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시오패스가 악녀로 빙의했을 때

ł9. 김율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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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민여주 환자분? 김율안 선생님 상담 잡아드렸어요. 여기서 성함하고 생년월일 적으시고 조금 기다리시면 됩니다.”



윤기의 말에 어쩔 수 없이 상담을 받으러 온 여주는 아무도 연락오지 않는 폰만 계속 만지작거리며 차례를 기다렸다.


“민여주님-? 민여주님, 들어가실게요.”


간호사의 말에 한숨을 내쉬며 간호사를 따라가는 여주였다.


오늘따라 가슴은 왜 이렇게 답답한지.


모든 게 비오는 여름날 처럼 찝찝한 기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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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시오패스가 악녀로 빙의했을때} 

19. 김율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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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여주 환자분?”


“아..네.”



앉으세요- 어딘가 어색하게 들어오는 여주를 보곤 다정한 목소리로 의자를 가르키며 말하는 율안이였다.

그에 이 선생님은 그나마 괜찮다고 생각한 여주였을까. 굳었던 표정을 조금씩 푼다.



“어… 일단 기록해야 하니까 형식적인 질문 몇 개만 할게요.”

“기록이요..?”


“있잖아요, 그거. 그 윗대가리들한테 올리는 거.”

“옛날에 그거 계속 안 올렸다가 징계 먹었거든요. 그러니까, 그냥 형식적으로 질문만 조금 한다는 거에요. 불편하시면 답 안하셔도 되고.”



큽. 결국 웃음을 참지 못하고 기침에 가까운 웃음을 내뱉은 여주는 급하게 헛기침을 하곤 다시 자리에 똑바로 앉아 율안을 응시했다.

그런 여주를 보곤 웃음 흘기며 무언가 중얼거린 율안은 여주에게 질문 몇 가지를 했고, ‘일상생활에 문제가 있나요?’ 정도의 잡다한 질문인만큼 여주는 딱히 어렵지 않게 쉽게 대답했다.











“자, 그럼 이 정도면 됐고!”

“이제··· 민여주씨 얘기를 한 번 해봐요.”


“…네?”


 
내 얘기를 하라는 건 처음인데.

율안의 질문에 입만 버끔거린 채 밖으로 말을 쉬이 내뱉지 못하는 여주에 율안이 말했다.


“음… 정말 별 거 아닌거라도 괜찮아요. 예를 들자면, 저는 오늘 점심으로 돈가스를 먹었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기분이 좋았다··· 이 정도로. 그냥 일상을 공유해 달라는 거에요, 여주씨의 일상.”



“어… 저는,”



“오늘 오빠랑 싸웠어요. 정확히 말하면 전 반쪽짜리 동생이지만. 그래서 말도 잘 안 하고 지냈는데, 오늘 병원에 오빠가 절 업고 왔더라구요. 그래서···”



여주는 율안의 말에 조금씩 조금씩 자신의 말을 하기 시작했고, 그런 여주에게서 한 번도 시선을 떼지 않고 집중하는 율안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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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부르셨다고…”



집에 도착하니 비서의 말에 바로 정장을 갖춰입고 아버지의 회사 대표실로 찾아갔다.



“그래. 불렀지, 내가.”

“민여주, 그 년이 병원에 갔더군.”






쿵- 

민혜준의 말에 윤기의 동공이 요동쳤다. 분명 기록을 다 지우고 입단속을 시켰는데··· 



“알고, 있었나?”


씨발, 이미 알고 있었구나.

애초에 이 시점에서 윤기를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며 알고 있었냐 묻는 질문 자체가 네가 한 짓을 네 입으로 말해라- 하는 의도였다.

결국 윤기는 고개를 푹 숙이고 대답을 했다.


“…예.”



쨍그랑-!!


윤기의 대답과 함께 옆에 있던 유리컵을 윤기에게 집어 던져버린 혜준에 그대로 딱딱한 유리컵을 머리에 맞아 비틀거린 윤기였다.

머리에서 피가 흐르는 곳을 손으로 꾹 누른 채 얕은 신음을 내는 제 아들을 감정없는 눈으로 보며 어느 새 윤기의 앞까지 선 혜준이 가차없이 윤기의 뺨을 내리쳤다.




“민여주 그 년에게 신경 쓰지 말라고 했지 않느냐.”

“그런 괴물은 네 동생이 아니니 동정심 갖지 말라 몇 번을 말해야 하지?”

그 날 이후로 깨달은 줄 알았더니, 아니었구나.”



“…”



“대답 안 해?”


뺨 맞은 왼쪽 볼을 큰 왼손으로 감싼 채 그저 바닥만을 내려다보고 있는 윤기에 혜준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하지만 윤기는 혜준의 예상과 달리 예전처럼 겁먹지 않고 고개를 들어 똑바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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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여동생입니다.”



“뭐?”




내 여동생이라고, 씨발.”

“니가 아무렇게나 싸질러서 낳은 딸이지만 내 하나뿐인 여동생이라고.”

“네가 뭔데 그 애를 그렇게 정의해?!!”




한 번도 대든 적 없던 윤기. 그런 윤기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혜준에게 소리쳤다. 두려워 떨리는 손을 꾹 말아쥐곤 핏대가 솟도록 소리치는 그 애에게서 혜준은 여주의 엄마가 겹쳐보였다.




“…나가, 민윤기.”

“당장!!”




그런 윤기를 보며 주먹을 화를 참느라 이를 악물며 문을 손가락으로 가르켜 소리치는 혜준이였다. 그런 혜준에 윤기는 한 번만 더 민여주 건드려요. 그 땐 아버지고 뭐고 없으니까. 라며 끝까지 혜준을 노려본 채 여기저기 깨진 유리파편들을 밟고 대표실에서 나가는 윤기였다.












순간 겹쳐보이는 윤기와 전여인의 모습에 그녀와의 추억들이 다시 기억 위로 쏟아졌다.

아직도 생생한 그녀의 모습이 나를 미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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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준아- 빨리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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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혜준! 또 다른 생각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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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간의 불타는 사랑. 흘러넘치는 사랑. 서로가 전부였던 사랑. 그렇게 평생을 함께 할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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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하자, 혜준아. 나 너무 힘들어.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우리의 아이를 가졌다는 것을 숨긴 채 떠나버린 너. 하지만 슬퍼할 시간도 없었다. 만나는 이와 헤어졌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정략결혼을 했다. 
그녀를 사랑하진 않았지만 부부로서의 의무는 다해야했다. 그렇게 새로운 인연인 아내와의 아이가 생겼다.
나의 첫 아이가 태어나고, 그 후 6개월의 나날들을 꼬박 채운 채 다시 나타난 너는 너와 똑닮은 여자아이를 두고 갔다.


그래서 밀어냈다. 너무 거슬렸다. 그 아이만 없었다면 그녀와 평생 행복했을텐데.

하지만 아이가 클 수록 자꾸 그녀가 생각났다. 아이가 눈 앞에서 사라졌음 했다. 결국 나는 아이를 증오했다. 미워하고 또 미워했다.



아직도 그녀를 잊지못했다. 순간 겹쳐보이는 제 아들과 전 여인에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지 못했다. 화, 라고 정의 내리긴 힘든 감정이나 그 단어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자꾸만 물밀려 오는 그녀와의 추억에 머리을 부여잡고 고개를 숙인 채 그녀를 원망해 보았다. 소름끼치도록 그리운 느낌이 싫다, 이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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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할…, 김율안, 너는 진짜..”







더 이상 그녀를 기억하지 못했으면 좋겠다. 그냥 없던 일처럼 잊어버리고 싶다. 그녀도, 그녀의 딸, 여주도.