]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나는 언니의 메시지를 읽고 나서

생각했다.





[뭘 들켰는지는 모르겠지만

 엄마가 의미심장한 말을 하기는 했어.

 그래서 언니는 뭐라고 했는데?]





[나는 그냥 모른다고 했지.

 너 앞으로 어쩔거야?]





[몰라... 훈지 씨랑 의논해 볼게.]





부모님이 알게 되시면

교재의 찬성 여부를 떠나

결혼 문제까지 이야기하게 될 것이 뻔했다.





'우선...

 아니라고 시치미를 떼는 게 나을까?

 아니야...

 그 날 뭔가를 분명히 눈치채신 게 확실해.'





"아... 모르겠다."


나는 다시 침대에 누워 버렸다.





"아니야!!

 내가 먼저 결심하고

 부모님한테 이야기하는 게 맞는데..."





앞으로의 내 인생에 훈지 씨가 없는 것은

상상할 수가 없다.

 
그러나 부모님의 허락을 받는 일에는

더더욱 자신이 없다.





'그냥 지금처럼 같이

 지낼 수는 없는 걸까...?'





복잡한 머리를 끌어 안고 있다가

나는 어느새 다시 잠이 들어 버렸다.





휴대폰 소리에 번뜩 잠이 깼다.


전화를 보니 원희 오빠였다.

시계를 확인하니 10시였다.





"엄마야!! 어떡해!!

 여보세요?"





"정아야."





"오빠!! 나 늦잠 잤어.

 근데 왜 전화했는데?"





"카페가 안 열려 있길래 전화해 봤지.

 무슨 일 있나 해서..."





"오빠가 전화 안 했으면 나 계속 잘 뻔 했어.

 고마워. 이따 다시 와.

 미안해~"





나는 전화를 끊고 부랴부랴 준비를 마쳤다.

오늘 작업할 번역 원고를 함께 챙겨서

집을 나섰다.




"늦어서 차 갖고 가야겠다."





뒷좌석에 랩탑과 가방을 싣고

카페를 향했다.




가는 길에 훈지 씨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오늘 출근 잘 했어요?

 어제 늦게까지 놀아서 피곤하죠?]





[그렇지 않아도 오늘 늦잠 잤어요.ㅠ

 원희 오빠한테 전화 안 왔으면

 오늘 지성 씨 혼자 할 뻔 했어요.

 지금 카페로 가는 중이에요.]





[음... 원희 오빠는

 아침부터 왜 전화하셨을까?]





[카페에 왔다가 문이 닫혀 있어서

 전화했대요.]





[아~ 그랬구나!!

 매일 카페에 와요?]





[훈지 씨. 나 지금 카페 도착했어요.

 오픈 준비하느라 바빠서 ㅠ

 이따 전화할게요.]





훈지 씨의 집요한 질문 무사히 차단!!



후다닥 오픈 준비를 마친 뒤

의자에 앉아 커피를 한 잔 마셨다.


그 때 원희 오빠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정아야, 카페 잘 도착했어?]





[어!! 오빠 덕분에 오늘 지각은 했지만

 무사히 출근했네 ㅎㅎ]





[이따 점심시간에 우리 팀원들 커피

 주문받아서 갈테니 미리 준비해 줘.]





[네~ 고객님!!]





나는 원희 오빠의 메세지를 보다가

문득 훈지 씨에게 커피차를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아하겠지?

 빨리 알아보고 예약해야겠다!!'




'그런데...

 뭐라고 문구를 써서 보내야 하지?

 팬처럼 보내야 하는데...'



나는 한참 현수막에 쓸 문구를

이것저것 써 보았다.





지성 씨가 출근하고 함께

원희 오빠의 주문을 준비했다.




곧 원희 오빠가 들어오고

지성 씨가 함께 들어주기로 하고

따라 나섰다.





점심 시간이라 손님이 많은 때여서

바쁘게 주문을 받고 있었다.



그 때 카페 문이 열렸다.





"어서 오세요."





문 쪽을 바라봤다.

엄마가 서 있었다.





'아... 드디어 행동 개시하시는구나...'





"엄마, 손님들 나가시고 이따가요.

 잠깐만 앉아 있어."





곧이어 지성 씨가 돌아왔고,

점심시간이라 카페에는 손님이 많았다.





엄마를 신경 쓸 겨를도 없이

주문을 받고 계산을 하다 보니

어느새 엄마가 앉아 있던 의자가 비어 있었다.




"어? 어디 가셨지?"





그 때 휴대폰 메시지가 도착했다.



[정아야. 우리는 아무 때나 좋으니까

 남자 친구 시간 될 때 집으로 데려와.]





'헐... 있냐고 물어보지도 않고

 바로 데려오라고 하시네...'





그 날 오후는 엄마의 메시지 때문에

정신이 온통 다른 데 팔려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겠다.





집에 돌아와서도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날 밤에도 촬영이 늦게 끝나니

먼저 자라고 했던 훈지 씨의 당부에도

나는 그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렸다.





도어락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얼른 현관으로 향했다.




문이 열리고 훈지 씨가 모습을 드러내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훈지 씨!! 어서 와요!!"





"어... 깜짝이야...

 먼저 자라고 했는데 왜 안 자고?"




나는 우선 두 팔 벌려 그를 안아 줬다.




"그런데 이렇게 안 자고 기다려 주니까

 엄청 기분이 좋기는 하다..."




그는 배시시 웃었다.





"배는 안 고파요?"





"고프지만 참아야죠...

 체중 조절해야 해서."





"그럼 요거트에 견과류라도 넣어서

 줄까요? 허기라도 좀 채우게."




그는 감동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세모네모.

 오늘 왜 이렇게 예쁜 짓을

 많이 해요?"





"내가 뭘 했는데요?"






"안 자고 기다려 주고...

 야식도 챙겨주고."





"이게 뭐 별거라고..."





씻고 나온 훈지 씨를 쫓아 다니면서

오늘 카페에서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해줬다.




진상 손님 흉도 보고,

단체 주문을 한 원희 오빠 이야기도 했다.


그리고, 커피차를 예약한 것도 말해 줬다.





"그런데 훈지 씨...

 아까 카페로 엄마가 왔었어요."




머리를 말리던 그는 갑자기 손을 멈췄다.

드라이어를 끄고 나를 바라봤다.




"엄마가 집으로 데리고 오라고 했어요."




그는 드라이어를 내려 놓고

내 쪽으로 다가 왔다.




"정아 씨.

 나 혼자 갈게요. 정아 씨 집에"





"혼자? 왜요? 가려면 나랑 같이 가아죠."





"아니요. 나 혼자 가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지난 번에 언니한테 하는 걸 보니,

 정아 씨랑 같이 가면 또 나한테 상처 주는 말씀을

 하실까봐 날 세우고 못 되게 얘기할 게 뻔해요."





"그러니까 내가 방패막이가 되어 줘야죠."





"아니에요.

 내가 혼자 가서 차근차근 말씀을 드려볼게요.

 그게 나아요."






"훈지 씨... 자신 있어요?" <89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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