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선을 넘지 않기로 했다(시즌2)

93화. 내조의 여왕



서울로 올라가는 차 안.

나는 훈지 씨에게 말했다.





"훈지 씨,

 스케줄표 좀 공유해 줘요."





훈지 씨는 의아하다는 듯

나를 바라봤다.





"스케줄표는 왜요?"





"내가 훈지 씨 내조를 좀 해 보려구요.

 새벽에 일찍 나가는 날에는

 샌드위치랑 커피도 챙겨주고,

 늦게 들어오는 날에는

 잠들지 않고 기다려 주려구요.

 스테프들 간식도 좀 챙겨 보내고,,,"


"또... 내조할 때 뭘 해야 하지?

 해 봤어야 아는데... 해 본 적이 없어서."





나는 멋쩍게 웃었다.





"왜 그런 걸 해 주려고 하는 건데요?"






"만에 하나 우리가 헤어지더라도

 후회는 남기고 싶지 않아서요."






"우리가 왜 헤어져요?
 
 내가 허락 받는다고 했잖아요."



그는 정색하며 말했다.





"만에 하나... 진짜 만약의 경우에요."


"내가 매일 팩도 해 주고

 족욕도 시켜 줄까요?

 욕조에 물도 받아 주고."





훈지 씨는 웃지 않았다.

오히려 무언가를 확인하려는 듯

내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봤다.




"나... 그런 거 안 해줘도 돼요.

 그냥 정아 씨가 내 옆에 있는 것만으로

 충분해요..."






"내가 해 보고 싶어요.

 내조의 여왕 놀이라고 생각하고

 한 번 해 볼께요."





나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훈지 씨부터 씻게 했다.




그 사이에 나는

침대 시트를 새것으로 갈아 깔고,

아로마 향 인센스를 피웠다.




샤워를 마치고 나온

그의 머리카락을 말려주고,

그 다음에는 얼굴에

팩을 얹어 주었다.





"참, 내가 잠이 잘 오는 허브차를

 한 잔 만들어 올게요."





"정아 씨... 난 괜찮아요."




훈지 씨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냥 내 옆에 있어요."





"왜요? 싫어요?"





내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묻자

그는 손사래를 쳤다.





"아니... 싫다는 게 아니라...

 평소 안 하던 행동을 하니까

 불안해져요."





"나 이제 석 달 동안 훈지 씨한테

 올인한다니까요.

 아까 뭐 들었어요?

 허브차 만들어 올게요.

 침대 헤드에 등 기대고 편안하게 있어요."





나는 서둘러 따뜻한 허브차를

한 잔 만들어 침실로 들어왔다.




"다 마시면 화장실 가느라

 숙면을 못 하니까 반잔만 마셔요."




그가 반 잔쯤 마셨을 때,

나는 찻잔을 받아 들며 그에게 말했다.





"빨리 누워요. 편히 자요.

 나는 내일 아침 메뉴를

 좀 준비해 놓고 잘게요."


 



"정아 씨...

 그냥 우리 평소처럼 지내요."





나는 그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불안해하지 마요...

 정말 내가 이렇게 한 번

 해 주고 싶어서 그래요."






"빨리 씻고 와요.

 정아 씨가 옆에 누워야

 잠이 빨리 온단 말이에요."






"알겠어요.

 그럼 내가 아침에 좀 일찍 일어나면 되죠.

 빨리 씻고 올게요."





다음 날 아침, 아니 새벽.

나는 훈지 씨가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침실을 빠져나왔다.





아침으로 간단히 먹을 수 있도록

유뷰초밥과 된장국을 만들었다.





그리고,

진서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진서야. 엄마한테는 말하지 말고

 너 시간 되는 요일에 쌤 카페로

 수업 받으러 와.]





잠시 후 답장이 왔다.





[정말요?

 그 때 삼촌이 쌤 힘들다고

 하지 말라고 했었는데...

 정말 가도 돼요?]





[어. 와도 돼!!

 당장 이번 주부터 와.

 시험 대비 해 줄께!!]




그때였다.

훈지 씨가 큰 소리로 나를 부르며

침실 문을 열었다.





"정아 씨!! 정아 씨!!"





"아... 깜짝이야.

 왜요? 왜 그렇게 큰 소리로 불러요?"





"아... 여기 있었구나...

 옆에 없어서 깜짝 놀랐어요.

 아침잠도 많으면서

 언제 일어난 거에요?"





"나 아침 준비했어요.

 먹고 나가요."





"아침밥이요?"





"거창한 건 아니고,

 간단히 먹을 수 있게

 유부초밥이랑 된장국으로

 준비했어요."





"정아 씨, 나 아침밥 먹여 주려고

 이렇게 일찍 일어난 거에요?"





"네. 그러니까 빨리 준비하고

 먹고 출발해요."





훈지 씨는 입을 다물지 못 한 채

계속 나를 바라봤다.





"훈지 씨. 빨리 준비해요.

 세수도 시켜줘요?"




그는 웃음을 터트렸다.

그가 세수를 하고 외출 준비를 하는 동안

나는 커피를 내려 보온병에 담았다.





"훈지 씨.

 하나는 아이스 커피고,

 다른 하나는 따뜻한 커피에요.

 매니저님이랑 취향에 따라

 나눠 마셔요."






"정아 씨...

 나 지금 다른 여자랑 있는 것 같아서

 너무 어색해요."





"내가 그동안...

훈지 씨한테 해 준 게 너무 없었죠?"




나는 갑자기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아니요...

 누가 연애하면서 그렇게까지 해요.

 형들이 요샌 결혼해서도

 아침밥 얻어먹기 힘들다고 하던데요?

 같이 일하면 더 그렇게 하기 힘들겠죠."





"아!! 참참..."




그는 드레스룸에서 무언가를 챙겨 나왔다.




"이거..."





그가 내민 건 봉투였다.




"이게 뭐에요?"





"음... 돈이랑 카드에요."





"이걸 왜요?"





"이제 정아 씨 당분간 일 안 한다고 했잖아요.

 그리고 이 카드는...

 정아 씨가 최소한 하루에 한 번은 사용해야 돼요."






"의무적으로요?"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내가 어디 가나 감시하는 거에요?"





"맞아요. 왜 이렇게 눈치가 빨라요?ㅎ"





"왜요?"





"그냥... 정아 씨가 어디 멀리 갈까봐 걱정돼서요."





"내가 이 카드 안 쓰면 그만이잖아요."





"그렇긴 한데...

 나랑 약속하면 정아 씨가 지킬 거잖아요.

 내가 매일 확인할 거에요.

 썼는지 안 썼는지."





"알겠어요. 그렇게 할께요.

 그런데 한도가 얼마에요?

 하루에 다 써도 되나?"




훈지 씨는 또다시 입을 벌린 채 놀랐다.





"한도가... 얼마였더라..."




나는 그의 대답에 피식 웃었다.




"훈지 씨 형님이랑,

 그 때 왔던 친구도 한번 초대해요.

 이번에는 내가 다른 요리를 해 볼게요."





"공주님 소리 들어도 괜찮아요?"





"그건 좀 무섭긴 한데...

 훈지 씨한테 소중한 사람들이니까

 내가 요리해서 대접해 드리고 싶어요."





"나 지금 약간 꿈같은 느낌이에요.

 정아 씨랑 결혼하면 이런 거 다 해 주는 거에요?"





"아니죠... 당연히!!"




나는 잠시 눈을 흘기고 말을 이었다.





"내가 말했죠?

 잠시 일을 그만 뒀다고.

 나는 내조와는 거리가 먼 여자에요.ㅎ"





훈지 씨를 배웅하고

나도 카페로 출근할 준비를 했다.





그 때 수연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는 아침에 내가 한 일을

그녀에게 자랑하듯 나열했다.





"정아 네가 이렇게 변했다고?

 아침잠 많아서 챙겨주는 밥도 못 먹던 애가

 뭐라고? 아침밥을 차려 줬다고?

 내... 참... 오래 살고 볼 일이다."




"나 이제 내조의 여왕이라고 불러 줘!!"





"와... 진짜 사랑의 힘이 대단하긴 하구나!"






"나... 거기 다시 한 번 가보고 싶어요." <94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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